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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다들 남의 잠자리에 무진장 관심이 많으시군 (89/125)


89화. 다들 남의 잠자리에 무진장 관심이 많으시군
20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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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황궁에서는 카라프가 중요한 하루 일과 중 하나인 반신욕을 했다.

야외 목욕탕에서 햇빛 아래 맨몸을 드러낸 그는 조금 복잡한 얼굴로 아샤가 선물해 준 선캐처를 빙빙 돌리며 손장난을 쳤다.

선캐처 사이로 햇빛이 들어와 그의 얼굴 위로 조각처럼 아름답게 부서져 내렸다.

그는 며칠 전, 시종장과 있었던 일을 되새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시종장은 그에게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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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이제 바넷사님께서도 정식으로 황후가 되셨으니, 두 분이서 합궁을 하시는 것이 좋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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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카라프가 동작을 멈추고 살짝 커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시종장이 멋쩍은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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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늙은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두 분이 개화식도 치렀는데 각방을 쓰시는 것에 대해 귀족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고 있는 모양입니다.’

카라프가 그 말에 픽 비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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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남의 잠자리에 무진장 관심이 많으시군.’

시종장은 자기가 다 얼굴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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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폐하의 개화 소식을 기다리는 것일 겁니다.’

시종장은 자기 입으로 이런 얘기를 전하는 것이 남세스러워 더는 말을 잇지 않았지만, 그 몰래 뒤돌아 한숨을 쉬었다.

카라프도 대수롭지 않은 척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얘기는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말았다.

합궁이라니.

확실히 개화식이 있고 난 뒤에는 필수적으로 황제와 바넷사의 정식 합궁이 이루어졌다.

그것은 황실의 전통이나 다름없었고, 두 사람이 합궁을 하면 그것을 온 제국민들이 축복해주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합궁에 대해 안 좋은 기억들만 남아 있을 것이었다.

심지어 처음으로 합궁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정말로 악몽 같겠지…….

지난번에는 함께 침대에서 자지 못해서 무척 아쉬웠지만, 이제는 같이 침대에 누워만 있자는 말조차 꺼낼 수 없었다.

아샤가 싫어할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합궁을 했는데도 자신이 개화를 하지 못하면 더 안 좋은 소문이 나 그녀를 괴롭힐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종장은 합궁 얘기로 시도 때도 없이 카라프를 찾아가 괴롭혔다.

카라프는 그가 나타나면 곧바로 귀신같이 도망갔고, 합궁의 ‘합’ 자도 꺼내지 못하게 말을 돌렸다.

그것은 합궁을 해도 자신이 개화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들킬까 봐 그런 것이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시종장의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난감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라일락 공작가에서 마물까지 나타났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카라프는 자기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반응에 목욕 시중을 들던 하인들이 화들짝 놀라며 더욱 열심히 움직였다.

그가 지금 목욕 시중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고 오해한 탓이었다.

게다가 두 사람이 함께 밤을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곁에서 시중을 드는 그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시종장이 얼른 하인들에게 눈치를 주었다.

카라프가 한숨을 푹푹 내쉴 동안, 하인들은 소리도 내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말린 꽃잎과 약재, 향유를 가져왔다.

마치 그 혼자서만 멈춰 있고, 주변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카라프는 그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깊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합궁도 문제지만, 하필 마물의 공격까지 있었으니 제국을 안정시킬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그사이, 시종장이 그 몰래 목욕 시중을 드는 시종들 몇 명을 불러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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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의 몸에서 가장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하고, 피부에서 빛이 나게 만들어야 한다. 반드시 폐하께서 바넷사님과 성공적으로 합궁을 하시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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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명령을 받은 그들은 더욱더 진지한 얼굴로 시중을 들었다.

두 사람의 성공적인 합궁을 위해 그들은 가진 솜씨를 모두 뽐냈다.

카라프는 영문을 몰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탕에는 온갖 말린 꽃잎과 약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 덕분에 목욕물이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화려한 색감을 뽐냈고, 온 사방에서 천국에 온 것 같은 진한 향기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말은 안 했지만, 카라프도 만족한 듯했다.

그는 이제부터는 정말로 바넷사에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돌려놓고 싶었다.

어쩌면 제 미모에 마음을 다시 뺏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물에 비친 제 조각 같은 얼굴을 쓸어보며 잠시 나르시시즘에 빠졌다.

꽃잎을 손바닥에 들었다 물로 흘려보내며 장난치기를 반복하던 그가 짐짓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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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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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그러겠습니다.”

그는 흥분할 때마다 꽃가루를 내뿜는 머리가 은근히 콤플렉스였다.

시종들은 그의 머리를 향기로운 꽃비누로 거품을 내어 조심스럽게 감기고, 머리카락의 윤택을 위해 황실에서 특별히 제조한 영양제를 발라주었다.

카라프는 저주가 새겨진 가슴 위에 한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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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아샤는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더 좋아한다고 했었지…….’

지금 자신의 내면은 정말이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마 그래서 제국에 마물까지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의 미간에 주름 하나가 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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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그런데 그 순간, 뒤에서 머리를 다듬어주던 하인 한 명이 놀라서 빗을 손에서 떨어뜨렸다.

떨어진 빗이 풀밭 위를 나뒹굴었다.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이는 카라프의 모습에 하인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덜덜 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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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죄송합니다, 폐하!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카라프가 앞만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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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을 떨어뜨린 게 죽을 일은 아니다.”

하인이 곧장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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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얼른 새 빗을 가져오겠습니다!”

그녀가 땅에 떨어진 빗을 치우고, 새 빗을 가져왔다.

황제의 머리를 빗겨주는 빗 역시 여기저기 보석이 박혀 있는 사치스러운 물건이었다.

그런데 다른 하인이 빗으로 머리를 빗던 중, 그의 검은 머리카락 한 올이 빗에 뽑혀 나갔다.

그 하인은 울상이 되어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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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주십시오, 폐하! 제가 감히 신성한 폐하의 옥체를 훼손하였습니다…….”

온 하인들이 잠시도 쉴 새 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죽여 달라 하자, 카라프는 급격히 피곤함이 몰려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반응에 하인들은 이제 눈물까지 글썽거렸다.

그의 심기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카라프는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괜찮다고 말하는데도 그들은 이미 혼이 나가 귀에 들리지 않는 듯했다.

카라프는 다른 의미로 제가 그 정도로 자비 없는 폭군이었나, 충격을 받아 잠시 굳어 있었다.

이제부터라도 정말로 내면을 가꾸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차근차근 하나씩 바꾸어 보자고 결심했다.

카라프가 한쪽 입꼬리를 어색하게 올리며 하인들에게 애써 친절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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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짐은 실수 한 번 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그 미소와 말이 얼마나 무섭게 들렸는지, 하인들은 이제 몸까지 달달달, 떨었다.

예전에 그는 실제로 그 앞에서 실수를 한 자를 쉽게 죽이지 않고, 신체의 일부를 자르고 내쫓은 전과가 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법한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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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닌데…….’

하인들의 반응에 카라프는 당황해서 눈을 깜박거렸다.

역시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카라프가 헛기침을 흠흠, 하며 말을 정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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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은 사실, 살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자는 없었다.

그의 말이 꼭, 죽이는 것보다 고문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말처럼 들려서 하인들은 동시에 바닥에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었다.

카라프는 몹시 당황하여 시종장을 휙, 쳐다보았지만, 그의 붉은 눈에 어린 난처함을 광기로 잘못 알아본 시종장 역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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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폐하. 제가 하인들 교육을 잘못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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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프는 제 앞에서 벌어지는 이 이상한 상황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미 그의 이미지는 회생 불가인 모양이었다…….

충격에 그가 혼잣말처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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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의 인성이 그 정도로 쓰레기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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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폐하! 감히 누가 폐하를 그렇게 생각한단 말입니까!”

카라프는 이제 변명을 하거나 친절을 베푸는 것을 관두고 평소처럼 냉정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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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껏 마무리를 해라. 그럼 모두 용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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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폐하의 자비로움에 정말 감복할 따름입니다!”

그제야 그들의 손이 다시 빨라졌다.

카라프는 하인들이 또다시 두려움에 떨까 봐, 대놓고 한숨을 쉬지 않고 속으로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한 번 악역은 계속 악역답게 굴어야 사람들이 익숙함에 평온을 느끼는 건지도 몰랐다.

그는 무서운 얼굴을 가리기 위해 수많은 꽃잎으로 팩을 했다.

색색의 꽃잎들이 그의 얼굴에 남는 부분 없이 착, 달라붙었다.

마치 광대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꽃잎 뒤에 얼굴을 숨길 수 있어서 그는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윽고 샤워를 끝낸 카라프는 시종장이 든 가운을 몸에 걸치고 전신 거울로 제 모습을 한번 확인했다.

물기를 머금고 햇빛을 받은 피부가 평소보다 싱그러워 보였다.

삭의 날에 보였던 환자 같은 얼굴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카라프는 만족스러운지 턱을 이리저리 만지며 얼굴을 살펴보았다.

젖은 머리에서 꽃가루가 날리지는 않는지 세심하게 확인해보기도 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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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기분이 좋아 보이자, 하인들도 그제야 겨우 마음을 놓았다.

그 모습을 거울 너머로 힐끗, 본 카라프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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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욕 시중을 만족스럽게 했으니, 모두에게 상을 내리겠다. 시종장, 여기 있는 하인들에게 평소 월급에 두 배에 해당하는 금화를 상으로 내주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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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폐하.”

시종장이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자, 하인들은 몹시 놀라서 또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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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폐하!”

황제가 된 후로 늘 잘못한 사람들을 매로 다스리던 카라프는 그들의 반응에 눈빛이 조금 잔잔해졌다.

저주에 걸리기 전까지는 그 역시 그런 성격이 아니었었지만, 믿었던 친우에게 배신을 당한 후로는 인간에게 환멸을 느껴 자비로움 따위는 집어던진 상태였다.

오로지 공포로 다스려야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가시를 곤두세웠던 나날이었다.

아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다가 우연히 얻어걸린 결과였지만, 그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다.

곁에서 그의 변화를 지켜본 시종장은 얼굴이 살짝 상기된 뿌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종장은 곧장 카라프 몰래 아샤에게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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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넷사님, 시종장입니다.”

책을 읽고 있던 아샤가 문을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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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죠?”

그는 말을 꺼내기 전에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한 번 큼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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