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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215화 (215/549)

215화 버림패 (4)

이 반지를 준 기사는 말했다.

이걸 보여 주고 자신의 얘기를 하면 그 즉시 신원 보증이 될 것이라고.

그래, 딱 그렇게만 말했다.

“전언 반지로군. 그것도… 2층 포탈로 수색을 나간 가르피젤 경의.”

누가 준 반지인지 말하기도 전에 한 기사가 이 반지를 알아봤다.

그리고 내 반응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전언 반지……?”

“보아하니 이게 뭔지도 몰랐던 거 같군. 잠시 기다려라. 너희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제 알 수 있을 테니까.”

이내 기사가 반지에 낀 보석을 옆으로 돌리자 푸른빛이 새어 나오며 기사의 몸에 흘러들어갔다.

“…….”

여운이라도 즐기듯 눈을 감고서 침묵을 이어나가는 기사.

그의 입이 열린 건 3분쯤 지나서였다.

“포탈 근처에 시체 수집가가 있다라…….”

그 한마디에 모든 인과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씨바, 그래서 ‘전언’ 반지였구나.

어쩐지 먼저 보상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손에 쥐어주더라니.

‘왜 줬는지 알겠네.’

가르피젤이란 이름의 기사는 정보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다.

우연히 만난 나를 이용해서.

분명 이곳의 정보를 준 것도 그래서겠지.

[중심부의 암흑지대라면, 그 기념비가 있는 그곳을 말하는 건가요?]

[그래, 그곳으로 가라. 거기까지 도착할 수만 있다면 안전할 거다.]

전달이 되면 좋고, 안 돼도 손해는 없다.

그래도 그냥 솔직히 말해 줬어도 됐을 텐데.

이러니까 진짜 당한 기분이네.

‘이 세상엔 왜 이렇게 사람 갖고 장난 치는 새끼들이 많은 건지.’

절로 입맛이 씁쓸해지지만…….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 반지가 신원 보증만큼은 제대로 해줬단 것일까.

“작은 발칸, 얀델의 아들 비요른.”

통성명을 한 적도 없는 기사가 내 이름을 부른다.

“이제 의심은 풀린 건가?”

“노아르크 측 인물이 아니란 건 확실한 거 같군. 고작 너희로 어떻게 저 길을 뚫었는지는 조금 의문이지만…… 들어와라. 자세한 얘기는 중앙 임시 본부로 가서 나누지.”

“듣던 중 다행이군. 혹시 신관도 있나?”

신관이 없을 리 없지만 그렇게 돌려서 말했다.

다행히 기사는 무슨 의미로 한 말인지 눈치챈 듯했고.

“그래, 일단 치료부터 받아야겠군.”

우리 꼴을 보던 기사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의외였다.

조사가 먼저라며 융통성 없게 굴 줄 알았—

“네 동료들은 임시 치료소로 데려다 주겠다.”

“……나는?”

“조사가 먼저다.”

에휴, 그래도 뭐 이 정도면 양반인가?

“난 버틸만 하니 먼저 가서 쉬고 있어라.”

“하지만……!”

내 결정에 미샤가 반발했지만, 나는 말없이 한 곳을 응시했다.

팔 한쪽 없어진 나보다 중한 환자가 있는 곳.

“다리아는 괜찮나?”

“자, 잘 모르겠어요. 레이븐이 저주 해제 마법을 써주긴 했는데, 아직 의식을…….”

“신관에게 보이면 나을 거다. 그러니, 어서 가봐라.”

“……죄송해요.”

죄송하긴 뭐가 죄송해.

나는 피식 웃으며 죄라도 지은 듯한 에르웬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레이븐에게 다가가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없을 땐 네가 리더다. 마력 탈진 때문에 힘든 건 알겠지만, 부탁하지.”

“……팀은 걱정 마요. 내가 잘 책임지고 있을 테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얀델 씨만 하겠어요?”

음, 외팔이 새끼가 할 말은 아니었나?

“다 됐으면 너는 날 따라와라. 동료들은 내 부하가 치료소까지 데려다 줄 거다.”

“알겠다.”

이후 나는 일행과 헤어져 기사를 따라 내부로 들어갔다.

색다른 광경이었다.

원래는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암흑지대는 이미 설치된 횃불 덕분에 모든 통로가 밝혀져 있었다.

‘무슨 임시 피난소 같네.’

외곽이 보초를 서는 듯한 기사, 탐험가들로 이뤄졌다면 안쪽은 조금 달랐다. 좁은 통로에 끼여 앉거나 누워 쉬고 있는 탐험가들.

“그나저나 여기엔 안개가 없군?”

“방어용 마법진을 쳤으니까.”

“방어용 마법진……?”

“아, 밖에서 왔다면 아직 모르겠군. 그 안개는 독계열의 암흑주문이다. 범위를 넓게 설정한 탓에 위험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안개 형식의 암흑주문이라…….

그럼 역시 [악의 만찬]인가?

숨 쉬는 데 문제도 없고, 범위도 1층을 전부 다 덮을 정도라 당연히 시야 가리기용 안개 마법일 줄 알았는데.

‘대체 흑마법사 몇 명을 갈아넣은 거야?’

등골이 오싹하다.

만약 인적이 드문 외곽으로 가서 우리끼리 버티잔 결정을 내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좆될 뻔했네.’

아무리 위력이 낮아도 며칠이나 노출되면 그 증세가 나타날 터. 아마 그제서야 나는 이 안개의 정체를 깨닫고 대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늦은 만큼 선택지는 줄어들어 있을 테고.

“거기 너, 쉬는 건 좋지만 방해가 되니 벽에 붙어라.”

“아, 예……. 죄송합니다.”

그렇게 좁은 통로를 헤치며 20분가량을 이동했을 때였다.

드디어 중심부의 공동이 나타났다.

아니, 이 정도면 광장이라고 해야 하나?

“……대체 어떻게 한 거지?”

“마법사를 이용해 근처 외벽을 전부 무너뜨려 공간을 넓혔다. 그 좁은 곳에 모두를 수용할 수는 없으니까.”

허, 이게 군대식 토목 공사인가?

사람이 이만큼 모이면 못 할 게 없어지는구나.

반경 30m 정도였던 공동이 수백 배 이상의 크기로 확장이 됐다. 넓어진 지형에는 각 클랜 문양이 박힌 막사들이 쳐져 있었고.

“들어와라.”

기사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최중심부에 위치한 대형 막사였다.

입구엔 라프도니아 왕가 깃발이 꼽혀 있었고, 안으로 들어가니 원탁 하나를 두고 회의를 나누는 이들이 보였다.

‘수뇌부 회의라 이거지…….’

왕가의 막사지만 기사만 있는 건 아니었다.

유명 클랜 마크를 단 탐험가들도 참석해 뭐라 열심히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참고로, 그중에는 아는 얼굴도 있었다.

“어, 당신은……!”

흡사 귀신이라도 본 듯 놀라는 여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인사해 주었다.

“또 보는군, 베르실 고울랜드.”

이렇게 금방 다시 만날 줄은 나도 몰랐다.

***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혹시 순간이동이 가능한 마법사를 찾아낸 건가요?”

그럴 리가 있나.

나는 대답 대신 팔꿈치만 남은 팔을 휘적였다.

표정을 보니 이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 전해진 듯했다.

“정말 그 길을 뚫고 왔다고……?”

베르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지들이 포기한 루트를 우리가 정면돌파했고, 또 성공까지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양.

“대체 어떻게 한 거죠?”

글쎄, 자랑스럽게 말할 건 아니다.

나도 얘가 한 거랑 비슷한 방법을 썼으니까.

우선순위에 따라 버려야 할 것을 버려냈다.

“사담은 거기까지.”

베르실과 해후를 나누던 때, 한 사내가 껴들며 정적이 찾아왔다.

그래, 이 아저씨가 여기 대빵이란 말이지.

“전선에 있어야 할 에르고스 경이 여긴 무슨 일인가? 옆에 저 바바리안은 누구고?”

“우선적으로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서 잠시 이탈했습니다.”

“말해 보게.”

“가르피젤 경의 전언 반지를 입수했습니다.”

“……가르피젤 경의?”

“예. 그리고 이 자는 비요른 얀델이란 이름의 탐험가로, 반지를 제게 전해준 자입니다.”

이내 기사가 전언 반지를 건네자, 사내가 반지를 활성화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제3 왕실기사단의 단장을 역임 중인 마르코 엘번일세.”

사내가 나를 응시하며 말을 걸어온다.

이제야 뒤에 있던 내게도 관심이 생긴 모양.

“자네에게 몇 가지 질문할 텐데, 솔직히 대답해 주겠나?”

“……그러지.”

“일단 첫 번째, 이 반지에 담긴 내용대로라면 고블린 숲과 이어진 북쪽에 ‘시체 수집가’가 배치되어 있다는 뜻이 되네.”

그 말에 몇몇 탐험가들이 ‘시체 수집가!’ 하며 탄성을 내뱉긴 했지만, 대화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내가 지금 신경 쓸 사안도 아니었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확실한 정보인가?”

“확실하다. 도망치긴 했지만, 잠시나마 싸웠으니까.”

“싸웠다라, 자네 팀의 등급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겠나?”

“……5등급이다.”

등급을 밝히자 기사단장이 묘한 표정을 내지으며 턱을 짚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자가 자네를 놓아 줬다고 봐도 무방하겠군.”

“아마 그렇겠지.”

나는 순순히 긍정했다.

실제로 놈의 관심은 2층 포탈을 틀어막는 것에만 있는 듯 보였다. 그게 아니었으면 도망치는 데 엄청난 고생을 해야 했을 거고.

“질문은 이게 끝인가?”

“아니, 한 가지 더. 방금 전 얘기를 들어 보니 자네는 에르고스 경이 맡은 길목으로 진입한 듯하네마는,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군. 혹시 놈들을 피해 이동할 방법이 있는 건가?”

“그런 게 있었으면 내가 이 꼴이 됐을 거 같나?”

“……그것도 그렇군. 그럼 어떻게 이곳까지 들어왔는지 자세한 내용을 말해 주겠나? 전략에 참고가 될지도 모르니.”

내가 노아르크 측 탐험가가 아니란 건 진작에 증명이 된 듯하지만, 굳이 이를 거절하며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을 터.

20분간의 혈투를 짧게 간추려서 얘기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가 얼마나 처절한 길을 달려왔는지 전해졌을까?

“인상 깊은 이야기였네.”

기사단장의 시선이 좀 더 호의적으로 변했다.

함께 내 얘기를 듣던 클랜의 탐험가들도 날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고.

“자네에겐 지휘관의 자질이 보이는군.”

“자질이 있었다면 반이나 죽진 않았겠지.”

“그래서 자질이 보인다고 말한 걸세. 자네의 동료들은 전부 살았지 않나.”

“…….”

“훌륭한 지휘관은 완벽한 선택을 하는 자가 아닐세. 해야 하는 선택을 하는 자지.”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지만, 별로 얘기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칭찬이라고 해도 딱히 기쁘지도 않고.

나는 화제를 돌렸다.

“궁금한 게 더 없으면 슬슬 가보고 싶은데.”

“사실 한 가지 더 물어볼 게 있네. 마지막에 만났다는 그자, 혹시 턱에 흉터가 있지 않던가?”

흉터라…….

“있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기사단장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아다만티움 대검을 썼다기에 혹시나 했는데 정말로 뱀의 기사였군.”

“뱀의 기사?”

“섬기던 주군의 자식을 칼로 찌르고 달아난 녀석이지. 나름 유명한 녀석인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모르나 보군?”

어쩐지 오러를 쓰더라니 기사 출신이었구나.

주변 탐험가들이 웅성거리는 걸 보니, 나름 명성이 있던 놈이긴 한 거 같다.

“아무튼, 축하하네. 그런 자를 죽였으니 자네 명성이 더 올라갈 거 아닌가.”

“명성이라…….”

“왜, 바바리안들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나?”

틀린 말은 아닌데, 난 보통 바바리안이랑 달라서 말이지.

물론 명성이 올라간다고 나쁠 건 없기야 하다.

황도 카르논의 입장 권한도 얻기는 해야 하니까.

하지만…….

“살아서 돌아간다면 말이지.”

그 고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아직 미궁이 열린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까.

***

“아, 다친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아두었군. 어서 가서 쉬게. 이곳에서의 규칙은 에르고스 경이 알려 줄 걸세.”

이를 끝으로 막사에서 나왔다. 그리고 기사의 안내를 받아 임시 치료소로 이동해 동료들과 합류했다.

“아저씨!!!”

“다리아는?”

“신관님께 정화를 받고 다 나았어요. 지금은 피곤한지 자고 있지만……. 아무튼, 다 아저씨 덕분이에요!”

언니도 치료를 받고 나니 여유가 생겼는지 다시 이전처럼 활발해진 에르웬.

미샤가 다가와 에르웬을 떼어냈다.

“야! 그만 귀찮게 하고 저리 떨어져랑.”

“네?”

“네는 무슨. 비요른 다친 건 안 보이냥?”

“아…….”

“어디 봐라. 괜찮냥? 따로 아픈 데는 없고? 그 와중에 불려 다녀온다고 고생 많았당. 어서 가서 신관님한테 팔부터 보여 주자.”

일단 부상은 전부 치료된 듯하기에, 미샤를 따라 신관에게 가서 치료부터 받았다.

아, 참고로 비용은 없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니까.

모든 탐험가들은 왕가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

애초에 여기 치료소부터가 원래는 다른 팀 소속인 신관들을 징집해 모아둔 걸 테고.

“하루 정도는 평소보다 힘이 안 들어가고, 이질감이 들 겁니다. 그럼 환자가 많아서 이만. 태양의 광휘가 함께하기를.”

힐 한 방에 몇 분도 채 되지 않아서 자라난 팔.

새삼 신관의 중요성이 느껴진다.

최상급 포션이었다면 두세 병은 부어야 했을 거다.

잘린 팔을 이어붙이는 것도 아닐뿐더러…….

신체 능력이 올라갈수록 포션의 효과가 점점 떨어지게 되는 탓이다.

‘클랜을 만들면 무조건 신관부터 한 명 구해야지.’

치료를 받은 뒤에는 다시 동료들과 합류해 대화를 나눴다.

“레이븐, 이곳 사정은 들었나?”

“지역 배정을 받으면서 대충은요.”

“지역 배정?”

“우리가 앞으로 자야 할 곳이요. 같이 받은 지도를 보니까 하필 외곽 쪽 통로더라고요. 너무 늦게 와서 그런가 봐요. 안전한 안쪽은 이미 포화 상태라는 거 같아요.”

레이븐의 말에 나는 말없이 웃었다.

최중심부에는 대형 클랜의 막사들만 있던데, 과연 걔네는 빨리 와서 그쪽에 배정된 걸까?

“아무튼, 어서 그리로 이동해요. 내일부터는 순번에 따라 교대 경계 근무도 서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거, 무슨 군대라도 들어온 거 같네.

경직된 분위기인 주변을 둘러보던 나는 문득 떠오른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근데 타켈란은 어디 있지?”

타켈란 아르베논.

사실상 이번 계획의 유일한 생존자라 할 수 있을 5등급 탐험가.

“…….”

타켈란의 이름을 입에 담은 순간 동료들이 싹 굳었다.

“아, 그분요…….”

레이븐이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역 배정을 받자마자 그리로 갔어요. 혼자거나 2인 이하인 탐험가는 결원이 생긴 팀에 보충되는 식으로 처리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근데 그냥 우리 팀에 붙으면 되지 않나?

클랜은 다 같이 다니는 거 같던데.

애초에 지나가다 6인 이상으로 팀을 꾸린 무리도 상당히 많았고.

그런 의문을 내비치자, 레이븐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인이 원했어요. 그러니까 얀델 씨는 신경 쓰지 마세요.”

“그렇다면야.”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 뭔가 일이 있었군.’

사건이 있었다.

그걸 왜 나에게 숨기는진 모르겠지만.

이거야 나중에 아이나르나 미샤에게 슬쩍 물어보면 될 테고…….

“에르웬, 너는 푸른 장벽 클랜에 합류한다고 그랬지?”

“네에……. 저는 시, 싫은데 언니가 꼭 그래야 한다고……. 나중에 계약 때문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대요.”

글쎄, 계약도 계약이지만 그쪽이 훨씬 더 안전할 거라 여겼을 거다. 푸른 장벽은 무려 6개의 팀을 운영하는 클랜이니까.

뭐, 그중에 하나는 여기 오면서 사라졌지만.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겠다. 너도 언니가 깨어나면 잘 챙겨라.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네……!”

이후 에르웬과 헤어진 우리는 배정받은 지역으로 향했다.

외곽에 위치한 통로였고, 바로 옆에 위치한 팀과 거리가 2m도 채 되지 않았다.

“1층에서 자는 건 진짜 오랜만이넹…….”

다만 우리는 탐험가답게 별다른 불평불만 없이 바닥에 침낭을 깔고 따닥따닥 붙어 누웠다.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잘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라는걸.

드르르르러렁!!

눕기 무섭게 아이나르가 코를 골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걸 듣고 있자니 내가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오늘 얻은 전리품도 확인하고, 용암에 뒤덮였던 장비도 점검하고, 피와 땀으로 절여진 몸도 닦아야 한다.

아, 타켈란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캐봐야지.

할 일이 산더미다.

그렇게 많은 걸 했는데.

‘아, 몰라 내일 해.’

눈을 감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마치 물에 가라앉는 것만 같다.

그렇게 의식이 서서히 수마에 잠겨들던 때, 옆에서 미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요른, 고생 많았당.”

다른 쪽에선 레이븐의 목소리도 들렸다.

“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브만도 멋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

“쉬어라, 얀델.”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드르르르러렁!!

유난히도 길었던 1일 차가 마침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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