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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영웅왕이 살아가는 법-99화 (99/128)

99화

투타타타탓!

눈먼 총알이 미친 듯이 날아들었다.

“으으으!”

서재원은 몸을 잔뜩 웅크렸다.

믿을 건 30cm도 안 되는 콘크리트 덩어리뿐.

조금만 몸을 보여줘도 죽을 것만 같았다.

“으, 은채야!”

부성애라도 발동한 것인가.

두려움에 떠는 와중에도 딸을 찾았다.

서은채 또한 비슷한 상황이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위기를 대하는 태도였다.

그녀는 납작 엎드린 채.

눈살만 찌푸리고 있었다.

물론 동요가 있긴 했다.

“어렵네…….”

하나, 그건 두려움이 아니었다.

조금 당황스러울 뿐.

몬스터는 꽤 상대해 봤지만.

총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괘, 괜찮니?”

간신히 기어 온 서재원이 물었다.

하지만 서은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람을 붙인 것 때문인 듯했다.

서재원은 곧장 변명을 늘어놓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단다. 대체 뭘 믿고 그놈에게 널 맡겨. 아빠가 네 생각 많이 하는 거 알지? 그래서 그런 거야.”

“…….”

하나 그녀는 여전히 무응답.

깡패들만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눈에 안광이 번득이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낀 서재원.

이윽고 서은채의 어깨에 손을 댔다.

“은채야.”

팍!

그녀의 반응은 놀라웠다.

아버지의 손길을 냉혹하게 쳐낸 것이다.

그것도 굉장한 힘으로.

서재원은 깜짝 놀랐다.

가녀리던 딸이 맞나 싶었다.

팔이 끊어질 듯 아팠으니까.

거기다 무섭도록 차가운 눈빛.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너 정말 괜찮은 거…….”

“아, 진짜 집중 안 되게. 자꾸 주절거릴래?”

“엉?”

“방해만 할 거면, 가. 아빠. 괜히 여기 있다가 뒈지지 말고.”

“대, 대체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니?”

“알 거 없어.”

서은채는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귀찮은 기색.

평소와 전혀 다른 말투.

저 이상한 놈한테 잠깐 맡겼더니.

애가 비슷해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음 순간.

서재원은 경악했다.

“헉?”

슬쩍 몸을 일으킨 서은채.

대뜸 어디론가 살금살금 이동하는 게 아닌가.

목표는 뻔했다.

빙 둘러서 깡패들의 뒤를 잡으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들러붙어서라도 막아야 했다.

딸을 살리기 위해서.

꽈악!

“아, 진짜! 구질구질하게 왜 이래?”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거길 들어가면 무조건 죽어!”

“어차피 그럴 일 없으니까. 이것 좀 놔!”

“안 돼!”

실랑이가 꽤 컸던 모양이었다.

깡패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곧이어 무자비한 총알 세례가 날아들었다.

투타타타타타!

“젠장!”

서재원은 다시금 몸을 웅크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콰직―!

콘크리트 더미가 부서져 나가는 게 아닌가.

큰일이었다.

더 이상 엄폐물도 없는데.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퍽!

“컥!”

고개를 홱 돌려 보니.

서은채의 가슴팍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총을 맞은 것이다.

“아, 안…….”

서재원은 절규하려 했다.

하지만 외침은 이어질 수가 없었다.

상체를 푹 숙였던 그녀가.

악귀처럼 변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으니까.

“키이히히히히!”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시뻘건 안광.

팔뚝과 다리에 불룩 솟은 혈관.

15cm는 넘어 보이는 손톱.

몬스터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두려운 형상이었다.

이윽고 서은채는 느릿하게 시선을 돌렸다.

“으어어?”

서재원은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딸이 괴물로 변해 습격하는 상황이라니.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다.

도망쳐야 하나?

아니면 진정시켜야 하나?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뭘 하든.

이미 늦었다.

쉬익―!

서은채의 손이 날아들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당연히 늙은 몸으로는 피할 재간이 없었다.

서재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손을 파들파들 떨면서.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쉬쉭― 척!

누군가가 불쑥 끼어들더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매우 간단하게.

그러곤 태연한 투로 말했다.

“고급 인력을 작살내면 쓰나. 저 떨거지들이나 처리하라고.”

이윽고 그자는 서은채를 저 멀리 던져 버렸다.

서재원은 가쁜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로.

* * *

서은채는 안정적인 자세로 날아갔다.

하도 많이 던져져서 그런지.

익숙한 모양이었다.

나는 서재원을 무심하게 내려다보았다.

잠시 대화할 시간은 있겠지.

깡패 새끼들이야.

광년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아까 뭐라고 했더라? 계약서를 안 써서 약속을 못 지키겠다?”

“그, 그건…….”

“그럼 지금 작성해 볼까? 당신 피로 말이야. 혈서라고 들어는 봤냐?”

“으으으!”

이제 이놈은 끝났다.

완벽하게 굴복한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서은채의 광증.

그다음은 내 무력.

어느 하나 만만치 않았거든.

근데 두 번째를 어떻게 아냐고?

그야 당연한 거 아닌가.

‘총알을 막고 있으니까.’

현재 이곳엔 엄폐물이 없었다.

엄청난 화망에 콘크리트 더미가 날아가 버렸거든.

그럼에도 서재원이 죽지 않은 건.

순전히 내 보호 덕분이었다.

티디디디딩!

바삐 움직이는 왼팔.

나는 탄환을 모조리 쳐내는 중이었다.

보지도 않고.

상상이나 했겠나.

이런 미친 광경과 마주하게 될 거라고.

그러니 인정할 수밖에 없지.

우위는 내게 있다는걸.

“조만간 연락할 거다.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해.”

“무, 물론입니다.”

“미리 말해두는데, 다음번은 없어. 그땐 쟤를 그냥 놔두든지. 죽여 버리든지 할 거다.”

“……네.”

서재원은 고개를 푹 숙였다.

확답이 나온 직후.

나는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광년이는 신나게 날뛰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서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우리 딸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약속은 아직 유효한 건가요?”

솔직히 좀 고민되긴 했다.

이 아저씨가 괘씸한 것도 사실이었고.

하나, 서은채는 꽤 괜찮은 자원이었다.

사냥터에 데리고 다녀도 될 만큼.

지금도 봐라.

완벽한 광년이가 되지 않았나.

‘잘만 변신하네.’

아마 어떤 계기가 필요했던 것 같았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서재원에 관한 처분이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채찍만 때릴 순 없으니까.

적당한 당근을 쥐여줘야지.

“노력은 할 거야. 아직 장담은 못 하지만, 나보다 저걸 잘 고치는 사람은 없을걸?”

“그럼 믿고 맡기겠습니다.”

“얼씨구? 해결사를 데려왔던 놈이 무슨 신뢰?”

“제, 제가 잘 모르고 그런 것이니.”

“좀 봐달라?”

“예, 그런 뜻입니다.”

“좋아. 대신에 부탁을 두 개로 늘릴 거야.”

“얼마든지 들어 드리겠습니다.”

“기대하지.”

서재원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이놈에게 희망은 없었다.

끔찍이 아끼는 딸의 실체.

그건 생각보다 훨씬 무시무시했다.

설마 아버지인 자신까지 해하려 할 줄은 몰랐겠지.

“캬아악―!”

광년이의 괴성이 들려올 때마다.

서재원은 몸을 들썩거렸다.

그러다 이윽고.

그녀의 비명이 멎었다.

“벌써 끝났나?”

나는 느긋하게 공터를 거닐었다.

처참하게 널브러진 깡패들.

역시 광년이의 위력은 대단했다.

초인적인 신체 능력.

사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위급 플레이어들은 다 그러니까.

그녀의 최대 강점은 바로.

‘두려움이 없다는 거지.’

생각이나 했겠나.

총을 쏘는데도 밀고 들어오는 적을.

턱!

나는 서은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대번에 손톱이 날아들었다.

하나, 무의미한 움직임이었다.

이미 신성력을 발하고 있었거든.

츠츠츠츠!

“으윽!”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극심한 두통.

단순한 부작용이었다.

마기가 도망치면서 생긴.

“아…….”

서은채는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익숙한 광경이겠지.

정신을 차렸을 때.

항상 내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발동된 건가요?”

“응.”

“이걸 기쁘다고 해야 할지…….”

“치료는 멀었지만, 현재로선 나쁘지 않아. 쓸모가 생겼거든.”

“뭐라고요?”

그녀는 눈을 치켜떴다.

정 없는 한 마디가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삐져서 도망쳤는데.

솔직히 좀 아차 싶었다.

잘 달래도 모자랄 판에.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임기응변의 지존.

마왕의 함정도 헤쳐나왔다.

이까짓 애 다루는 것쯤이야.

“안 그럼 널 사냥터에 데리고 다닐 수가 없잖아. 치료만 늦어질 뿐이지.”

“아, 그런 의미였나요?”

“물론.”

“하! 말도 안 되는 소리!”

칙! 칙!

서은채는 발로 바닥을 긁었다.

모래를 차서 내 신발을 덮어 버린 것이다.

소심한 반항이었다.

무슨 짓을 하든.

나한텐 통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그냥 흙이나 뿌리는 거지.

‘변명이 안 먹히네.’

머쓱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막 크게 미안하진 않았고.

내가 한 말이 사실이긴 하니까.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크으으! 너 이 개자식!”

누군가가 불쑥 몸을 일으켰다.

시체 더미에서 나타난 인물.

김시연이었다.

그녀는 피범벅이 된 채.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나겠지.

원한은 이쪽에 있을 테니까.

“안 죽였네?”

“저야 모르죠. 기억이 드문드문 나는데.”

“무의식중에 피했을 수도 있지. 친구였잖아.”

“이젠 아니잖아요.”

서은채는 김시연을 경멸했다.

친한 척 다가와 자신을 팔아넘겼으니.

거기다 저 여자의 실체까지 알게 되었다.

마음이 떠났을 수밖에.

물론 서은채의 시선 따위.

김시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뭐라는 거냐? 미친―”

“에헤이! 욕을 하면 쓰나.”

“네놈이 제일 문제야! 이 썩을 놈아!”

김시연은 악다구니를 질렀다.

저럴 만도 했다.

모든 기반을 잃었으니까.

영혼까지 끌어모은 습격.

그것도 물거품이 되지 않았나.

이미 상황은 끝났다.

깡패들은 몰살했고.

김시연 혼자만 덜렁 남았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조태수, 천지환과 함께.

날 조질 계획을 짜?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렸으면.

뒈질 각오 정도는 했어야지.

이게 바로 그 결과고.

한데, 그녀의 눈빛이 이상했다.

‘절망한 사람이 아닌데?’

뭔가 숨겨둔 한 수가 있는 듯했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

김시연이 움직였다.

시체 더미에서 꺼낸 길쭉한 무언가.

“어?”

문득 서은채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큼지막한 원통.

그 물체의 모양이 심상치 않았거든.

“잠깐만 저게 뭐야?”

갑자기 웬 휴대용 로켓 발사기란 말인가.

영화에서나 볼 법한 물건이었다.

꽤 무거운 모양인지.

김시연은 살짝 휘청거렸다.

그럼에도 조준을 멈추진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광소를 터트렸다.

“꺄하하핫! 네놈이 암만 강해도 이건 못 막겠지. 뒈져랏!”

푸쉬이잇―!

발사기 뒤편으로 시뻘건 불꽃이 일었다.

동시에 유선형 물체가 쏘아졌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데?’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지척까지 다가온 로켓.

서은채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꺄악!”

광년이 상태도 아니고.

저걸 맞았다간 골로 가겠지.

물론 나야 동요하지 않았다.

좀 신기했을 뿐.

그냥 막거나 튕겨 내면 그만이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취리릿!

맹렬하게 날아오던 로켓이 대뜸.

방향을 홱 바꾸는 게 아닌가.

다름 아닌, 서재원 쪽으로.

유도기능이라도 탑재된 모양이었다.

“야, 그건 반칙이지!”

나는 잽싸게 몸을 날렸다.

속도가 상당했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로켓탄보다 내가 훨씬 빨랐으니까.

이윽고 펀치가 탄두에 작렬했다.

콰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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