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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171화 (171/549)

171화 버닝 (3)

[탐욕의 날개]가 당첨됐단 사실이 밝혀진 이후.

레이븐은 아이나르를 꼭두각시처럼 부리며 성능을 검사했다.

일단 가장 중요했던 것.

“나, 날 수 없는 건가……!!”

날개를 이용한 비행은 불가능.

또한 빛으로 이뤄진 날개인지라 이를 이용한 공격과 방어도 불가능할뿐더러, 본인 의사로 날개를 움직이는 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기분에 따라서 움직이는 날개.

푸득, 푸드득!

저런, 기분이 안 좋은 거 같다.

근데 밸런스도 생각을 해야지.

이거 하나로 비행이 되면 개사기잖아?

“……그래도 굉장히 잘 어울리긴 하네요.”

“응응, 진짜로 엄청 강해 보인당.”

“정말인가?!”

강해 보인다는 한마디에 다시금 푸득푸득 대기 시작한 날개.

푸득-!

음, 이건 딱 봐도 기분이 좋은 거겠고.

하긴, 내가 봐도 날개의 간지가 상당하다.

회복이 될 때마다 주변 공기를 빨아들이는 이펙트도 제법 화려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얀델 씨가 가지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았을 거 같은데, 아쉽진 않으세요?”

“응?”

“뱀파이어 정수가 없어져서 이제 체력 재생 관련 이능이 없잖아요.”

아, 그 말이었구나.

근데 나한테 어울리는 정수는 아니라서.

일단 패시브가 탱커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

애초에 재생력이야 스탯만으로도 어느 정도 챙길 수 있고, 훨씬 좋은 게 널렸는데 굳이?

‘무엇보다 아이나르와 궁합이 좋지.’

[폭발의 상흔]의 효과는 간단하다.

동일 부위를 두 번 가격 시 폭발.

게임에서는 크리티컬 비슷한 느낌이었다.

명중률을 올리거나 둔한 몬스터를 상대로는 조금 더 잘 터지는 정도?

하지만, [거듭베기]와 함께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럼 마저 이동하지.”

탐사를 재개하고서 머지않아 몬스터 무리가 등장했고, 아이나르의 성장을 모두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콰앙!

[거듭베기]를 쓰자마자 터지는 폭발.

7등급 몬스터의 머리통이 즉시 터지며 빛이 되어 사라졌다.

지켜보던 레이븐조차 당황할 정도의 위력.

“……설마 이걸 생각하고 아이나르 씨한테 정수를 먹인 거예요? 내가 말했던, 같은 지점을 타격했을 때 폭발한다는 추측 하나 때문에?”

음, 나한텐 추측이 아니거든.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없기에 대충 둘러댔지만.

“너는 우리 팀의 마법사다. 당연히 네 판단을 믿는다.”

“어……. 그건 고마운데요…….”

역시나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입을 다무는 레이븐. 그 와중에도 아이나르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며 몬스터들 사이를 헤집고 있었다.

“베헬—라아아아!!!!”

검을 휘두를 때마다 피어나는 폭발.

콰앙! 콰앙!

베르타스의 정수에 붙은 쌍스탯(근력과 민첩) 덕분에 움직임도 이전보다 훨씬 매끄럽고 힘차다.

물론, 내가 앞에서 어그로를 끌고 있지 않기에 계속해서 부상이 몸에 쌓였지만…….

“날개!!!”

[생기흡수]와 [탐욕의 날개]를 함께 시전하니 금방 부상이 나았다.

‘이 정도면 캐릭터 컨셉은 잡힌 셈인가.’

이름하여 광전사 바바리안.

나는 흡족함을 감추지 않으며 아이나르의 전투를 지켜봤다.

조금은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나도 방패바바를 알기 전까지는 항상 저런 식으로 캐릭터를 육성했었다.

호쾌한 전투는 남자의 로망 그 자체니까.

‘……근력 수치를 더 올려서 쌍수대검을 쓰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잠시 생각해 보았다.

양손에 거대한 대검을 쥔 채,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전장을 누비는 바바리안 전사.

그런데 뒤에 빛의 날개 스킨까지 있다?

오우쉣.

‘개멋있네.’

어쩌면 대리만족이 가능할지도.

“비, 비요른!”

“알았다. 이제 도와주지.”

다만 아직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에는 캐릭터의 완성도가 낮았기에, 나도 슬슬 끼어들어 전투를 끝마쳤다.

한데 그것만으로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을까?

“와, 정수 하나로 저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거구낭…….”

미샤가 조금 부럽다는 듯이 바라본다.

하긴 얘는 아직 5등급 이상 정수가 없으니까.

4등급에 5등급 정수를 먹은 아이나르를 보면 박탈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나와 같은 0년 차 탐험가이기도 하고.

“걱정 마라. 너도 더 강해질 거다.”

“으응…….”

갑자기 풀이 죽은 미샤지만, 이것 말고는 당장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일단 지옥불 협곡에서 얻을 걸 다 얻은 후에야 그 정수를 구하러 갈 생각이니까.

한 반년쯤 걸리려나?

빙결쌍수검사의 핵심인 그 검은 습득하려면 몇 년은 잡아야 할 테고.

‘5층에 올라오니까 할 일이 태산이구만.’

이후 마석만을 수거한 뒤 탐사를 이어나갔다.

나무들이 활활 타오르며 황폐미를 뿜어내는 거대한 숲.

몬스터들을 처치하며 나아가고 있자니,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30일 차 날이 밝았다.

[08 : 10]

미궁 폐쇄까지 고작 16시간을 남겨둔 시각.

‘드디어 도착했군. 아슬아슬했네.’

나무 사이로 거대한 비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멈춰요!”

“어, 함정인 거냥?”

“몰라요. 하지만 그럴 수도 있어요.”

인공 조형물을 보자마자 일단 경계부터 하는 레이븐.

참 바람직한 자세이긴 하지만…….

‘그냥 비석일 뿐인데.’

게임 내에서 저 비석은 아무런 기능도 없었다.

참고로 이쪽 말고 다른 방향의 필드로 가도 똑같은 비석이 존재하며, 일종의 랜드마크 같은 기능을 했다.

여기가 중심부라는 표지판 같은 존재.

뭐, 단지 내가 알아내지 못한 숨겨진 요소가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낮겠지.’

나도 수상해서 온갖 개지랄을 다 해 봤는데, 아무것도 안 나왔다.

“그럼 어떻게 할 거지?”

“일단 전투 준비부터 하고 계세요. 반경 안에 들어가면 뭔가 소환되는 종류일 수도 있으니.”

“그러지.”

이 상황에서 마법사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도 보기 좋지 않기에, 순순히 지시를 따랐다.

다행히 레이븐은 신중하되 의미 없이 시간만 날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마력은 느껴지지 않아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천천히 다가가 볼게요.”

이내 서서히 거리를 좁혀 비석 앞에 섰다.

몬스터가 튀어나오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얀델 씨, 한번 비석을 만져 보실래요?”

그래, 이런 건 무조건 나를 시키는 거지?

안전하단 걸 알기에 그냥 손을 댔다.

역시나 아무런 반응도 없는 비석.

“잠시 머물면서 이것저것 확인해 봐도 될까요?”

“원한다면은.”

레이븐의 요청에도 그냥 그러라고 했다.

그래도 현실 버전이니, 게임에서는 알아내지 못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그렇게 30분이 흘렀다.

“레이븐, 그만하고 가지.”

“아, 안 돼요! 이런 숲에 떡하니 자리한 인공 건축물이라니? 뭔가 사연이 있을 게 분명해요!”

보아하니 얘도 나와 같은 굴레에 빠진 듯했다.

내가 그 생각으로 대체 몇 달을 날렸었더라?

“으, 조금만 더 하면 알아낼 것도 같은데…….”

조금만은 무슨 조금만이야.

“시간이 얼마 없지 않나. 정 궁금하면 나중에 나가서 관련 기록을 찾아보든가 해라.”

딱 잘라 선을 긋자 레이븐도 애써 미련을 접고 내 말을 따라주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얘는 누군가에게 민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니까.

쉽게 말해, 다루기 쉽다.

“자, 그럼 가지.”

이후로는 비석을 중심으로 주변을 탐색했다.

혹시 근처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단 것이 바로 그 이유. 어차피 남은 하루 동안 가봐야 얼마 가지도 못하기에 다들 군말 없이 동의했다.

‘이만큼 뒤졌으면 나올 때가 됐는데…….’

그렇게 약 두 시간가량을 수색에 매진했을 때였다.

“비요른! 저기, 저기 좀 봐랑!”

미샤가 한 곳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집?”

사방이 불타며 몬스터가 즐비한 숲속 한복판.

2층 구조의 벽돌집 하나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휴, 다음에 또 오진 않아도 되겠네.’

바로 내가 찾던 그곳이었다.

***

검게 그을린 나무 문이 힘없이 열린다.

끼이익.

거, 소리 하고는.

왠지 거슬렸기에 그냥 잡아뜯어 바닥에 버렸다.

“저기, 아무거나 부수지 말아 주실래요?”

“……잔소리는.”

“아니, 잔소리가 아니라—”

“알았다. 조심하지.”

문짝 하나 부순 거 가지고 되게 뭐라 그러네.

“……뭔가 으스스한 곳이당.”

폐허나 다름없는 건물 내부.

마법을 이용해 몬스터가 없다는 건 확인했지만 혹시 함정이 있을지도 모른단 이유로 우리는 신중하게 안을 수색했다.

그럼에도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소파고 외벽이고 뭐고 전부 불에 타 뼈대만을 남겨 두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순식간에 1층 수색을 끝마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침실이었을 것 같은 공간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레이븐! 네가 좋아하는 책이다!”

서랍 내부에 있어서인지 비교적 멀쩡한 책.

물론 겉은 전부 시꺼멓게 불에 타 있었지만, 안에는 제법 멀쩡한 페이지도 있었다.

‘……이런 것도 있었나?’

게임 내에서는 찾아낼 수 없었던 아이템.

레이븐이 눈을 빛내며 아이나르에게서 책을 건네받고 조심스레 펼쳤다.

“고대어로 적혀 있네요.”

“읽을 수 있는 건가?”

“네. 이런 쪽이 제 주특기라. 아무튼, 보니까 일기 같네요.”

이내 지식을 뽐내기라도 하듯 소리를 내어 책 내용을 읽어내리는 레이븐.

제법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192일, 오늘도 구조대는 오지 않았다. 이제 남은 원정대원은 우리 셋뿐. 타르비앙이 집을 짓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고, 나도 그러자고 했다. 오늘도 악마 고기는 더럽게 맛이 없었다.]

[271일, 제법 그럴듯한 집이 완성됐다. 셋이서 아껴 둔 와인을 마셨다. 이렇게 웃고 떠들어 본 게 대체 얼마 만일까? 제기랄, 제피로스가 취해서 이상한 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지금도 기분이 끝내줄 텐데.]

[세상이 멸망한 판에 살아서 뭐 하냐니?]

[모든 곳이 불타 사라져도 희망은 있다.]

[그 증거로, 우리는 아직 살아 있다.]

[467일, 타르비앙이 아이를 임신했다. 과연 누구의 아이일까? 나도 제피로스도 묻지 않았다. 아아, 타르비앙. 누구보다 현명하면서 불쌍한 여인. 오늘따라 술이 간절하다.]

[672일. 아니, 673일인가? 모르겠지만, 큰일이 생겼다. 불의 보주가 그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이미 외벽은 점점 불에 그을리는 중이다. 고칠 수 있는 건 오직 마법사인 타르비앙뿐. 하지만 그녀의 목숨을 바쳐 기간을 연장한다 해도,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

[711일 차, 정말이지 오랜만에 제피로스와 의견이 일치했다.]

[오늘 우리는 죽는다.]

[만약 마녀의 손에 세상이 멸망하지 않았고, 언젠가 누군가 이곳을 찾는다면, 지하에 있는 그 물건을 세상을 구하는 데 사용해 주기를.]

화자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일기.

그것도 멀쩡한 페이지는 고작 네 장뿐.

다만 마지막에 적힌 내용을 읊조리던 레이븐은 그대로 충격에 사로잡혔다.

“마녀라니…….”

“왜 그렇게 놀라냥?”

“고대어로 쓰인 것 때문에 혹시나 했는데……. 이 일기를 쓴 사람, 우리 차원의 사람이에요!”

“으응?”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눈빛을 짓는 미샤.

하나 레이븐은 친절하게 설명해 줄 정신이 없었다.

“뭐지? 아, 이곳이 다른 차원이라서? 그래서 그때의 기록이 남아 있는 건가? 아니, 그러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여기로 넘어온 거지?”

생각을 정리하듯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레이븐.

그러나 의외로 그 시간을 짧았다.

“지하실! 일단 지하실부터 가봐요! 이 내용이 사실이면 그 아래에 뭔가 있을 테니까.”

“좋은 생각이군.”

1층으로 다시 내려가 무너진 가구들을 치우니 지하로 향하는 길이 드러났다.

제법 어두웠기에 빛구체 마법을 썼다.

터벅, 터벅.

아래로 내려가니 3평짜리 작은 공간이 나왔다.

식량이나 물건을 저장하는 창고로 쓰던 곳인 듯한데…….

딱 봐도 귀해 보이는 상자가 있었다.

“내가 열겠다.”

“아, 그러실래요?”

그래, 앞에 이런 일을 도맡았던 게 드디어 빛을 발하는구나.

‘자연스러웠겠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구슬 하나가 들어 있었다.

레이븐이 뭐라 입을 열기 전에 손부터 가져다 댔다.

「불의 보주의 사용자로 등록되었습니다.」

이거, 귀속템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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