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인물 NPC는 리셋이 싫다-240화 (239/282)

240. 출생의 비밀 (3)

커다란 검은색 육두마차가 성문을 지나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쏠렸다.

페마는 제국 최대의 물류허브로 이름난 도시.

전쟁 이전에는 하루에 수십 대의 마차가 오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화려한 육두마차를 흔히 볼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세상에나. 무슨 마차가 저렇게 휘황찬란하대? 혹시 황제 폐하라도 타고 계신 건가?”

“에이, 그러면 황실의 문양이 그려져 있겠지.”

“그럼 대체 저건 누구 마차래?”

“이 사람아. 그런 뻔한 걸 몰라? 세상에 저런 비싸 보이는 마차를 몰고 다닐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말 여물값만 해도 얼마야.”

“돈 많은 부자라면…. 그 마이너슨 상회의?”

떠들던 사람들이 하나, 둘 수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페마는 상업 도시이니만큼 시민들도 돈 굴러가는 이치에 꽤나 익숙한 편이었고, 마차의 외양은 그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기적의 상인’ 알트는 그 이름 자체로 완벽한 개연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마차가 점점 도시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을 때.

거리의 한쪽 구석에 세워진 짐마차 옆에, 한겨울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짐을 오르내리는 인부들이 있었다.

살아있는 도시라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

“아이쿠, 거의 다 끝났군.”

무거운 짐을 내려놓던 인부 하나가 허리를 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던 중.

“이봐. 저 마차 말이야. 그거 아냐?”

“응? 어어, 맞네. 저 친구네 아들내미 마차구먼.”

인부들의 눈길이 한쪽으로 쏠렸다.

남들과 달리 알트의 마차에 눈길 한번 주지 않고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사내를 향해.

짙은 구릿빛의 피부.

완고하게 굳어버린 턱.

굵은 구슬땀과 깊은 주름이 공존하는 이마.

그는 바로 알트의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돈 많은 상인을 자식으로 둔 사내였다.

그를 바라보던 한 인부가 혀를 끌끌 찼다.

“자네 말이야. 저런 아들 두고서 언제까지 이런 궂은일 할 생각인가? 나 같으면 진즉 일 다 때려치우고, 아들 덕 보며 호강하며 살 텐데.”

“몸 멀쩡히 움직이는데, 뭐 하러 그러나. 아들은 아들이고, 나는 나일세.”

“하여간 저 고집하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갑갑한지!”

인부들은 고집스러운 알트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혀를 내둘렀다.

남들은 저런 아들 못 둬서 난리인데, 정작 갑부 아들을 둔 사람은 사서 고생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의 그런 고집에 가장 복장이 터질 사람은 따로 있다.

수십년 동안 수십번의 회차를 살아오면서도.

“어라? 알트. 방금 저기서 너희 아빠 본 것 같았는데?”

제 아버지의 고집만은 꺾지 못한 아들이.

언제나처럼 마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경치 구경을 하던 세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곧 그녀는 조금 전 지나친 인부들 사이에서, 예전에 본 적 있는 얼굴이 있었다는 걸 떠올리고 뒤를 휙 돌아보았다.

“응. 당연히 나도 봤어.”

“엣? 그럼 인사라도 드려야 했던 거 아냐? 지금이라도 마차 세워야 하지 않아?”

“됐어. 어차피 날 봐도 안 반가워하실걸.”

“으음… 그렇지만….”

허둥대던 세린은 입술을 달싹거리다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

예전에 알트의 부모님 집을 방문했을 때, 부자 관계가 어떠한지는 확실하게 느꼈던 터.

‘그냥 못알아봤어야하는데…!’

말문이 막힌 그녀의 얼굴은 잔뜩 울상이 되어갔다.

“뭐야. 세린이 넌 알트네 부모님 만나봤어?”

“어? 네. 저번에 오웨인 씨랑 같이요. 앗! 설마 언니는 만나 뵌 적 없어요?”

“응. 어쩌다 보니?”

“에엑?!”

거기다.

결혼까지나 한 조이가 알트의 부모님을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에, 세린은 입을 벌리고서 알트를 바라봤다.

최근 들어 좀 유해지고 있다지만.

동방 예의 지국이자 상견례의 본고장, K-한국인인 그녀로선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

“알트… 조이, 왜, 어어, 음….”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하는 그녀의 그런 반응에, 알트는 쓴웃음을 삼키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아버지가 연합사람을 싫어하거든.”

물론 술김에 저지른 충동적인 결혼이었던 만큼, 연애는 물론 부부 기간이 짧았던 탓도 있지마는.

알트가 생각하기론 몇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이번에는 부모님한테 안 들릴 거야. 어머니는 조금 서운해하시겠지만, 애초에 그럴 시간도 없어.”

알트는 이번 여정에 관해 딱 잘라 얘기하며, 가족 얘기를 일축했다.

그러자 마차로 이동하는 내내 말없이 앉아있기만 하던 클라우스의 시선이 알트에게로 향했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나 봐?”

‘아, 이런.’

사정을 모르는 클라우스의 질문에.

마차 안을 둘러보던 알트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음, 한 번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낫겠네요. 실은 아버지도 오델의 신자이긴 한데, 저 때문에 부모로서 제 역할을 못 한 게 탐탁지 않은 모양이에요.”

“오. 부모의 역할이라… 쉽지 않은 얘기인걸.”

표정을 감춘 조이와, 뭐가 어찌되든 상관 없어보이는 도라.

뒤늦게 이해한 얼굴로, 꼼질거리며 알트의 시선을 피하려는 세린까지.

하지만 알트는 이들을 뒤로 한 채, 무언가 변화한듯한 클라우스의 말투와 행동에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분위기가 꽤 많이 바뀌었는걸?’

저번, 그러니까 만종의 기사를 그만둔 이후부터. 어째 그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져 있었다.

지금만 해도 나직한 목소리에 진중한 표정, 차분하게 반응하는 모습까지. 어딜 봐도 얌전하고 책 좋아하는 엘프 청년이었다.

오웨인에게 보이는 태도도 그렇고, 아무래도 그쪽이 본래의 성격인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클라우스의 가정사도 나름 궁금했었는데….’

클라우스를 바라보던 알트의 눈빛이 반짝였다.

일단 하프 엘프라는 특징만 해도 상당히 복잡한 스토리가 예상되는데. 게다가 그의 한쪽 부모님의 특징을 생각하면 더더욱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있을 터.

“그러고 보니 클라우스. 혹시 엘프 쪽 부모님이 엘드리아 출신 아닌가요?”

“아아, 내 검술 때문에 눈치챘나?”

“그야 엘드리아 출신의 하이 엘프가, 혈육이 아니고서야 하프 엘프인 당신에게 검술을 가르쳐줄 리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그곳 출신의 하이 엘프가, 나 같은 하프 엘프를 낳은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

온화한 목소리들 속에 숨어있는 날카로운 진실들.

이번만큼은 눈치빠르게 맥락을 읽어낸 세린은, 울상을 지으며 맹한 얼굴의 도라를 꼬옥 껴안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들어버린 이야기가 있으니, 어쩔 수 없나.”

클라우스는 작게 쓴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고.

잠시 말을 고르다, 담담히 입을 열었다.

“이걸 내 입으로 말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

“어머니 쪽이 하이 엘프였다네. 엘드리아의 출신은 맞지만, 그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추방당하셨던 모양이야. 내가 그분에 관해 아는 건 그 정도랄까.”

“하지만 이상하네요. 엘드리아 출신의 검사라니. 그런 사람을 제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해. 돌아가신 지가 30년 가까이 되셨으니. 기구하게도 아버지보다 먼저 떠나셨지.”

“아….”

알트는 클라우스의 표정에 드러난 그늘을 읽어내고서, 이 주제에 관한 얘기는 그만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정도만 해도 클라우스는 꽤나 진심을 보여준 편.

‘그런데, 단순히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클라우스가 만종의 기사로서 헤르만의 심복으로 지낸 지가 약 30년.’

두 개의 시간이 절묘하게 겹쳐있다.

하지만 알트는 능청스런 얼굴로, 창밖을 향해 손짓했다.

“뭐, 사담은 이 정도만 할까요? 슬슬 목적지가 보이네요.”

어느덧.

페마 성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 * *

알트는 와인잔을 기울며 페마의 영주 카렐을 응시했다.

소금쟁이란 별명은 외형적으로도 그와 제법 어울렸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긴 팔다리.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고집스럽고 까다로운 그의 성격이 외모에서도 확실히 드러나 있었다.

또한.

알트를 대하는 미묘한 태도도 그에 대한 인상을 굳히는데 한 몫 했는데.

“그래서 자네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지 헷갈리는군. 마이너슨 상회장? 알트 성주?”

“편하실 대로 부르시죠. 어느 하나 고르신다고 다른 쪽 이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환대를 담아 웃어보이던 카렐의 입꼬리가 파득, 굳었다.

허나 곧 조용히 와인을 한 모금 축인 그는 고요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역시.’

마주 앉은 알트 또한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며, 보란 듯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카렐은 극도로 손해보기를 싫어하는, 나름 까다로운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영주였다.

어느 한쪽 편을 들었다가 놓치게 되는 것이라던가 불이익 같은 것 등.

그런 것들을 감수하기가 싫어, 양쪽 편을 오가는 그런 사내.

“그래서 무슨 용건인지 얘기나 한번 해보게. 페마에 도착하자마자 내게 들릴 정도라면, 어지간히도 급한 용건인 모양이지?”

“카렐 경께 있는 볼일 자체는 그리 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 오래 머물기는 힘들어서 말이지요.”

“하긴. 세상에 부모와 자식 간의 불화만큼 껄끄러운 문제도 없지.”

몸이 단 카렐은 가장 먼저 알트의 부모님이 자신의 영지에 살고 있다는 걸 언급하며.

안타깝단 얼굴로 고개를 내저었다.

마치 자신은 알트와의 협상에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카드를 쥐고 있다는 걸 과시하듯이.

외양도, 태도도 완벽히 고귀해보이는 귀족이 말했다기엔 비열하기 짝이 없는 협박.

허나 알트는 쓴웃음을 삼키고는, 내색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아마 경께서도 모르실 수가 없는 얘기리라 생각하지만. 오늘 새벽에 리들이 연합군에게 넘어간 모양이더군요.”

“그렇다고 하더군. 덕분에 제국군 녀석들 날이 아주 제대로 섰어.”

“어휴. 그러잖아도 아까 성문을 지나는데, 전과 달리 검문이 빡빡하더군요.”

알트는 일부러 한숨까지 쉬어가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허나 가늘게 뜨인 눈꺼풀 안에서는 날카로운 빛이 번뜩이고 있었는데.

예전 같으면 검문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하루에 오가는 수많은 마차와 사람들을 일일이 검사했다간, 날이 저물 때까지 끝내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해가 지고 저녁이 된 지금 이 시각에도, 성문에는 검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상업도시로서는 매우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개인적으로 물류는 신속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거든요.”

찻잔을 내려놓은 알트가 카렐에게 말했다.

물론 이는 상업 도시, 페마의 영주인 카렐도 알고 알트도 아는 이야기.

표정을 굳힌 카렐 앞에서, 알트는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마치,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꼭 이렇게 해야만 했냐는 듯이.

“하지만 현재 페마가 상황이 좀 복잡하죠. 세계의 군세가 충돌하는 지역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덕분에 복잡해진 검문에 통관절차까지. 상품이 묶여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질까 우려되는군요.”

“애초에 록슬리 그 친구만 쓸데없는 짓을 벌이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걸세.”

‘걸렸다.’

일부러 사실만 짚어가며, 은근히 찔러대던 알트는 빙긋 웃으며 카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거기에 해답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

알트와 카렐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예의상으로라도 맞춰주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표정 없는 얼굴의 귀족이 알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호록-

그러거나 말거나.

“차 향이 정말 좋군요, 역시 페마의 주인이 즐기는 차 답습니다.”

알트는 찻잔을 들어올린 채 능청스런 칭찬을 늘어놓기 바빴다.

사실 카렐이 저항군에 부정적인 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모습에 불과했다.

단지 록슬리처럼 적극적으로 저항군을 이끌어가지 않을 뿐, 뒤에서는 나름대로 협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히 그걸로는 부족해.’

찻잔으로 입을 가린 알트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제국군이 페마를 거점으로 삼고 있는 한은, 이 거대한 상업 도시는 틀림없이 걸림돌이 되고 만다.

연합군이 제국군을 무시하고 북쪽으로 진군하는 건 당연히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제국군과의 전투를 벌이면 페마를 점령하기 위한 싸움처럼 되버릴 테고.

그랬다간 록슬리를 포함한 바릭 지방 전체를 적으로 돌리고 만다.

“지금 자네. 나더러 저항군 편을 들라고 종용하는 건가?”

미묘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카렐이었다.

록슬리와 달리 카렐은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자였기에, 알트가 연합과 저항군을 돕고 있다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을 터.

지금의 질문은, 알트가 저항군을 지원한다는 걸 전제로 한 것이었다.

알트 또한.

능청스러운 가면은 집어 치운 채, 단호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 싫으시다면 저희 상단은 새로운 무역로를 개척해보는 수밖에요.”

“…이 도시의 산업이 무너지면, 가장 먼저 고통받는 사람은. 자네 부모와 같은 사람들이 될 걸세.”

“어차피 이대로면 천천히 망하거나 한순간에 망하거나의 차이일 뿐일 겁니다.”

“글쎄. 시간이 있다는 건, 대비를 하고 해결해나갈 기회가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지.”

말 속에 칼을 숨긴 전투는 치열했다.

물론.

알트의 상회가 벌어다 주는 세수입이 어마어마한 만큼, 만에 하나 그의 상회가 페마에서 철수한다면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터.

하지만 그럼에도 카렐은 조금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알트가 조용히 물었다.

“경은 모드린 폐하가 두렵습니까?”

딱딱한 태도, 고집이 그대로 굳어진 것 같은 뾰족한 턱, 절도 있는 손짓까지.

하지만 알트는 그 완고함 뒤에 숨어있는 공포를 읽어냈다.

정곡을 찔려, 흔들리는 카렐의 눈동자.

“그러면 자네는 두렵지 않은가…? 현세에 강림한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오만일세.”

“화신은 신이 아닙니다. 단지 그분들이 꾸는 꿈의 조각 하나에 불과하죠.”

카렐이 멍하니 바라보는 앞에서.

알트는 차분한 태도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비록 그 꿈의 조각이라고 하는 존재가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도 사실이고.

심지어 모드린은 그 이상의 존재가 되어버린 모양이지만은.

적어도 알트가 한 말은 수많은 신학서에도 담겨있는 정론이었다.

“자네가 레나드를 공격해온 ‘무언가’를 막아냈단 얘기는, 비밀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전해 듣긴 했었네.”

‘호오.’

카렐의 은근한 언질에 알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결국 레나드의 습격 사건은, 그 침입자의 정체가 흐지부지 덮인 모양이었다.

물론 볼라크의 신성력을 그리 뿜어댄 만큼, 대다수는 그 배후가 모드린이라는 것을 눈치 채었겠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

“한번은 좋다 이걸세. 하지만 그것도 제법 힘겹게 막아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면?”

“그러면 그렇게 되기 전에 빠르게 해결을 봐야겠죠.”

“글쎄.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 게다가…. 그런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 어찌할 텐가? 자네는 한사람인데 말이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지나치게 걱정하는 게 아닙니까?”

“지나치다고? 영주로서 영지의 미래를 걱정하는 게 어떻게 지나칠 수가 있겠나?”

희게 질린 얼굴의 카렐이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이거, 말로는 설득하는 게 쉽지 않겠는걸.’

카렐의 심리 저변에 깔린 미지의 공포.

이것을 어떻게 하지 않는 한은 논리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영주님.”

카렐을 부른 알트는 그와 눈을 맞췄다.

솔직히 카렐이 걱정하는 이야기는 알트로서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모드린의 강함을 섣부르게 짐작할 수 없는 만큼, 카렐이 말한 일이 현실이 될지 기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은 세차게 날아가고 있으니.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해야할 것은 오로지 전진 뿐이다.

“후우.”

한숨 쉬듯 심호흡한 알트.

그는 조용히 카렐을 응시한 채 내면에 깃든 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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