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미구현 지역 (2)
이튿날.
알트와 그 일행들은 의뢰를 해결하기 위해 아침 일찍 여관을 나와 수정 광산으로 향했다.
광산은 도시와 조금 떨어져 있긴 했지만.
도보로 10분 정도만 걸어도 금방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였다.
“아, 스바로프 님이 말한 게 당신들입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광산에 도착하자 광산 관리자가 알트 일행을 반갑게 반겼다.
그리고 그의 뒤로는 광산 인부들이 계속해서 지나다니고 있었는데.
“광산이 폐쇄된 건 아니었군요.”
“예에. 수상한 동굴이 발견되긴 했어도, 딱히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요.”
관리자의 말에 알트와 세린은 동시에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이 세계에선 그 정도가 상식선일지라도, 현대인 출신인 두 사람에겐 그저 안점불감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행태였다.
눈치를 보던 관리자가 휙 돌아섰다.
“그럼 따라오십시오! 제가 동굴이 발견된 곳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관리자를 따라 들어간 수정 광산의 규모는 제법 상당했다.
우선 넓은 수직굴을 중심으로 여러 층계가 나뉜 모양이고.
각층은 마치 거미줄이 뻗어나가듯 수평으로 깊숙이 굴을 파고들고 있었다.
“으와아. 엄청 크다! 깊어!”
“에헴. 이 광산이 생긴 지 무려 천년이 넘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질 좋은 수정이 매일같이 채굴되고 있죠!”
세린의 감탄에 관리자는 뿌듯해하는 미소를 지으며, 일행들은 도르래 승강기가 있는 쪽으로 안내했다.
“동굴은 최하층 깊숙한 곳에서 발견되었습죠. 그래서 당장은 거길 폐쇄하기만 해도 큰 영향이 없다지만. 스바로프 님께선 향후를 생각하면 제대로 조사를 하여야 한다고 여기셨습니다.”
이윽고 승강기가 최하층에 도착하고.
관리자는 여러 방향으로 뚫린 굴들 옆에 적힌 팻말의 숫자를 확인하며, 알트 일행을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한참을 이동하던 중.
갑작스레 가로막힌 수상한 벽면.
“여깁니다! 판자는 당장 인부를 시켜 떼어내도록 하죠!”
그렇게 관리자의 부름에 인부 두 명이 달려와 벽면을 막고 있는 판자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곧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고.
빛을 비춰보니, 밖에서 봤을 땐 지극히 평범한 석회동굴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관리자까지 자리를 떠나고, 세린과 알트가 각자 마법으로 빛의 구슬을 만들어 동굴 내부를 본격적으로 확인하기 시작했다.
천장을 따라 스며나오는 습기와, 자연적으로 자라나는 종유석과 각종 석순들.
전형적인 석회 동굴의 모습이었다.
“헤에. 웬일로 네 추측이 틀렸네?”
“그럼 더 좋지. 일이 빨리 끝날 거 아냐. 가고일 도시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거든.”
그렇게 알트의 추측이 처음으로 틀리려나 싶던 그때.
동굴은 생각보다 꽤 깊었고, 일행들은 조금씩 안쪽 깊숙한 곳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이윽고 일행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공동과, 저 먼 곳에서부터 희미하게 비치는 지하도시.
“우와아…….”
“일이 복잡해지겠는걸.”
멍하니 넋을 잃은 세린과, 귀찮아보이는 조이.
분명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동굴이지만, 어느새 천장과 벽면을 발광 이끼가 빼곡히 뒤덮은 채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고.
덕분에 천장높이만 해도 7층 건물 높이의 거대한 공동이라 해도,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하여 저 먼 곳의 건축물들이 마치 불꺼진 도시의 야경처럼 은은하게나마 보일 정도.
다만 바닥엔 평균적으로 발목까지 올 만한 깊이의 물이 찰박하게 깔려있었는데.
“어우 축축해. 가고일들은 원래 이런 데를 좋아해?”
“아니. 흠…… 수도였던 곳이 지금은 지반이 완전히 내려앉아서, 리덴브로크 호수가 됐으니까. 그 영향으로 여기까지 침수됐을지도.”
다만 이게 발목까지인 건 세 사람만 해당하는 이야기.
도라의 경우 물이 거의 무릎 직전까지 오고 있었기에, 털과 꼬리가 완전히 곤두선 상태로 질색하고 있었다.
“어쩔래, 도라? 넌 그냥 위에서 기다릴래?”
“으에에. …그래도 그냥 같이 다닐래요.”
물이 아무리 싫어도 일행과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게 더 싫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일단 일행은 바닥에서 관심을 내려두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일대는 물론이고 동굴의 안쪽 깊은 곳까지, 가고일 문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계단 없는 탑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100년 전 대지진의 여파인지 무너져있는 탑들도 많았고.
반대로 오랜 세월에 끄떡없이 버티고 있는 것들도 제법 많았다.
그리고, 보이는 것이라곤 그게 전부.
“쳇! 정말 아무것도 없잖아? 이대로는 토벌 임무 보상은 못 받겠네.”
“그래도 확실히 알아야 하니 안쪽까지 다 둘러봐야지.”
그렇게 일행은 동굴 안쪽을 향해 나아갔다.
다행히 안쪽으로 갈수록 물이 깊어지거나 하는 일 없이, 조사는 평이하게 이루어졌다.
보이는 풍경도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고.
그리하여 그렇게 평화로운 탐사가 계속될 줄 알았지만.
가장 먼저 이변을 눈치챈 건 도라였다.
뒤에서 잘 따라오다 갑자기 멈추더니, 이내 귀를 쫑긋거리며 코를 킁킁댔고.
이윽고 털을 잔뜩 곤두세우며 하악질을 해댔다.
“히익! 저기 저 앞에 이상한 게 있는 것 같아요!”
“오옷! 금화 10닢!”
조이는 희소식에 손날을 이마에 대고 주변을 두리번거렸고.
안심하고 있던 알트도 그제야 감각을 예리하게 가다듬고서 도라가 말한 적을 탐색했다.
“저쪽인가? 다들 기습에 조심해.”
기척이 발견된 방향으로 향하자.
가장 먼저 푸른색 비늘로 장식된 토템이 일행들을 반겼다.
이는 당연히 가고일의 것이 아니었고.
이를 본 알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뭔가 했더니. 리자드맨이었나?”
“그러게. 여긴 가고일 동네 아니었어? 왜 도마뱀들이?”
“그야 오랫동안 버려진 곳이잖아. 가만 보면 녀석들이 좋아하는 환경이고.”
침수되어 물이 고인 데다, 지열 탓인지 그리 춥지도 않은 환경. 확실히 리자드맨이 좋아할 만한 곳이었다.
어쨌든 저 토템은 녀석들의 영역표시.
그러니까 이 앞을 넘어가면 놈들이 기다리고 있단 뜻이었다.
그렇게 일행은 토템을 넘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끼에에엑!”
“키익! 키이익!”
이내 조이가 기다렸던 금화 10닢짜리 리자드맨과 조우했다.
“전사 셋에 샤먼 하나인가? 궁수는?”
알트는 검을 뽑아 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리자드맨은 군대처럼 체계적인 집단을 이루는 몬스터.
그렇다 보니 놈들에겐 기본적인 편제가 있기 마련인데, 지금은 궁수의 배치가 확인되지 않았다.
“그야 저기 탑 어딘가에 있겠지.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니까, 다들 조심하자고!”
조이는 주변의 멀쩡한 탑들을 흘끗 살펴보다가, 도끼를 빙글빙글 돌리며 자세를 잡았고. 세린 또한 침을 꿀꺽 삼키며 검을 꺼내들었다.
눈앞에는 샤먼보다 덩치가 세배는 되어 보이는 전사들이 작살처럼 생긴 창을 앞으로 하고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후 누가 신호라고 할 것도 없이 전투가 시작됐다.
여러모로 적에게 지형적으로 유리한 전투였다.
분명 어딘가 있을 궁수의 위치는 아직 파악되질 않고, 발밑의 물에서 은근히 느껴지는 저항.
그리고 무엇보다.
“쳇! 샤먼 녀석 완전 신났네!”
리자드맨 전사 하나의 머리통을 도끼로 내려찍으려던 조이는, 발밑의 이변을 눈치채고서 잽싸게 뒤로 빠졌다.
이윽고 그녀가 있던 자리에서 자라나는 뾰족한 고드름.
전사 자체는 다른 개체보다 월등히 신체 능력이 좋기만 할 뿐, 상대하기는 까다롭지 않았다.
문제는 주변이 온통 물이라는 것.
샤먼 하나가 계속해서 주술이 마구잡이로 날려오는 상황에, 코앞에 있는 전사 하나 잡기가 쉽지 않아졌다.
“이런 씨이!”
“앗! 언니!”
거기다, 한창 난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조이의 어깻죽지에 박혔다. 전사에 샤먼까지 견제하다보니 미처 피해내지 못한 그녀.
그리고 그게 신호탄이 된 듯, 뒤이어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는 화살들.
“역시 조심하자는 사람이 가장 먼저 맞는 법이지.”
“야. 니 전 마누라 다쳤는데 걱정이란 걸 좀 해봐!”
뒤로 물러난 알트가 어깨를 으쓱였다. 궁수들의 위치는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파악한 지 오래.
“이대로는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와. 차라리 우측 대각선 뒤로 빠져서 화살은 앞에서만 받아내자.”
“아아. 알겠어.”
알트의 명확한 지시에 일행들은 슬금슬금 뒤로 빠지며, 등 뒤에선 화살이 날아오지 않게끔 자리를 다시 잡았다.
다만 화살과 샤먼의 주술이 견제해오는 가운데 세 전사와 맞붙는 건 쉽지 않은 상황.
이내 알트와 조이, 세린 세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교환하며 무얼 해야 할지 신호를 주고받았고.
“으랴아앗!”
“히야압!”
조이와 세린이 일부러 큰소리와 큰 동작으로 적들의 시선을 한데 모았다.
잔뜩 경계하는 리자드맨들.
당연하지만, 그 순간 알트의 모습이 사라졌단 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내 전사들이 창을 치켜들며 달려들려던 때.
“끄르르륵!?”
그 직후 샤먼의 가슴팍에서 칼날이 불쑥 튀어나오더니, 녀석이 피를 쏟아내며 고꾸라졌다.
저 멀리 가고일의 탑에 숨어 활을 쏘던 궁수 중 하나는, 난데없이 자기네 샤먼이 쓰러지자 어리둥절한 눈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어 자세히 살폈고.
“껙!”
그 덕에, 녀석 또한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에 화살을 맞고서 절명하고 말았다.
그 상황을 알아챈 다른 탑의 궁수들은 허겁지겁 저격수의 위치를 찾으려 했으나, 어째선지 보이지 않았고.
적을 찾지 못한 즉시 탑 안쪽으로 도망가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즘에는.
이미 녀석들의 이마에도 화살이 박힌 뒤였다.
.
.
.
“팔은 괜찮냐?”
“이거? 그냥 스친 거야. 가렵지도 않다고?”
“보통은 그렇게 깊숙이 박혀있는 걸 스쳤다고 표현 안 해. 그럼 이 꽉 물어.”
“응? 으악!”
알트는 잘 소독한 단검으로 조이의 어깻죽지를 살짝 짼 뒤, 박혀 화살을 조심스레 빼냈다.
촉이 작살처럼 생겨 먹어 빼내기가 힘들었을 뿐이지 다행히 독은 발려있지 않았다.
“독은 없는 것 같네.”
“이혼한 사이인데 그렇게 사정없이 쑤셔대냐? 이 파렴치… 으악! 살살!”
“니 말대로 스친 거니까 이렇게 약 발라두면 낫겠지.”
알트는 화살을 맞은 자리에 새하얀 가루 같은 걸 뿌린 뒤, 깨끗한 헝겊으로 조이의 상처 부위를 동여맸다. 연금술을 통해 회복포션을 압축해 가루로 만든 거라, 효과는 발군이었다.
그렇게 치료를 마친 뒤.
일행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리자드맨 군락은 생각보다 규모가 큰지, 이후로도 몇 차례 놈들과 마주쳤지만.
이미 익숙해진 패턴에 두 번 당할 사람들이 아니었다.
“께엑!”
시작은 은신한 알트가 샤먼의 목을 따버린 뒤, 그 다음엔 궁수를 견제.
그 사이 조이와 세린이 전사를 빠르게 해치운다.
이런 식으로 반복해서 놈들을 공략하는 동안.
처음에 조이가 화살을 맞았던 일 이후로 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왜지. 이 묘한 박동은…….’
다만 알트는 이상하게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수 없는데.
“어라? 언니! 피! 피!”
“엣? 뭐야? 아직도 피 안 멈췄어?”
이게 그 기우였을까.
어째선지 조이의 상처에서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심지어 질 좋은 치료제를 들이부었음에도.
“야! 너 아까 그렇게 쑤셔댈 때부터 봤어! 제대로 치료한 거 맞아?”
“무슨 소리야. 제대로 했거든?”
하지만 다시 붕대를 풀어봐도 치료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또다른 치료 포션을 붓고 붕대를 동여맨 뒤.
앞으로 나아가자.
어느덧 일행들은 새로운 공간에 도착했다.
가고일의 높다란 탑은 어느새 보이지 않고.
반쯤 망가진 조각상들로 가득 차 있는 불가사의한 장소.
그리고 그 안쪽 깊숙한 곳에 홀로 자리를 지키는 거대한 조각상.
앞쪽의 조각상과는 달리 굉장히 멀쩡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그것은, 드래곤의 모습을 제법 생생하게 조각해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 위용에 홀리듯 조이는 드래곤 석상 앞으로 다가갔다.
“헤에. 진짜 드래곤은 이만하려나?”
그렇게 감탄하며 석상을 쓰다듬었을 때.
그녀는 석상에 묻은 피를 보고서 얼굴을 찌푸렸다.
다시 상처를 손본지 얼마나 됐다고, 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야! 아까 그거 독 없는 거 맞아? 왜 이리 피가 안 멈춰?”
하지만 알트는 조이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멍하니 석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자신의 심장소리가 점점 크게 들린다고 생각했더니, 어느새 주변이 그 소리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다.
아니, 아니다.
문자 그대로 심장이 귓가에서 박동하고 있었다.
그것도 그의 것이 아닌,
……낯선 이의 심장이.
알트는 그제야 깨달았다.
조이와 자신은 이곳에 내려와선 안 됐다는 사실을.
저것은 석상 따위가 아니라.
쿠르르르르르르-
진짜로 살아있는 드래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