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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288화 (288/549)

288화 인과 (4)

건물 보수를 위한 일주일의 작업 일정이 빠르게 흘러갔다.

이렇다 할 사건은 없었다.

한눈팔지 않고 작업에 열중하다가도, 휴식 시간이 되면 아이들 앞에서 탐험가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얘기하는 게 전부.

그마저도 3일 차부터는 스킵하게 됐다.

이제 내가 쉰다고 그늘 아래에 앉아도 아이들이 오지 않게 됐거든.

“…….”

“…….”

그래서 휴식 시간에는 이처럼 드왈키와 그늘 아래 앉아 조용히 보내는 게 일상이 됐다.

아, 물론 간간이 대화는 나눴다.

“너는 왜 여기에 들어왔냐?”

“……원장님께 말씀하시길, 부모님들한테 절 키울 여유가 없었대요.”

“그렇군.”

“그, 그래도 다른 애들에 비하면 나아요. 전 좀만 지나면 집에서 데리러 올 거니까…….”

“……혹시 그걸 다른 아이들 앞에서도 말했나?”

“그, 그런데요?”

에휴, 여기에 친구가 없는 이유를 알 것도 같네.

내가 한숨을 내쉬자, 드왈키가 뭐라뭐라 변명의 말을 해왔다.

“저,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그렇게까지 오래 있을 곳도 아니니까. 부, 부모님이 상인이시거든요. 지금은 좀 힘들다고…….”

‘힘들기는 개뿔.’

듣자마자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그야 나는 이 녀석의 사정을 알고 있으니까.

현 남작은 드왈키가 태어나자마자 방계 가문에 입적시켰고, 그곳에서는 무책임하게 녀석을 이곳에 맡겨 버렸다.

‘나중에 친모가 그걸 알고 남작에게 일러바친 다음에야, 드왈키가의 별채로 들어가 둘이서 살게 됐다고 했었지…….’

참고로 십 년 넘게 살며 양부와 양모는 거의 본 적도 없다고 그랬다. 다만, 금전적인 지원은 제법 괜찮아서 마법도 배우는 등, 부족함 없는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고생이 많군. 여기 육포나 먹어라. 어렸을 때 잘 먹어야 키가 큰다.”

“아, 네……. 감사합니다.”

이내 둘이서 앉아 육포를 우물우물거리고 있자니 금방 휴식 시간이 끝났다.

“저… 오늘이 마지막이신 거죠?”

“그래, 보수 작업도 이제 다 끝났으니까. 이제는 비가 와도 천장이 안 샐 거다.”

“……감사합니다.”

거, 그래도 예의는 있구나.

다른 애들은 봉사자들이 와서 집 고쳐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던데.

“정 고마우면 탐험가는 절대 되지 마라.”

“네? 갑자기 그게 무슨…….”

“됐고, 대답이나 해라.”

“탐험가라니요. 그, 그런 거 저는 못 해요……. 하고 싶지도 않고요.”

그리 답하는 꼬마 드왈키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하긴, 그 얘기를 들었으면 이게 정상이지.

다른 꼬맹이들도 탐험가라면 이제 학을 떼는 와중이니, 괜히 바람을 불어넣을 녀석도 없을 거다.

……솔직히 그래도 안심은 안 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도 없으니, 남은 건 그냥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어이, 엔체! 다 쉬었으면 이리 와서 이것 좀 도와주게!”

“리올, 그럼 나는 이만 가보마.”

“……네. 안녕히가세요.”

이후 나는 가방에 있던 육포와 간식거리 전부를 드왈키에게 준 뒤에 작업 현장으로 돌아갔다.

꼬맹이 주제에 한사코 사양을 했으나, 바바리안이 꼭 줘야겠다는데 지가 뭐 어쩔 거야.

“자네 덕분에 오늘도 일정이 빨리 끝났군. 자, 그럼 다들 고생 많으셨소!”

아무튼, 몇 시간 정도 더 보수 작업을 이어가자 반장이 작업 종료를 입에 담았다.

일주일이나 걸렸던 일정의 끝.

“오늘 끝나고 한잔할 건데, 자네도 오겠나?”

“하지만 난 탐험가인데?”

“하하, 자네가 다른 탐험가들처럼 거들먹거리고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건 다들 알고 있으니 괜찮네.”

반장이 회식에 참가하겠냐고 물어왔고, 나는 잠시 고민한 뒤 그러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이후로 딱히 할 것도 없거든.

도서관에 가도 레이븐은 없을 시간이고.

“교단에서 수고비라고 넉넉하게 챙겨줬으니, 다들 걱정 말고 마시게!”

그렇게 다 같이 근처 주점으로 이동해 술을 마셨다. 근데 탐험가가 아닌 사람들이랑 이런 자리를 가져 본 게 처음이라서 그럴까?

‘좀 어색하네.’

대화 주제 같은 걸 못 따라가겠다.

우리는 어느 대장간이 품질이 좋고, 어느 클랜의 누가 누구랑 사귄다든가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저기…….”

홀로 겉돌던 때, 옆에서 누가 말을 걸어왔다.

그러니까, 이름이…….

“워브 에미른이요.”

아, 그랬지.

작은 체구로도 요령 피우지 않고 무거운 짐을 나르고 열심히 작업에 참가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할 말이라도 있나?”

“그… 애들한테 하는 얘기들을 들었거든요.”

아, 어쩐지 내가 얘기할 때마다 옆에서 묘한 눈길로 이쪽을 보고 있더라니만.

“미궁 말이냐?”

“네.”

내 되물음에 에미른은 조금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거긴…… 정말로 그렇게 끔찍한 곳인가요?”

“딱히 그렇지만은 않다.”

“네? 하지만…….”

“애들 앞에서 그리 말한 건 괜히 이상한 바람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해서다.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버티기 힘든 곳인 건 틀림없으니까.”

“아…….”

내친김에 그녀에게 몇 가지 얘기들을 해줬다.

드왈키가 특히 좋아했던 3층의 경치부터 시작해 드넓은 숲, ‘빙하굴’에서 보았던 하얗게 눈이 내린 설원과 여러 신비들 등등.

얘기가 이어질수록, 어느샌가 주변 사람들이 조용해지는 게 느껴졌다. 하긴, 이런 건 어른이고 애고 할 거 없이 좋아한단 말이지.

“눈이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그리 말해도 상상이 안 가는군.”

“차가운 설탕 같은 걸까요?”

한평생 성벽 안에 갇혀 살아왔을 그들에게 미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다른 세상의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내가 그들의 얘기가 낯설었듯, 이들 역시 탐험가들과 어울릴 일은 드물었겠지.

“오래간만에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구려.”

“돌아가면 아들한테도 들려줘야겠어요.”

물론 나 혼자 떠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대충 할 만큼 이야기를 끝내자, 자연스레 화제는 그들 사는 얘기로 돌아갔고, 나도 적당히 낄 수 있는 얘기만 끼며 시간을 보냈다.

‘이런 것도 나쁘진 않네…….’

시간이 흘러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한두 명씩 가정으로 복귀하며 회식이 마무리됐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온 차였다.

“저기요……!”

한 여자가 뒤따라 나오며 나를 붙잡았다.

“아, 에미른. 무슨 일이냐?”

“한 가지만 여쭤보고 싶어서요. 괜찮을까요?”

“해라.”

에미른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어딘가 버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아까 엔체 씨도 두려울 때가 있다고 하셨죠?”

“그랬지.”

“저, 저도 그래요. 눈앞이 깜깜해지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려울 때가 있어요. 엔체 씨는 그럴 때 어떻게 이겨내시는 건가요?”

조금 어려운 질문이다.

그 대상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일면식 하나 없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다만 너무 깊이 고민하지는 않기로 했다.

이미 용기를 바라고 내 앞에 선 사람 아닌가.

“아까도 말했듯 바바리안이라고 두려움을 모르는 존재가 아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나는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단지 우리는 알고 있을 뿐이다. 두렵다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 끝에는 최악의 결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최악의 결과……. 네, 역시 그렇겠죠…….”

이후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준 뒤 그녀에게 물었다.

“꼭 해야 하는 일인 건가?”

“네.”

목소리는 작지만 망설임은 묻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더 해줄 말은 하나뿐이었다.

“그럼 해라.”

이 세상에서 오직 바바리안만이 할 수 있을 응원.

대답이 돌아온 건 약간의 텀을 두고서였다.

“……용기를 주셔서 감사해요. 한 번 힘내 볼게요.”

“그래? 뭔진 몰라도 잘 되길 바라겠다.”

“네. 그리고 아까 들려주신 얘기도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특히 그 바다라는 곳요. 얘기로 듣기만 했지만 굉장히 멋진 곳일 거 같아요. 아마…… 저 같은 건 평생 가볼 수 없겠지만요.”

그녀의 자조적인 말에도 나는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야 뭔 말을 하겠는가.

너도 맘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그게 기만의 말이라는 건 나부터가 잘 알고 있다.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아, 그래. 가 봐라.”

이후 에미른과는 한 번 더 인사를 나눈 뒤 헤어졌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워브 에미른이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돌아가는 길 내내 자꾸 그 이름이 마음에 걸렸다.

***

회식을 끝내고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돌아왔을 때, 내 방에는 아멜리아가 자리해 있었다.

“낮부터 없던데, 어디를 다녀왔지?”

“아, 잠시 봉사 활동 좀 다녀왔다.”

“봉사……?”

거, 표정 구기기는.

내가 못할 말이라도 했나?

“사람은 베푸는 법도 알아야 하는 거다.”

“……그렇군.”

“아무튼, 잘 왔다. 안 그래도 돈이 떨어졌는데, 온 김에 돈 좀 주고 가라.”

“그 돈을 설마 다 쓴 건가?”

“아, 장비 사고 할 거 했더니 남는 게 없더군.”

“……그렇군.”

이내 아멜리아가 허리춤을 뒤적거리더니 주머니 하나를 내게 던졌다.

꽤나 묵직했다.

‘한동안 고깃값 걱정은 없겠네.’

“이건 잘 쓰지.”

감사 인사를 전해준 뒤, 내친김에 내가 방문한 20년 전 맛집들 중 몇 가지를 알려줬다.

표정을 보니 가볼 거 같진 않지만.

후, 슬슬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화라도 낼 거 같다.

“아! 근데 그래서 하던 일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 지난번에 그 중개인인지 뭔지랑은 만났다면서?”

“아직은 접촉 단계다. 다행히 예정대로 잘 진행되고 있으니 다른 사고가 없다면 다음 주에는 출발할 수 있을 거다. 너도 준비해 둬라.”

“그러지.”

짧은 본론이 끝나자마자 아멜리아는 할 일이 있다며 떠났다.

‘일주일 뒤 출발이라…….’

대충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뒤 침대에 누워 남은 시일 동안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딱히 정리할 만큼 많지도 않았다.

‘다음 주 출발이라니, 레이븐 쪽도 얼른 마무리 지어야겠네.’

주문한 장비야 다음 주 중으로 받을 수 있을 테고, 레이븐 정도만 해결하면 될 거 같다.

내일은 도서관으로 바로 가든가 해야지.

‘중요한 건 노아르크로 내려간 다음부터인가.’

아마 그때부터는 나도 정신 바짝 차리고 지내야 할 것이다. 내려가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야 그동안 아멜리아와 계획을 짜두긴 했지만…….

어디 세상이 계획대로만 되던가?

‘후…… 됐고, 얼른 돌아가고 싶네.’

이런저런 소망을 머릿속에 품은 채, 서서히 수마가 몰려왔다.

***

장소는 미샤와 함께 구한 2층짜리 월세 집.

그곳에서 나는 동료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있었다.

처음엔 몰랐지만,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꿈이구나.’

확신한 계기는 거울이었다.

웃으며 떠들다가 옆을 봤는데, 거울 속에 비요른이 아니라 이한수가 있었거든.

현실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눈치를 챈 순간 배경이 뭉개지며 공간이 변했다.

[비요른, 뭐 하냥? 얼른 가자!]

이번에는 미궁 속이었다.

평소처럼 층을 오르며 탐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나는 비요른이 아니라 이한수였다. 방패는 무거웠고, 몬스터를 바라보는 눈높이도 달라져 내가 올려다보는 입장이었다.

그래서일까?

[왜 그것도 못 막는 거냥!]

내가 계속 실수를 하며 동료가 피해를 봤다.

처음에는 부상 정도였지만, 마지막에는 누군가 한 명이 죽었다.

[너만 아니었어도…….]

드왈키였다.

그제야 나는 이것이 꿈임을 다시 한번 인지했고, 재차 배경이 소용돌이쳤다.

이번에도 익숙한 장소였다.

중세 귀족의 집무실을 연상시키는 고즈넉한 방.

“뭐야, 이번엔 원탁이야?”

처음에는 피식 웃고 넘어갔지만, 머지않아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조금 다른데……?’

방의 구조나 분위기는 비슷하다.

한데 의상과 치장용 장신구, 그리고 한쪽 벽면에 가득 차 있어야 할 가면이 없다.

뭐, 꿈이라 디테일이 부족한 걸 수도 있지만…….

“……그렇다기엔 너무 현실적이야.”

나는 멍하니 손을 폈다 쥐었다를 반복했다.

손에 힘을 줄 때마다 근육의 움직임이 선명히 느껴졌다.

심지어 사고의 흐름도 자연스러웠다.

똑똑.

벽을 두들겼을 때의 소리도, 질감도.

모든 게 현실의 그것과 차이가 없었다.

스륵.

이를 깨달은 즉시 한쪽 면에 놓인 전신 거울도 확인해 보았다.

역시나 비요른이 아닌 이한수가 서 있었다.

하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일단 꿈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생각을 해보자, 의외로 그럴듯한 추측이 금방 나왔다.

‘아……. 오늘 커뮤니티가 열리는 날이지.’

자고 있던 사이에 소환이 됐다.

그렇다면 이 모습인 것은 설명이 된다.

컴퓨터를 통해 소통하던 20년 후의 커뮤니티와 방식이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초창기란 걸 감안하면 납득이 가능하다.

어쩌면 저 문을 열고 나가면 놀란 표정을 짓는 GM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

불현듯 이백호와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백 년도 전부터 이 도시엔 악령이 있었어요. 지구로 치면 20년도 더 전인 거죠. 그럼 걔들은 누구일까요?]

그때 나는 모르겠으니 그냥 말해 보라 했고, 이백호는 이렇게 말했다.

[정답은 다른 차원에서 온 놈들입니다!]

다른 차원에서 소환된 악령.

지구 출신들에 비하자면 소수지만, 하나같이 특이한 힘을 갖고 있던 존재들.

그중 한 명이 이러한 공간을 창조했고, 우리가 아는 GM은 그걸 물려받은 거라던가?

‘설마…….’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한 가지 가능성.

그 가능성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간 순간이었다.

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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