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370화 (370/549)

370화 블랙 스타 (3)

수사자가 비요른 얀델이다.

이러한 주장은 소울퀸즈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이 원탁에서 등장했다.

그 근거는 비요른 얀델이 죽은 직후 수사자가 사라진 것에 있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알리바이만 해결되면 끝이라는 거지.’

수사자는 비요른 얀델이 아니다.

이 한 문장이 절대적인 전제가 되는 순간 저들의 의혹은 많은 힘을 잃는다.

[오우거의 정수도 먹은 거 같다면서요?]

[대역을 세우고 애칭을 쓰진 않았을 거 같기는 해요.]

[그렇다면 금의 마법사가 이런 보고를 누락한 것도 말이 되겠군.]

[죽음을 위장했을 가능성은 존재하오.]

결국 이러한 의혹은 수사자가 비요른 얀델이란 가능성을 토대로 파생된 것이니까.

광대의 반응이 그 증거다.

[피싯,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비요른 얀델은 죽었는데.]

수사자가 비요른 얀델일 리 없다고 굳게 믿었기에, 놈은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저 의혹에 반응하지 않았다.

‘허, 얘도 안팎이 참 다르단 말이야.’

밖에서 만나면 당장 대가리를 터뜨려 죽이고 싶은 마음뿐인데, 그래도 원탁에서 만나면 의외로 귀엽게 봐줄 구석이 있다고 해야 하나?

아,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보아하니 쟤들도 슬슬 정신이 돌아오는 듯하고.

“…….”

“…….”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정적 속에서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은 여우였다.

“……22년 전, 이라고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몇 가지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이 깃들어 있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저… 이,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그 말대로면 수사자 씨는 20년 차가 넘었다는 뜻인데…….”

고블린이 말꼬리를 흐리자, 사슴뿔이 자연스레 끼어들며 말을 받았다.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지. GM, 그자가 끌려온 시기도 그때쯤이라고 알려져 있으니.”

최장수 플레이어로 알려진 GM과 동기라 봐도 무방할 추정 입장 시기.

“피시싯, 저도 10년 더 사람을 죽여대면 수사자 씨처럼 될 수 있으려나요?”

그래, 광대야 너는 이제 10년 차쯤 됐나 보네.

보니까 다른 애들도 대충 그 언저리인 거 같고.

“근데 여왕, 당신은 왜 말이 없습니까? 피싯.”

광대가 헛다리를 짚은 소울퀸즈를 비웃듯이 말을 걸었다.

“얼른 머리를 박고 사과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수사자 씨가 비요른 얀델이라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낭설이나 퍼뜨리고 있고.”

그리 말한 광대는 유일한 정답자(?) 포지션을 즐기며 다른 멤버들도 쓱 훑어보았다.

“당신들도 똑같습니다! 비요른 얀델? 그놈이 만에 하나 살아 있다고 한들, 그런 조무래기가 수사자 씨에게 비빌 수 있기나 할 거 같습니까? 예?”

“하하하… 그냥 생각이나 해본 거지 저희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 건…….”

고블린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반면 사슴뿔은 책임을 피하지 않고 스스로의 말을 되돌아보았다.

“애초에… 지금 생각해 보면 비요른 얀델이 살아 있다는 것부터가 큰 비약이긴 하군.”

“…저는 사실 비요른 얀델, 그 사람이 악령이라는 것도 잘 믿지 못하겠어요. 왕가의 공표도 어딘가 좀 미심쩍은 부분이 있고……. 저는 그 사람을 직접 본 적도 있거든요.”

여우가 나랑 직접 만난 적이 있다고?

얘는 차원문을 타고 도망친 고위층이었을 텐데?

음, 그때가 아니어도 우연히 만났을 수도 있나?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내 광대가 여우의 말에 동조했다.

“피시싯, 그건 동의하는 부분입니다. 그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바바리안이 악령이라니? 어디 그게 말이나 됩니까?”

이번엔 광대와 사이가 나쁘던 사슴뿔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말을 내뱉었다.

“확실히… 작위 수여식에서 보여 준 그 모습은 연기라 생각하기 어려웠지.”

“…재상의 앞, 그것도 수많은 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쿠도 후작을 밀쳤던 사건 말이오?”

“후후, 그 얘기라면 저도 나중에 들었어요. 자기를 이용해 후작이 앞구르기를 한 것이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죠?”

……부끄럽게.

이렇게 면전에다 칭찬을 해주면 어쩌자는 거야?

‘아무튼, 이 정도면 의혹은 완전히 벗어낸 거 같고…….’

쓱 주변을 훑고 있자니, 여전히 대화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가만히 있는 소울퀸즈가 눈에 들어왔다.

‘근데 얘는 무슨 생각을 그리 열심히 하는 거지?’

그 속내가 궁금해 여왕을 지켜보고 있자니, 광대가 화제를 전환했다.

“여왕 씨,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겁니까? 이제 당신 차례인데요. 수사자 씨가 기다리는 거 안 보여요?”

아무래도 내가 소울퀸즈를 빤히 보던 것을 이러한 의미로 해석한 모양.

이건 뭐 전문 앞잡이도 아니고.

왜 이렇게 내 입장을 대변하지 못해 안달이야?

“아, 아! 네. 그렇죠……. 해야죠…….”

아무튼, 광대의 재촉이 효과가 있었을까?

소울퀸즈도 조금은 정신이 들었는지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왕가는 GM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

마공학자, 유르벤 하벨리온.

한 학파의 수장이자 수많은 제조계열 마법사들의 우상이기도 한 존재.

하나 그것은 표면상의 이야기일 뿐.

그의 실체는 다르다.

악령들의 커뮤니티 고스트 버스터즈.

그곳의 수장이자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전설적 존재로 여겨지는 존재 GM.

그게 바로 그의 정체이다.

그러나…….

솨아아아아-!

원탁에 띄워진 초록불은 소울퀸즈가 뱉은 정보가 사실이며, 과반수가 모르고 있던 정보임을 증명해 주었다.

“왕가에서 그의 존재를 알고 있다라…….”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단 하나였다.

왕가에서는 의도적으로 GM을 풀어 주었다는 것을 넘어서—

“그렇다면 협력 관계였을 가능성이 높겠구려. GM이랑 왕가가.”

그렇게까지 이해할 수 있다.

나와의 대면에서 왕가의 위협 자체는 배제하는 듯하던 그 행동도 설명이 될 테고.

하면, 소울퀸즈는 어째서 이런 정보를 원탁에서 밝혔을까.

그 이유는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피싯, 역시 GM도 똑같은 놈이었군요. 어쩐지 암만 떠들라 시켜도 도시에 소문이 돌지 않는다 하더라니.”

필시 조언이자 경고였을 것이다.

소문을 내려 해봤자 의미가 없으니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는.

“잠깐만요, 근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GM은 분명 왕가를 적으로 규정하고 있었잖아요?”

이내 고블린이 모순을 짚자, 초승달이 쓴웃음을 내뱉으며 대답했다.

“영원을 믿는 것만큼 허무한 것은 없지. 하물며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더욱더.”

초창기의 GM은 몰라도, 지금까지 그 순수성이 지켜졌을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의미의 말.

“이게 알려지면 이 커뮤니티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겠군.”

사슴뿔이 탄식 어린 어조로 읊조렸다.

“네. GM이 왕가에 붙었단 소식이 알려지면 모든 플레이어들이 불안에 떨 테니까요.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내 여우가 소울퀸즈를 응시하자 다른 멤버들도 자연스레 시선을 옮겼다.

“여왕 씨, 말해주세요. 당신은 운영진 측이잖아요? GM은 무슨 의도로 왕가와 손을 잡은 거죠?”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그럼 우리가 알아서 해석하라는 뜻—”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이내 소울퀸즈가 여우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차례가 끝났으면 이번엔 아예 저부터 시작을 해보죠.”

이내 그녀가 원탁의 보석 위에 손을 올렸다.

“GM은 그 누구보다 플레이어를 위해서 행동하고 살아가는 분이에요.”

“…….”

“왕가에 다른 플레이어를 제물로 바칠 일은 맹세코 없어요. 애초에 이 커뮤니티의 기능으로는 그런 일이 가능하지도 않고요.”

말을 끝마친 그녀가 보석에 올린 손을 뗀 순간, 보석에서 초록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하하, 그렇게 말하시니 조금은 안심이 되는군요.”

고블린은 어색한 분위기 자체가 껄끄럽다는 듯 웃으며 침묵을 깨트렸고, 이를 기점으로 소울퀸즈를 취조하는 듯한 분위기는 싹 사라졌다.

“기능적으로 불가능하다니 참 다행인 일이오.”

사실 이게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GM의 마음은 나중에 변할 수 있지만, 기술적으로 최악의 경우는 피할 수 있다니 불안감이 가신 것.

“하긴, GM의 권한으로 우리 신분을 알아낼 수 있었다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도 않았겠지…….”

“아무래도 왕가 밑에 들어갔다기보다는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식의 관계일 가능성이 높겠구려.”

“그럼 이제 당신 차례네요.”

소울퀸즈는 이 주제로 길게 얘기하는 것을 원치 않는지, 서둘러 대화를 정리하며 광대에게 턴을 넘겼다.

“피싯, 시작부터 재미난 얘기를 들은지라…….”

광대는 턴을 넘길 정보를 고르듯 말꼬리를 흐렸다.

다만, 금방 적당한 게 떠올랐을까?

“아하, 이게 좋겠군요!”

광대가 과장스레 손뼉을 마주치며 보석 위에 손을 올렸다.

“…저도 최근에 알게 된 건데, 꽤 놀라운 얘기라서 말이죠.”

“아까는 질질 끌어봤자 추하기만 할 뿐이라더니.”

“피싯, 하지만 고블린 씨와 저는 다르지 않습니까?”

광대가 어깨를 으쓱하자 사슴뿔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왜 고개를 끄덕이는 겁니까…….”

상처받은 것처럼 앓는 소리를 내뱉는 고블린.

다만, 고블린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원탁 내에 아무도 없었다.

그야 막 광대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으니까.

“암흑대륙은 실존하는 곳이다.”

잔뜩 고양된 분위기에서 흘러나온 광대의 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일단 초록불이군.”

“그보다 대체 무슨 뜻이죠? 의미를 모르겠는데요.”

“피싯! 말 그대로입니다! 말 그대로! 도시 바깥으로 나와서 여기저기 가보니 알겠더군요. 지형이나 구조, 거기에 약간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이 7층 암흑대륙과 쏙 빼닮았다는걸!”

오랜만에 게이머의 호기심이 돋는 정보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그 가설이 사실일지도 모르겠구려.”

“미궁이 다른 차원과 이어진 통로가 아니라, 누군가 만들어 낸 차원이라는 가설 말인가?”

“수정동굴도, 바위사막도… 어쩌면 실존했던 공간을 본떠서 만들어진 곳일지 모르오.”

정말 그렇다면 좀 아이러니하다.

누군가 이 세상을 본떠서 미궁을 만들었고, 그 미궁 도시를 또 누군가 본떠서 게임으로 만들었다니.

‘바깥세상도 좀 궁금하네…….’

언젠가 그쪽도 탐험해 볼 날이 오려나?

***

역순서로 돌기 시작한 두 번째 바퀴는 빨간불이 뜨는 일 없이 술술 진행되었으나, 애석하게도 그게 전부였다.

‘여왕이랑 광대는 좋았는데, 나머지 정보들이 좀 그렇단 말이지.’

정보의 객관적 가치와 별개로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들이었다.

그야 여우만 봐도 그렇다.

여우는 혈령후가 거금을 들여 저택을 구매했고, 그 저택을 담보로 또 큰돈을 빌렸다는 것으로 초록불을 받았다.

초승달은?

한숨을 내쉬며 혈령후가 그 돈으로 정수를 구매한 거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신혼집까지 구해다가 정수까지 사 먹인다라……. 피싯, 그 여자도 참 극성이로군요! 그런다고 비요른 얀델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닐 텐데.”

여기서 나온 반응들이 좀 상처였다.

“…리헨 슈이츠, 누군지는 차차 알아봐야겠지만 멀쩡한 놈은 아닐 거 같군.”

“그, 그래도 엄청 강하다면서요? 정수 몇 개로 그렇게 강해지긴 어려울 거 같은데…….”

“원래 있는 놈이 더한 법이지. 여인의 상처를 이용해 자기 잇속이나 챙기다니, 남자의 수치다.”

“어머나, 사슴뿔 님은 굉장히 낭만적이신 분이었네요?”

“크흠…….”

“요정족에서도 종족 차원으로 그에 대해 알아봐야 할 듯하오. 정수를 샀다는 것만 알았지, 그걸 생판 남에게 줬을 줄이야…….”

에휴, 이렇게 되면 원탁이 끝나자마자 온갖 곳에서 나에 대해 조사를 해대겠구나.

‘탐험가 길드의 자료만 손댈 수 있으면 나도 좀 안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어떻게든 빠른 시일 내에 해답을 찾아내야 할 듯싶다.

“하하, 벌써 제 차례로군요!”

아무튼, 이후 순번이던 고블린, 사슴뿔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선 두 정보처럼 나와 연관된 것은 아니었으나, 꼭 필요한 정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들뿐.

‘뭐, 항상 필요한 것들만 나올 수는 없는 거니까.’

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어느덧 내 차례가 이르러서일까?

장내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조금 달라졌다.

“…….”

이번엔 어떤 정보가 나올까 하는 기대로 모인 시선.

숨소리마저 정돈된 공기는 고요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럼 어쩔까…….’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고민을 거듭했다.

다만, 이미 정해 둔 걸 바꾸는 일은 없었다.

이내 나는 입을 열었다.

“나는 [던전앤스톤]의 제작자 아우릴 가비스와 만난 적이 있다.”

암, 이런 건 확실히 못을 박아 둬야지.

“……!”

“……!”

수사자가 비요른 얀델이라곤 생각도 못 하도록.

***

“후, 피곤하네…….”

이한수의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진 뒤 눈을 감고 원탁에서 있던 일을 복기했다.

‘세 바퀴까지 간 건 오랜만인 거 같네.’

두 바퀴를 마친 다음에도 한 바퀴가 더 이어졌다.

유익한 정보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고블린 씨 하나 빠진다고 별 차이도 없는데, 다들 계속하시죠?]

[그런다고 재밌는 게 나올 거 같지는 않군.]

광대의 아쉬운 눈초리를 차갑게 외면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야 고블린이 빠지면 과반수 비율이 줄어들잖아?

늘 그랬듯 이쯤 되면 내가 먼저 나서지 않아도 한두 명 더 이탈할 터. 그럴 바에는 내가 먼저 선수를 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고급 정보가 나오지 않을 거 같다는 말도 사실이긴 하고.’

오케이, 잠시 쉬었더니 좀 머리가 돌아가네.

남은 시간은 웹서핑이나 하면서 때워야지.

딸깍, 딸깍.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며 게시글들을 읽었다.

“끄흐흐, 미친놈들 진짜…….”

그냥 어그로용 뻘소리인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웃기지?

다들 뇌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끄끄극…….”

그렇게 한쪽 다리를 탁상 위에 올린 자세로 한참을 낄낄거리며 웹서핑을 하던 때였다.

“…응?”

나는 급하게 자세를 고쳐잡았다.

눈을 비비고 고개를 앞으로 내밀어도 모니터에 적힌 글자는 달라진 게 없었다.

[대한독립만세] - 1명이 접속 중입니다.

접속 중이라니? 대체 누구야?

설마 이백호?

아니, GM이 벌써 벤을 풀었을 리 없는데…….

‘애초에 풀렸다고 해도 지금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럼 그냥 심심해서 들어온 부류이려나?

아니면 진짜 한국인?

‘……어쩌면 최근 들어온 신입 중에 한국인이 껴 있었을지도.’

뭐가 됐건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

그런 생각으로 나는 마우스를 더블클릭했다.

그리고…….

딸깍, 딸깍.

시야가 하얗게 물들며 주변 공간이 변했다.

채팅방의 기본 스킨인 공터나, 들판과 달리 화려하게 꾸며진 귀족가 저택.

방장이었던 이백호가 직접 꾸며둔 그곳.

‘뭐야, 여자잖아?’

벽난로 앞에 앉아 있는 여자의 측후면이 보였다.

[HS123]

일단 닉네임으로는 국적 판별이 어려웠지만, 머리색이나 피부를 보면 동양인 것은 확실했다.

음, 그럼 진짜 한국인인가?

‘뭐, 대화를 나눠보면 알겠지.’

남자가 편하긴 하지만 여자라고 해서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향 사람이라면 이백호가 내게 그랬듯 어느 정도 도움의 손길을 줄 용의도 있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인기척을 냈다.

“크흠흠.”

“꺅!”

이내 앉아 있던 여인이 움찔하며 어깨를 떨었다.

보아하니 내가 채팅방에 들어온 것도 모르고 있던 거 같은데……. 연기 따위로는 만들 수 없는 짙은 뉴비의 향기가 흐른—

“…어?”

이내 화들짝 놀란 여자가 뒤를 돌았고, 우리는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

“어.”

여인의 눈이 커졌다.

아니, 눈이 커진 건 나도 실상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어어?”

뭐야, 이거.

꿈인가?

얘가 왜 여기에 있어.

“어…….”

사고가 정지한다.

벌어진 입은 금붕어처럼 꿈뻑거릴 뿐 제대로 된 언어 체계를 갖고서 소리를 뱉어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상대도 마찬가지.

“어, 어.”

“어…….”

“으어?”

그래도 상대가 나보다 회복이 빨랐다.

“한수… 오빠……?”

반가움보다는 놀람의 감정이 훨씬 더 크게 묻어나는 표정으로 물어오는 여성.

“현별이……?”

나는 멍하니 되물으면서도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정장 치마에 깔끔한 블라우스.

그리고…….

“하… 진짜, 오빠는 여전하네요?”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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