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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59화 (59/179)

귀환 용사의 인방 생활 59화

【권능, 귀환자의 이정표】

【진심으로 게임을 즐기는 소유자에게 반응하여, 귀환자의 이정표가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눈앞에 떠오른 글자들을 보며, 디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 와서 패배를 겪는 건 처음이구나.’

패배는 승리의 어머니라 했던가.

시청자들이 들으면 ‘승리 엄마는 패배래요.’ 따위의 탈룰라 드립을 쳤을 법한 문장이지만.

‘패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있지.’

이를테면, 승리를 향한 열망.

이에서 비롯되는 승부의 즐거움.

【승리를 통해 패배를 극복하여, 승리자의 업을 쟁취하십시오.】

【새로운 업의 축적을 통해 잃어버린 권능을 복구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권능?

와 비타에서 그는 한 손으로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권능을 지녔었지만.

지구 귀환을 위해 모든 권능과 이능 사용을 위한 자원을 신께 바쳤다.

잃어버렸던 권능들을 이정표를 통해 복구할 수 있다라.

‘와 비타에서 가지고 있었던 권능 중엔 가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도 있어.’

어떤 권능이 주어질지는 미지수였으나.

잘만 하면 예정보다 빠르게 가족을 찾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려면 2경기, 3경기를 모두 이겨야 하는 건가.”

디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확실한 동기부여까지 생겼겠다, 반드시 이겨야겠군.

“그 어느 때보다 박진감 넘쳤던 경기! 리플레이를 통해 다시 감상하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박휘 해설?”

“좋습니다! 진행이 너무 빨라서 미처 설명드리지 못한 부분을 알려드릴 수 있겠군요!”

디지가 영혼의 부름에 집중하는 사이.

신나서 외치는 해설자들을 필두로 1경기의 리플레이가 재생되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덱스와 트터의 구도는 트터의 일방적인 압승입니다.”

“하지만 디지 선수는 본인의 피지컬과 심리전 승리로 2레벨 타이밍에 오히려 이득을 점했죠.”

때문에 이어지는 3레벨~5레벨 구간에서 미카엘은 적극적인 압박을 넣지 못했고.

디지는 거의 동시에 5레벨을 찍을 수 있었다.

“이어지는 5레벨 싸움은 말 그대로 자강두천이었습니다.”

“맞습니다. 과감하게 킬각을 잡는 디지 선수와, 허를 찔리고도 역으로 킬각을 보는 미카엘 선수의 피지컬이 빛나는 장면이었죠.”

총검을 디딤대 삼아지뢰밭을 뛰어넘는 덱스의 모습.

반동 점프를 이용한 수직 점프와 포탄 세례로 역킬각을 노리는 미카엘.

마지막으로 수많은 포탄 사이로 뻗어지는 로프가 중계 화면을 채웠다.

“스태프들의 분석 결과, 미카엘 선수를 맞출 수 있는 궤적이 단 하나뿐이었다고 하더군요.”

“디지 선수는 단 하나의 궤적을 관통해서 정확히 미카엘 선수에게 로프를 맞힌 셈입니다.”

-ㄷㄷㄷㄷㄷ 이렇게 보니까 엄청나네.

-원래는 덱스가 개찢겨야 하는데 순수 피지컬로 두 번이나 턴을 만든 거 아냐.

-ㄹㅇ 디지 피지컬이 대단하긴 함.

“디지 선수, 피지컬이 정말 괴랄합니다.”

“맞습니다. 항상 예상을 뛰어넘어요. 매 경기마다, 속된 말로 피지컬 똥꼬 쇼를 보여주네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피지컬 똥꼬 쇼ㅋㅋㅋㅋㅋㅋㅋ

-맞는 말이지ㅋㅋㅋ 전경기에서도 헤파이슨 상대로 포탑 딜 다 맞아가며 싸워서 이겼잖아.

-ㄹㅇ 한 대라도 빗나갔으면 결승은 콘형 대 카엘이였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자는 미카엘 선수였습니다.”

도망치는 대신 오히려 전진하며 미니언을 죽이고 6레벨을 달성한 미카엘.

확정형 타깃 스킬인 매그넘 캐넘이 작렬하는 순간 디지의 몸이 튕겨 나갔다.

“이후 구도는 일방적이었어요. 서로 플래시가 있는 상태에선 덱스가 트레이스터의 견제를 뚫고 킬각을 잡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 결과 근소한 미니언 처치 수 차이로 패배를 맞이하고 말았네요.”

“디지 선수, 정말 안타까운 패배였습니다.”

패자는 치욕을 감수해야 마땅하나, 디지의 패배는 경우가 달랐다.

-ㄹㅇ 챔피언만 다른 거였으면 승패가 달라졌을 듯.

-ㅇㅇㅇ 디지는 피지컬 똥꼬 쇼로 턴을 두 번이나 벌었고 미카엘은 한 번이었는데 상성 차이 때문에 진 거니까.

-애초에 원딜 챔 잡은 미카엘 상대로 이렇게 박진감 넘치게 라인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프로 중에도 거의 없을걸? 미카엘이 괜히 협곡의 대천사라 불리는 게 아님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대회를 시청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은 하지 못하는 슈퍼 플레이를 감상하며 대리만족하기 위함이다.

아마추어 대회에 놀러 온 S급 프로 선수. 그런 미카엘을 상대로 조금도 밀리지 않은 디지.

패배하는 게 당연한 상황에서 보여준 가능성은 시청자들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2경기도 재밌겠지?

-모르긴 몰라도 보는 맛 하나는 끝내줄 듯.

-캬, 결승 퀄리티 지리네. 이게 결승이지

-ㄹㅇ ㅋㅋㅋㅋㅋ

기대감에 부푼 시청자들은 2경기의 시작을 기다렸다.

* * *

리그 오브 게임즈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진정한 게임의 시작은, 밴픽부터다.

록은 챔피언 상성과 시간에 따른 승률 증감 등 다양한 전략적 변수가 발생하는 게임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인게임에 들어가기 전부터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는 쪽이 게임을 승리한다고 말해도 될 정도.

[챔피언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DG: 일곱 칼날의 무희, 일일리행]

[미카엘: 우울한 악몽, 글루머]

그런 의미에서 두 번째 경기의 챔피언 픽은 디지가 주먹, 미카엘이 보를 낸 양상이었다.

‘다시 트레이스터를 할 줄 알았는데, 글루머라. 날 인정한다는 건가. 기분 좋네.’

디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동기를 가진 챔피언을 상대로 유리함을 점하는 스킬셋을 가진 글루머.

근접 챔프 상대로 유리한 트레이스터 대신 글루머를 했다는 건.

전 경기의 아슬아슬함을 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으니.

하지만.

“보여줄게 미카엘. 주먹으로 보를 찢어버리는 걸.”

이윽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대전사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본진에 선 채 디지는 생각에 잠겼다.

“미카엘은 블랙 포션을 사 오겠지?”

블랙 포션. 메이지 챔피언인 글루머가 라인전을 가장 강하게 할 수 있는 시작 템.

반면 일일리행의 경우 일반적으로 레드 소드를 시작템으로 채용한다.

‘레드 소드는 미니언 처치 시 소량의 HP 회복이 가능한 대신 공격력이 낮아. 그렇다면.’

[아이템: 병사의 장검]

[공격력 +12]

초반에 가장 많이 대미지를 넣을 수 있는 아이템에 기본 포션 3개를 샀다.

장기적으로 보면 안 좋은 선택이지만.

디지는 장기전까지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초반에 끝내줄게, 미카엘.”

미드 라인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미카엘은 블랙 포션을 구매한 상태였다.

“이번에도 좋은 경기 해보자, 디지야.”

얼핏 덕담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프로에게 좋은 경기란 이긴 경기뿐이지 않나?’

디지 또한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될 거야.”

3경기에서 네가 하고 싶다고 말한 근접 VS 근접 경기를 할 수 있게 해줄게.

그렇게 가벼운 신경전을 벌이고, 디지는 미니언이 라인에 도착하길 기다리며 글루머의 특징을 되새겼다.

우울한 악몽, 글루머.

이동기를 가진 챔피언의 접근을 차단하는 특유의 상태 이상 메커니즘과 짧은 순간 폭딜을 욱여넣을 수 있는 ‘메이지’ 챔피언.

“때릴 곳도 없게 생겼네.”

글루머는 전체적으론 음침하고 우울한 인상의 요정이었다.

인간형이긴 하지만, 신장이 30센티 정도로 무척 작다는 소리다.

평타가 확정적으로 명중하는 게임이 아닌 록에서 작은 아바타는 그 자체로 엄청난 이점이었다.

[미니언이 소환됩니다.]

디지는 앞으로 나서는 대신 뒤에서 미니언이 싸우는 걸 구경했다.

3레벨을 찍기 전까진 딜 교환을 해봤자 손해다.

‘글루머의 스킬은 대부분 사거리가 긴 데다가 CC기로 작용할 수 있으니까.’

[악몽 에너지(P): 글루머는 죽음, 싸움 등 주변의 모든 우울한 일들에서 악몽 스택을 얻습니다.]

[악몽 스택이 최대로 쌓이면 스킬 사용 시 우울 에너지를 방출해서 적이 상태 이상 ‘우울’에 빠지게 만들 수 있습니다.]

다만, 계속 뒤에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근접 미니언 세 마리가 죽고, 원거리 미니언 세 마리가 모두 빈사 상태에 빠졌을 때.

[일반 스킬: 장전(長傳)의 춤사위]

[일일리행이 지정한 적에게 장전 드딤세로 돌격하며 검을 휘두릅니다. 가한 피해에 비례해 체력을 회복합니다.]

[적이 죽거나 매혹 표식이 새겨진 상태일 경우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미니언 세 마리를 모두 먹음과 동시에, 미카엘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실제 공격할 생각은 없었고 간단한 모션 페이크였다.

[일반 스킬: 우울해, 혼자 있고 싶어!]

[글루머가 마나를 소모해서 주변에 마법 피해를 입히는 충격파를 발산합니다.]

[적에게 적중 시 2초간 보호막을 얻습니다.]

나이스.

미카엘의 1렙 스킬을 알아냈고 마나를 헛되이 소모하게 만들었다.

“미카엘, 심리전 패배!”

“…….”

부아가 치민 듯한 표정을 지은 미카엘을 보며 디지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아까 먼저 도발한 건 너인 거 알지?”

“……하하. 절대 맞지만 않는구나.”

역시, 넌 나랑 비슷해.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친밀감. 그렇기에 절대 지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한 미카엘은 초반 주도권을 이용해서 최대한 디지를 압박했다.

하지만 손해를 보면서도 미니언을 치던 전 판과는 달리.

디지는 미카엘이 미니언을 다 죽이면 밀려오는 웨이브를 자신의 포탑 아래서 받아먹기만 했다.

‘하긴, 저 녀석은 딜리트(Delete) 스펠을 들었으니까.’

[스펠: 딜리트]

[자신에게 적용된 모든 상태 이상 및 불리한 효과를 삭제합니다.]

초반에 킬각을 잡기 위한 라이트닝 스펠이 아닌 딜리트 스펠을 들었다는 건.

‘이번 경기의 분기점을 6레벨 이후로 보고 있다는 뜻이지.’

6레벨부터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지는 일일리행을 픽했으니 당연한 선택.

하지만……

“디지.”

“왜?”

“미안하지만, 구도 분석은 내 쪽이 위야.”

트레이스터 대신 글루머를 픽한 이유.

글루머는 6레벨 이전, 이후 구분할 것 없이 성능이 좋고 이동기를 가진 챔피언에게 특히 강하다.

한 틱 차이로 이겼던 트레이스터와 달리 리스크 없이 안전하게 승기를 가져갈 수 있는 것.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는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레벨 업!]

“안타깝지만, 이번 판은 내가 이길 거야.”

3레벨을 달성함과 동시에.

디지는 미카엘 근처의 딸피 미니언을 향해 장전의 춤사위를 사용했다.

“어딜!”

거의 즉각적인 반응으로, 미카엘은 디지가 미니언에 도달하기 전에 스킬을 사용했다.

[일반 스킬: 우울해, 혼자 있고 싶어!]

이대로면 글루머의 충격파에 노출되어 상태 이상 우울에 빠질 것이다.

우울 상태 이상은 제 자리에 구속된 채 아무런 스킬도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거니, 글루머의 스킬 연계에 고스란히 노출되겠지.

‘너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미카엘.’

그러니까 예상을 깨버린다.

[스펠: 블링크]

장전의 춤사위가 캔슬되며 디지의 아바타가 글루머의 스킬 범위 밖으로 이동했다.

당연히 디지가 우울 상태 이상에 빠질 줄 알고 모든 스킬을 쏟아부은 미카엘이 의문을 표했다.

“왜 그런 바보 같은 행동을……?”

뛰어난 효과만큼 긴 쿨타임을 가지고 있는 블링크 스펠.

아무리 자신이 모든 스킬을 사용했다지만.

디지의 행동은 체스로 치면 폰을 잡기 위해 퀸을 내준 것과 같았다.

하지만.

스킬이 빠졌으니 턴을 내주지 않기 위해 등을 돌린 미카엘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뭐야, 언제 매-”

말을 이을 새도 없이 곧바로 블링크 스펠을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품었지만.

“늦었어.”

하나 같이 그래픽 효과가 크고 이펙트가 화려한 글루머의 스킬에 가려졌던 매혹의 검이.

반짝 빛나며 미카엘의 몸을 관통했다.

[일반 스킬: 매혹의 춤사위]

[일일리행이 두 자루 검을 쏘아낸 후 서로 충돌시켜서 선의 아름다움을 적에게 선보입니다.]

[검에 명중한 적은 대미지와 함께 짧은 순간 매혹에 빠지고 이후 5초간 매혹의 표식이 새겨집니다.]

“바보 같은 행동이 아니라 킬각이야, 카엘아.”

입꼬리를 올린 디지가 장전의 춤사위를 사용하며 돌진했다.

[끊임없는 검무(P): 최대 스택입니다.]

[일일리행의 공격 속도와 일반 공격의 대미지가 증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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