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4화 우리 (3)
「미궁이 폐쇄되었습니다.」
「캐릭터가 라프도니아로 이동합니다.」
근 두 달 만에 접하는 도시의 햇빛.
마지막까지 어두운 바닷속 아틀란테에서 시간을 보낸 탓인지 그 빛이 더욱더 크게만 느껴진다.
‘역시 사람이 빛을 쐐야 한단 말이지.’
여타 탐험가들이 그렇듯 우중충한 도시의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잠시, 나는 서둘러 검문소로 이동했다.
“여기예요!”
먼저 도착해 있던 에르웬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든다.
합류해서 줄을 서고 있자니 머지않아 아멜리아도 도착했다.
“늦었군.”
“의외로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그리 답하며 오른편에서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항해사에게 눈짓하는 아멜리아.
“일단 우리와 같은 7구역 광장을 타고 들어왔다는 말은 사실이었군.”
“이 녀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확신에 차서 말을 해?
조금 어이가 없지만 내색하지 않고 물었다.
“…그래도 문제는 없었나?”
“전혀.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대기하며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더군.”
아멜리아의 목소리에선 어딘가 뿌듯함이 가득했다.
말을 잘 들어준 게 그렇게 기쁜 건가?
반면 항해사 아우옌 록로브는 뒤늦게 현타가 온 거 같았지만…….
“헤헤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헤실헤실 웃으며 업무용 미소를 짓는다.
음, 이런 걸 보면 좀 짠하기도 하고.
우리를 먼저 노린 놈들 중 하나이니 자업자득이란 생각도 들고 한다.
“이제 우리 차례군.”
줄을 서고 있자니 곧 우리 순서가 됐고, 우리는 모아온 마석들을 전부 돈으로 바꾼 뒤 검문소를 지나쳤다.
그리고 나타난 인파가 가득한 거리.
여기서는 진형을 좀 바꿔서 이동했다.
아멜리아가 맨 뒤에 위치하고 그 바로 앞에 항해사가 위치한 구도.
“하하……. 아, 안 그러셔도 도망 안 가는데…….”
“혹시 따라오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
“저는 7구역에서만 20년을 살았는데…….”
항해사가 뭐라 작게 중얼거리기는 하였으나, 사람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쳐 자택에 도착할 때까지 진형을 이탈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란 말입니까……?”
이윽고 도착한 3층짜리 단독 주택.
높은 담장을 지나쳐 정원 마당 안으로 들어온 항해사가 입을 벌리며 감탄한다.
하지만 구경 중 뭔가 위화감을 감지했을까.
“저기 근데 왜 창문들이 전부…….”
항해사가 말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하고 흐렸다.
시선은 판자로 가로막힌 창문에 고정되어 있었다.
“신경 쓰지 마라. 보안을 위한 조치이니까.”
“아, 예…….”
별말은 없었지만 항해사의 눈빛과 표정에서는 우리를 향한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한다.
대체 무슨 일을 하는 놈들이기에 이런 집에서 사느냐 하는 눈치.
‘그러고 보면 에르웬이 누군지는 이미 눈치챈 거 같기는 한데…….’
이건 이따가 확인해 봐야지.
일단 정원을 지나쳐 집 안으로 들어선 후, 약간의 상의 후 남는 방 중 하나를 항해사에게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지하에 자리한 방이었다.
“…지하? 우리 집에 지하가 있었나?”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보내자, 에르웬이 수줍게 얼굴을 붉혔다.
“일부러 있는 집을 구했어요.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요…….”
음, 그런가……?
하긴 부잣집에는 대피용 패닉룸이 하나씩 있다고 듣기는 했는데…….
끼익, 끼익, 끼익.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에르웬이 카펫을 치우고 장치를 조작해 계단을 만드는 과정을 구경했다.
아래로 내려가니, 창고로 쓰이도록 설계한 듯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아직 무엇도 채운 적 없기에 텅 비어 있었고, 가장 깊숙한 곳의 벽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두터운 철문 하나가 자리했다.
철컥.
에르웬이 열쇠를 꺼내 문을 열자, 커다란 침대 하나가 놓인 방이 나타났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벽에는 구속구도 있었다.
“이건… 방이 아니라 감옥이잖아…….”
이내 배정받은 방을 확인한 항해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사실 나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어째선지 지하 방을 보자마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거든.
뭐, 이제는 나와 관계가 없는 곳이겠다마는.
“……감옥이라니? 평범한 방이구만.”
“…….”
“저기 봐라, 화장실과 욕실도 있지 않나.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쓰지 않을 테니 좋겠군.”
“…….”
“크흠흠, 그럼 나는 이만 먼저 올라가 보겠다. 갑자기 속이 좋지 않아서…….”
어휴, 왜 이렇게 심장이 뛰지?
폐소 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얼른 항해사를 방 안에 집어넣고 문을 닫자, 에르웬이 재빨리 자물쇠를 잠갔다.
철컥.
“자, 잠시만! 잠시만!”
쾅쾅쾅! 항해사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우리는 모두 못 들은 척 무시했다.
“열쇠는 내가 관리해도 되겠나?”
“그러세요.”
아멜리아가 열쇠를 양도받는 것으로 항해사의 거처 문제는 끝.
밥 주고 하는 건 이제 얘가 알아서 하겠지.
사실 예전부터 궁금한 건 따로 있었다.
“에밀리, 근데 진짜 그런 독이 있나? 매일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죽는다니,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거야 마치 무협지의 고독 같지 않은가.
마교에서 이거로 정파의 인사들을 협박하고 수족으로 부리는 게 전형적인 클리셰였는데.
정말 실존하는 거라면 앞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도 싶었다.
하지만…….
“슈이츠, 너도 순진한 구석이 있군.”
“…응?”
“그런 독이 세상에 있을 리 없지 않나. 다행히 저 녀석은 독에 대해 잘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아…….”
그럼 역시 블러핑이었던 거구나.
내심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여서 이제야 확인을 한 거긴 하다마는—
“네에?”
그때 돌연 에르웬이 움찔했다.
“그 독… 없는 거예요……?”
왠지 모르게 아쉬움이 깊게 묻어나는 목소리.
그냥 넘어가기엔 어딘가 마음에 걸려서 필요한 일이 있기라도 했냐며 돌려서 묻자, 에르웬이 눈을 피했다.
“호. 혹시 모르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뭐가 혹시 모르는 건데.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어차피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올 거 같지 않아서 그만뒀다.
***
미궁 복귀 후 첫날은 모두 각자의 방에서 휴식을 취하며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는 바쁘게 움직였다.
이번에 얻은 전리품이 한둘이어야지.
“에르웬, 너도 함께 가자.”
“엑? 제가요? 어차피 당신 혼자서도 충분한—”
“슈이츠를 위해서 그런 것도 못 한다는 건가?”
“……그런 뜻이 아니잖아.”
2일차부터 에르웬과 아멜리아는 전리품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외출했고,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을 지키며 보냈다.
“슈이츠, 식탁에 순서대로 급여할 음식을 준비해 뒀으니 내가 없는 동안 끼니때가 되면 잘 챙겨줘라.”
아침, 점심, 저녁마다 지하에 들르는 걸 제하면 이렇다 할 게 없는 하루의 일과.
다만, 3일 차에는 손님이 찾아왔다.
“레이븐.”
“원래 어제 오려고 했는데, 좀 바빴어요. 들어가도 되죠?”
“물론이다.”
이내 안으로 들이자 주변을 쓱 둘러보던 레이븐이 내게 물었다.
“둘은요?”
“전리품 때문에 밖에 나갔다.”
“흐음…….”
살짝 묘한 느낌을 풍기는 중얼거림.
뭔가 문제라도 있냐고 물었더니, 레이븐이 별거 아니라며 답했다.
“그냥 예전에 제가 도맡던 일을 이젠 그 두 사람이 하는구나 싶어서요.”
“그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런 부분을 믿고 맡길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사과받으려고 한 말이 아니에요. 무엇보다… 사과받을 일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군.”
일단 레이븐을 거실로 안내한 뒤 마주 보고 앉았다.
그리고 간단하게 서로의 근황을 얘기했다.
“그쪽은 어땠어요?”
“그냥 이리저리 잘 풀렸다. 너희는?”
“이쪽이야 똑같죠 뭐. 하루 이틀 내에 끝날 전쟁이 아니니까.”
“그렇군.”
“…….”
예전에 동료로 지낼 때와 다르게 어딘가 느껴지는 거리감.
이건 아마 얘도 마찬가지겠지.
서로 미궁에 들어가 있었으니, 거의 두 달 만에 본 것이나 다름없으니.
쿵쿵쿵!
그때 아래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지하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아, 그러고 보니 점심 시간이 한참 지났구나.
“얼마 전에 하수도 공사를 했는데 그거 때문인 거 같다. 신경 쓰지 마라.”
사람을 감금하고 있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도 조금 그랬기에 일단은 대충 둘러댔다.
다행히 레이븐도 의심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무튼, 이후로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었고, 그 과정에서 이번 원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을 수 있었다.
뭐, 중요한 정보는 가장 마지막에 나왔지만.
“아, 그리고 얀델… 아니, 슈이츠 씨가 물어보셨던 그거 말인데요.”
“그거라니?”
“민족 편입 안건요.”
“혹시 누가 그 주제를 꺼냈는지 알아낸 거냐?”
“네. 페브로크 여백작이었어요.”
“페프로크……?”
듣자마자 뭐지 싶었다.
그야 이래 봐도 친하게 지내던 사람의 성씨였으니까.
라그나 리타니옐 페프로크.
그냥 성씨가 같은 건가 싶기도 하면서도, 이러한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
예전에 확인해 봤을 때 라프도니아 그 어느 곳에도 페프로크란 이름의 귀족가는 없었으니까.
“레이븐, 그 여백작의 이름이 뭐지?”
“라그나 페프로크, 분명 그런 이름이었어요.”
“……뭐?”
진짜 걔야?
그렇다기엔 미들 네임이 빠지긴 했는데…….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어쩌면. 페프로크가 어떤 가문인지 마저 설명 좀 해주겠나?”
“흔한 몰락 귀족 가문이에요. 왕가 귀족부에서도 사라졌다가 1년 전에 아무도 모르게 복권했죠.”
뭐야, 그럼 내가 확인할 땐 찾을 수 없던 게 당연하단 뜻이었잖아.
설마 진짜 여백작이 라그나인 건가?
그런 고민을 속으로 거듭하고 있던 때.
“그 부분이 너무 납득이 안 돼서 더 조사를 했어요. 몰락 귀족이 복권을 하는 일은 간혹 있지만, 어떻게 그 짧은 기간 내에 왕가 회의에 참여할 만큼의 위치를 구축했을까.”
레이븐이 목소리를 줄이며 말을 이었다.
“답은 간단하더라고요. 뒷배가 있었어요.”
“누구였지?”
“라프도니아의 재상, 테르세리온 후작.”
“…뭐?”
갑자기 머리가 복잡해진다.
페프로크 여백작이 라그나와 동일 인물인 거야 둘째 치고, 레이븐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백작은 재상의 파벌에 속한 인물이라는 뜻 아닌가.
“그럼… 민족 편입 안건을 주장한 게 재상이라는 뜻이겠군…….”
나도 모르게 생각을 내뱉자, 레이븐이 고개를 살짝 내저었다.
“아뇨. 그건 좀 애매해요. 정작 재상 본인은 민족 편입 안건이 도마 위에 오르자마자 단칼에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한다며 소리쳤다고 했거든요. 이에 다른 귀족들도 놀라서 바로 흐지부지됐고요.”
“어쩌면 단순히 퍼포먼스였을지도 모르겠군.”
“퍼포먼스……?”
“짜여진 연극이었을지 모른단 소리였다. 화를 내는 모습을 보여줘서, 다른 귀족들이 다른 생각을 못 하도록 미리 못 박아두는 거지.”
“아…….”
그 생각은 해본 적 없다는 듯 입을 벌리는 레이븐.
“정치 쪽에도 조예가 있으셨나 보네요……?”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을 뿐이다.”
물론 이는 추측일 뿐 실제로는 어떨지 모른다.
아직은 갖고 있는 정보가 너무 적으니까.
“레이븐, 페프로크 여백작에 대해서 좀 더 조사해 주겠나?”
“그럴게요. 저도 왠지 석연찮은 점이 많아서.”
“항상 고맙다.”
“그럼 이만 가볼게요.”
“그래, 조심히 가고.”
그날 레이븐과의 만남은 거기서 마무리가 됐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일주일 뒤.
전리품 판매 대금을 받기 위해 에르웬과 아멜리아가 상업 도시로 향한 화창한 어느 오후.
콰아앙-!
왕가의 문양을 가슴에 새긴 기사들이 현관문을 부수며 저택 안으로 침입했다.
“리헨 슈이츠, 너를 노아르크와의 내통 혐의로 체포한다.”
후, 그래.
결국, 올 게 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