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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355화 (355/549)

355화 고립 (2)

시체가 몸을 일으킨다.

피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울긋불긋하며 여기저기 꿰매진 자국이 있다.

“설마… 시체 수집가……?”

아멜리아의 읊조림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 너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한 거구나.

노아르크의 네크로맨서라고 한다면 역시 그놈밖에 없기는 하지.

‘정말 소수 정예로 숨어들어온 거면 이 새끼가 빠질 리도 없고.’

아벳 네크라페토.

시체 수집가라는 이명을 가졌으며, 다대일 전투에 특화된 오르큘리스 소속 범죄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진다.

이놈까지 온 거면 노아르크에서도 아예 작정을 했다는 뜻 아니겠는가.

‘하, 후방이 습격 당하는 일은 그때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더니, 왜 하필 내가 오자마자…….’

군소리를 뱉지 않으려도 않을 수가 없지만, 불평을 늘어놓는 건 나중으로 미뤄도 문제는 없을 터.

타닷.

즉시 앞으로 대시해 시체의 두개골을 망치로 내리쳤다.

굳이 [휘두르기]까지 쓸 것도 없었다.

콰직-!

순식간에 짓이겨지며 핏물을 터트리는 시체.

근접 전사 특성상 어쩔 수 없이 이를 뒤집어써야 했는데…….

치이이이익-!

후, 독까지 섞인 걸 보니 진짜 그놈이 맞나 보네.

“괜찮나?”

“신경 쓰지 마라. 괜찮으니.”

굳이 [정령화]로 면역 보너스를 얻을 것도 없다.

볼-헤르찬에 붙은 독 내성 +120만으로도 피부 접촉 정도는 거뜬하니까.

뭐, 조금 가렵기는 하다마는.

“그보다 슬슬 시작이 된 모양…….”

내 가설이 맞아들은 것에 묘한 기분을 느끼며 뭐라 중얼거리던 때, 돌처럼 굳은 에르웬이 보였다.

“……에르웬, 괜찮나?”

“…네? 바, 방금 뭐라고 하셨죠?”

“괜찮은 거냐고 물었다.”

“아… 아! 네…….”

에르웬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목소리는 멍하기 그지없었으며 시선은 짓이겨진 시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시체… 수집가…….”

아, 그래…….

생각해 보면 지금 언니의 원수를 만난 격이겠구나.

다리아를 죽인 것은 파멸학자이지만, 그 과정에는 이놈의 지분도 상당하다.

이내 에르웬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죽일 수 있을까요?”

죽일 수 있냐라…….

나는 잠시 고민하고 답했다.

“어쩌면.”

그래, 잘 되면 죽이는 것도 가능은 하겠지.

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우리가 살아남는 게 먼저다.”

나는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원수를 갚겠다고 무리를 하다가 무언가를 또 잃어서는 주객전도일 테니까.

납득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에르웬은 약 5초 정도 멍하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술을 씹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알았어요. 아저씨 말대로 할게요.”

후, 이러니까 괜히 마음이 불편하네.

나는 에르웬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게 위로가 될지 모르겠지만…….

“에르웬, 걱정 마라. 나도 받은 건 꼭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놈이니까.”

“……?”

“놈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는 뜻이다.”

시작은 위로였으나, 모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용살자, 리갈 바고스.

시체 수집가, 아벳 네크라페토.

파멸학자, 벨베브 루인제네스.

나라고 놈들에 대한 원한을 잊은 건 아니다.

단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

그래,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라.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네.”

오케이, 그럼 이 정도면 멘탈 복구는 한 거 같고.

“에밀리, 근데 그 녀석은 어디 갔나?”

팔에 묻은 피 정도만 휙 털어내며 부보관 알렉스의 행방을 묻자, 아멜리아가 답했다.

“시체가 위에서 떨어지자마자 막사 안으로 들어가더군.”

음, 레이븐한테 보고를 올리러 간 건가?

근데 왜 아직도 안 나와?

이 와중에도 계속 시체들이 떨어지고 있—

“정말, 당신 말대로 됐군요.”

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뒤를 돌아보자 부보관 알렉스와 함께 막사에서 나오는 레이븐이 보였다.

잠깐 사이 표정이 많이 안 좋아졌네.

“지휘부에서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 나라도 더 강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뭐래, 평소답지 않게 후회는.

과거에 미련을 갖는 것만큼 낭비는 없다.

“그보다 이제 어쩔 거요?”

“방금 지휘부에서 명령이 떨어졌어요. 각 부대의 병력을 모두 이끌고 호수로 집결하라더군요. 선체의 마법진을 이용해 항전할 계획인 듯해요.”

항전이 아닌 집결이라.

아무래도 적의 전력을 모르니, 최대한 보수적인 전략을 택한 듯한데…….

“그럼 지금 당장 이동하는 거요?”

“아뇨. 잠시 이곳에서 대기합니다. 마도병단 내 마법사들에게 연락을 취했으니, 곧 탐험가들과 함께 이리로 모일 거예요.”

그래, 다 모이면 그때 호수로 가는 거구나.

그다음에는 배에 타서 마법진을 발동시켜서 시간을 버는 거고.

좋은 계획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더 있는 건 아니니까.

“인원 보고하세요.”

“확실하게 확인된 사망자가 셋이며, 행방을 알 수 없는 실종자가 둘입니다!”

“실종자가 둘이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두 사람 때문에 여기서 더 지체될 수는 없어요. 우리도 이만 움직이죠.”

이후 시체들을 처리하며 기다리고 있자니, 병단 내 마법사들이 호위 탐험가들과 함께 집결했다.

그럼 이제 호수로 향할 차례.

「아루아 레이븐이 7등급 지원 마법 [중화]를 시전했습니다.」

나를 비롯해 근접 탐험가들이 마법사 및 후방 계열 탐험가들의 지원을 받으며 길을 뚫었다.

이동하는 과정 자체는 거리낄 게 없었다.

아직까진 기껏해야 시체들이 전부였으니까.

수십 명이나 되는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는 백여 명의 육탄계 탐험가들을 막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다만, 그렇게 신속하게 호수로 향하던 찰나.

콰아아아아아아앙-!

핵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린다.

그리고…….

“마법진에 손상이 가해진 모양이군요.”

마법에 의해 흩어졌던 안개들이 다시금 공기 중에 형성되며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뭐, 그래도 장점이 있기는 했다.

비상 사이렌처럼 울려 퍼지던 알람 마법도 함께 박살이 났는지 한결 조용해졌으니까.

“뭣들 합니까? 멈추지 마세요!”

이내 레이븐이 풍 속성 마법을 사용하며 주변의 안개들을 거둬 냈고, 다시금 이동을 재개했다.

머지않아 핏물처럼 씨뻘건 호수가 육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로 가까워지며 마법사들이 소형 선박들을 소환해 수면 위에 띄웠다.

그 순간이었다.

“차례차례 배에 오르—”

“아아아아악-!”

후방에서 한 남성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

어느 이름 모를 사내가 내지른 단말마의 비명.

이곳까지 오며 시체들과의 전투에서는 부상자가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기에, 그 비명 소리는 우리 귀에 유독 크게 들렸다.

그래서일까?

툭.

인원 중에 가장 먼저 배에 오르고 있던 레이븐이 반쯤 걸쳤던 다리를 도로 거두었다.

그리고…….

“…무슨 일이죠?”

“확인 중입니다. 별일 아닐 테니 먼저 가시—”

“아뇨. 알아야겠어요. 그러니까 헤일로 부보관, 당신은 이곳에 남아 남은 이들을 통솔해요.”

레이븐은 다른 이를 먼저 배에 오르게끔 지시했다.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혼자서 홀라당 배에 타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인데…….

와, 이게 군 지휘관의 책임감이라는 건가?

레이븐이 병단 내에서 명망이 높다더니, 왜 그런지 알 것도 같다. 레이븐은 성실한 상관이고 믿음직한 상관이었다.

다만, 문제는…….

“뭐 해요? 따라오지 않고.”

우리의 임무가 얘 밀착 호위란 말이지.

얘가 배에 안 타면 우리도 못 탄다.

“……어디로 가려는 거요?”

내 물음에 레이븐이 짧게 답했다.

“후방이요. 뭔가 느낌이 안 좋아서.”

아니, 느낌이 안 좋으면 일단 냅다 도망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속으로 품던 때였다.

“아아아악!!”

후방에서 한 번 더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부단장님! 적의 정체가 확인되었습니다!”

마침내 후방의 상황이 우리에게 전달됐다.

놀랍게도 적은 단 한 명이었다.

하나 그 누구도 현 상황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 한 명의 인상착의는 이 도시에서 굉장히 유명한 것이었으니까.

“…검붉은 색의 갑주를 입은 노기사라고요?”

“예. 오러도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혈기사.

비프론 태생으로 병사부터 시작해 기사가 되고, 전대 왕실기사단장을 살해하며 악명을 떨치게 된 오르큘리스 소속 범죄자.

“에밀리, 아는 게 있나?”

레이븐이 부하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나도 몰래 뒤로 빠져나와 아멜리아에게 정보를 얻었지만, 딱히 유의미한 내용은 없었다.

워낙 외부 활동을 안 해서 접점이 없었다던가?

영주성에서 몇 번인가 본 게 전부이며, 그마저도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고 하는데…….

“부단장님……! 뒤에서 막는 동안 얼른 가셔야 합니다!”

“아뇨. 정말 혈기사와 조우한 것이라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질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에요? 누군가 막아야 한다면 제가 맡는 게 합리적일 텐데요. 먼저 배에 타세요.”

“…….”

“이건 명령입니다.”

“…예!”

레이븐의 명을 받은 마법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면서도 감동받은 얼굴로 경례를 했다.

굉장히 훈훈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이 일의 당사자만 아니었더라면.

“그런 의미에서 에르웬 씨, 병단 내 인원이 배에 탈 때까지만 저를 도와주시겠어요?”

이내 부하들 설득을 끝마친 레이븐이 에르웬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잠깐 시간을 벌기만 하면 돼요. 그다음에는 다중 순간이동 마법을 사용해 빠져나가면 되니까.”

“다중 순간이동……?”

얘네 학파는 이 마법을 못 배울 텐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레이븐이 대답했다.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서, 에르웬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운 좋게 기회가 생겨 배웠어요. 이게 있었다면… 그날에도 다른 방법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물론… 이미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요.”

“…….”

“부탁드릴게요.”

거듭된 부탁의 말에 에르웬이 나를 힐끗했다.

어떻게 할지 나보고 결정을 하라는 모양인데…….

“왜 저 남자를……?”

결정권을 위임하는 듯한 그 모습에 레이븐이 의문 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설마 이런 관계까지 흉내를 내고 있을 줄이야…….”

뭐, 그래도 알아서 납득한 듯하며, 시간도 없기에 짧게 하나만 확인했다.

“만약 우리가 따라가지 않는다면 어쩔 거요?”

“군법 위반으로 징계를 받겠죠. 앞으로 다시는 왕가의 행사에 끼지 못할 겁니다.”

어, 협박인가?

근데 애초에 내가 물은 건 이게 아닌데…….

“당신은 어쩔 건지를 물은 거요. 징계를 받든 말든 우리가 따라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혼자라도 갈 생각이오?”

“아…….”

레이븐은 잠시 고민하고서 답했다.

“혼자서는 무리예요. 아마도 다른 탐험가분들과 함께 가겠죠.”

그래, 안 간다는 선택지는 없는 거구나.

얘는 어찌된 게 이상한 쪽으로 고집이 세졌네.

하긴, 예전에도 이타적인 성향이 아예 없던 건 아니었지?

“좋소, 그럼 함께 갑시다.”

결정을 내린 다음부터는 시간 끌 것 없었다.

후방이라고 해봐야 그리 먼 거리도 아니지 않은가.

연신 비명이 울려 퍼지던 후방에 막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흉흉한 오러 앞에 무방비하게 주저앉은 한 마법사였다.

「아루아 레이븐이 4등급 보조 마법 [궤도간섭]을 시전했습니다.」

레이븐은 어중간한 방어 마법으로 오러를 막는 대신, 유틸 마법을 시전해 검의 궤도 자체를 틀어 버렸다.

후우우웅-!

목이 아니라 정수리 위를 스쳐지나가는 대검.

“읏……!”

이를 본 즉시 앞으로 대시해 패닉 상태에 빠진 마법사를 잡아당겨 위험 상황에서 구출해 냈다.

“구, 구해 줘서 고맙… 부, 부단장님?!”

“라이몬드, 잘 버텼어요. 뒤는 우리에게 맡기고 탐험가들을 통솔해 본대로 합류하세요. 명령입니다.”

“…예!”

이내 마법사가 레이븐의 지시대로 탐험가들을 이끌고 자리를 벗어났고, 의외로 상대방은 그런 우리를 멀리서 지켜만 보았다.

어딘가 소름이 끼치는 눈길로.

‘저놈이 혈기사…….’

일단 방패로 상반신을 가리며 선두에 섰다. 그리고 놈과 마주 보며 쓱 위아래로 탐색했다.

일단, 첫인상은 생각보다 키가 작다는 것이었다.

암만 봐도 160 초반대로 보이는데…….

그렇다고 만만하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뭔 놈의 분위기가 저래?’

골격에서부터 알 수 있는 다부진 체형.

거기에 사람 고유의 기세가 섞이니 작은 몸으로도 뿜어내는 위압감이 상당하다.

그중에 제일인 건 목소리였고.

“금의 마도사, 아루아 레이븐.”

쇳소리 같은 걸 넘어, 성대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분명한 목소리.

그런 목소리로 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죽여야 할 표적, 중 하나.”

이내 놈이 그리 말하며 업무적인 태도로 대검을 치켜올렸다.

거, 우리는 아예 신경도 안 쓰지?

혈기사라는 이명처럼 시뻘건 오러를 보며 나는 읊조렸다.

“에르웬, [정령화]를.”

“어떤 거로 할까요?”

어떤 거긴.

기사 상대로 꺼낼 게 그거 하나밖에 더 있어?

“바위.”

대답을 함과 동시에 에르웬의 몸이 반투명하게 변하였다.

그리고 손을 마주 잡은 순간.

「캐릭터의 육신에 대지의 정령이 깃듭니다.」

실시간으로 피부를 타고 대지의 힘이 깃드는 것이 느껴진다.

「화염 속성 받는 피해가 절반 감소합니다.」

「물 속성 받는 피해가 2배 증가합니다.」

「중독 면역 보너스.」

「둔기류 무기를 사용 시 파괴 행위에 강한 보정이 추가됩니다.」

「물리 내성 수치가 대폭 상승…….」

「…….」

후, 엘리바바(땅) 모드는 오랜만이네.

「캐릭터의 물리 내성 수치가 350 이상입니다.」

「관통상에 한해서 피해가 50% 감소합니다.」

아무튼, 이쯤이면 [거대화]가 아니어도 2단계 외피는 발동이 됐을 테고…….

“무의미한 짓을, 하는군.”

거, 오러 하나 쓸 줄 안다고 기고만장해서는.

어디 탱커 서러워서 살겠나.

“죽, 어라.”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늙은 기사를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죽기는 누가 죽어.

내가 왜 여기까지 쫄랑 따라왔는데.

「캐릭터가 [철옹성]을 시전했습니다.」

「[진화형 외피]의 효과가 1.5배 증가합니다.」

한때 내 이명이기도 했던 ‘기사분쇄자’.

드디어 그 진가를 발휘할 날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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