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라프도니아 (1)
슬며시 눈을 뜬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고는 나 자신에게 말을 건다.
‘어서 일어나서 해야 할 일들을 해.’
앞으로 도시에서 해야 할 여러 숙제들을 떠올리니 덜 깬 몸에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 해 보자.
일단은 시간을 확인했다.
[21 : 18.]
미궁에서 나온 게 정오였으니, 이것저것 빼고도 대충 4시간가량은 잔 셈.
근데 침대에서 자서 그런가?
잠든 시간에 비해 엄청나게 개운하다.
꼬르륵.
미궁에서 먹던 빵이 있긴 하지만 나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돈이 목숨이나 다름없는 세계지만…….
그 정도 사치는 괜찮겠지.
“…….”
낮에 그렇게 씻고도 왠지 몸에서 냄새가 났던지라 한 번 더 빠르게 몸을 씻고 숙소를 나섰다.
터벅터벅.
낮에 비하자면 한산한 밤거리를 걷고 있자니 조금 갑갑했다.
심리적으로가 아니라, 육체적으로.
현재 내가 입고 있는 베이지색 셔츠는 중세풍으로 가슴이 파인데다가 소매와 목에 레이스 같은 것이 달린 것이다.
단추 대신 V 자로 깊게 파인 목 부분에 끈이 달려서 신발끈처럼 교차해 조이는 방식인데…….
줄을 전부 풀어놨음에도 작다.
바바리안들이 상의를 벗고 다니던 이유를 알겠다. 맞는 옷이 없어서였다. 이 얼마나 슬픈 종족인가?
‘…근데 어디로 가야 하지?’
현재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약속 장소로 가서 에르웬과 만나는 것이다.
근데, 검은고래 주점이 어딘지 모르겠다.
미궁 포탈이 열리는 차원광장 기준으로 남쪽 지대에 있던 건 확실한데, 게임에선 도시 크기가 수만 배는 족히 축소돼 있던지라 이런 부분에선 도움이 안 된다.
그래서 결국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했다.
“검은고래 주점? 그런 데가 있었나?”
“처음 들어 보는군.”
대부분의 사람들은 들어도 본 적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머리가 희끗한 어느 중년 아저씨는 달랐다.
“검은고래 주점이라, 오랜만에 들어 보는군. 자네는 젊어 보이는데 거길 어떻게 아는가? 10년도 전에 사라졌을 터인데.”
젊어 보인단 말은 고맙지만 내용은 그리 반갑지가 않다.
“…사라졌단 말인가?”
“그래, 몇 대째 이어 오던 가게였는데 아들내미가 도박에 빠져 주인이 바뀌었지. 그러면서 이름도 달라졌고.”
미궁에서부터 간직해왔던 가설에 신빙성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역시, 내가 플레이했던 게임 속 세계관은 이 시대로부터 과거의 시기인 건가?
그렇다면 ‘악령’이나 바바리안과 요정의 앙숙 관계 같은 것도 설명이 된다.
낮이 되면 도서관부터 가 보든가 해야지.
“고맙다. 크게 도움이 되었다.”
“허허, 자네처럼 깍듯한 바바리안은 생전 처음 보는 듯하군.”
이후 나는 토박이 아저씨와 헤어져 밤거리를 걸었다. 상호만 바뀌었지 여전히 주점으로 영업 중인 모양이었기에, 일단 가보기나 할 생각이었다.
에르웬도 그렇게 찾아와 줬길 바라면서.
‘파이든푸스.’
이내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잠시 멈칫했다.
발음은 읽을 수 있는데 뜻은 모르겠다. 이 세계에서도 고대어 같은 건가?
내 머릿속에 자연스레 들어온 언어 지식에 대해서도 한 번은 연구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흐하하하하하!”
“싸울 거면 나가서 싸워 새끼들아!”
들어선 주점 속은 내가 딱 상상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들, 탐험가, 음악, 너저분함, 담배연기, 가끔 보이는 이종족들까지.
입구에서 쓱 스캔을 하고 있는데, 구석 자리에 익숙한 은색 뒤통수가 보였다. 심지어 살짝 튀어나온 귀도 뾰족했다.
반가운 마음에 어서 가 보려는 차.
툭.
술에 취한 웬 좆밥 새끼 하나가 내 어깨를 치고는 먼저 통로를 지나간다.
뭐, 그것만이면 문제가 안 될 테지만…….
“요정 아가씨들, 혼자 심심해 보이는데 오빠랑 술이나 할까?”
에르웬이 있는 곳으로 가더니 저따위의 상투적인 대사를 던진다.
음, 사실 생각해 보면 여기까지도 별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시궁창 같은 주점이라 그런가? 별 같잖은 쥐새끼들만 꼬이는군.”
에, 에르웬……?
너 대체 언제 그렇게 된 거니?
“…뭣? 쥐, 쥐새끼?”
찰진 비아냥에 수작을 부리던 좆밥이 얼빠진 표정을 짓는다.
아마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꺼져라. 이마에 구멍이 나기 싫으면.”
미간을 특히 좋아하는 걸로 봐선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닌 거 같은데…….
대체 뭐지?
어서 확인해 봐야 했다.
그전에 일단 얘부터 치워야겠다마는.
“뭐, 뭐야 넌 또!”
내가 다가가 어깨를 잡자 추근대던 아저씨가 휙 고개를 돌리더니…….
“어어, 어.”
곧장 눈을 깐다.
“꺼지라는 말 못 들었나?”
“…들었습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지?"
아저씨는 대답 대신 조심스레 내 옆을 꾸겨져 지나가더니, 비틀거리지도 않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때였다.
“아, 아저씨!”
내가 익히 아는 그 말투가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왜냐면 에르웬이 이중인격자였단 루머를 처음부터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야 아까 저 아저씨도 ‘요정 아가씨들’이라고 말을 걸었잖아?
“네가 그 바바리안이군?”
구석진 자리라 기둥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테이블에는 총 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래, 아마 그 바바리안이 맞을 거다. 근데 그러는 너는 누구지?”
“얘의 언니.”
진짜 언니였구나.
어쩐지 옆모습이 얘랑 완전 똑같더라.
“얘의 언니가 네 이름인가?”
“…멍청하긴. 테르시아라 불러라.”
에르웬의 성이 테르시아였다.
아무래도 언니는 내게 이름을 알려 줄 생각은 없는 모양.
“그러지. 테르시아, 그럼 이제 앉아도 되나?”
“마음대로.”
거리낌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테르시아를 관찰했다.
일단 쌍둥이는 아닌 것 같다.
서너 살은 더 나이가 많아 보였으며, 정면에서 보니 이목구비도 꽤나 달랐다.
눈매 때문인지 분위기가 사나웠고.
아, 이건 딱히 눈매 때문만은 아닌가?
“바바리안.”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다.”
“그러든가 말든가. 아무튼, 이 어린애를 대체 왜 이런 술집으로 불러낸 거지?”
“저, 언니……?”
“너는 가만히 있어.”
에르웬이 분위기를 느끼고 중재를 하려 했으나 언니에 의해 가로막혔다.
흐음, 상황이 꽤 재밌게 돌아간다.
에르웬이 왜 언니를 데려왔는지는 제쳐두고, 이 언니가 날 못마땅해하는 게 단지 내가 바바리안어서만은 아닌 듯하다.
그런 직감이 든다.
일던 이것부터 파악해야겠군.
“테르시아, 그러는 너야말로 무슨 목적으로 날 보려 한 거지?”
“에르웬이 어젯밤 외박을 해서 캐물었더니 밤새 주점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고 하더군. 내 동생을 바람맞힌 게 어떤 놈인지가 궁금했다.”
잠깐, 이해가 안 되는데?
“무슨 소리지? 어젯밤이라니?”
“시치미 떼는 건가?”
표정을 보니 농담을 하는 거 같진 않다.
“…에르웬, 미궁에서 나오고 지금 몇 시간이 지났지?”
“아, 어… 서른 시간 정도네요!”
미친, 하루를 넘게 처자고 일어난 거였구나. 4시간만 잔 게 아니라.
어쩐지, 존나 개운하더라.
“사과하겠다. 자느라 하루가 지났는지도 몰랐다.”
순순히 사과를 하자 테르시아가 의외라는 눈빛을 짓는다.
왠지 나는 그게 서글펐다.
하루를 넘게 잠만 처잤다는 사실엔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는 듯 보여서.
“바바리안이 시간을 제대로 지킬 거란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왜 에르웬을 불러낸 거지?”
뭐, 여기엔 꽤나 길고도 많은 이유를 댈 수 있겠다마는…….
나는 딱 잘라 선을 그었다.
“그걸 너에게 말해 줄 의무는 없다. 정 궁금하다면, 나중에 에르웬에게 들어라.”
직역하자면 신경 쓰지 말고 어서 꺼지란 뜻이었는데, 다행히 테르시아도 잘 이해했는지 입꼬리가 뒤틀려 올라갔다.
“재미있군. 이제 막 미궁에 들어간 초심자 주제에.”
“초심자가 무슨 상관이지? 에르웬은 탐험가다. 옆에서 평생 보살펴 줄 게 아니라면, 그런 태도는 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야만스럽긴.”
“저, 언니? 아저씨……?”
눈싸움이 시작되자 에르웬 혼자서 안절부절하며 발을 동동 구른다.
이내 테르시아가 주머니를 탁자에 올렸다.
“35만 스톤이다.”
“…왜 이걸 나한테 주는 거지?”
“에르웬이 흡수했다는 정수의 값이다.”
아,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거구나.
아침 드라마에서 자주 봤던 패턴이라 뭔가 기분이 묘하다.
“왜 가져가지 않지? 역시 다른 속셈이 있던 건가?”
그런 건 아니다.
돈으로 값을 치른다면, 나 역시 정수의 대가로 에르웬에게 ‘약속’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아직 에르웬의 의사를 듣지 못했다.
“너도 같은 의견인가?”
“그게…….”
에르웬이 말꼬리를 흐린다.
언니가 그렇게 무서운 건가?
원래 단둘이 있을 때 나누려 했다마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지금 하기로 했다.
“내가 요구하려던 약속은, 내가 원하는 정수를 얻을 때까지 네가 도와줬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에, 그게 전부예요?”
“그렇다. 가능하다면 그 이후로도 계속 팀을 꾸리고 싶지만, 이건 별개다. 약속은 필요 없다. 앞으로는 비율도 5:5로 나눌 거고.”
한마디로 2인조 파티를 꾸리잔 뜻이다.
과연 에르웬은 어떤 대답을 할까.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죄송해요.”
답은 거절이다.
고개를 푹 숙인 에르웬을 대신해 언니가 그 이유까지도 설명해 주었다.
“에르웬은 앞으로 나와 함께 미궁에 들어갈 거다.”
“이제서야?”
“전통에 따라 첫 경험만큼은 홀로 해내야 했을 뿐, 나는 처음부터 에르웬을 혼자 둘 생각이 없었다.”
…그렇구나.
얘는 튜토리얼만 끝내고 나오면 버스를 태워 줄 기사가 있던 거구나.
빌어먹을 혈연.
“이해가 됐다면 이 주머니를 가져가라.”
에르웬은 깔끔히 포기하기로 했다.
나름 상성이 좋은 동료긴 하다마는, 꼭 얘를 고집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계산은 제대로 해야겠지.
“35만 스톤은 정수의 평균 시세를 반으로 나눈 거겠지?”
“물론이다. 함께 얻은 전리품이니까.”
고인물로서 판단을 내리건데, 70만 스톤이라면 상당히 괜찮은 금액이다.
그러나 비율이 잘못됐다.
“그렇다면 28만 스톤이 모자라군. 약속된 분배 비율은 9:1이었으니까.”
“좋다.”
테르시아가 흔쾌히 주머니 하나를 더 꺼냈다.
의심스러워 확인해 보니 정확히 28만 스톤이 들어 있다.
니미, 나 지금 호구 잡힐 뻔한 거야?
분명 내가 말을 안 꺼냈으면 35만 스톤만 받고 끝났을 것이다.
이런, 야비한 귀쟁이 새끼들…….
바바리안들이 왜 요정을 극혐하는지 알겠다.
“용무가 끝났다면 슬슬 자리를 비켜 주겠나? 에르웬과 나눌 얘기가 있는데.”
“굳이 나눌 얘기가 있을까?”
또다시 기싸움이 시작되려는데 에르웬이 끼어들었다.
“언니, 걱정해 주고 같이 여기까지 와준 건 고마운데, 이제 가도 될 것 같아.
“에르웬?”
“나도 아저씨한테 인사는 드려야지……. 응?”
“…하긴, 이제 너도 어린아이가 아니겠지.”
테르시아는 마음에도 없는 얘기를 하며 한숨을 푹 내쉬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바바리안, 맹세를 해라. 에르웬과 자지 않겠다고. 그럼 곧바로 떠나 주겠다.”
응? 내가 잘못 들었나?
“언, 언니?!”
음,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거 같다.
자지 말라니…….
그 아래의 스킨쉽까지는 전부 허용이란 건가?
“맹세하겠다. 전사의 명예를 걸고.”
“아, 아저씨?”
“그럼 됐다.”
마침내 테르시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아, 이걸 깜빡했군. 바바리안, 에르웬을 구해 줘서 고맙다.”
한마디를 더 남기고서 쿨하게 주점 밖으로 떠났다.
***
딸랑딸랑.
출입문에 달린 종소리를 들으며, 에르웬이 테이블 위로 축 늘어진다.
“흐아! 어떡하죠! 한 번도 이렇게 대들어 본 적 없는데… 혹시 언니가 화났을까요?”
“그렇지는 않을 거다.”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그야, 나가기 전에 널 한 번 보더니 씨익 웃었거든. 너한텐 안 보였겠지만.
…잠깐만, 저럴 거면 왜 물어본 거야?
에르웬은 몇 번인가 자기 머리를 박박 긁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
“아, 맞다! 죄송해요. 제안은 감사하지만 이미 언니랑 함께 움직이기로 예전부터 얘기가 되어 있어서…….”
“사과할 것 없다.”
나였어도 고렙 요정이 쩔해 준다는데 의리로 쪼렙 바바리안이랑 붙어 다니며 개고생할 거 같진 않으니까.
“저, 일단 이것부터 받으세요.”
에르웬이 자그마한 주머니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정확히 63,000스톤이에요.”
석궁과 리더가 갖고 있던 마석의 값일 것이다.
실제 금액이 얼마였을지는 알 길이 없지만 나는 의심치 않았다.
그래 봐야 의미가 없으니까.
아무튼 이걸 9:1로 나누면 얼마를 줘야 하지?
“아, 제거는 제가 알아서 챙겼으니 굳이 안 주셔도 돼요.”
응, 그랬구나.
이런 데서는 참 야무지단 말이야.
“두 사람이 갖고 있던 배낭은 일단 제 숙소에 놔뒀어요. 이것저것 많기는 한데… 이건 내일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러지.”
며칠을 같이 지내서인지, 얘는 내가 뭘 궁금해하는지를 참 잘 알아차린다.
한 마디도 안 했는데, 전리품 분배 관련 안건이 순식간에 일단락 지어졌다.
다만, 다음 안건에 들어서자 에르웬도 한층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보답은 어떻게 해 드리면 될까요?”
“보답?”
“말했잖아요.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고.”
아, 그런 말을 한 적도 있었지.
“은혜라…….”
말꼬리를 흐리자 에르웬이 꿀꺽 침을 삼킨다.
…설마, 이것 때문에 얘 언니가 마지막에 맹세하라며 그 지랄을 떤 건가?
내가 얘한테 뭐 이상한 보답을 바랄까 봐?
“놀리지 말고, 어서 말해 주세요.”
눈치가 많이 늘었다.
놀리는 것도 바로 알아채고.
“당장은 생각나는 게 없군. 일단 뭐 좀 시키려는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배는 안 고픈데…….”
“그럼 내 것만 시키겠다.”
이내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고 있자니 에르웬이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그럼 술! 술 시켜 주세요!”
“술?”
“네. 일부러 어제 한 모금도 안 마셨어요. 첫 귀환주는 아저씨랑 같이 마시려고! 히히.”
에르웬이 해맑게 웃으며 칭찬해 달라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귀환주라…….
그러고 보니 그런 문화도 있었다.
뭐, 퇴근하고 맥주 한 캔 마시는 그런 느낌과는 조금 거리가 있겠다마는.
성인이 될 때까지 성지에서만 자라는 이종족들에게 있어 ‘첫 귀환주’는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
음, 근데 이럴 땐 뭐라고 답해야 하지?
“…그거 참 다행이군.”
“그럴 땐 고맙다고 말하는 거예요!”
“고맙다?”
“고맙기는요! 우리는 미궁에서 동고동락한 동료인데, 첫 귀환주는 당연히 함께해야죠.”
얘는 대체 뭘 원하는 거지?
고민하고 있자니 에르웬이 볼을 긁적였다.
“물론 아저씨한텐 이게 첫 귀환주가 아니겠지만요…….”
“무슨 소리지? 나도 이게 첫 귀환주다.”
“네에?!”
왜 놀라는 걸까.
“나도 20살이라고 말했을 텐데?”
“…그거, 농담 아니었어요?”
어쩐지 말을 해도 계속 아저씨라 부르더라.
“미궁에 들어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 그렇구나…….”
이내 에르웬이 내 눈치를 슬슬 보더니, 종업원에게 가 알아서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
음식이 나온 건 한 20분쯤 지나서였다.
“아저씨,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냥 계속 아저씨라 할 생각이구나.
그래 뭐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닌데.
“…너도 수고 많았다.”
우리는 술과 음식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미궁에서는 대부분 꼭 필요한 말들만 주로 했기에, 이런 사적인 대화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럴 수만은 없는 법.
“아저씨, 오늘은 셔츠를 입으셨네요?”
응, 너는 치마를 입었네.
그런 얘기는 실컷 했으니 이제 됐고.
“에르웬, 아까 은혜를 갚겠다고 했지?”
“네? 네, 그랬죠?”
“그럼 지금 여기서 그때 쓴 이능을 써 봐라.”
에르웬이 고개를 갸웃한다.
과연 이게 보답이라 할 수 있는가 생각하는 듯한데…….
내게는 중요한 문제다.
과연 게임 속의 정수와 실제의 정수는 어떤 부분이 다르고 같은가.
반드시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육성법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으니.
“근데 이능은 갑자기 왜요?”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이능을 발현하는 건 불법인데요? 바로 잡혀갈 거예요. 경비병한테.”
이게 게임을 할 때 마을에서 스킬이 안 써지던 이유구나.
그럼 아예 방법이 없는 건가?
고민하던 때 에르웬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면 어떨까요? 아, 저희 숙소는 안 돼요. 다른 종족은 출입이 금지거든요.”
요정들은 전용 숙소도 있는가 보다.
흐음, 그나저나 어떡하지? 으슥한 뒷골목이라도 데려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자니 에르웬이 먼저 해답을 찾아냈다.
“그래서 말인데… 아저씨 방으로 가는 건 어떨까요?”
그래, 그러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