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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한 영웅왕이 살아가는 법-116화 (116/128)

116화

원정 레이드는 다소 특이했다.

한울에서 멀어질수록 차원 부식은 강해진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데.

대체 목표를 어떻게 찾아가겠나.

‘나라면 가능할지 몰라. 하지만 얘들로는 어림없지.’

공략대에는 쟁쟁한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봤자.

한낱 인간일 뿐.

차원 부식의 안개를 꿰뚫어 볼 순 없었다.

그래서 가져온 게 바로.

억제기였다.

“저걸 이동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당연하지. 좀 크긴 하지만, 차에 실어 나르면 그만이니까.”

“근데 왜 저리 궁상맞게 살아?”

“그야 더럽게 비싼 물건이니까. 만드는 것 자체도 어렵고.”

강철남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이리 간단한 걸 묻냐는 듯한 태도였다.

예언가도 억제기를 펑펑 찍어낼 순 없는 모양이었다.

나야 마정석만 있으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만.

‘왠지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만약 내가 예언가의 자리를 차지한다면?

한울은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땅을 확보하는 게 쉬워지거든.

근데 또 그러고 싶진 않았다.

그럼 왠지 한울을 책임져야 할 것 같잖아.

‘차원 이동의 비밀만 풀면, 여길 떠날 거라고.’

원래 내키는 대로 살지 않았나.

여긴 잠시 거쳐 가는 곳.

너무 마음 두지 말자고.

치직!

―도착할 때가 되었습니다. 다들 준비해 주십시오.

문득 천형태의 음성이 들려왔다.

무전기에서 나는 소리였다.

동시에 차량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보이는군.”

강철남의 혼잣말.

아니나 다를까.

창문 너머로 흐릿한 형상이 목격되었다.

짙은 안개를 뚫을 정도로 거대한 몸집.

파멸급 레이드 몬스터는 충분히 될 것 같았다.

―억제기 설치합니다.

차 적재함에서 꺼낸 큼지막한 물체.

2m짜리 큐브였다.

꿈틀거리는 표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윽고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쓰스스스스!

억제기에서 나온 파장이 안개를 밀어낸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왜 비켜 주는 것 같을까?’

신성력과는 뭔가 달랐다.

정화된 땅의 방어막.

그건 차원 부식을 두들겨 패는 식이었다.

가까이 오면 씹어 먹는다?

그러니까 꺼져.

대충 이런 느낌이라면.

억제기의 파장은…….

“양보?”

“뭐라는 거야?”

“왠지 그런 것 같아서.”

“억제기를 말하는 건가?”

“그래.”

“이런 것까지 설명해 줘야 해? 아, 다른 도시 출신이라, 정규 교육을 거치지 못했다고 했지?”

강철남은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유식한 척을 해대기 시작했다.

대충 속임수라는 내용이었다.

차원 부식을 교란하여 밀어내는 것.

하지만 전혀 와 닿지 않았다.

‘누가 봐도 양보인데.’

속임수라고 우겨대면 할 말 없지만.

어쨌거나 어느 정도 시야 확보가 되었다.

하지만 파악하지 못한 게 있었다.

몬스터의 상체.

그곳은 아직 깜깜했거든.

놈이 워낙 크고.

안개가 짙은 탓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기다릴 수는 없었다.

“눈치챈 것 같은데?”

“그렇군. 아마 명령이 내려올 거야. 이번 지휘부는 유능한 편이거든.”

“그럼 마동왕 때는?”

“천지혁이었던가? 걘 너무 교본대로만 하는 스타일이라.”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뜻이지?”

“지금은 네가 지휘부의 일원이라서 유능하다고 하는 거잖아.”

“…….”

강철남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순간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금방 변명하려 했지만.

나는 선수를 쳐버렸다.

“들켰네?”

“무슨 소리…….”

“늦었어. 공략에나 집중하라고, 유능한 지휘부 아저씨.”

“젠장.”

강철남은 애꿎은 입술만 씹었다.

그러곤 지휘부와의 무전에 몰두했다.

이윽고 결론이 난 모양이었다.

“강행할 거다. 정체가 뭔지는 쓰러뜨려 놓고 확인한다는군.”

“오! 그거 마음에 드는 방식인데? 당신이 건의한 건가?”

“근접 딜러 리더가 무슨 힘이 있나. 판단은 공략대장이 다 하지.”

“갑자기 웬 겸손이래? 놈이 대비하기 전에 치자고 열을 올렸으면서.”

“크흠! 잔말 말고 자네도 준비하게. 시작부터 총공세를 할 거니까.”

공략대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데.

상대는 태평했다.

이러면 기습의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성공하면 엄청난 이득을 보는 거고.

실패해도 본전.

시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천형태의 무전이 들려왔다.

―풀링과 동시에 공격을 퍼부을 겁니다. 정신 못 차리게 하는 것이 목적이니까, 마음껏 쏟아부으십시오.

평소와는 다르게 말이 빨랐다.

다소 조급한 느낌.

타이밍을 놓치면, 이점이 사라지니까.

그래서 서두르는 듯했다.

‘근데 이럴 때 꼭 발을 헛디디지 않나?’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원래 빠르면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드는 순간.

원정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투두둥!

“풀링 성공!”

탱커 리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전기 따윈 필요 없다는 듯.

거세게 포효하는 모습.

‘오? 마음에 드는데?’

상남자 스타일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윽고 공략대장의 무전이 들렸다.

―총공격 개시!

플레이어들은 그야말로 불의 화신이 되었다.

온갖 스킬을 마구 난사한 것이다.

나도 2단 기어를 올린 채.

공격을 퍼부었다.

그야말로 미친 화력이 이어졌다.

‘잘하면 이대로 끝낼 수도 있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눈 깜짝할 새 다가오는 법.

방금의 우세는 단순한 착각이었다.

치이이익―! 쿠웅!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시커먼 안개가 흩어지면서.

놈의 상체가 드러나는 순간.

뭔가가 잘못되었음을.

―어리석은 것들. 명을 재촉하는구나.

난데없이 들려온 음성.

지휘부의 무전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그대로 때려 박는 의념.

인펙스의 의사소통 방식과 비슷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이 놀란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차원 부식이…….”

“생성된다?”

강철남이 뒷말을 흐리자.

곧장 내가 받아주었다.

그 순간.

근접 딜러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묻는 듯한 눈빛.

나는 어깨를 으쓱하기만 할 뿐.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당장 싸워야 할 판인데 뭔 설명?’

말하다가 다 뒈질 일 있나.

이윽고 안개가 완전히 걷혔다.

만천하에 드러난 몬스터의 머리.

그런데 전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싸우다 말고 멀뚱멀뚱 서 있다니.

하지만 다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

“저, 저건!”

“일반적인 몬스터가 아니야.”

플레이어들은 경악에 휩싸였다.

다름 아닌, 상대의 모습 때문이었다.

양쪽으로 삐죽 튀어나온 뿔.

보는 이들을 얼어붙게 만드는 눈빛.

거기다 입과 코에서 연신 뿜어지는 차원 부식.

바로 이게 결정적이었다.

어떤 존재를 연상케 하는 특징.

“……침탈자 말바로프. 저놈이 대체 왜?”

누군가의 중얼거림.

공포는 전염병처럼 번져 나갔다.

침탈자가 무엇인가.

인류는 물론이고.

모든 생명체의 멸망을 불러일으킨 악의 근원.

죽음의 화신이었다.

본능적인 증오심.

사실 그게 먼저였다.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주범 아닌가.

하지만 두려움이 투지를 덮어 버렸다.

‘위압감이 엄청나군. 마치 마왕을 보는 느낌이야.’

솔직히 말하자면.

마계 7왕보다도 강해 보였다.

아직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느낌적인 느낌이 그렇다고.

“여기서 침탈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강철남의 중얼거림.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예언가가 말 안 해주던가?”

“암만 대단한 능력을 지니셨다지만, 이런 것까지 예측할 수 있다고? 그건 좀 과한 요구지.”

“그래?”

“상식적으로 그렇잖아. 멀리서 봤을 때는 우리도 파멸급 레이드 몬스터인 줄 알았으니까.”

긴장감이 감돌았다.

강철남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침탈자를 잡은 게 두 번뿐이라 그랬던가?’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결과 또한 좋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희생이 잇따랐으니까.

그것도 최약체로 평가받는 침탈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네가 판단하기에 저놈은 어때?”

“관측 데이터상으로는 비슷하다고 나와 있다.”

“그래?”

“하지만 말바로프는 북방의 제왕이라 불리는 존재. 결단코 만만하게 봐선 안 돼.”

“당연하겠지. 일단은 침탈자잖아.”

“근데 이상한 점이 있어. 저 녀석이 왜 한울 근처에 있는 거지?”

정당한 의문이었다.

북방의 제왕 말바로프.

몬스터 도감에 따르면.

놈은 옛 러시아 땅.

하바롭스크보다 더 북쪽에 있어야 하거든.

‘위치는 중요하지 않고. 그나저나 생각보다 수준이 높네?’

방금 내 판단이 그러지 않았나.

마계 7왕보다 강한 것 같다고.

침탈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지구는 마계보다 더 지독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근데 그게 또 싫진 않았다.

“재밌겠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달가운 상황은 아니지 않나?”

“상대할 만한 놈이 많잖아. 그럼 좋은 거지 뭐.”

“나 참, 너란 인간은 정말…….”

강철남은 말꼬리를 흐렸다.

때마침 말바로프가 활동을 개시했기 때문이었다.

크게 움직인 건 아니고.

그저 고개만 돌렸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굉장한 압력이 느껴졌다.

이윽고 의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말바로프의 음성이었다.

―희한한 놈이 섞여 있군.

정확히 내게로 향하는 시선.

살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피부로 찌릿찌릿한 느낌이 전달될 정도였다.

“으윽!”

옅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물론 내가 한 건 아니고.

상대의 기세에 휘말린 강철남이 낸 소리였다.

나는 옆을 힐끔 돌아보며 말했다.

“티어 표를 고쳐야 할 것 같은데.”

“무슨 소리지?”

“챌린저가 침탈자를 상대할 수 있다며? 내가 보기엔 상대가 안 돼.”

“젠장.”

그저 욕지거리만 내뱉을 뿐.

강철남은 반박하지 못했다.

사실이 그랬으니까.

확실히 침탈자는 규격 외의 존재였다.

하긴 그럴 수밖에.

지구 전체를 오염시킨 게 그들 아닌가.

―다들 정신 차리세요!

이윽고 천형태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제야 말바로프의 기세를 이겨낸 모양이었다.

벼락같은 음성이 들려오자.

플레이어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초반 러쉬는 실패. 하지만 계속 퍼부으십시오. 탱커 진형은 상대의 공격 차단에만 집중해 주시고요.

이윽고 차분한 오더가 이어졌다.

상대는 침탈자다.

멍청한 몬스터들과는 다른 존재.

탱커들의 도발 스킬은 먹히지 않을 터.

어그로를 쌓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교본대로로군. 좋아. 이렇게 된 이상, 목숨을 걸어야겠지.”

강철남은 결연한 표정으로 무기를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단말기를 꺼내 들었다.

“뭐 하는 건가? 전투 상황은 지휘부에서 다 녹화해. AI 순위 집계를 해야 하니까.”

“증거 남기려는 거 아닌데?”

“그럼?”

“거긴 내 얼굴이 잘 안 나오잖아. SNS 올릴 사진 찍어야지.”

“……허!”

할 말을 잃은 표정.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런 강철남을 향해 피식 웃어 보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 관종 아니다.”

“누가 봐도 관심에 미친 사람이야.”

“할 짓 없으면 거기서 나 좀 찍어 봐.”

“돌았냐? 다들 스킬 퍼붓는 거 안 보여?”

“어차피 의미도 없는 짓거리인데, 뭣 하러 힘을 빼?”

“엉?”

다소 어벙한 반응이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을 거다.

파상 공세가 이어지는 중 아닌가.

그게 다 의미가 없다고 했으니까.

이해를 못 하겠다는 눈빛이 쏟아졌다.

나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느껴지거든. 저놈의 여유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투우웅―!

말바로프의 머리 쪽에서 터진 충격파.

거대한 보랏빛 동심원이 이어졌다.

그러자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하늘을 수놓은 각양각색의 스킬들.

그게 한순간에 싹 사라진 것이다.

강철남은 입을 쩍 벌린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이 무슨…….”

“말했잖아. 영상이나 찍으라고.”

나는 그 말을 남긴 뒤.

가볍게 몸을 돌렸다.

이대로 방관한다면.

공략대가 몰살할 판이었거든.

가만 놔둘 순 없지.

이 몸의 활약을 목격해 줄 놈들인데.

“초공간 격벽 해제.”

나는 큼지막한 원반을 던졌다.

이윽고 우중충한 하늘에 새로운 태양이 떠올랐다.

치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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