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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NPC는 리셋이 싫다-172화 (171/282)

172. 새벽의 저주 (3)

어둠이 짙게 깔린 라이홀드의 거리는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오후에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던 병사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그들이 길목마다 세워둔 목책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고요도 잠시.

광장의 흙이 들썩이며 물결처럼 요동치기 시작하더니, 갑작스레 흙더미가 위로 솟구치며 생겨난 커다란 구덩이.

마치 구덩이가 토해내기라도 하듯

그 안에서는 움직이는 시체들이 끊임없이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어어억-

그렇게 기괴한 신음을 내며 천천히 나아가던 언데드 병사들.

허나.

이내 그것들은 길을 잃은 것 마냥 대열이 흐트러지며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데.

막상 밖으로 나왔건만, 녀석들 주변에는 사냥감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으니.

광장 근처의 민가들이 텅 비어있는지, 이 일대에는 살아있는 것의 기척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 언데드란 주인에게 명령받은 이상, 육신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것을 끊임없이 수행하는 존재,

흉흉한 안광을 빛낸 그것들은 썩어문드러진 감각들을 동원하여, 살아있는 존재의 기척을 탐색했다.

카아아악!

크워어억-

그러다 한 녀석이 그러한 기척을 발견했는지 괴성을 질러댔고.

다른 언데드들도 그에 대답하듯 괴성인지 함성인지 모를 소리를 낸 직후, 일제히 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광장을 가득 메운 살아있는 시체들의 행렬이 한 좁은 골목으로 비집고 들어가려던 그때.

콰아앙!

이내 광장은 커다란 폭음과 함께 거대한 불길에 휩싸였다.

물론 철저히 명령대로 움직이는 언데드들은 그 폭발과 화염에 당황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었다.

광장을 덮친 화염에 언데드들은 그저 움직이는 장작더미가 되었고, 그로 인해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는 언데드에도 계속 불이 붙었으니.

덕분에 광장은 삽시간에 거대한 화장터가 되어버렸는데.

결국 이 불덩이를 뚫고 지나가는 건 아주 소수의 언데드 병사뿐이었다.

.

.

.

“흠. 폭발 소리! 그렇다면 시작된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알트가 말하길 광장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오면, 그걸 신호로 삼으라고 했습니다.”

광장에서 조금 떨어진 한 교차로에 세 명의 사내가 그곳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들은 바로 오즈월드와 오웨인. 그리고 스바로프. 이 셋이 맡은 일은 언데드 병사로부터 이 교차로를 사수하는 일이었다.

“겨우 셋이서 몇백몇천이나 될지도 모를 시체 군단을 상대하라니. 알트 그 친구 보기보다 사람을 혹독하게 굴리는걸.”

“어쩔 수 없습니다, 스바로프 경. 저희 병사들이 죽으면 고스란히 적의 병사가 되어버리니, 최소한의 인원으로 막아야 합니다.”

“아니, 그래도 세 명은 너무하잖아! 세 명은!”

“그건 저도 동감입니다만…. 저 폭음이 희망의 나팔 소리였기를 빌어보죠.”

오웨인은 여러모로 불만으로 가득한 스바로프를 독려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알트에게 대략적인 작전을 들어놓긴 했지만, 과연 저 광장에 심어둔 함정이 적의 병력을 얼마나 줄여줄지는 의문이었다.

“그보다 광장에서 습격이 시작될 걸 용케도 예측했구먼. 역시 똑똑한 친구야. 허헛.”

“알트가 그러더군요. 적은 마법으로 땅굴을 파서 습격해올 테지만, 지반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요.”

“하긴! 기껏 되살린 시체들이 도로 매장되어버리면, 그것도 참 웃겼겠어.”

”그래서 결국 지상에 아무것도 없는 광장 말고는 출구를 만들기 힘들다고 예상하던데. 정확하게 들어맞았나 봅니다.”

오웨인은 알트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이제 이 셋으로도 충분히 언데드 병사들을 막아낼 수 있을 거란, 그 계산만 맞아떨어지면 됐다.

“신기할 노릇이야. 아무리 이 도시가 만들어진 지 반백 년밖에 되질 않아, 지질조사 자료도 고스란히 남아있다고는 하지만…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다니. 그 친구, 내게도 그 자료를 들고 와선 의견을 물어보더라고.”

“하긴 스바로프 자네 동네는 광업으로 먹고사니, 굴 파는 데엔 나름대로 조예가 깊겠군!”

화기애애한 대화를 끝으로.

피식 웃은 오즈월드와 스바로프도 각자 검을 뽑아 들고선, 정면을 응시했다.

저 멀리 높이 치솟은 광장의 불길 사이로, 무언가 그림자들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인데.

“옵니다…!”

불구덩이가 된 광장에서 용케도 빠져나와, 천천히 걸어오는 한 무리의 언데드 병사들.

오웨인은 차분히 심호흡하며 검을 쥔 손에 더욱 힘을 주고서 자세를 고쳐잡자.

그러자 오즈월드는 그런 오웨인의 어깨를 툭 때리더니 피식하고 웃음 터트렸다.

“뭐, 그리 긴장하지 말라고. 우리의 승리는 이미 예정되어 있으니까.”

“역시, 오즈월드 전하….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하지만 그렇잖나? 저들은 이미 죽음 앞에 패배한 자들이니. 죽음에게 단 한 번도 패배해본 적 없는 우리가 더 강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그 말에 오웨인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오즈월드가 한 말은 어딜 봐도 그냥 궤변이었지만, 어째선지 신빙성 있는 말로도 들렸다.

애초에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전사 중의 전사로 칭송받는, 바로 그 오즈월드가 아니던가.

“하핫! 그럼 간만에 몸 좀 풀어보실까!”

이내 언데드 병사들이 지척에 다다랐다.

그것들은 흙먼지와 새까만 그을음 등으로 지저분하단 걸 제외하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체라고 생각되지 않는 몰골이었으나.

“읏챠!”

오즈월드는 그의 대검을 호쾌하게 휘두르며, 단숨에 언데드 병사 셋을 반토막 내었고.

그 상태서도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을 보고 나니.

그제야 오웨인도 저 병사들이 움직이는 시체라는 사실이 실감되어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이 전투의 주역은 바로 오즈월드였고, 자신과 스바로프는 그저 거들뿐이라는 사실 또한 깨달았으니.

“흠. 그렇다고 마냥 구경만 할 순 없지!”

그렇게 조금 전의 긴장감을 완전히 떨쳐낸 오웨인은, 저 앞에 몰려오는 수십 마리의 언데드 병사를 마주하고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오즈월드의 용맹함에 뒤질세라 그의 옆에서 거침없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에휴. 하여간 무투파 녀석들이란 단순 무식하다니깐.”

그러는 와중에 잔뜩 찌푸린 스바로프의 얼굴이, 이 전투에 참여하게 된 걸 별로 내키지 않아 하는 걸 말해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실력이 이 전투에 어울리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듯.

이내 그는 날카로운 곡선을 그려내며 다가오는 언데드 병사의 목을 단숨에 떨궜다.

“그런데 말이야, 오웨인. 정작 알트와 그 영웅 아가씨들은 어디에 간 거지?”

“그들은 항구 쪽에 있습니다! 놈들의 정예가 그리로 올 거라고 합니다!”

“허? 그거는 또 어찌 알고서?”

오웨인의 대답에 스바로프는 의아해하는 얼굴로 연거푸 검을 휘둘렀다.

광장에서 나타난 언데드 병사야 나름 그럴듯한 근거가 있었고, 또 실제로 맞아떨어졌지만.

바다 쪽에서 적의 정예가 온다는 얘기는 그에게 있어, 조금 뜬금없는 얘기일 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라고만 얘기를 해줬습니다.”

“허어? 그건 또 뭔 소리야?”

스바로프는 그 말의 뜻이 도통 이해가 안 되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 오웨인 본인도 그 말을 전달해놓고서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마찬가지였는지, 그저 쓴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오웨인은 물론이고 스바로프도, 알트가 그런 핑계를 대며 도망친 거라곤 생각하지는 않았으니.

“뭐, 그 친구가 그렇게 얘기했으면, 뭔가 아는 게 있는 거겠지!”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두 사람은 사담을 멈추고.

눈에 띄는 족족 언데드 병사를 두 동강 내놓는 오즈월드의 페이스에 맞추기 위해, 더욱 정교하고 빠른 몸놀림으로 검을 휘둘러 댔다.

* * *

한편 알트는 세린과 조이, 도라와 함께 항구에서 적의 정예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으음. 저쪽에선 벌써 싸움이 한창인 것 같은데, 우린 여기에 있어도 되는 걸까?”

항구에서 하릴없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던 세린은,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시내 쪽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아. 저쪽에 몰린 건 단순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양산형 언데드니까. 어차피 개별적인 전투력은 훈련받은 병사보다 못한 수준이야.”

“흐음. 그래도 숫자가 너무 많아서 감당하기 힘들면 어떡하려고?”

“술자가 근처에 없으면 단순한 명령에 따라 움직일 뿐이야. 덕분에 움직이는 장작 패기에 가까우니, 결과적으로 체력 싸움이 되겠지. 거기에 오즈월드 전하의 체력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알트는 마치 안 봐도 다 안다는 듯이 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말한 그대로였으니.

‘머릿수로 미는 부대로 시선을 끌어모은 뒤, 후방에서 정예로 친다. 네크로맨서의 정체가 진짜로 불멸왕이라면, 또 이런 패턴으로 나올 테니까.’

그가 오웨인에게 말했듯이 역사는 되풀이되는 법.

더구나 부활한 로시르의 입장에선.

부활하기까지의 천년이란 시간은 그저 잠시 눈을 감았다 뜬 사이에, 얼결에 건너뛰었을 뿐이니.

그 사이에 녀석의 패턴이 변화할 리가 없었다.

“걱정해야 할 쪽은 오히려 이쪽이야. 숫자도 적지 않겠지만, 보통 소재의 선정부터 범상치 않을 테니까. 그리고 아마 이 경우엔….”

그렇게 말하던 알트는 돌연 날카로운 눈매를 하고서 바다 쪽을 응시했다.

그곳엔 그저 칠흑 같은 어둠이 있을 뿐이었지만, 세린과 조이도 무언가 직감적으로 느꼈는지 무기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도라도 마찬가지로 털을 쭈뼛 세우고서 폭탄 포션을 양손에 들었다.

히히힝-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어쩐지 말 울음소리가 섞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수면에 하얀 물거품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크게 물기둥이 치솟아 오르며 그 속에서 황금 갑옷을 두른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황금사자 기사단…!”

푸른빛을 발하는 할루나 블레이드를 뽑아 든 알트는, 평소와 달리 살짝 긴장한 얼굴로 등장한 적을 응시했다.

“모두 조심해! 정예 언데드는 오히려 살아있을 적보다 강하니까!”

언데드 기사는 계속해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위로 튀어 올라와, 알트 일행을 둘러싸고 있었다.

알트는 그와 일행들을 둘러싸고 있는 언데드 기사들을 노려보며, 녀석들의 모습을 조금 더 자세히 살폈다.

그들은 분명 죽은 지 며칠이 채 되지 않았을 터이나, 기이하게도 투구 사이로는 새하얀 백골과 푸른 안광이 비쳐 보이고 있었다.

거기다 갑옷의 틈새 사이로 검은 연기 같은 것이 새어 나오기까지.

그것은 분명 시내 쪽을 덮친 언데드 병사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일 거라 짐작되었다.

스르릉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알트였다.

계속해서 바닷속에서 튀어나오는 언데드 기사들이 전부 나올 때까지 기다려 줄 이유는 없었으니.

알트는 일행들을 둘러싸고 있는 녀석들중 하나에게 파고들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채앵!

하지만 그 일격은 너무나도 간단히 언데드 기사의 검에 막혔고, 그와 함께 놈들의 공격도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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