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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물 NPC는 리셋이 싫다-246화 (245/282)

246. 어머니의 방 (4)

파창-!

꽃잎처럼 흩날리던 눈송이가 한순간에 얼음 칼날이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닿자마자 모든 것이 얼어붙을 만큼 매서운 한기.

바닥과 천장, 벽에서 튀어나오던 괴인들은 그것들을 피해 볼 생각조차 할 틈도 없이 꿰뚫렸고.

그나마 운 좋게 빗나간 녀석들은 번뜩이는 푸른빛의 칼날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으, 진짜 징글징글하네! 저것들 대체 언제까지 나오는 거야!”

조이는 바퀴벌레라도 때려잡듯이 도끼로 괴인을 두들겨 패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느덧 알트 일행이 쓰러트린 괴인의 숫자는 네 자릿수에 접어들고 있었는데.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누구 하나 지친 기색만큼은 없었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한들, 그대들의 적수는 아니야!”

‘마치 스태미너 힐러를 끼고 있는 느낌인걸.’

알트는 슬쩍 옆을 바라보았다.

오웨인이 휘두르는 황금빛 검이 밝은 광채를 뿜어대고 있었고.

꽃가루처럼 날리는 그 빛은 알트 일행의 몸속에 스며들며,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힐러인 오웨인.

근딜 탱커 조이.

근딜원딜에 유사시 탱커까지 가능한 세린과, 적재적소에 화력을 보태주는 포션마스터 도라.

수많은 정보에 강력한 필살기를 갖춘 알트 자신.

‘거기다 아슬한 순간마다 끼어드는 클라우스까지.’

어쩌다보니 만들어진, 완벽한 파티.

그렇다는 것은.

‘몰이사냥은 못 참지!’

“세린아! 뒤처지지 않게 조심해! 지금 거리가 너무 벌어졌어!”

“으응, 알겠어!”

“이 근방은 지반이 불안정해 보이니까, 도라 넌 화력이 너무 높은 포션은 쓰지 마!”

“네에, 형님! 조심할게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

알트는 몰려오는 괴인을 처단하며 일행이 나아갈 길을 뚫어주는 동시에, 전체적인 상황을 살피며 지휘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그때, 클라우스가 괴인 하나를 검으로 꿰뚫으며 알트의 옆으로 바짝 붙었다.

“이대로 안쪽 깊숙이 들어가는 게 현명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다고 입구 쪽에서 서성일 순 없는 거잖아요?”

“그러면. 돌아갈 길에 대해선 계획이 있는 거겠지?”

“음. 더 이상 적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다 베버린다는 계획요?”

“환장하겠군.”

불안한 눈빛으로 다가왔다가 어처구니없어하는 클라우스를 보며, 알트는 짓궂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물론 알트에겐 경험치 벌이라는 목적이 있긴 했지만, 당연히 무턱대고 저 괴인들과 계속 싸울 생각은 아니었다.

암만 오웨인이 신체의 활력을 채워준다고 해도 정신적 에너지 소모는 막을 수 없고.

‘이 녀석들. 대충 만 단위 정도 되려나…?’

아무리 완벽한 파티라도, 삐끗하는 실수 한 번에 몰살 당할 수도 있기 때문.

생명까지 걸어가며 경험치를 벌어들이기엔 걸려있는 대가가 너무 크다.

알트는 판별의 눈을 색적 용도로 사용하며, 괴인들의 숫자와 분포를 찬찬히 살폈다.

동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올수록, 사방의 벽 속에 숨어있는 놈들이 드러나 전체규모를 얼추 파악할 수 있었다.

쏴아아아아

거기다 점점 강해지는 폭포 소리.

지금 알트가 길잡이로 삼고 있는 곳으로, 저 소리의 근원지로 추정되는 기점을 기준으로 괴인의 분포가 뚝 끊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부디 길도 끊어져 있는 게 아니라면 좋겠는데.’

알트는 얼음 칼날을 흩뿌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온갖 마법을 사용해가며 괴인들을 쓰러트린 결과 알아낸 놈들의 약점은 물과 얼음.

그렇다면 놈들이 물이 많은 곳을 기피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라?”

대열의 후방에서 방벽이 되어주고 있던 세린이, 알트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덕분에 무방비상태가 된 그녀의 등을 노리는 괴인 하나.

“이게 어딜!”

하지만 세린은 뒤돌려차기를 날리고는, 바로 주문을 외워 괴인의 몸뚱이에 서너발의 고드름을 박아넣었다.

이제는 잠깐 한눈팔았다고 곧바로 위기로 이어질 그녀가 아니었다.

가뿐히 처리한 그녀가 알트를 불렀다.

“알트! 저 앞에서 신성력이 느껴져!”

“그렇단 말이지? 역시 제대로 가고 있었나 본데?”

알트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세린이 잠깐 한눈을 팔아버린 이유는 다름 아닌 벨하라의 신성력.

그 말은 즉 오웨인의 어머니와 관련된 장소가 저 앞에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하지만, 그 말을 들은 오웨인도 표정이 한층 밝아져 있었다.

“어쩌면 그곳은 안전할지도 몰라! 다들 조금만 더 힘을 내세.”

오웬인이 들고 있던 여명의 인도자가 다시 한번 황금빛 광채를 뿜어냈다.

은은하게 흘러나온 그 빛은 아일렌의 정령과 공명하듯 더욱 밝아졌고.

아군에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동시에, 다가오던 괴인들을 주춤거리게 했다.

‘역시 오웨인에게 여명의 인도자를 쥐여준 건 정답이었어.’

알트는 그 보검의 힘을 능숙하게 끌어내는 오웨인의 모습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그가 희망을 품을수록 더욱 강한 빛을 발하고 있는 여명의 인도자.

볼라크의 성검임에도 심판을 향한 의지가 아닌, 희망에 반응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특이한 현상이긴 했지마는.

‘오웨인에게 잠재된 힘이 점점 깨어나기 시작했단 뜻이겠지.’

오웨인과의 계약의 대가를 받아낼 날이 멀지 않았다.

알트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열어갔다.

* * *

“야, 진짜로 여길 건널 거야?”

“응? 뭐라고?”

“여길 건너갈 생각이냐고!”

눈을 부라리던 조이는 목청을 높여 소리를 꽥 질렀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금세 폭포 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 …새ㄲ, 미치지 않… …돌아…!”

알트는 한차례 왼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목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비눗방울 같은 막이 알트 일행 주변을 둘러쌌고, 주변의 소리를 집어삼키던 폭포 소리가 잠잠해졌다.

“어때? 이러면 대화하는 데 문제없지?”

“이런 게 있으면 진작에 쓰라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던 거였어?”

“여길 진짜로 건널 거냐고! 이 화상아!”

조이의 말에 슬쩍 외면하고 있던 일행들 모두, 그녀가 가리키는 것을 바라봤다.

그들 앞엔 까마득한 절벽이 있었고, 반대편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길은 좁은 돌다리.

한 명이 간신히 올라설 만큼 작은 돌들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심지어 상당수가 박살 나, 손바닥만큼 작은 징검다리도 있을 정도.

그 외에 보이는 것이라곤 드높은 천장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바닥.

그리고 그사이를 종유석 기둥 대신 채워 넣고 있는 수많은 물줄기였다.

“저것들은 이제 안 쫓아오는 것 같은데, 괜찮지 않을까요?”

“그러다 갑자기 기습이라도 하면, 우리 다 같이 사이좋게 골로 가는 거야.”

세린의 질문에, 조이는 단호하게 대답하며 그들이 지나온 동굴 안쪽에 바글바글 모여 알트 일행을 응시하는 괴인들을 노려봤다.

놈들은 신기하게도 무슨 결계라도 쳐진 것처럼, 이 폭포로 가득한 절벽 부근을 기점으로 전혀 다가오질 못했다.

그것이 놈들의 약점인 물로 가득한 공간이라서인지, 아니면 저 건너편에서 스며나오는 벨하라의 신성력 탓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덕분에 알트 일행이 한숨을 돌릴 틈은 생겼다.

“그 전에, 나는 이 다리를 한꺼번에 다 건너도 될지도 의문인데.”

조이의 걱정에 이어, 클라우스 또한 신중한 눈빛으로 돌다리를 살피며 의문을 제기했다.

알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사실 다리라고 이름 붙이기도 민망한 그것은, 무너지고 남은 통로의 잔해라고 부르는 편이 나아 보이긴 했으니까.

“확실히 불안하긴 한데. 그렇다면 한 명씩 건너도록 할까요?”

“그러면 안전을 확인할 겸, 내가 먼저 건너볼게.”

“예?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여기선 내가 희생하는 편이 나으니까.”

클라우스가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불안해 보이는 돌다리 앞에 섰다.

하지만 오웨인은 그런 클라우스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희생이라니. 아무리 자네라 해도 그런 말은 하지 말게.”

“잊었어, 오웨인? 나는 갓난아기이던 너와 너의 어머니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야.”

“하지만 하지 않았지.”

클라우스는 오웨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깨에 올려둔 오웨인의 손을 슬쩍 밀어냈다.

알트는 미묘한 얼굴로 둘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군.’

요 근래 생각이 많아보이던 클라우스다. 헤르만의 영향에서 벗어난 만큼, 본인이 저지른 죄악에 대해 마주할 수밖에 없었을 터.

“고작 다리가 안전한지 확인해보는 것뿐인걸. 넌 매사에 진지한 게 탈이야.”

“조심하게.”

고요한 분위기 속.

클라우스는 걱정하는 오웨인의 뺨을 툭툭 두드리고는, 다시 돌다리 앞에 섰다.

그리고 심호흡과 함께 조심스럽게 한 발짝씩 앞으로 내딛기 시작했다.

날렵한 몸놀림으로 작은 징검다리를 하나, 하나 밟아가며 건너는 클라우스.

세린과 도라도 그 모습을 긴장한 눈으로 두 주먹까지 꼭 쥐며 바라보는 가운데.

이윽고 클라우스는 무사히 건너편까지 도착했다.

건너오라는 듯 손짓하는 그를 보며 오웨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안전해 보이는군요. 다음은 오웨인 경이 가시겠어요?”

“얼겠네. 그러지.”

그렇게 다음 차례로 오웨인이 건너가고.

그다음으론 일행 중 체중이 가벼운 세린과 도라가 함께 다리를 건넜다.

그리고 이제 조이와 알트가 건너기만 하면 되는 상황.

“어라… 저 자식들?”

“왜? 무슨 일이야?”

“뭔가 저 화석 인간들…. 수상한 짓을 하려는 것 같은데?”

조이가 알트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의 눈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서히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알트.

판별의 눈으로 본 그의 시야에는, 벽 속에 숨어 위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다수의 괴인이 포착된 것이었었다.

“야…. 뛰어.”

“엥? 미쳤어? 저기서 뛰라고?”

“말다툼할 시간 없어! 어서 뛰어!”

“으악!”

괴인의 수상한 움직임을 살피던 알트가 인상을 찌푸리며 조이를 다리 쪽으로 밀쳐냈다.

덕분에 조이는 살짝 비틀거리긴 했지만, 튼튼한 하체가 자랑인 그녀는 금방 중심을 찾고는 얼떨떨한 얼굴로 달리는 걸음으로 다리를 성큼성큼 뛰어 건너기 시작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고.

알트의 눈에 자신의 머리 위로 십여 미터 위에 모여든 괴인들이 보였다.

조금만 더 나아갔다면 절벽을 뚫고 나와버릴 것 같았지만.

녀석들은 그러지는 않고 거기서 대형을 갖추듯 둥글게 줄지어 퍼져지기 시작했다.

“이런, 씨…!”

‘저것까지는 예상 못했는데!’

알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땅속을 유영하듯 헤엄치는 녀석들이 그런 식으로 절벽 부근에서 모여있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뻔한 일이었다.

바로 붕괴.

놈들은 다리 위쪽 절벽을 무너트려 다리 위로 그 잔해를 떨어트릴 속셈이었다!

알트는 그 사실을 깨달을 순간 내달렸다.

어차피 다리가 곧 무너지기 직전이니, 두 명이 올라갔다고 무너질 걱정을 하는 건 쓸데없는 일.

쿠르르릉

폭포 소리를 뚫고서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뒤늦게 상황을 눈치챈 듯, 건너편에서 경악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외치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이 보인다.

물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불 보듯 뻔했다.

“이런 젠장!”

한 차례의 진동 후.

달려가던 알트는 바닥이 쑥 꺼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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