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송충이와 솔잎 (2)
상다리가 부러질듯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듯한 다양하고 많은 양의 요리가, 1m 지름이 조금 안될 정도로 작은 원형 테이블 위에 차려졌다.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을 진수성찬이지만. 단 한 사람의 표정은 기쁨과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입이 다섯이라지만, 과하다.”
“괜찮아요. 도라까지 합하면 여섯이에요.”
그 말에 알트의 아버지는 세린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도라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포크를 쥔 채 차려진 음식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도라는, 그 시선에 위축되며 귀가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짐승에게도 밥을 내어주는 건 상관없다만, 식탁에는 앉히지 마라.”
“식탁의 주인은 아버지지만, 식기와 음식은 제 것이니 그 정도 권리는 있지 않을까요?”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기도 전.
결국 부자 사이에 냉랭한 공기가 감돌았다.
덕분에 세린과 오웨인도 차마 숟가락도 손에 들지 못하고, 차려진 음식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자자! 식기 전에 어서들 들어요! 당신도 정말! 손님 있는데 자꾸 그럴 거야?”
결국에 보다 못한 알트의 어머니가 남편의 팔뚝을 찰싹 때리며 그만하라고 눈치를 주고 나서야. 알트의 아버지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차라리 조용한 게 나을듯한 식사가 시작되고.
알트의 아버지는 처음 보는 이국적인 해산물 요리가 담긴 그릇 앞에서 손을 잠깐 멈추더니.
그것을 한번 맛보자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는지 몇 차례 더 입에 가져갔다.
“이건 네가 만든 거냐?”
“할아버지가 임프리스 출신이었다잖아요? 거기 전통 요리를 한번 따라 해봤어요. 아버지 입에는 좀 맞아요?”
알트가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를 꺼내자, 묵묵히 숟가락을 움직이던 아버지의 손이 잠시 멈췄다.
알트의 고향마을 사람들은 같은 전쟁포로의 후손이긴 했어도. 원래부터 오델을 믿었던 그 당시 바릭 왕국처럼 질서의 신앙을 가진 지역들 출신이 대부분.
하지만 그에 반해, 알트의 할아버지는 혼돈의 신앙을 가진 임플리스 출신의 용병이었고. 이는 아버지의 콤플렉스였다.
그런 면에서 사실상 도발이나 다름없던 한마디에 알트의 아버지는 미간을 점점 좁혔지만.
아내가 옆에서 손등을 찰싹 때리며 눈치를 주자, 어쩔 수 없이 주름진 미간을 살짝 풀었다.
“맛있다. 여전히 네 엄마보다 솜씨가 좋구나.”
“에이. 이게 다 재료가 좋아서 그런 거예요.”
“겸손 떨 거 없다. 넌 걸음마 뗀 이후로 늘 부모를 앞섰지.”
“걸음마 이후로라뇨. 그건 좀 과장이죠.”
알트는 어째 칭찬이라고 듣기엔 묘하게 가시가 돋친 아버지의 말투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말에 담긴 속뜻을 모를 리가 없다.
어릴 적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면모는, 의도치 않게 아버지와의 관계에 늘 걸림돌이 되곤 했으니까.
“그래서 여긴 왜 왔냐? 발랴엔 가지 않겠다고 했다만.”
“그야 상회 일로 온 김에 들렸죠. 요즘 전쟁이니 뭐니, 안 좋은 소문이 돌긴 하지만. 별다른 이유는 없었어요.”
“전쟁이든 뭐든 난 고향을 두 번이나 잃을 생각은 없다.”
“알아요. 그러니까 번거롭게 두 번은 안 권해요.”
“그래. 알면 됐다.”
아버지의 단호한 거절에 알트는 권할 생각도 없었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발랴에 가자는 것은 리셋을 겪기 전에 건넨 제안이었다.
메인 시나리오가 시작되기 전.
곧 혼란스러워질 프리데인 대륙을 떠나 아예 아넌 대륙에 정착하려고 했었고, 부모님도 챙기려고 했었지만.
아버지의 완강한 거부에 알트는 끝내 동행을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누누이 말하지만. 자식을 이끌어야 할 부모가 도리어 기대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네네. 그 말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어요.”
그제야, 세린과 오웨인의 얼굴에 옅은 깨달음이 번졌다.
허나 알트는 눈썹 하나 일그러트리지 않은 채.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적어도 한 번은 듣게 되는 것 같은 말.
자식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부자건만, 죽어도 손 벌리기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그저 쓴웃음을 삼킬 뿐이었고.
그런 남편과 아들을 그저 옆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알트의 어머니 처지에선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에휴. 내가 늙어 죽기 전까지 우리 집 남자 둘이서 웃는 낯짝으로 얘길 나누는 걸 볼 수 있으려나.”
“에이. 저는 계속 웃는 얼굴이었는데요?”
“하여간, 내가 낳았지만 이럴 땐 참 밉상이라니깐.”
이 저녁 만찬의 불편한 분위기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으면서도, 혼자서 실실 웃고 있는 저 얼굴.
알트의 바로 옆에 앉아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헷갈리던 세린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이었다.
“그래서 아들. 전쟁 얘기가 나온 김에 말인데. 그 조이라는 아가씨랑은 어쩔 셈이니? 다시 합칠 생각이 있다면, 진짜로 전쟁 나기 전에 서두르는 게 좋지 않아?”
하지만 세린을 힐끗 쳐다본 어머니의 입이 열린 다음에는.
알트도 하마터면 밥이 코로 들어갈 뻔했다.
‘전쟁 나기 전이라.’
애석하게도 제국이 연합 측에 통보한 최후통첩의 기한은 오늘까지.
리들에서의 사건도 있어 제국군의 진군이 조금 늦춰졌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도 이미 선전포고는 내려졌을 터.
라디오조차 없는 이 세계에서 알트의 부모님 같은 평범한 백성이 자세한 이야기를 알 리가 없었으니.
그러나 알트는 사실을 털어놓는 대신 적당한 대답을 내어놓았다.
“글쎄요. 우리 둘 다 그런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너도 이제 스물셋이잖니? 다시 합칠 생각이 없다면, 아예 새장가라도 갈 생각은 없고? 혹시 어디에 다른 아가씨 숨겨놓은 건 아니지?”
알트의 어머니는 추궁하듯 물으며 슬쩍 아들의 옆에 앉은 세린을 한 번 더 바라봤다.
하지만 묘하게 동양인의 느낌이 남아있는 세린의 얼굴은 그녀가 보기엔 너무 어려 보이는지, 이내 고개를 휘저었다.
“어쨌든 얼른 손주가 생겨야 니 아빠도 좀 유해지고, 너도 철들고 할 텐데. 으휴!”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당연하지! 원래 애가 생기고 나면 사람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법이야.”
“하핫. 뭐 그거는…….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네요.”
왠지 힘없는 목소리에 세린은 조심스럽게 알트의 표정을 살폈다.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조금 슬퍼 보이는 그의 표정.
차라리 쓴웃음은 지을지언정 평소엔 어지간한 일로는 보여주는 법이 없는 얼굴이지만.
예전에 조이의 부모님과 만났을 때도 그렇고, 어쩐지 아이와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땐 가끔 보게 되는 것 같다고.
세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네 엄마 말대로다. 상회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보단,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게 먼저지.”
“아니. 당신은! 내가 언제 얘 하는 일 가지고 뭐라 했다고 그래?”
그때, 느닷없이 끼어든 아버지가 헛기침하며 잔소리를 얹었다.
남편과 달리 아들의 사업에 불만이 없던 알트의 어머니.
그녀는 괜히 자신이 한 말에다 덧붙여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는 남편의 팔뚝을 또 한 번 찰싹 때렸으나.
“어쨌든 사람은 주어진 역할에 만족하고, 거기에 충실할 줄 알아야 하는 법.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으이그! 맨날 그 소리야. 맨날!”
알트의 아버지는 맞은 팔뚝을 쓱쓱 문지르면서도 할 말은 해야겠다 싶었는지 끝까지 얘기를 이어갔다. 덕분에 아내의 찰진 손바닥이 몇 차례 더 날아오긴 했지만.
그리고 그때, 가족의 대화를 들으며 애먼 숟가락만 오물오물 씹어대던 세린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알트네 아버님은 알트가 전혀 자랑스럽지 않으세요?”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짧은 침묵이 흐르며 그녀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세린의 눈빛은 무척이나 단단했다.
물론, 평소 같으면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다시 입을 다물 법도 한 그녀였지만.
알트가 이 세계를 얼마나 사랑하고, 또 그 세계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아는 만큼.
지금은 도저히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저는 알트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돈을 잘 벌어서 그런 게 아니라! 저 말고도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도움을 받았고…….”
“이보게, 아가씨.”
“엣? 네?”
“황동이 광을 낸다고 황금이 되는 건 아니네. 오히려 닦을수록 닳아 없어질 뿐이지. 난 부모로서 당연한 걱정을 할 뿐이오.”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말.
하지만 세린이 느끼기엔 알트는 어딜 봐도 황금이고 황새였다.
“알트는 이미 황금이에요! 세상에는 전혀 특별하지도 않은 자식이 특별하길 바라는 부모도 있어요. 그런데 특별한 자식을 두고서, 오히려 평범하길 바라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물론 아들 녀석이 여러모로 비상하다는 건 인정하네. 허나, 높은 탑일수록 무너질 위험은 커지는 법이지.”
“기초 공사가 튼튼한 탑이라고요! 쉽게 안 무너져요!”
자신의 부모님을 겹쳐본 탓일까.
감정이 격해진 세린은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뱉기 시작했다.
실제로 지나친 교육열로 자신을 몰아세웠던 그녀의 어머니와 반대로, 아들이 실제로 많은 성과를 이뤘음에도 그저 평범하고 조용히 살기를 바라는 알트의 아버지.
세린은 이런 상반되는 모순이 참을 수 없었는지, 어느새 자기 일처럼 화를 내고 말았던 것.
“야, 조세린 그만해.”
“하지만 알트! 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억울하지도 않아?”
“뭐 어때? 어차피 아버지 빼고 세상 사람들은 다 인정해줘.”
어찌 보면 도발처럼 들릴 수도 있는 말.
그에 한창 열내던 세린은 당혹스러운 얼굴로 알트의 아버지 표정을 살폈다.
아무리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서 아버지의 인정 따윈 필요 없다는 식으로 말할 줄 예상 못 한 모양이다.
다만 알트의 아버지는 이미 들어본 얘기이라도 한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 제 주제는 충분히 알고 있어요. 안 그랬으면 지금쯤 영웅이 되겠답시고, 드래곤 앞에서 검 들고 까불고 있었을걸요?”
분위기를 풀기 위한 농담처럼 들리는 이야기에 세린이 입술을 삐쭉였지만.
피식 웃고 있는 알트는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괜히 이 게임의 주인공처럼 되겠답시고 설치지 않았던 건 순전히 NPC로서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 한계의 틈바구니에서 낸 최선의 결론이, 상인으로서 성공하는 것이었고.
이 한계를 몰랐던.
어린 시절의 자신을 지켜본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갖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되긴 했다.
다만 이 게임의 고인물이라는 최대의 잠재력은 평범한 NPC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을 뿐이었고.
“그래. 무모한 짓만 하지 마라.”
알트의 아버진 그 말을 끝으로.
오랜만에 본 아들에게 더는 해줄 말이 없다는 듯, 그릇들의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묵묵히 식사에만 집중했다.
* * *
식사까지는 어찌 문제없었지만, 좁디좁은 판잣집에서 손님까지 잠을 자는 건 솔직히 무리한 일.
게다가 계속 있어봤자 덕담이 오갈 분위기도 아니었기에 알트 일행은 식사를 끝내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그래라.”
알트는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아주며 기름 헝겊으로 곡괭이를 손질하는 아버지를 씁쓸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금 교역장의 잡역부로 일하는 아버지로선 앞으로 평생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를 곡괭이건만, 녹 하나 슬지 않은 것을 보면 매일 저렇게 관리해온 모양이었다.
“네 아버질 너무 미워하지는 마. 저 양반은 그냥 조바심이 나는 거야. 너한테 쓴소리하는 것 말곤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잖니?”
“당연히 저도 잘 알고 있어서, 딱히 원망하지는 않아요.”
“에휴. 그래 그러면 몸조심하고. 모쪼록 무리만 하지 마.”
알트의 어머니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아들이 금방 돌아가는 게 못내 아쉬운지, 한참을 껴안으며 배웅했다.
그리고 아들 일행이 골목 저 너머로 사라져 모습이 보이게 된 뒤에도, 한동안 집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 서 있었다.
그렇게 배웅을 받으며 숙소로 향하는 동안.
세린은 괜히 미안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안. 괜히 내가 나서서 분위기가 더 이상해졌던 것 같아.”
“괜찮아. 그렇다고 오늘 밤 잘 때 이불은 너무 세게 차지 마. 괜히 먼지만 날린다고.”
“으, 진짜 이럴 땐 얄미워…….”
세린은 자신의 사과에 서글서글 웃으며 놀리듯 대답하는 알트를 째려보다, 이내 그녀도 피식 웃었다.
얄밉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방에게 마음의 짐을 안겨주지 않으려 하는 알트 특유의 처세술.
그와 오랫동안 함께 하다 보니 그녀도 슬슬 그 정도의 속마음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아? 너라면 틀림없이 아버님을 설득해서 인정받으려 할 줄 알았는데.”
“그야 난 아버지의 가치관을 따를 생각이 없으니까. 그럼 반대로 내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아야 공평하잖아?”
세린은 그 말이 뭔가 궤변처럼 들려 뭐라도 반론하고 싶었는지, 한참이나 알트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오물거렸지만.
끝내 마땅한 반론을 찾아내지 못하고 그녀의 입에선 긴 한숨만 흘러나왔다.
“아! 그래도 아버님이 하신 말 중에 한가지는 확실히 맞았던 것 같아.”
“응? 뭐가?”
“역시 차려놓은 양은 좀 과했어…….”
한눈에 봐도 평소보다 볼록해진 윗배를 쓸어내리며 힘겹게 심호흡하는 세린.
결국에 알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세린은 볼록 내밀어 보였던 배를 슬쩍 집어넣으며.
빙글거리는 알트를 슬쩍 살폈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 않더라니.
알트가 도와준 것에 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밖에 없기에. 세린은 오늘따라 화통한 조이가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