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동료 (4)
동료를 구할 때 실력은 몹시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덕목이 있다.
신뢰.
즉, 믿을 수 있는 놈인가.
물론 일이 술술 풀릴 땐 이는 크게 문제가 안 된다. 그저 다 같이 하하호호 웃으며 행복해하면 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최악의 상황이 도래했을 때, 과연 그런 순간에도 믿고 등을 맡길 수 있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어쩌면 신뢰가 아니라 본성에 대한 문제일지도.’
이러한 부분은 지원서를 몇 번 보고, 만나서 몇 번 얘기를 나눠 봤다고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의 본성이란 내면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기 마련이었으니.
되도록이면 그 본성을 서로 보여 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서로 그 편이 좋을 테니까.
“이곳 냄새는 언제 와도 적응이 안 되는구만 그래! 하하핫! 드왈키, 자네는 괜찮나?”
“…말 걸지 말아 주시, 웨엑!”
헛구역질을 해대는 드왈키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일단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현재 내가 있는 이곳은 칼날늑대가 서식하는 1층의 동부 지대의 포탈을 통해 입장 할 수 있는 2층 구역.
짐승의 소굴.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야수형 몬스터들이 주로 출몰한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오물 냄새가 심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로트밀러, 너는 괜찮은 건가? 후각 계열 정수를 갖고 있다고 들었는데.”
“걱정은 고맙네만, 나는 괜찮네.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군.”
이게 8년 차의 짬인가?
이 아저씨는 왠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해진다.
얘는 좀 더 봐야 알겠지만.
“그나저나 우리 마법사는 언제 정신을 차리려낭? 빨리 돈 벌러 가야 하는뎅…….”
미샤 칼스타인.
동료의 고통에 전혀 공감치 못하고 자신의 이익에만 신경 쓰는 모습을 보임.
머릿속 인물 평가에 글귀 하나를 추가하려던 나는 멈칫했다.
음, 이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드왈키, 정신 차려라. 언제까지 우리 시간을 뺏을 셈이냐?”
“맞당, 맞당. 겨우 이런 걸로 이러면 탐험가 일은 못한당. 마법사! 어른이 돼랑!”
내가 한 마디 쏘아붙이자, 옆에 있던 미샤도 깐족거리는 투로 즉시 동조해 왔다.
다만, 이를 듣고도 드왈키는 예상외의 반응만을 보일 뿐이었다.
“맞는 말이오. 이제 나도 어른이 되어야겠지.”
어, 얘가 이런 성격이었나?
솔직히 말해서 되도 않는 변명이나 늘어놓을 줄 알았다. 아니면 역으로 화를 내던가.
“어서 갑시다.”
“하, 하지만 괜찮낭?”
“물론 힘드오. 그러나 초행이라고, 꼴에 마법사라는 이유로… 동료의 짐이 된다면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소?”
“지, 짐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는뎅…….”
예상치 못한 사과에 미샤가 당황하는 사이.
부쩍 수척해진 얼굴로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드왈키가 비장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르토앙 남작가의 명예에 먹칠할 수는 없지.”
“…이잇! 또 귀족인 척하는 거냥!! 이제 안 속는당!”
“하하핫! 어서 갑시다. 나는 이제 정말로 괜찮소!”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해진 그를 보며 미샤는 또 당했다는 얼굴로 분통을 터트렸다. 그리고 이를 끝으로 우리는 천천히 이동을 시작했다.
“이곳부턴 다들 내 뒤를 잘 따라오시오. 평지처럼 보여도 구덩이가 많은 지형인지라.”
“구덩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소만…….”
“평소엔 오물로 가득 차 있어서 구별이 어려울 것이네. 잘 모르고 가다 보면 빠지기 십상이지.”
“…로트밀러, 그대만 믿겠소.”
짐승의 소굴은 협곡 지형이라 할 수 있다.
좁은 길목, 양쪽으로는 높이 치솟은 절벽이 자리해 있으며, 이곳을 지나치는 탐험가는 미로처럼 얽힌 절벽 틈 속을 헤매며 길을 찾아야 한다.
‘함정은 없지만 고블린숲보다 탐색꾼의 역할이 더 중요한 층이지.’
참고로 출몰 몬스터는 칼날늑대, 벽두더쥐, 샤벨타이거, 웨어울프, 불카르 등으로, 대부분 절벽에 나 있는 동굴 속에서 서식한다.
사냥이 주목적인 탐험가들은 동굴 안에 들어가 몬스터 무리를 소탕하는 식의 전투를 하는 게 보통이다.
다만, 우린 3층으로 가는 게 목적이니 패스.
「거대칼날늑대를 처치했습니다. EXP+1」
「샤벨타이거를 처치했습니다. EXP +2」
「웨어울프를 처치했습니다. EXP +2」
「벽두더지를 처치했습니다. EXP +1」
동굴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몬스터들만을 간간히 잡으며 신속히 이동하고 있자니, 슬슬 휴식을 취할 순간이 되었다.
때는 2일 차가 시작되기까지 3시간 남은 시각.
[20 : 58]
오늘 하루 전부를 이동에만 투자했다.
다만 탐색꾼인 로트밀러가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는 데 두 배는 더 걸렸겠지.
“입구도 좁겠다, 야영지로는 여기가 좋겠군.”
우리들은 벽두더지의 소굴을 정리하고서, 이를 베이스로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난쟁이놈, 로트밀러, 미샤.
수년 차의 탐험가가 셋이나 있었기에 야영 준비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식수를 만들어 내는 것 외에는 존재감이 없던 마법사도 이때 빛을 발했고.
“알람 마법이 있으니, 불침번은 한 명이면 충분할 듯하군.”
“불침번이 왜 필요하오?”
“드왈키, 자네를 못 믿어서가 아니니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게. 알다시피 미궁에서 경계해야 할 것은 몬스터만이 아니지 않은가.”
제대로 된 탐험가가 되려면, 같은 탐험가를 몬스터 이상으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초번은 오늘 가장 고생한 로트밀러가 맡기로 하고, 그다음부터는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하지.”
“잠깐만, 나는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오?”
“이런 건 우리에게 맡기고, 자넨 푹 쉬도록 하게나.”
마법사는 불침번 순서에서 제외됐다.
딱히 체력이 약하단 점을 배려해 준 건 아니고, 원래 이게 관례다.
논공행상에 예민한 탐험가들답게, 알람 마법만으로도 1인분을 했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다.
‘뭐, 실상은 그냥 마법사 비위를 맞춰 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관례겠지만.’
아무튼 한 사람씩 2시간 교대로 불침번을 서니 믿을 수 없게 편했다.
하루에 6시간이나 잘 수 있다니?
둘이서 다니던 때에 비하면 거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물론 편한 만큼 몫을 나눠야 할 숫자가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지만, 그거야 뭐 여럿이서 더 강한 몬스터를 더 많이 잡으면 되는 거니까.
“나는, 위대한 마법사 리올…….”
“잠꼬대는 그만하고 일어나랑, 마법사!”
“…스릅, 벌써 아침이오?”
“아침인 건 모르겠고, 일어날 시간인 건 확실하당.”
2일 차, 오전 5시.
내심 우려했던 첫날밤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몬스터가 알람 마법에 감지되며 네 번, 난쟁이놈 순번 때 탐험가 무리가 야영지 근처로 접근한 탓에 한 번 다 같이 깨긴 했지만…….
이 정도야 일상적인 일인 거니까.
“드왈키도 적응을 했을 테니, 지금부터는 속도를 좀 더 올리겠소.”
“흐음, 너무 급할 필요는 없지 않나?”
“3층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해야 야영을 할 때 편하오.”
2일차부터는 잡담도 최대한 줄이며 이동에만 집중했다. 물론 몇 분 간격으로 몬스터들이 길목을 막으며 방해해 오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환영인 일이었다.
「반달바위곰을 처치했습니다. EXP+1」
「벽두더지 여왕을 처치했습니다. EXP+1」
「핏빛칼날늑대를 처치했습니다. EXP+1」
그럼 이제 짐승의 소굴 9등급 몬스터는 전부 잡은 셈인가?
처음 와 보는 계층이라 그런지, 경험치가 제법 빠르게 쌓인다. 물론 따로 경험치 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잡은 몬스터들을 계산해 보면…….’
딱 40이다.
상위 변이종 처치 보너스랑 수호자 처치 보너스가 제대로 들어왔다고 한다면 44일 테고.
‘4레벨이 되려면 아직 한참 남았군.’
레벨이 오를 수록 필요 누적 경험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한다.
1레벨은 6, 3레벨은 30, 3레벨은 150.
물론 계속 5배씩 증가하는 건 아니지만, 체감 난이도는 그 이상이라 봐도 무방하다.
몬스터는 등급이 하나 올라가 봤자 고작 +1씩 증가하는 게 전부인데, 그마저도 사냥 가능한 몬스터가 없어지면 수급조차 불가능해지니까.
‘…쩝, 그래도 뭐 당장 레벨 업이 급한 건 아니니까.’
현재 내 레벨은 3.
최대 3개의 정수까지 흡수가 가능하다.
즉, 아직 하나 더 여유 자리가 있는 셈.
물론 4레벨을 찍기 전에 정수가 나와 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던전 앤 스톤]은 그런 착한 게임이 아니니까.
‘나는 왜 해도 하필 이런 게임을 해 가지고…….’
뒤늦게 그런 후회가 밀려오지만 어쩌겠는가.
난이도가 괴랄할수록 희열을 느끼는 진성 변태가 그 당시의 나였을진대.
“슬슬 긴장들 하시오. 이곳부터는 상위종들만 출현하는 데다가 개체 수도 확 늘어나니.”
그렇게 로트밀러의 뒤꽁무니를 따라서 반나절 정도를 이동했을 때였다.
지형, 정확히 말하면 절벽의 색이 바뀌었다.
적빛이 도는 갈색에서 흑색으로.
‘후반부에 접어든 셈인가.’
여기부턴 9등급 몬스터가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포함해 어느 누구도 크게 긴장하거나 하진 않았다.
“2층의 상위종이라 해 봐야 8등급 아닌강!”
우리 팀의 평균 등급은 7등급.
이전에 어느 팀에 있었던 최소 3층에서 활동했을 자들이다.
뭐, 나는 초행이긴 하다마는.
게임에서 오질나게 와 봤으니까 예외.
“그러고 보니 비요른은 아직 3층까지 못 가봤다 했었낭?”
“그렇다마는?”
시비를 걸려는가 싶어서 삐딱한 말투로 답했으나, 미샤는 정말이지 순수하게 감탄했다.
“대단하당. 나는 3층까지 가는 데만 1년이 걸렸는뎅!”
거, 사람 무안하게.
“…운이 좋았을 뿐이다.”
오래 대화하고 싶은 주제는 아닌지라 짧게 얼버무리고 있자니 난쟁이놈이 대화에 껴들었다.
“3층까지 1년? 그럼 4층까지는 얼마나 걸렸나?”
“음, 2년? 그 정도 걸린 거 같당.”
“나랑 비슷하군.”
“이잇! 갑자기 조금 억울하당! 팀장은 나보다 연차도 적은데 6등급이라닝!”
“대신 칼스타인 양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 않은가!”
“이잇! 내가 집안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했을 텐뎅!”
대화가 길어지며 또다시 티격태격할 조짐이 보이자, 길을 찾던 로트밀러가 끼어들어 둘을 말렸다.
“둘 다 그만하시오.”
목소리도 말투도 표정도 이전과 똑같았다.
근데 이전보다 짜증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하긴, 혼자 열심히 일하는데 뒤에서 저러고 있으면 열불이 날 만도 하겠지?’
나는 그렇게 무심코 넘어갔다.
***
「3층 순례자의 길에 입장했습니다.」
***
2일 차 정오가 조금 넘은 시각.
로트밀러의 정확한 길 안내를 받은 우리들은 3층에 진입했다.
짐승의 소굴에서 사냥 가능한 8등급 몬스터 몇 마리를 잡지 못한 건 좀 아쉽지만…….
걔네가 꼭 2층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니까.
‘언젠가 잡을 기회가 또 오겠지.’
못내 남은 아쉬움을 털어내며 나는 현 상황에 집중했다.
“로트밀러! 뒤로 빠져라!”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3층 ‘순례자의 길’.
개중에서도 짐승의 소굴 루트를 탔을 때의 스타트 포인트인 ‘강철바위언덕’에 와 있다.
그리고 도착과 동시 7등급 몬스터 두 마리와 조우했다.
“드왈키! 부식 마법을 쓰게나!”
개체명 ‘아이안트로’.
강철로 된 어금니를 지닌 멧돼지라 보면 쉽다.
덩치는 지리산 멧돼지의 5배 정도.
「리올 워브 드왈키가 8등급 저주 마법 [부식]을 시전했습니다.」
가장 먼저 포탈을 타고 진입한 로트밀러가 몬스터를 피해 뒤로 물러서는 사이.
드왈키가 곧장 마법을 시전했다.
그리고 그 즉시, 나와 난쟁이놈이 앞으로 대쉬하며 방패로 한 마리씩 도맡았다.
콰앙-!
전방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충격.
아마 예전 방패였다면 돌진을 막아 낸 순간 여기저기 찌그러졌겠지.
저기 난쟁이놈의 방패처럼.
「히쿠로드 무라드가 [긴급복원]을 시전했습니다.」
“비요른, 왜 갑자기 날 보나?”
“부럽지 않다.”
정말이다.
애초에 단단한 방패를 쓰면, 매번 귀찮게 고칠 필요도 없잖아?
“그게 갑자기 뭔 소리인가? 아무튼 비요른! 밀어낼 생각은 하지 말고, 뒤로 못 가게 막기만 하게!”
“말 안 해도 알고 있다!”
아이안트로의 액티브 스킬은 ‘균형추’.
넉백 면역의 효능을 지녔다.
난쟁이놈이 먹은 정수이기도 하고.
「히쿠로드 무라드가 [균형추]를 시전했습니다.」
대체 양심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주력기조차 돌진이면서 이딴 스킬을 갖고 있는 멧돼지 새끼나, 그런 얘한테 밀리지 말라고 소리치는 난쟁이놈이나.
바바리안의 몸에 내재된 분노가 차오른다.
그래서일까?
“베헬—라아아아아!”
다른 팀원의 공격을 기다리는 대신, 나는 메이스를 휘둘러 아이안트로의 아가리를 후려쳤다.
카카칵-!
그렇게 [부식] 상태에 걸려 있던 강철 어금니가 맥없이 박살난 순간이었다.
“정수야 나와랑!”
허락도 없이 내 등짝을 밟고 높이 도약한 미샤가 아이안트로의 정수리에 단검을 찍어 넣었다.
「아이안트로를 처치했습니다. EXP+3」
일단 한 마리는 잡았고.
이어서 다른 놈도 마저 처리하려 했지만, 나는 움직임을 멈추고 잠시 지켜봤다.
드왈키가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그가 가진 몇 안 되는 공격 주문 중 하나.
「리올 워브 드왈키가 8등급 공격 마법 [얼음창]을 시전했습니다.」
얼음 꼬챙이가 날아가 아이안트로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조준 위치를 머리나, 심장부로 했으면 한 방에 깔금하게 잡아 냈을 듯하지만…….
세세한 피드백은 나중에 따로 하는 걸로 하고.
푹-!
쓰러져 바둥거리는 아이안트로에게 다가간 로트밀러가 이마에 석궁을 대고 화살을 발사하는 것으로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물론 정수는 나오지 않았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겠다마는.
‘포탈 바로 앞에 몬스터가 있었다라…….’
아무래도 씹새끼가 근처에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