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공무집행 (2)
알트 일행 중에서 알트 다음으로 탐색 능력이 좋은 사람은 역시 조이다.
아무래도 사냥꾼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추적술의 실력이 제법 뛰어난 점도 있지만, 야성적인 감도 한몫했다.
그런 만큼.
“낮에는 가만히 있더니 왜 이런 시간에 저 지랄이래….”
조이는 뒤통수를 계속해서 찌르는 시선에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녀의 성질 같아선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멱살이라도 쥐고 싶었지마는.
‘너희 둘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고, 그냥 평소대로 행동해.’
알트가 당부한 말이 떠올라 어쩔 수 없이 혀만 찰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저 저 미행을 눈치채지 못한 척하며, 하던 일에나 집중할 수밖에.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쯧. 눈치채고 말았나?”
멀리서 조이를 지켜보던 젊은 병사는 자꾸만 자신이 있는 방향을 의식하는 듯한 그녀의 행동에 혀를 찼다.
본인은 티를 안 내려 노력한 거겠지마는, 그러기엔 연기력이 치명적으로 부족한 그녀.
“이대로라면 계속 감시해도 별 의미가 없겠군.”
미행을 눈치챈 상대는 몸을 사릴 테니, 그럼 자신이 원하는 순간을 포착하게 만들어줄 리가 없다.
그렇게 판단한 젊은 병사는 다시 그늘 속에 몸을 숨기며 발걸음을 돌렸다.
* * *
뒷조사를 나갔던 감찰관의 호위 병사들은 어느덧 다시 여관으로 모였다.
그들이 저녁 내내 알트 일행의 세 사람에 대해 탐문하고 다닌 탓에, 이따금 그들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지마는.
그들은 일반 시민의 시선 정도는 무시한 채 구석 자리에 앉아 임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래. 뭔가 쓸만한 단서라도 건진 게 있나? 자네 먼저 얘기해보게.”
“…시민들을 대상으로 탐문조사를 벌여봤지만. 벨하라의 사도 세린에 대한 평판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딱히 흠잡을 구석이 없더군요.”
“흐음. 우리로선 썩 좋은 일은 아니군.”
벤의 보고를 듣던 중년 병사가 덥수룩한 그의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다 어째 낯빛이 어두운 벤의 표정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아무래도 임무의 성과가 좋지 않아 자신을 책망하고 있는 모양이로군.’
곧 그 이유를 지레짐작하고는 시선을 돌려 그 옆에 있는 다른 병사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자네는 어떤가?”
“여전사 조이 쪽도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평가들이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미행을 시도 해봤습니다만, 감이 좋더군요. 금방 눈치챈 듯하길래 바로 철수해야 했습니다.”
“음. 현명한 판단이었네. 상대가 경계하면 공작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으니 말이야.”
중년 병사의 얼굴은 덤덤했다.
부하 두 명의 성과는 실망스럽긴 하지만,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고.
무엇보다도 가장 헛걸음 한 건 다름 아닌 자기 쪽이었으니까.
“실은 내 쪽도 마찬가지였지. 폭풍의 마녀는 반대로 시민들과 별로 접촉이 없더군. 성안에서 잘 나오지 않는 모양일세.”
용병에 가까운 세린과 조이와 다르게 상회의 부회장인 아라네아는 명백한 내근직.
심한 경우엔 아예 그녀가 누군지 모르는 시민조차 있었다.
“으음. 솔직히 이렇게까지 깨끗해도 수상하긴 하지만…. 지금으로선 별도리가 없군. 아무리 생각해도 각하께서 감찰을 너무 일찍 보내셨어.”
이렇듯.
누구도 쓸만한 정보가 없자 중년 병사는 낮게 신음했다.
‘보통은 시민들이 지도층에 크고 작은 불만을 품기 마련인데.’
하지만 신생 그레이힐은 그런 불만이 쌓이기엔 시간이 부족한 모양이었다.
또한 언데드들에게서 벗어난 지 얼마 안되기도 했고.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군. 다음 단계로 넘어가세.”
“옙!”
“뭐 좋은 생각들 없나? 꼬투리 잡을 만한 것들은?”
“여전사 조이는 시민들의 마찰에 무력으로 개입하여 해결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 부분을 잘 파고들면 될 듯합니다.”
“좋아, 좋아…. 그렇다면 적당한 각본이 있지. 잘 준비해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보세.”
그렇게 중년 병사와 젊은 병사가 의견을 나누는 사이.
시선을 내리깐 채 침묵하고 있던 벤의 눈빛에 무언가 불꽃이 피어올랐다.
“대장님…. 그전에 잠깐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보게. 안 그래도 자네 표정이 뭔가 안 좋아 보여서 조금 신경 쓰이긴 했는데. 무슨 일인가?”
중년 병사는 벤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질문하다가.
그 눈을 똑바로 응시해오는 벤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무언가 심상치않은 기색.
“대장님은 최후의 침묵 작전이란 것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자네가 어떻게 그걸.”
“그게 대체 뭡니까? 말해주십시오.”
“신경 끄도록 하게! 자네들과는 상관없는 일이야!”
벤의 질문에, 중년 병사는 탁자를 내려치며 언성을 높였다.
적잖이 당황한 얼굴.
하지만 벤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의 눈빛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렇지요…. 언제나 그랬듯이 침묵은 가장 현명한 말이기 마련입니다.”
“그래. 알 필요도 없는 일에 관심을 두지 말도록 하게. 지금은 우리의 임무에 신경을 쓰도록 해.”
“그 말은 반대로 저에게 숨겨야 할 이야기란 뜻이겠죠.”
그 순간 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허리춤으로 향하는 그의 손.
스릉
하극상이었다.
중년병사가 눈을 부릅 떴다.
‘이게 무슨…!’
규율이 엄격한 침묵의 경비대 안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중년 병사에게 자신의 검을 겨눈 벤이,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추궁하기 시작했다.
“말해보십쇼! 저희 형을 죽음으로 몰고 간 명령이 무엇인지!”
“자네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야, 마틴! 너 이 새끼 미쳤어?”
동료의 하극상에 마찬가지로 자리에서 일어나던 젊은 병사.
하지만 검을 뽑으려던 그의 행동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검자루 위에 손을 얹자마자 벤이 이를 걷어차며, 그대로 그의 복부에 검을 찔러넣은 것이었다.
“허윽…!”
복부를 꿰뚫린 젊은 병사가 피 흘리는 배를 움켜쥐고서 뒤로 넘어졌다.
하지만 쓰러진 동료를 바라보는 벤의 시선은 여전히 묘한 광기가 가득 차 있었다.
“내 이름은 마틴이 아니야! 더는 그딴 가짜 이름으로 부르지 마! 난 너희들 개가 아니라고!”
“진정하게. 지금 자네 눈빛이 정상이 아니야. 아무래도 적의 술수에 놀아난 듯하네.”
역시 지휘관이란 자리와 연륜은 장식이 아닌 모양인지.
중년 병사는 냉철하게 이 상황을 분석해냈다. 심지어, 그것은 정답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오히려 우리에겐 기회야. 녀석들이 자네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만 알아내면….”
“아. 그래서 이번엔 그런 설정의 각본으로 가시겠단 거군요?”
기겁한 중년 병사가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벤의 시선은 몹시도 차가웠다.
“그런 게 아닐세! 제발 차분히 생각해보게! 차분하게!”
“아니요. 생각이라면 이미 머리가 차가워질 정도로 충분히 하고 있습니다.”
정답을 말한다고 해서 이성을 잃은 자를 정신 차리게 할 수 있었다면, 세상의 범죄 중 절반은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의심의 씨앗이 한번 싹트기 시작하면, 명백하디 명백한 진실도 이를 감당해낼 수는 없으니.
“그래서 말이죠. 제가 적의 술수에 넘어갔을 뿐이라면. 왜 최후의 침묵 작전이 뭔지 설명해주시지 않는 겁니까?”
“그건….”
감췄던 게 많은 중년 병사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고.
“그것 보십시오! 그러고서 저더러 대장님 말씀을 믿으라고 하는 겁니까?”
이에 격분하는 벤.
결국 중년 병사는 결심한 얼굴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미 진실을 마냥 감추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사태.
거기다 이를 지켜보는 손님들까지 고려하면, 최대한 빨리 결단을 내려야했다.
‘어쩌면 이보다 일찍 얘기를 해줬으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늦었군.’
“좋아. 얘기하겠네. 그러니 제발 진정하고 검을 내려놓게, 마틴.”
“제 이름은 베넷입니다! 그 개 같은 이름으로 절 세뇌하려 하지 마십시오!”
“…그래, 베넷. 진정하라고.”
어느새 중년 병사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그러나 벤은 대답을 듣기 전에는 검을 거둘 생각이 없었다.
그리하여 중년 병사는 체념을 담아 한숨을 짧게 내쉬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손님들이 듣지 못하게,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최후의 침묵 작전은 갤러웨이가 적에게 함락됐을 경우를 상정하여 미리 지시된 비상 지령일세.”
“그래서 그 내용이 뭡니까?”
“가능한 한 많은 연합의 요인 암살…일세.”
“가능한 한… 그거는 죽으라는 뜻 아닙니까?”
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놓지 않은 명령.
‘가능한’의 의미가 죽거나 잡히기 직전까지라는 뜻이라는 건. 여러 명령을 접해본 만큼, 벤은 단박에 이해할 수 있었다.
굳이 재확인해 볼 필요가 없을 만큼.
“하지만 그건 개죽음이 아닐세. 조국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지. 자네도 군인이지 않은가? 군인이 죽음을 두려워해선 안 되네!”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것과 죽기 위해 싸우는 건 다릅니다!”
벤의 외침에 질책하던 중년 병사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실 그도 저 말에 일부 동감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상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묵은 가치관.
그리고 자신들은 저 명령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그간 눈을 돌려왔던 이기심.
허나 벤은 이를 정통으로 찔렀다.
“그래서 제국에 헌신한 대가가 그런 겁니까? 소모품처럼 쓰다 버려지는 게 우리냐고요!”
“…….”
차마 대답하지 못하는 중년 병사.
벤의 눈에 광기를 넘어선 묘한 빛이 서렸다.
‘그래. 제국에 있어 우리들은 그저 체스판 위의 체스 말에 불과하지.’
쉽게 쓰고 쉽게 버려질 소모품에 불과하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의미한 명령에 갈아넣을 정도였다니.
검을 고쳐쥔 벤이 상대를 바라보며 차게 웃었다.
“당신도 결국 똑같아. 그런 당신들이 우리 형을 죽인 거야!”
“마, 마틴…!”
“난 베넷이라고!”
접근해오는 벤의 흉흉한 살기에 중년 병사는 이를 악물고서 검자루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 탁자를 밀어버리며, 중년 병사를 벽으로 몰아붙이고.
그대로 탁자 위로 뛰어오르더니.
푸욱!
벤은 자신의 지휘관인 중년 병사의 목에 검을 깊숙이 찔러넣고야 말았다.
제국의 병사가 하극상을 저질러 상관을 살해하는 충격적인 장면.
그 광경에 여관의 주점 안이 얼어붙은 듯 고요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동료와 벤의 눈이 마주쳤다.
“어… 야, 마틴. 진정해. 나도 네 생각에 동의한다고. 나도 그렇게 소모품처럼 취급받고 싶지는 않아.”
“날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야이 씨…!”
탁자에서 내려온 벤이 그대로 남은 동료의 목까지 쳐버리자.
“……!”
여관 주점 안에 퍼지기 시작한 술렁임.
손님들은 저 광기에 찬 날이 언제 자신들에게 향할까 두려워하며, 자리를 벗어나려고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
그때 여관 문이 열리며 아라네아의 아이언 골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관에서 일어나고 있는 트러블을 감지하고서, 미리 부여되어 있던 명령에 따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것.
“오델님의 포도밭에서 만나자, 형….”
가만히 제자리에 굳어있던 벤이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을 제압하기 위해 나타난 아이언 골렘들.
이를 허망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는 동료의 피로 얼룩진 검을 들어 올렸다.
벤은 이 순간에 결심한 것이다.
형처럼, 죽기 위해 싸우다가 떠날 것이라고.
* * *
“이것 참 유감입니다.”
“…죄송합니다, 성주님. 이런 문란을 일으켜버리다니.”
감찰관은 침통한 얼굴로 여관 주점에서 일어난 비극을 바라봤다.
그의 호위였던 병사들 중 둘은 동료의 검에 유명을 달리했고.
그 범인은 아이언 골렘에게 끝까지 저항하다 결국 사망.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그의 머리로 도통 이해가 안 되었지만.
당연히 이걸 알트에게 추궁할 수도 없었다.
‘젠장, 오히려 저 녀석이 자신의 도시의 평화를 어지럽혔다고 항의해도 뭐라 할 말이 없겠는데.’
난관에 봉착한 감찰관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일단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 사건 진상을 밝혀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감찰관님은 저희 성에서 쉬시도록 하시죠.”
“그…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인걸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감찰관.
그를 위로하듯 그의 힘없는 어깨를 두드리는 알트.
면목이 없는 감찰관의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사이.
알트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지마는.
“일단 방에 가서 좀 쉬시는 게 어떨까요?”
감찰관의 고개가 다시 올라올 때쯤엔 천연덕스럽게 애통해하는 얼굴을 연기하는 알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