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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352화 (352/549)

352화, 암흑대륙 (3)

레이븐의 괴롭힘(?)이 끝난 것은 보름간의 항해 끝에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였다.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대륙.

침입자를 불허하듯 지면의 경계를 따라서 펼쳐진 거무튀튀한 보랏빛의 결계.

그리고 그 앞 바다에 자리한 포탈까지.

“와아아아아!”

“도착했다아!”

수평선 너머로 고대해 온 모습이 펼쳐지기 무섭게 갑판에 모인 탐험가들이 환성을 내질렀다.

하긴, 항해가 지루하기는 했지.

나야 멀쩡할 때는 섬들 구경하고, 대부분은 멀미로 고생하느라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지만.

“리헨 슈이츠다.”

에르웬이 내 옆에 서자마자 한 번 더 주의를 주자, 에르웬이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자기 잘못을 알기는 하는 모양인데…….

이 정도면 이제 말실수는 안 하겠지?

“그래서 왜 왔냐? 포탈에 들어가려면 좀 걸릴 거 같은데.”

“그냥요… 같이 있고 싶어서…….”

처음엔 이런 직설적인 말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에는 많이 줄었다.

아니, 익숙해졌다 해야 하나?

“…근데 저 배는 뭐지? 출항할 때는 못 봤던 거 같은데.”

나는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도착한 포탈에는 이미 도착한 배들이 가득했는데, 그중에는 우리가 타고 온 범선과 다른 형태의 선박도 꽤 있었다.

“아, 저거요? 쾌속정이에요. 보통 6층에 가장 빨리 도착한 사람들만 모아서 미리 보내 두거든요.”

“노아르크 놈들이 내려오지 못하게 막으려고?”

“네, 최근에 그런 경우가 늘었거든요. 배에 전투 흔적이 없는 걸 보니, 이번에는 그런 시도가 없었던 거 같지만……. 얼마 전에는 쾌속정 중 절반이 넘게 완파됐을 정도로 격렬했다더라고요.”

그렇구나.

아무튼, 제일 빨리 도착했다니 수문장이라 불리는 그 몬스터도 얘네가 잡았겠네.

정수는 안 나왔겠지?

그런 생각이나 하면서 구경을 하고 있자니 주변 탐험가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항해가 길어지며 생긴 변화였다.

“저 여자가 혈령후…….”

“근데 옆에 있는 남자가 누군지 아나?”

“글쎄, 마도병단에 입단한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번이 첫 출정인 자라던데, 몇 년 전에 은퇴했다가 복귀했다더군.”

“흐음, 그런데 칠강 중 한 명의 동료가 되었다라… 겉보기와 달리 뭔가 한 수가 있나 보구려.”

에르웬의 유명세 덕에 덩달아 나와 아멜리아까지 어딜 가나 시선을 받게 됐다.

일단은 눈빛에 섞인 감정은 호기심이 99%다.

이름 없던 뉴페이스들이 매번 등장한 전쟁이지만, 시작부터 혈령후와 함께 다니고 있으니 그 정체와 실력이 궁금해진 것.

아, 참고로 1%는 적개심이었다.

“슈이츠.”

“아, 레이븐 말이냐.”

“또 멀리서 저러고 있군.”

출정이 코앞이기에 병단 사람들과 모여서 뭐라 뭐라 말을 나누면서도, 레이븐의 시선은 이쪽에 고정되어 떨어질 줄 몰랐다.

“저… 이따가 상황이 되면 해치울까요……?”

뭐래, 얘는.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이마에 딱밤을 놓자, 에르웬이 억울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알아보면 어떡해요. 불안하단 말이에요.”

사실 이 부분은 조금 고민했었다.

물론 해치울지 말지 같은 게 아니라, 내 정체를 밝히고 협력을 요구할지 말지다.

다만…….

‘역시 괜히 번거롭기만 할 거 같단 말이지.’

일단 악령이 아니라고 납득시키는 일도 일이며, 설령 납득한들 비밀을 지켜 주고서 협력해 줄 거라는 보장도 없다.

레이븐, 얘가 정이 많은 건 맞는데 그렇다고 공과 사를 구분 못 하는 애는 아니니까.

‘비밀로 해 준다 해도 지금 소속이 왕가인 만큼, 나중에 그게 걸리면 피해가 갈 수도 있고.’

역시 알리는 건 내 손으로 직접 모든 상황을 마무리한 다음이 좋겠다고 최종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걸리면 그때는 전부 터놓고 말하는 수밖에.”

내 희망 사항이야 어쨌든 그 전에 들통이 나 버리면 결국 협조를 요청할 수밖에 없—.

“…씨, 그럼 늘어나는데.”

…불안한 게 그거였던 거니?

***

뿌우우우우우우-!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배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린 순간, 우리가 타고 있던 배도 분잡해졌다.

“각자 제 위치로!”

드디어 짧은 대기 시간을 끝내고 일제히 전쟁터로 들어설 차례.

왕가 측 인물의 지시에 갑판에서 구경 중이던 탐험가들이 배정받았던 자리로 이동했다.

아, 참고로 우리는 움직일 필요가 없었다.

배정받은 대기 위치가 갑판 위였던 덕분이다.

“아저… 아니, 리헨은 내가 묶어 줄게요!”

“어?”

“이런 건 제가 잘하거든요!”

이내 우리는 보급받은 밧줄로 배와 몸을 이었다.

혹여나 배에서 떨어질 것을 우려한 조치.

그렇게 얼추 준비가 끝나자, 다시금 선두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려 퍼지며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거 조금 긴장되네…….”

“걱정 마세요. 리헨… 은 제가 반드시 지킬 테니.”

어, 그건 탱커인 내가 할 대사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굳이 잡담을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대장선 진입 완료!”

선두에 있던 배들이 포탈을 타고 넘어가고, 우리가 탄 배가 포탈에 가까워질수록 몸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하긴, 지금 우리는 전쟁터로 향하고 있는 거니까.

비단 나뿐만 아니라 다른 탐험가들도 아까와는 다르게 경직되고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다.

후, 다들 저러니까 1층에서의 일이 떠올라 PTSD가 올 거 같네.

“본대, 진입 완료!”

슬슬 나도 가벼운 마음은 버릴 때였다.

이 몸으로는 난생처음 진입하는 7층 아닌가.

더군다나 저곳에는 몬스터보다 위험한 탐험가가 득실거리고 있다.

비록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저곳을 향한다 해도.

무언가를 잃고만 돌아오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

“에르웬, 그리고 에밀리.”

“네.”

“말해라.”

한 손으로는 난간을, 다른 한 손으로는 얼마 전에 새로 산 방패를 꽉 쥐며 말했다.

“절대 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라.”

번뜩-!

이내 우리가 탄 배가 포탈 안으로 들어섰다.

***

쿠웅-!

거인이 잡아 던진 듯 잠시 허공에 떠올랐던 커다란 범선이 수면에 부딪치며 물줄기를 쏟아 낸다.

놀라운 경험이지만, 한눈팔고 있을 틈은 없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은 푸른 하늘 아래의 평온한 바다가 아니니까.

「7층 암흑대륙에 입장했습니다.」

마치 석유가 뒤덮인 듯이 검게 물든 바다.

대륙 초입부에 불과함에도 주변에 낀 안개들은 벌써부터 시야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리고…….

콰앙! 콰앙! 퍼어엉-!

여기저기서 피어나는 폭음이 고막을 강타한다.

협곡 위에서 대기 중이던 노아르크의 병력이 쏘아 낸 마력포 때문이었다.

“오늘따라 환영 인사가 격하네요.”

“저놈들, 마력포는 대체 어디서 난 거지?”

“예전에 우리 배에서 빼앗은 거겠죠, 뭐.”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마력포와 흑마법, 각종 이능들이 배에 날아들었다.

소리만 들어도 상당한 화력임을 알 수 있었으나, 왕가 측 함대의 타격은 전무했다.

그야 돈지랄로 안 되는 건 없거든.

솨아아아아-!

7층에 진입한 순간부터 발동된 방어 마법진이 날아드는 공격을 모두 사전에 차단한다.

간혹 충격에 배가 크게 흔들리는 일은 있을지언정, 결코 파손까지는 가지 않는다.

초기에 상륙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은 왕가에서 모든 군함에 취한 조치이자 대규모 투자이다.

저 마법진을 유지하는 데만 분당 천만 스톤 단위의 마석이 소모된다던가?

‘이 상태로 대륙까지 들어가려면 대체 들어가는 돈이 얼마……. 아, 그래도 배에 비하면 헐값이려나.’

물론 나랏돈이나 걱정할 때가 아니었기에 잡념을 지우고 현재에 집중했다.

세찬 환영 인사를 정면으로 받아 내며 꿋꿋하게 진격한 함대는 어느덧 인접 해안을 돌파하더니 이제 일렬로 대형을 바꿔 좁은 협곡 안으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캐릭터가 특수 지역에 진입했습니다.」

「필드 효과 - 원귀의 협곡이 부여됩니다.」

「모든 치유 및 재생 효과가 비활성화됩니다.」

「신성력이 봉인됩니다.」

원귀의 협곡.

모든 해안선이 절벽으로 이루어진 암흑대륙에 들어서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필수 코스.

이내 우리가 탄 군함이 앞 배를 따라 협곡 내에 들어서자, 불길하고 음울한 느낌이 가득한 안개가 한층 진해진다.

그리고…….

“전투 준비!”

언데드형 몬스터들이 배의 외벽을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다.

수많은 종류만큼이나 등급도 다양했다.

「데드번을 처치했습니다. EXP +3」

「레드아이를 처치했습니다 EXP +4」

「벤시 퀸을 처치했습니다. EXP +6」

「티쓰 스켈레톤을 처치했습니다. EXP+ 4」

「절벽귀를 처치했…….」

출현 몬스터 중에 절반 이상은 6층에서도 사냥이 가능한 개체였으나, 6층 진행을 건너뛴 만큼 무엇을 잡든 경험치가 빠르게 채워졌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에르웬의 공이 컸다.

배에 올라타기 전에 떨궈져 나가는 몬스터들이 거의 70%는 됐으니까.

해양 몬스터들은 아예 공격할 수단도 없었고.

「카오스씨먼을 처치했습니다. EXP +6」

「말더 엘펀트를 처치했습니다. EXP +5」

「스켈레톤 머메이드 퀸을 처치…….」

결속 마법을 맺은 에르웬이 평타 한 대만 묻혀 둬도 들어오는 경험치들.

물론 그렇다고 꿀만 빨며 보낸 것은 아니었다.

퍼억-!

기어오를 필요가 없는 영체류 몬스터들도 갑판에 한가득이었기에 정말이지 쉼 없이 무기를 휘둘러야만 했다.

「고스티즈를 처치했습니다. EXP +4」

「소울드링커를 처치했습니다. EXP +6」

「협곡 망령을 처치했습니다. EXP +3」

후, 배에 탄 인원이 많다 보니 리스폰이 되는 숫자도 장난이 아니구나.

심지어 갑판에서 격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악랄한 노아르크 새끼들은 협곡 위에서 마력포를 쏴 댔다.

뭐, 이거야 방어 마법진에 의해 무력화가 되기는 했지만…….

“아아아아아악!!”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전투 중에 줄이 끊어지며 바다에 빠지는 탐험가들도 간혹 있었다.

게다가…….

“뭐야, 왜 배가 앞으로 안 가?”

“앞에 배가 침몰했다는군!”

“어엉? 잘 가던 배가 왜!”

“데드렉트가 출현해 군함의 마법진에 손상이 가해졌다는 거 같네!”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전황을 들어 보니, 몬스터 때문에 방어 마법진이 깨져서 아예 배가 통째로 가라앉는 케이스도 있긴 한 모양.

‘쩝, 위에서 끈질기게 포격을 가할 만하네.’

운 좋게 한 척만 박살을 내도 손해는 아닐뿐더러, 애초에 얘네가 계속 공격을 하고 있으면 함대 측에선 방어 마법진을 끌 수가 없다.

협곡을 나아가는 내내 마법진을 켜며 군비를 무더기로 소모할 수밖에 없는—.

“아멜리아, 뒤!”

내가 다급하게 외치자 아멜리아가 뒤돌려차기로 후방에서 기습을 가하던 스켈레톤을 박살 냈다.

그리고…….

“감사 인사는 됐다. 우린 동료—.”

“에밀리다.”

“응?”

“이 와중에 들은 사람은 없겠지만 조심해 줬으면 하는데.”

“아, 주의하겠다…….”

과거에서 쓰던 가명이랑 똑같은데도 어째선지 입에 붙지가 않는단 말이지.

후, 이럼 에르웬의 말실수를 탓할 처지가 아닌가?

“아저씨……! 저기 봐요!”

“리헨이다.”

“아… 네… 아무튼, 저기요! 이제 거의 다 왔어요!”

이내 에르웬이 가리킨 곳을 보았지만, 내 눈에는 안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필드 효과 - 원귀의 협곡이 해제됩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비좁던 협곡이 펼쳐지며 드넓은 호수가 드러났다.

벽면에서는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물의 색은 피를 연상시키는 적색이었다.

그리고…….

“후아, 끝났군!”

“이제야 숨 좀 돌리겠어.”

쉴 새 없이 출현하던 몬스터가 사라지며, 노아르크 놈들의 포격도 끝이 났다.

다행히도 첫 관문을 무사히 넘었다는 뜻.

‘그럼 이제부터인가…….’

안개에 뒤덮여 어렴풋이 보이는 물가를 바라보며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

“…….”

기분 탓인진 모르겠지만.

왠지 벌써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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