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43화
“대림 엔터테인먼트와 함께하는 장인 대전!”
“지그으음! 시작합니다!!”
관중석에 앉은 시청자들의 아바타가 일제히 환호성을 보냈다.
-와아아아아!
-미카엘 오빠아아아!!
-찬밥 씨 화이티잉!!
-디지야 다 부수고 올라와!!
“이야, 규모가 엄청나네.”
스포츠 스타디움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대회장.
현실에서 이런 규모로 대회를 벌이려면 돈도 돈이고 사람 모이는 것부터가 일이었겠지만.
[파티룸 - 대림엔터와 함께 하는 장인 대전]
벽도 바닥도 하얗던 왕삼의 파티룸과 달리 경기장 풍경부터 별이 가득한 밤하늘까지 모든 게 현실처럼 생생하다.
‘파티룸을 이런 식으로 꾸밀 수도 있구나.’
디지가 주변을 구경하는 사이 본격적으로 대회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진행을 맡은 김현석!”
“해설의 박휘입니다!”
“이번 대장전에는 무려 3천 명이 넘는 록 장인분들이 지원해 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덕분에 예선 경기만 200번 넘게 중계하게 생겼어요!”
박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예선까지 다 해설하는 거였어요? 전 본선만 한다고 생각하고 페이 받았는데!?”
“농담입니다!”
관중석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동시에 채팅창이 주르륵 올라간다.
-박휘 형 페이 뜯길 뻔~
-상식적으로 전부 해설할 수 있겠냐고ㅋㅋㅋㅋㅋㅋ
주거니 받거니 하며 능숙하게 시청자 반응을 유도하는 두 명의 진행자들.
디지는 몰랐지만 이들은 꽤나 유명한 스트리머와 경기 중계위원이었다.
“농담은 여기까지 하고요. 대회에 대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박휘 해설.”
“넵! 다들 아시겠지만, 이번 대장전은 총 세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설명을 정리하면 이랬다.
1. 대장전은 미드 라인에서 진행되며 상대방을 죽이거나 미니언 100마리 혹은 적 1차 포탑 파괴 시 끝난다.
2. 지정된 구역을 벗어날 경우 장외 패를 당하나 본진 귀환은 1회 허용된다.
3. 예선은 단판, 본선은 3판 2선승제로 진행되며 서로의 지정 챔피언을 하나 밴한 상태에서 본인의 픽이 랜덤으로 결정된다.
본선의 경우 밴 없이 본인이 가장 자신 있는 챔피언을 픽할 수 있다.
“그 외 자세한 규칙은 공지사항을 참고해 주시기 바라며 설명을 마칩니다.”
“잠깐만요, 박휘 해설. 제일 중요한 걸 까먹었잖아요. 상금 규모!”
“아앗, 깜빡했군요!”
박휘가 우스꽝스럽게 이마를 탁 쳤다.
-ㅋㅋㅋ깜빡한 거 맞음? 박휘 형 여전히 연기는 꽝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
-우리 웃으라고 만담 씬 하나 넣어준 거지 뭐ㅋㅋㅋㅋ
“이번 대장전은 위-대하신 스폰서께서 무려 1억! 1억을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승 상금이 4천만 원, 준우승 상금이 2천만 원이죠. 심지어 4위 안에만 들어도 500만 원이 떨어진다고요!”
“다 같이 대림 엔터테인먼트를 향해, 경례!”
타이밍 좋게 경기장 중심에 떠오른 거대한 브랜드 로고.
관중석에 자리한 시청자들의 아바타가 장난스럽게 경례를 올렸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요? 예선까지는대회 방송에서 중계를 지원하지 않으니 응원하는 선수가 있는 시청자분들께선 선수 개인의 방송을 시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본선이 시작되는 내일!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럼 다 같이 즐록!”
박휘가 딴지를 걸었다.
“즐록? 록이 즐거울 수가 있나요?”
-맞지 이 X같은 분노 조장 게임…….
-ㄹㅇ 팀운 ㅈ망겜 리그 오브 게임즈를 하면서 어케 즐거울 수 있냐고ㅋㅋㅋㅋ
“……그렇다고 공식 방송에서 헬록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그것도 그렇네요. 즐록!”
-즐록!
-즐록!
-ㅈㄹ!
-Hell Log!
경기장이 외곽부터 조각조각 부서진다.
동시에 그의 눈앞에 홀로그램 창이 떠올랐다.
[DGDG 님의 예선 1차전 상대는 미스 초커 님입니다. 밴 카드를 사용해 주세요.]
[미스 초커]
[암습하는 그림자술사, 쉐디언]
[극지의 하얀 죽음, 해위해]
[고철 수집장의 악동, 래틀]
상대방의 지정 챔피언을 보고 있자니 채팅창이 갱신됐다.
-픽 보니까 상대는 얌생이 그 자체네. 전부 다 원거리 챔피언이야.
-ㅇㅇㅇㅇ 미니언만 먹어서 이겨보겠다는 심리 같은데.
-디지 형, 일단 전적 검색부터 해보자.
“전적 검색요?”
-ㅇㅇㅇ 상대방 티어랑 숙련도 제일 높은 챔피언 알 수 있음.
-기본적인 정보 수집하고 밴 해야 유리하지.
“음. 그보다는.”
그는 주사위를 꺼내 들었다. 프라이빗 룸을 꾸밀 수 있는 재화인 풍선을 주고 구매한 것이었다.
땡그르르, 툭.
“3이 나왔네요.”
[래틀을 밴하셨습니다.]
-???주사위 3 나왔다고 세 번째 챔피언 밴한 거야?
-ㅋㅋㅋㅋㅋㅋㅋ무쳤네 무슨 자신감이냐ㅋㅋㅋㅋ
-상대가 숙련도 무친 찐장인이거나 고티어면 어쩔려고ㅋㅋㅋㅋㅋ
“상관없어요. 어차피 내가 이길 테니까.”
-자신감ㄷㄷㄷ 하여간 프라이드 하나는 하늘보다 높다니까.
-……이러니까 죽이고 싶지 이러니까! 이렇게 건방진 데 진짜로 안 죽고 진짜로 이기니까 죽이고 싶지이이익!!
시청자들이 어이없어하는 가운데, 대회가 진행되었다.
[플레이 챔피언 결정됩니다.]
[DG: 무라마사]
[미스 초커: 해위해]
[게임이 시작됩니다.]
대전사의 협곡, 본진. 시작 아이템을 구매한 그는 미드 라인으로 달렸다.
적 포탑이 보이는 미드 중앙, 그와 마찬가지로 달려오는 미스 초커가 보였다.
-상대방 여자였네.
-당연히 여자지. 닉네임부터 미스인데.
해위해 특유의 하얀 위장복을 입은 미스 초커.
그녀는 여자였다. 그것도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인.
-그러고 보니 디지가 여자랑 라인전 하는 건 처음 보네.
-하긴 맨날 탑만 갔으니까. 보통 탑신병자들은 다 남자지.
-무식하게 쌈질만 하는 라인인데 땀내 나서 어디 가겠냐고요ㅋㅋㅋㅋ
[역배는 인생이야 님이 1,000원을 후원합니다.]
[방장아, 상대가 이쁜 여자라고 헬렐레해서 봐주다가 지면 안 된다~]
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쁜 여자를 봐줘요? 왜?”
와 비타에서 기나긴 세월을 보낸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
그는 킬각이 보이는 순간 모든 스펠을 써가며 단숨에 적을 죽였다.
[퍼스트 킬!]
[DGDG -> 미스 초커]
[예선 1차전이 종료되었습니다. 2차전 상대가 지정될 때까지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
-상대가 원거리라 초반엔 지루할 줄 알았는데…… 끝났네?
-원딜 특. 평타 견제 엄청 좋아함. 초반에 그냥 맞아주다가 상대가 선넘는 순간 바로 죽여 버렸네ㄷㄷㄷ
원거리 유저들은 사거리 차이를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디지는 상대의 그런 심리를 놓치지 않았고, 킬각이 보인 순간 헤이스트와 라이트닝 스펠을 모두 사용하며 단숨에 적을 죽인 것.
잠시 당황하던 시청자들이 이내 흥겹게 채팅을 날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쁜 여자라서 봐주긴 개뿔ㅋㅋㅋㅋㅋㅋㅋㅋ
-경기 시작 2분 만에 컷!!
[역배는 배당이야 님이 5,000원을 후원합니다.]
[야! 아무리 대회라지만 아리따운 여성분을 단칼에 죽여 버리냐!!!]
“아니 그러니까, 이쁜 여자를 왜 봐주냐고.”
와 비타에는 이런 말이 있다.
미남과 미녀를 만난다면, 죽이거나 도망쳐라.
‘여자 엘프 보고 헬렐레하다가 목 잘린 놈이 내가 본 거만 100이 넘어.’
엘프, 폴리모프한 드래곤, 바디 체인지를 거치고 균형 잡힌 이목구비의 소유자가 된 강자.
와 비타에서 미모는 강함의 척도였다.
‘애초에 이능이 있는 세상에서 여자라고 얕보는 건 자살이나 마찬가지기도 하고.’
“여러분. 성별이나 외모로 사람 평가하다간 훅 가는 수가 있어요.”
이어지는 예선. 디지는 5번이나 경기를 치르면서도 모든 상대를 5분 안에 끝내 버렸다.
“생각보다 쉽네. 기념 삼아 나온 사람들이 많은가 보네요.”
-아니 뭔…… 나 지금 대회 보고 있는 거 맞냐?
-전적 검색해 봤는데 지금까지 만난 상대들 다 저티어긴 함.
-아무리 그래도 대회 5분에 대기가 30분 이상씩인데?
내정된 예선은 8차전까지.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특성상 같은 차수의 예선이 모두 끝나야 다음 경기가 진행된다.
도합 한 시간 이상 더 대기해야 한다는 뜻.
-박진감 넘치는 꿀잼 대회 컨텐츠를 기대했는데…….
-본선까지는 계속 이럴 거 같음ㅋㅋㅋㅋ
슬슬 시청자들이 지루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러다 시청자들 다 빠지겠네.’
너무 빨리 끝내 버리니까 이런 단점이 생기는구나.
잠시 고민하다 한 가지 해결책을 떠올렸다.
“여러분, 시간 남는 김에 배 좀 채우면서 수다나 떨까요?”
-ㅇㅇ그냥 기다리는 것보단 나을 거 같아.
-좋다 좋다 뭐 먹게?
-디지 먹방 스트리머 전직임?ㅋㅋ
“그렇게 본격적인 건 아니고 간단하게 컵라면이나 먹으려고요.”
방송을 오프라인 모드로 설정하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언제 봐도 좁디좁은 행복 주택…….
-하필 먹는 것도 컵라면…… 행복 주택과 잘 어울려…….
-지금 행복 주택 비하하는 건가요? 저도 행복주택 사는데 정말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만…….
-그냥 한 말인데…… ㅈㅅㅈㅅ
-제대로 사과하세요.
-타인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가볍게 내뱉어서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반성합니다.
-사실 뻥임.
-야 이 개X@야! 너 어디 살아 이 ##@아!
[클린 채팅 AI: 악의적 비속어 사용을 확인. 해당 시청자를 강퇴시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개웃기넼ㅋㅋㅋㅋㅋㅋ
-디지 방송은 ㄹㅇ 시도 때도 없이 탈룰라 각을 잡는다니까ㅋㅋㅋㅋㅋㅋㅋ
“강퇴당한 건 안타깝긴 한데, 행복 주택 함부로 말하지 말아 주세요. 제 소중한 보금자리입니다.”
좀 좁은 건 사실이지만, 집도 절도 없이 지구로 귀환한 그에겐 소중한 거주지이다.
‘덕분에 이렇게 실내에서 컵라면도 해 먹을 수 있고.’
뜨거운 물을 끓여서 컵라면에 부은 뒤, 커넥터를 빼서 침대 위에 올려놨다.
이렇게 하면 커넥터의 렌즈로 그가 라면을 먹는 모습을 송출할 수 있다.
-컵라면 특. 익히는 3분이 3시간 같음.
-ㅇㅈㅇㅈ
-ㅋㅋㅋㅋ ㄹㅇ 시간이 이상하게 느려짐.
정확히 3분을 맞춰서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후우욱, 솟구치는 수증기와 열기.
이젠 국밥이나 편의점 도시락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사 먹을 만큼 계좌가 뚱뚱해졌지만.
여전히 그의 최애 음식은 컵라면이었다.
“후아, 맛있겠다.”
젓가락을 놀리자 덜 익지도 푹 익지도 않은 꼬들한 면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천천히 입을 벌리곤 젓가락을 움직였다.
그러곤.
“크아아아악!”
맛있어! 너무 맛있어!
“이 MSG! 고혈압 올 거 같은 짭쪼름함!”
-아니 뭔ㅋㅋㅋ 컵라면을 저리 맛있게 먹냐.
-누가 보면 한 몇십 년 굶었다고 생각할 듯.
처음엔 낄낄거릴 뿐인 시청자들이었지만.
후루룩! 후루룩!
-……진짜 맛있게 먹네.
-ㅇㅇㅇ 뭐라 해야 하지? 진심으로 맛있게 먹는 거 보니까 기분 좋아지는 느낌?
-갑자기 배고픈데? 나도 라면이나 먹을까?
-너도? 나도ㅋㅋㅋㅋ
시청자들은 디지의 먹방을 보며 왠지 모르게 빨려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별한 음식을 먹는 것도, 화면 가득 여러 음식 더미를 쌓아두고 먹는 것도 아니었지만.
워낙 맛있게 먹다 보니 유명한 먹방 스트리머 이상의 대리만족이 느껴진달까?
-그냥 컵라면 먹방인데 왜 이리 눈이 안 떨어지지.
-굶주린 고양이에게 참치캔을 주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 보는 느낌임. 그냥 내가 다 배불러.
[넘버원 디팔이 님이 50,000원을 후원합니다.]
[혀엉…… 고작 컵라면을 그렇게 맛있게 먹으면 어떡해……]
[나 눈물날 거 같아…… 이거로 비싼 거 맛있는 거도 먹는 거 보여줘.]
“오오? 후원 감사합니다. 리액션으로 컵라면 하나 더 먹을게요.”
-ㅋㅋㅋㅋ리액션 맞음?
-걍 배고픈 거 아니냐고ㅋㅋㅋㅋ
남은 예선 3경기를 모두 치르는 동안 디지는 총 다섯 개의 컵라면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