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173화 (173/549)

173화 선택 (1)

레이븐과 함께 컴멜비에 다녀온 다음 날.

팀 전원이 주점에 모여 최종 정산을 했다.

“진짜 엄청나게 벌어왔군.”

마석 소득 2,519만.

확장형 배낭과 잡다한 장비가 301만.

이프리트의 정수가 시험관 값을 빼고 900만

밀라로든의 부산물이 75만.

그러니까 모두 합쳐서…….

‘총 3,795만 스톤.’

물론, 공평하게 5등분을 하는 건 아니다.

마석은 아이나르가 15%, 곰아저씨가 25%를 챙겨가기로 합의가 됐을뿐더러…….

정수와 밀라로든의 부산물은 특수 전리품이라 레이븐이 40%를 먹는다.

‘어디 보자 그럼 내 몫이…….’

710만 하고도 2,500스톤.

참고로 미샤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금액.

“아이나르 씨는 584만 3천 스톤이네요.”

“오오!!”

“그럼 정수 값은 어떻게 하실 거죠?”

“어, 정수……? 그게 얼마였지?”

터무니 없는 정산금에 기뻐하기도 잠시, 금방 혼란스러운 표정을 내짓는 아이나르.

“……그거라면 내가 같이 내지.”

나는 내가 받은 몫에서 215만 7천 스톤을 떼어 레이븐에게 건넸다.

“칼스타인 씨 몫은요?”

“아, 그거라면 나중에 아이나르에게 받기로 했당.”

“음, 그렇다면야. 어… 잠깐만, 그럼 아이나르 씨는 오늘 정산 받을 게 하나도 없네요?”

정산 받을 게 없다는 게 문제일까.

미궁에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빚만 늘었다.

미샤에게 400만.

나한테는 저번 달에 사준 장비 값까지 합쳐서 750만.

도합 1,150만 스톤.

“그, 그럴 수가……!!! 정산금이 있었는데, 없어졌다!! 이, 이건 뭔가 잘못됐다!!”

“세상이 원래 그런 거당. 그래도 정수를 먹고 더 강해지지 않았냥.”

말로 위로하는 미샤와 달리 나는 실질적인 보상을 주기로 했다.

“그나저나 슬슬 아이나르의 분배도 올렸으면 하는데.”

5등급 정수를 먹었다.

사실상 이제 아이나르의 전투력이 평균 아래라 보기는 어려운 상황.

“아, 저는 상관없어요.”

“……다음부터는 나도 20%만 받는 거로 하지.”

곰아저씨도 군말 없이 인정하며, 아이나르의 마석 분배비가 20%로 인상됐다.

이제야 균등 분배가 된 셈.

‘후, 맘 같아서는 특수 전리품 비율도 새로 맞추고 싶은데……. 얘가 노발대발할 게 분명하니 이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사실 생각해 보니 조금 억울하다.

탱커에, 리더에, 팔자에도 없던 길잡이에…….

게다가 히든 피스들도 다 떠먹여주잖아?

내가 한 30%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아, 그럼 이제 다들 팀 공금만 내시면 오늘 할 일은 전부 끝이네요.”

“공금이 얼마였지?”

“인당 30만 스톤이요.

“또 뺏어가는 거냐……!!”

아이나르의 빚이 30만 스톤 더 늘어났다.

뭐, 어차피 내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하는 마당에 빚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

최종 정산을 끝내고서 사흘 뒤.

아이나르의 6등급 승급 신청을 위해 미샤가 함께 외출한 동안, 나는 침대에 누워 생각을 정리했다.

‘벌써 또 천만 스톤이나 모였네.’

아이나르에게 빌려준 돈이나 미샤와의 공용 계좌 안에 든 것은 제외한 금액.

역시 5층에 오니까 성장에 가속이 붙었다.

주도적인 플레이가 가능해진 덕에, 게임 내 지식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됐다고 해야 하나?

‘1년.’

나는 대략적으로나마 계획을 세웠다.

‘딱 1년만 5층에서 토대를 잡고 6층으로 뜨자.’

물론, 6층부터는 지금처럼 빠르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투력만으로는 클리어가 불가능한 계층이니.

6층부터는 기나긴 시간 싸움이 될 터.

‘……그래도 6층에 가면 그 정수를 먹을 수 있으니까.’

용살자라는 강적이 내 목을 노리는 이상, 나는 한시라도 빨리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요즘 시국을 보면, 지금 상태로는 답이 없을 거 같고.’

최근 도시 분위기가 매우 무겁다.

정확히 말하면 탐험가 업계가 그렇다.

다들 날이 서 있고 긴장되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럴 만도 하다.

이번에 그런 사건이 터졌으니.

‘471명.’

4층에서 그만큼의 인원이 사망했다.

그것도 이번 회차에서만.

이는 지난번 3층 계층군주 사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문제였다.

몬스터가 아닌 약탈자.

그것도 거의 10년 가까이 미궁을 들락날락한 베테랑 탐험가들을 목적으로 한 거대 집단의 대규모 테러.

“비요른!!”

생각이 거기까지 이어졌을 때, 길드에 갔던 미샤가 돌아왔다.

종이 한 장을 손에 쥔 채, 무척이나 다급하게.

“이, 이것 좀 봐랑!! 왕가에서 탐험가들 상대로 공고를 내렸당!”

얼른 종이를 넘겨받아 읽어내렸다.

왕가 주도로 토벌 계획을 세웠고, 6등급 이상 탐험가면 참가 시 보상을 주겠다는 내용의 공고.

토벌 대상은 노아르크였다.

‘……난리가 나겠군.’

지하 도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99%의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집단.

한데 왕가 공문을 통해 그 집단이 언급됐다.

“비요른, 너는 어떻게 할 거냥?”

“글쎄.”

보상은 제법 매력적이다.

개인당 측정된 금액은 물론이고, 3년간 세금과 환전 수수료 면제. 게다가 공적에 따라 왕가가 소유한 정수까지도 하사한다고 하니, 혹하는 자들이 상당할 터.

‘이미 초대형 클랜들 섭외도 끝난 거 같고 말이지.’

공고에는 참여하기로 한 클랜들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아마 훨씬 큰 보상을 약속받았을 것이다.

일종의 선전용 섭외라고 해야 하나?

내로라하는 대형 클랜들이 참가한 것만으로도 일반 탐험가들의 신뢰도가 수직 상승할 터.

아니, 오히려 개꿀 기회라며 토벌에 참가하지 않는 걸 미련하다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절대 참가하지 말란 거예요.]

이백호의 조언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는 참가하지 않는다.”

고래 싸움에 껴서 등 터지는 일은 사양이다.

게다가 지금도 충분히 잘 성장하고 있지 않나.

굳이 토벌에 참가해야 할 메리트도 딱히 느끼기 어렵다.

“그렇구나…… 다행이당.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서…….”

“일단 혹시 모르니, 레이븐과 아브만을 만나서 얘기를 해둬야겠군. 아참, 아이나르는 어떤 반응이었지?”

“명성을 올릴 기회라고 기대하고 있당. 그래도 걱정 마라. 내가 잘 얘기해 둘 테니.”

“그럼 그쪽은 맡기지.”

미샤와 대화를 끝내고 일단 마탑으로 향했다.

과연 마법사의 관점은 어떨까?

그 답은 실로 간단했다.

“아, 그 공고……. 저도 어제 저녁에 들었어요. 안 그래도 물어보려 헀는데, 참가하지 않겠다니 다행이네요.”

“너도 반대하는 쪽인 건가?”

“네. 지하 도시에 대해서 궁금하기는 하지만, 일단 말이 토벌이지, 전쟁이잖아요? 그런 이권 다툼에는 끼고 싶지 않아요.”

왕가가 제시한 보상이고 뭐고, 레이븐은 별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여러모로 다행인 부분.

이후 들린 곰아저씨네 주점에서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다.

“온종일 주점에서 다들 그 얘기만 하고 있는데, 나는 뭔가 석연치가 않더군. 뭐, 보상은 욕심이 나지만…….”

곰아저씨는 아마 솔로 플레이 중이었다면 토벌에 참가했을 거 같다고 말했다.

하긴, 이 아저씨는 거의 마흔 살 가까이 됐으니.

3년치 세금 면제면 어마어마하다.

일단 아내 몫 세금까지 거의 혼자 도맡고 있는 양반 아닌가.

“후후, 그리고 내년엔 아이도 태어나지 않나. 출산 혜택으로 20년간은 세금이 감면될 테니, 그렇게까지 급할 이유는 없지.”

“그렇군.”

“너희가 불참한다면, 나도 낄 생각은 없다.”

오케이, 그러면 토벌은 패스하는 거로 결론이 났고.

‘……자세한 정보는 커뮤니티가 열리면 거기서 알아보기로 하자.’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다.

따라서 슬슬 숙소로 돌아가 이번 달에 도시에서 해야 할 일들이나 점검하려던 차.

곰아저씨가 뜻밖에 제안을 해왔다.

“얀델, 이따가 술 한잔 어떤가?”

“술?”

“이제 넌 한 팀의 리더 아니냐. 보아하니, 이쪽 관련으로는 인맥이 없는 거 같던데.”

“그래서?”

“5층 탐험가들의 모임이 오늘 저녁에 있다. 괜찮다면 한번 같이 가보는 게 어떠냐는 말이다?”

음, 친목질이라…….

솔직히 내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탐험가들은 동업자들끼리 만나서 놀며 정보 교류를 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

한 번은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하긴 원탁의 감시자에서는 너무 고급 정보만 나와서 이런 쪽으로는 알기 어려우니까.’

“좋다. 그럼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되지?”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전해 들은 다음엔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때웠다.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반겨주는 라그나.

다만, 도서관에만 있었으면서 언제 이 소식을 들었을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나?”

“혹시……. 토벌에 참가합니까?”

“아니, 우리 팀은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안색이 확 밝아진 라그나.

왠지 그 사실이 미심쩍었기에 나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다행이라니, 노아르크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게 있나?”

“그쪽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왕가가 어떤 부류인지는 알고 있으니까……. 분명 엄청난 희생이 따를 겁니다.”

개미 기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답하는 라그나.

“왕가?”

“방금 말은 못 들은 거로 해주십시오.”

이내 라그나가 실수했다는 표정으로 말을 철회했다.

나도 굳이 깊이 캐묻지는 않았다.

왕가의 험담을 늘어놓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이다.

“걱정해 줘서 고맙다.”

“걱정…….”

그 단어를 곱씹듯이 읊조리는 라그나.

다만, 조금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평소처럼 걱정한 게 아니라며 한사코 내 말을 정정할 줄 알았건만.

“네. 걱정했는데, 정말 다행입니다.”

“어…… 그렇군.”

이렇게 나오면 도리어 이쪽이 무안해진다.

하지만 막상 뱉고 나니 본인도 창피한지 라그나의 목이 살짝 빨개졌다.

따라서 나도 그냥 모른 척했다.

“……그럼 마법을 걸어주겠나? 이제 책 좀 읽으려는데.”

“아, 네. 마법. 그렇지요.”

여기서 더 어색해지고 싶진 않으니.

***

오후 10시.

평소라면 몸을 씻고서 슬슬 침대에 누웠을 그 시간.

처음 와보는 술집에 와 있다.

그것도 내가 거주 중인 7구역이 아니라, 장벽 하나를 넘어가야 하는 8구역에 위치한 어느 술집.

“아브만! 오랜만일세! 잘 지냈나?”

“나야 잘 못 지낼 게 뭐 있나. 그러는 너는?”

“하하! 나야 매일 죽지 못해 살고 있지!”

개인 룸으로 들어서자 모여 있는 열댓 명의 탐험가가 보였다.

여기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주최자인 모양.

“옆에 그 친구는?”

“우리 팀의 팀장이다.”

“오호, 자네를 누가 데려가나 했더니 그 행운아가 바로 여기 있었군?”

방에 들어서자마자 주최자의 주도하에 간단한 소개 시간을 가졌다.

“나는 페르페 데르베스. 편한 쪽으로 부르게. 그냥 페페라고 불러도 좋고. 친한 사람들만 쓰는 별명일세.”

페페라니…….

수염 난 아저씨한테는 지나치게 귀여운 별명.

“……데르베스로 하지.”

“그러게나.”

“나는 얀델의 아들 비요른이다.”

“비요른이라 불러도 되겠나?”

“마음대로.”

탐험가답게 신속하게 끝난 호칭 정리.

“잠깐, 비요른 얀델? 어딘가 익숙한데?”

그때 탐험가 중 한 명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뒤늦게 어디서 들어 봤는지 떠올랐을까.

“아, 작은 발칸! 3층 계층군주 때 이름을 날린 그 바바리안! 맞나?”

“맞다.”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날 바라보는 데르베스의 눈빛도 조금은 변했다.

놀라워하면서도 어딘가 의문스러운 시선.

“오호, 그럼 아직 1년 차도 안 됐단 뜻인가?”

“그 부분은 걱정 마라. 안 그래도 이번에 5층에 다녀왔으니.”

곰아저씨가 어시스트를 해주자, 의문은 싹 지워지고 감탄만이 남았다.

“1년도 안 돼서 5층까지 진출하다니, 정말 대단하군…….”

이후 데르베스는 참가한 사람들을 한 명씩 소개해 주었다.

작은 발칸이라는 유명세.

거기에 폭발적인 성장력을 알기 때문인지, 다들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딱 한 명만 빼고.

“5급 클랜 네비스울프 소속의 잭 존슨빌이다.”

어딘가 공격적인 시선으로 스스로를 소개하는 금발 태닝 인간 아저씨.

‘왜 눈깔을 저따구로 뜨지? 뒈지고 싶나?’

바바리안화 된 사고방식에 벌써 몸이 근질거리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이 세계의 몇 없는 현대인 아닌가.

그래, 내가 이해해야지.

“하하, 그럼 술이나 마시지.”

싸한 공기를 느꼈는지, 데르베스가 건배를 외치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술을 마시며 일상적인 대화, 혹은 업계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가? 괜찮지?”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곰아저씨.

나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탐험가 모임이라기에 트래쉬 토크만 잔뜩 하고 가는 건 아닌가도 싶었는데, 이 정도면 꽤 괜찮다.

뭐, 물을 흐리는 새끼가 한 명 있긴 했지만.

“다음엔 이런 낡은 술집 말고 다른 곳에서 모이는 게 어떻소?”

잭 존슨빌.

“우리 클랜 산하의 주점이 있는데, 술이 아주 끝내주지. 물론, 여기보다 훨씬 비싸긴 하지만. 하하하!”

“토벌? 당연히 참가해야지. 아, 여러분은 팀 단위라 조금 두려울 수도 있으려나?”

“그래도 열심히 해보기는 하시오. 혹시 모르지 않소?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클랜에 가입할 수 있을지.”

이 모임에서 유일하게 클랜에 소속된 놈이자, 그 사실을 아닌 척 계속 자랑만 해대는 놈.

심지어 이 새끼는 내게 관심이 쏠릴 때마다 나서서 초를 쳐댔다.

“이쯤 되니 묻지 않을 수 없군. 얀델, 자네의 비결은 뭔가? 어찌 그렇게 빨리 올라올 수 있었지?”

“딱 봐도 뻔하지, 팀을 잘 만난 거 아니겠나.”

“…….”

“……하하, 좋은 동료를 두는 것도 실력이지.”

정적이 찾아올 때마다 애써 포장하며 분쟁을 없애려 노력하는 데르베스.

“그, 그나저나 비요른. 자네는 어떤가? 우리 모임에 처음 참가한 소감을 들어 보고 싶은데.”

이걸 솔직히 말해, 말아?

잠깐 고민이 됐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마음에 든다.”

“풋, 마음에 들 수밖에. 이제 막 5층에 도착한 햇병아리니까.”

나는 현대인의 정신과 유교의 이념, 그리고 야만인의 대범함을 겸비한 K-바바리안.

참아야 할 땐 기필코 인내한다.

이보다 더한 모욕도 웃으며 감수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자꾸 뭐라고 씨불이는 거냐, 이 병신 새끼가.”

“뭐, 뭣? 지금 나한테 한 소리냐?”

“그럼 여기에 병신이 너 말고 더 있나?”

참을 필요가 없으면 참지 않는다.

그게, K-바바리안이니까.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