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26화
“난 수원시에 거주하고 있소.”
“그래?”
대화 설정을 변경하고 시청자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계룡시에서 수원까지 얼마나 걸려요?”
-계룡시? 잠시만 검색 좀.
-오 택시 타고 한 20분 걸릴 듯?
20분이면 가깝네.
“정확히 어디로 가면 되냐?”
“다니는 체육관이 있소. 관장에게 말해놓지.”
왕삼이 보내준 주소를 외운 뒤 입을 열었다.
“넉넉잡고 30분 정도 걸릴 테니까 기다려.”
자신만만하게 한마디를 던지곤 왕삼의 방송에서 나왔다.
-ㄷㄷㄷㄷ 게임 저격이 이렇게 이어지네.
-ㅈㄴ 개꿀잼 컨텐츠 아니냐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게임 두 판 다 이기고 현실에선 져버리면, 쓰읍. 마무리가 찝찝한데.
-그러게. 디지야 이길 자신 있는 거지?
“물론이죠. 감히 전신한테 싸움을 걸어?”
-전신? 자기가 전쟁의 신이라는 거임? 거만 그 자체네ㅋㅋㅋㅋㅋㅋ
“아, 제 이름이 전신이에요.”
-……아.
-셀프 탈룰랔ㅋㅋㅋㅋ미치겠넼ㅋㅋㅋㅋㅋ
채팅창이 갑분싸에 빠진 가운데, 말장난을 성공시킨 그가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님들. 밖에 나가서도 방송이 되나요?”
-ㅇㅇㅇ 커넥터에 카메라 내장되어 있고 오프라인 방송 모드도 있음.
-별도의 장비 없이도 안구의 시각 신호랑 연동해서 방송하면 고화질 방송 쌉가능.
그런 게 가능하다고? 미래의 기술력은 무궁무진하구나.
시청자들의 조언대로 안구 연동 기능을 사용해서 오프라인 방송을 켰다.
-진짜 행복주택이네.
-척 보고 어케 앎? 걍 원룸일 수도 있지.
-나도 행복주택 비슷한 곳에 삼.
-아.
-ㅋㅋㅋㅋㅋㅋㅋㅋ탈룰라 2탄이냐?
집 밖으로 나선 그는 곧바로 택시를 불렀다.
물론 직접 부른 건 아니었다.
“뾰롱아, 택시 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해?”
“뾰로롱! 불렀나요, 어린이 친구! 인근 택시에 배차 신청을 넣을까요?”
-?? 아니 뭔 뾰롱이?
-저거 기본 제공되는 비서 AI라 어릴 때 빼곤 안 쓰지 않냐?
-그니까. 기능도 제한적이라 커스텀도 못하는데.
“몰랐네요. 근데 뾰롱이도 좋아요. 어린이 친구라고 부르는 것만 빼면.”
-커스텀하면 공주님이나 왕자님이라고 부르게 만들 수도 있음ㅋㅋㅋㅋ
와 비타에선 용사님이란 낯간지러운 호칭으로 불렸던 몸.
호칭엔 딱히 관심이 없다.
-무료 이용 끝나면 돈 내야 하는 건 똑같은데 굳이 돈 줘가며 뾰롱이를 유지하는 이유가 뭐징.
-……혹시 요정 같은 거 좋아하는 취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넼ㅋㅋㅋㅋ
이 자식들은 틈만 주면 놀릴 각을 보네.
“그런 거 아니야 자식들아! 커넥터 받은 지가 얼마 안 돼서 아직도 무료 기간이거든?”
애초에 이용 기간이 제한되어 있는 것도 몰랐다.
아마도 그가 무지성 예스를 외쳤을 때 약관 사항 중에 설명이 있었던 모양.
‘덕분에 스트리밍 중인 것도 몰라서 흑역사 영상이나 박제당하고.’
보였다, 너의 죽음이.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얼굴이 화끈화끈거렸다.
-ㄷㄷㄷ 너 20살은 넘었을 거 아냐. 7살이면 보급받는 커넥터를 얼마 전에 받았다고?
-그래서 상식이 부족했구나. 난 그냥 천연 컨셉인 줄 알았는데 찐이었네…… 미안…….
“미안할 것까진 없고.”
[무인 택시가 도착했습니다.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도착한 택시. 그의 입이 벌어졌다.
“택시가…… 하늘에서 내려오네……?”
평범한 자동차를 생각했었는데 UFO처럼 생긴 비행 접시가 등장했다.
-그럼 택시가 하늘에서 오지 어디서 옴?
“아니, 택시는 보통 자동차 아닌가……?”
-자동차? 그거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건데.
-화물 트럭이나 기차가 아니고서야 요새 누가 지상 교통을 이용함ㅋㅋㅋㅋㅋ
분명 경찰서 갈 때 경찰차를 탔었는데.
잠깐. 그러고 보니…… 경찰차에 바퀴가 달려 있었었나?
알몸 스트립쇼를 펼친 직후라 경황이 없어서 세세한 걸 확인하지 못했었다.
‘도시 구경할 때 비행체가 많이 보이긴 했지만, 택시 같은 거까지 비행체일 정도로 발전한 상태라고?’
“진짜 자동차가 없어요? 집 근처 마트에 장 보러 나가거나 짐 많을 땐 자동차가 편하지 않나요?”
-자꾸 이상한 소리 하네. 장을 왜 직접 나가서 봄. 디지털 월드에서 실물 보면서 사면 그만인데.
-기분전환 삼아 쇼핑몰 같은 데서 쇼핑할 때도 구매하면 다 집으로 배송됨.
특수용도 외의 자가용은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하여튼 알겠습니다. 세상 참 신기하네.”
-세상이 신기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 구시대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ㄹㅇㅋㅋㅋ 대체 어디서 살다 온 거야.
20분 뒤, 수원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린 그는 다시 한번 입을 떡 벌렸다.
계룡시만 해도 대도시라 생각했었는데, 수원은 급이 달랐다.
‘돌아갈 땐 방송 끄고 뛰어서 가야겠다. 구경하는 맛이 있겠는데.’
“우선 왕삼이 보내준 주소로 이동할게요.”
보내준 주소의 건물 지하. 넓진 않지만 깨끗한 체육관에서 왕삼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마침 왔군. 동도 여러분. 디지 소협이 도착했소이다.”
체구가 짐작 가지 않는 게임에서와 달리 왕삼은 190이 넘는 장신에 근육질 거구였다.
-와ㄷㄷㄷㄷ 뭐가 저리 크냐?
-얼굴은 동양인인데 몸은 바이킹이네?
-디지야 왼쪽에 거울 한번 봐볼래?
슬쩍 고개를 돌리니 체육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울에 그와 왕삼의 모습이 동시에 비쳐졌다.
-이렇게 보니까 체급 차이 지리는데?
-디지 얘도 작은 거 같진 않은데 왤케 형 동생 같냐;;;
그 또한 키가 180 이상이지만, 프레임 크기 자체가 다르다 보니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인다.
‘그나저나 현실에서 디지라고 불리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군.’
“야. 오프라인이니까 서로 실명으로 부르자. 난 이전신이다.”
“흠. 난 왕삼이라 하오.”
“스트리밍 네임 말고 실명 까자고.”
“그러니까 내 이름은 왕삼이오.”
“……무림인 컨셉이라 왕삼이란 닉네임을 쓰는 게 아니었다고?”
그거 무협 소설에서 점소이 이름으로나 쓰이는 이름이잖아.
실제로 사람 이름이 왕삼일 수 있는 거였어?
저절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왕삼?”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디지 이 쉑 사람 이름 가지고 진지하게 그런 반응 보이지 말라고ㅋㅋㅋ
-ㅋㅋㅋㅋㅋ왕삼이 이상한 이름인 건 맞짘ㅋㅋㅋㅋ
-왕가네 셋째 아들이냐고요ㅋㅋㅋㅋㅋ
왕삼은 얼굴 근육이 마구 꿈틀거릴 정도로 분노했으나, 애써 진정하며 한숨을 내뱉었다.
“비무 전 도발로 평정심을 깨려 하다니, 수가 높군.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부모님이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을 욕되게 하는 건 너무하지 않소?”
“……아.”
-ㅋㅋㅋㅋㅋ탈룰라 가불기ㅋㅋㅋㅋㅋㅋ
-빨리 사과해라 방장아!
-ㄹㅇ 선 씨게 넘었네ㅋㅋㅋㅋ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으로 놀리는 건 악질이지 방장 샛갸!
“미안. 그런 줄 몰랐지…… 너도 내 이름 가지고 놀릴래? 난 부모님이 지어주신 것도 아니라 마음대로 놀려도 돼.”
당황에 빠진 왕삼이 입을 벌린 채 굳었다.
-??? 이거 고아라는 뜻 아니냐?
-역으로 가불기 탈룰라인데…….
-심지어 방장 커넥터도 얼마 전에 받고 상식 자체가 없는 애잖아…….
-엄청 힘들게 자란 듯?
단숨에 숙연해진 채팅창. 왕삼이 애써 말을 돌렸다.
“크흠, 잡설은 이만하고 본격적으로 무를 겨뤄보는 게 어떻겠소.”
“좋아.”
체육관 중앙에는 사각형의 링이 있었다.
“스파링…… 비무는 이곳에서 진행할 거요. 규칙은 전신 소협이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춰주지.”
“이것저것 따지는 건 귀찮으니까 무규칙으로 가자. 급소 공격 금지 정도만 정해놓고.”
“그럼 항복하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비무를 진행하는 것으로 하지. 헤드기어와 보호구를 차시오.”
한 대도 맞지 않을 생각이라 필요 없지만.
생중계 중인 만큼 기본적인 틀은 지키는 게 좋겠지?
“아. 야, 왕삼아.”
왕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는 게 어떻겠소. 소협이 몇 살인진 모르지만, 나보다 어릴 것 같소만.”
틀린 구석이 없는 말이었으나.
그의 체감 나이는 왕삼보다 훨씬 연상이다.
‘괜히 배알이 꼴리네.’
“왕삼 씨. 스파링하기 전에 제안할 게 하나 있는데. 그냥 하면 재미없으니까 간단하게 내기를 거는 거 어때요?”
-오오, 내기 좋다.
-역시 대결은 뭔가 걸어야 더 재밌는 법이지ㅋㅋㅋ
시청자들의 반응이 긍정적이자 왕삼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내기 항목으론 뭘 걸 생각이시오?”
“상대방의 소원 하나 들어주기 어때요. 뭐든지 다 들어주는 걸로.”
어이없어하던 왕삼이 이내 자존심 상한 표정을 지었다.
‘반드시 이길 자신이 있다는 소리잖아, 이거.’
체급만 보면 4단계는 차이 날 것 같은데, 감히?
이곳은 게임 속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현실의 싸움에선 체급이 끝판왕이다.
“좋소. 어서 링으로 올라오시오.”
장비를 착용하고 링으로 올라가는 사이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내기가 벌어졌다.
-자자자, 우리도 내기 드가야지.
-내기 기능은 내가 열게.
사행성 제한 탓에 금전적 가치가 있는 걸 걸 수는 없지만.
프레야의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도박 관련 법규에 걸리지 않는 내기 기능이 있다.
-ㅋㅋㅋㅋ 오랜만에 풍선 좀 벌 수 있는 거냐?
풍선. 디지털 월드의 개인 공간을 커스텀할 수 있는 재화.
오직 출석 체크로만 얻을 수 있는 풍선은 시청자들 사이의 내기에서 상품으로 걸 수 있다.
-난 디지한테 풍선 50개 건다.
-ㄹㅇ? 디청자 통 크네~
-아무리 니네 방장이 게임을 다 이겼다지만 여긴 현실인데ㅋㅋㅋㅋ
[DG(1294) vs 무림초출 왕삼(1734)]
내기 창을 본 디지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야, 내가 역배당이네?’
-디지야 미안. 네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실수로 왕삼한테 배팅해 버림ㅠㅠㅠ
-미안할 거 있나. 우리 3이가 이기는 게 당연한 건데.
‘하긴,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한 거군.’
격투기 선수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승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한 체급 아래로 내려가는 거라고.
-게임이랑 현실은 달라. 현실에선 체급이 끝판왕이라고!
-괜히 격투기 선수들이 계체량 때 급격히 체중 감량을 하는 게 아니지ㅋㅋㅋ
라이트급 1위 복싱 선수라 하더라도 헤비급과 붙으면 아마추어한테도 질 수 있다.
근력부터가 차원이 다르기에 애초에 대결 성사가 불가능한 것.
하지만.
이 세상이 이론대로만 흘러갔다면 스포츠 도박에서 역배당에 돈을 거는 사람이 없었으리라.
그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나 믿어준 사람들, 땡큐. 다들 내기 이기게 해줄게.”
땡!
스파링 시작을 알리는 타임벨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