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9화 무덤 (1)
기본적인 형태는 프로그맨을 닮았다.
배 부분이 공기가 가득 찬 것처럼 둥근 것이나, 손가락 마디에 빨판 비슷한 게 달려 있단 점.
심지어 얼굴의 형태도 비슷하다.
다만 피부가 녹색이 아닌 회색이고, 트레이드 마크인 작살도 들고 있지 않다.
또한, 결정적으로.
‘날개……?’
가위로 오려서 붙인 듯 이질적인 분위기의 날개가 등 뒤에 달려 있—.
[끼르륵!!]
이내 벽면에 달라붙은 놈들이 날개를 파닥이며 그 힘을 이용해 단숨에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래, 장식용 날개는 아니란 거지?
“에밀리. 등급은?”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서 아멜리아에게 등급을 확인했다. 물론 [위기감지]로 정확한 등급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7등급 아래일 거다. 아무런 위협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빅데이터를 통해 간략히는 파악이 되거든.
“7등급 아래라…….”
나는 갑판 위에 올라와 우리를 노려보는 열댓 마리의 마물들을 보며 서둘러 오더를 내렸다.
“섣불리 나서지 마라! 우선 놈들에 대해 정보를 얻는 게 먼저다!”
“윽!”
당장 달려 나가려다가 내 지시를 듣고 움찔하는 아이나르.
옳지, 그래도 말은 잘 듣는구나.
“베헬—라아아아아아아!”
이내 [야성분출]로 위협 수치를 확 끌어올리며 앞으로 나아가자, 정체불명의 마물들이 즉시 공격을 시작했다.
놈들의 평타는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이빨도, 발톱도 없다.
손에 작살 같은 무기를 든 것도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공격을 하는가 싶었더니만.
스윽.
놈들이 고양이자세를 취하며 엉덩이를 들어 올린 즉시.
찌지지직-!
번개 속성으로 추정되는 가시 형태의 투사체가 허공에서 생성되며 쏘아진다.
7등급 이하 마물인 만큼, 당연히 피해는 없었다.
일단 방패로 대부분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미처 막지 못한 쪽도 내 피부를 뚫진 못했다.
하지만…….
‘뭐야, 이 새끼…….’
몸이 굳는다.
알 수 없는 효과로 ‘마비’나 ‘감전’ 같은 상태 이상을 받은 탓은 아니다.
단지, 그냥 너무 놀라서였을 뿐.
“야, 얀델 씨… 마물들이 방금 쓴 저거…….”
그래, 이러는 걸 보니 내가 잘못 본 게 아니구나.
말꼬리를 흐리는 베르실을 대신해 에르웬이 말을 완성했다.
“아무래도 플미나스의 [천둥가시] 같은데요……?”
7등급 몬스터 플미나스.
3층 지역 일부와 4층에서 출현하는 번개 속성의 몬스터.
한데 다른 종의 고유 스킬을 이놈이 쓴다고?
‘설마 상위 변이종인 건가?’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그야 갑판을 타고 올라온 열댓 마리가 모두 동일한 스킬을 사용했으니까.
‘똑같은 스킬을 쓰는 다른 몬스터라니…….’
하면, 다른 스킬은 어떨까.
공격은 일절 하지 않으며 이것저것 확인을 해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저건… 아이언팔콘의 [철갑깃털]이군.”
“오! 저건 나도 아는 이능이다! 6등급 마물인 씨웜의 [거품방울] 아니냐!”
“그… 6등급이 아니라 7등급인데…….”
이놈이 가진 액티브 스킬 세 개가 모두 다 각기 다른 몬스터의 것이다.
패시브는 어떨지 궁금했지만, 애석하게도 이는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한 마리를 잡아보잔 생각으로 망치를 휘두른 찰나.
「[썩은점액]에 의해 공격이 빗나갔습니다.」
얼씨구, 패시브는 프로그맨이야?
어째 생긴 게 비슷하긴 하더라니.
뭐, 됐다. 이제 알아낼 건 다 알아냈으니.
“조사는 끝이다. 이제 모두 죽여도 된다!”
“정말이냐!”
내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아이나르가 쏜살같이 달려 나가 최초로 발견된 마물을 최초로 처치하는 업적을 차지했다.
다만, 문제는…….
「맥구리를 처치했습니다.」
뭐지, 경험치가 안 들어온 거 같은데?
아무리 7등급 이하래도 이제는 그 감각에 익숙해져서 살짝은 느껴지기 마련인—.
「No.9999 초심자의 행운이 발동했습니다.」
나는 생각을 멈추고 앞을 확인했다.
“…정수다!”
이야, 진짜 정수도 나오는 거구나.
“……베르실! 얼른 시험관에 담아라!”
서둘러 마법사에게 지시를 내리는 한편으로는 무의식중에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프로그맨의 [썩은점액]에 씨웜, 아이언팔콘, 플미나스의 액티브 중 하나가 붙는 건가?’
……어쩌면 육성 조합 세팅 전체가 바뀌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고.
***
한 번의 전투가 끝났다.
전리품은 녹색의 정수 하나.
자세한 건 확인해 봐야겠지만, 왠지 아이언팔콘의 [철갑깃털]일 거 같다.
[철갑깃털]이 녹색 정수였거든.
“베르실, 시험관은 몇 개가 남았지?”
“스물일곱 개요.”
“멜베스에서 지원해 준 건 스무 개 아니었나?”
“혹시 몰라서 제가 갖고 있던 것도 전부 다 가져왔거든요.”
“그렇군…….”
“채취가 끝난 시험관은 어떻게 할까요?”
“네가 보관하고 있어라. 한곳에 모아두는 게 정리하기 편할 테니까.”
일단 시험관의 보관 문제부터 해결한 뒤에 나는 서둘러 동료들에게 물었다.
“그보다, 다들 느꼈나? 아까 저놈을 처음 잡았을 때…….”
“아아, 공적치가 들어오지 않은 것 말인가?”
“어? 다들 그랬어요?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전원이 경험치가 들어오는 걸 느끼지 못한 걸 보니, 일단 경험치가 존재하지 않았던 건 확실해졌다.
‘여기 층은 컨셉이 특이하네…….’
키메라처럼 이놈저놈 섞어둔 것 같은 몬스터.
그리고 경험치는 주지 않는다.
그 탓에 왠지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만약 이 계층에서 출현하는 몬스터가 전부 다 이런 식이라면 크게 기대했던 신규 스킬은 없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이런 생각도 든다.
“……다른 종들의 스킬을 가진 몬스터들이 나오다니. 이 사실이 알려지면 난리가 나겠군.”
어쩌면 정말로 큰 게 올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게, 어쭙잖은 신규 스킬보다 이쪽이 훨씬 더 사기 조합을 만들기에 도움이 되니까.
커스터마이징 기능이 열렸다 해야 하나?
‘강철거인만 해도… 패시브 없이 액티브만 먹을 수 있으면 무기 제약이 사라질 테고.’
비슷한 맥락으로 액티브나 패시브, 둘 중 하나는 마음에 들지만 스탯이나 다른 부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최종 트리에 들지 못한 정수들도 많다.
‘근데 그런 패시브 스킬에 [거대화]를 추가할 수 있다면?’
캐릭터의 고점이 훨씬 더 올라갈 거다.
오크히어로만 봐도 패시브는 그냥 덤이니까.
체력이 떨어질수록 육체 수치가 증가하는 [영웅의 길]은 나쁘지 않은 스킬이지만, 기본적으로 5등급 정수라 성능이 떨어진다.
정수의 기본 스탯도 낮은 편에 속하고.
[거대화]와 [합일]의 연계가 아니라면, 더 좋은 스펙의 정수가 널리고 널린 셈인데…….
‘……그런 몬스터가 있으려나?’
알 수 없다.
어쩌면 이번에 만난 놈들만 특별한 것일 뿐.
다른 놈들은 새로운 정수로 무장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아예 새로운 개체를 만나는 것이 이번이 끝일 경우도 가능하다.
하지만…….
‘재밌네.’
[던전앤스톤]을 사랑했던 한 명의 플레이어로서 심장이 두근거린다.
과연 이 앞에 뭐가 있을까.
나도 모르게 기대가 되고 주먹에 힘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풀어지면 안 되겠지.
미지란 기회인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니까.
“돛을 펼쳐라!”
갑판 위가 정리된 후, 다시 항해를 이어갔다.
이 근방은 아까 보았던 그 전기 개구리들의 서식지인지 계속해서 바닷속에서 놈들이 튀어나와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번엔 ‘왜곡’을 걸고 사냥했다.
「베르실 고울랜드가 6등급 시공마법 [상위왜곡]을 시전했습니다.」
그야 새로운 몬스터잖아?
부산물 역시 마탑에 비싸게 팔릴 게 분명하다.
“저기 비요른!”
“심심하면 갑판 청소라도 하고 있어라.”
“그게 아니라 할 말이 있다!”
“…해봐라.”
그렇게 무탈하게 탐사를 이어가고 있던 때, 아이나르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해왔다.
“이놈들 이름은 뭐라 지을 거냐?”
“이름……?”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몬스터들의 이름은 어떻게 작명된 걸까?
“에르웬, 알고 있나?”
“어… 글쎄요……?”
의외로 아는 게 없는 에르웬은 역시나 몬스터의 작명 유래에 대해서도 아는 게 없었다.
마법사이긴 하지만 플레이어 출신인 베르실도 마찬가지였고.
“그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라서…….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짓지 않았을까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베르실의 말에 아우옌 옆에서 항해를 보조하던 아멜리아가 흥미를 보이며 다가왔다.
“나나리.”
“……응?”
“나나리는 어떻지? 어감도 좋고, 그… 나름… 귀여운 느낌도 나는 거 같은데.”
얘, 진짜 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몬스터의 이름을 짓는 거지, 귀여운 이름을 짓는 게 아니다. 에밀리.”
“……하지만 발견한 사람의 마음 아니냐.”
“그건 그렇지.”
이내 쓱 둘러보니 다들 새로 발견한 몬스터의 이름을 정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하긴, 다들 탐험가니까.
앞으로의 탐사에 있어 동기 부여가 될 수도 있겠단 판단이 들어 아예 판을 깔아줬다.
“다들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해라. 후보를 하나씩 한 뒤에 투표로 정하겠다.”
“투표라… 공평하군. 나는 나나리로 하겠다. 그리고 나나리에 투표하는 자에겐 1만 스톤을 주지.”
“투표를 하랬지, 표를 사라 한 건 아닌데…….”
“사지 말라고도 하지 않았지 않나.”
“……마음대로 해라.”
잠시 공정성 이슈가 있기도 했지만, 아멜리아를 시작으로 멤버들도 각자 생각한 이름을 꺼냈다.
“울티메썬드라! 어떠냐! 강해보이는 이름이지 않나?”
“하지만 7등급도 안 되는 마물인 걸요. 차라리 특징을 따는 건 어떨까요? 씨웜, 아이언팔콘, 플미나스, 프로그맨의 이능을 가진 개체니…….”
“개체니……?”
“씨팔콘 플로그맨!”
“……응?”
“씨팔콘 플로그맨이요! 제법 괜찮지 않아요?”
듣자마자 머리가 멍해졌지만 의외로 멤버들 사이에서는 호평이었다.
“오! 그것도 좋군! 굉장히 강해보이는 이름이다!”
“…확실히, 귀에 딱 꽂히기는 하네요. 딱 마물의 모습도 연상이 되고.”
“나나리가 더 좋지 않나? 2만 스톤을 주겠다.”
이후로도 이런저런 이름이 후보로 오르내렸고, 마침내 투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맥구리가 일곱 표. 씨… 팔콘 플로그맨이 세 표. 나나리가 두 표, 끼루루가 한 표군.”
“네? 이상한데요? 어떻게 일곱 명인데 열세 표가 나와요?”
“아, 베르실 너는 몰랐나? 우리 클랜 내규에도 적혀 있는데. 클랜 단장의 표는 클랜의 인원 수와 동일하다.”
“……민주적인 거랑은 거리가 멀잖아요!”
나는 차갑게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민주적? 그게 뭐지?”
“아, 그게…….”
그제야 말실수를 한 것을 깨닫고 주춤하는 베르실.
그래, 플레이어면 그런 것들도 잘 숨겨야지.
여긴 민주주의 같은 사상이 없는 세상이니까.
“자, 그러면 끝났군. 이제부터 저놈들 이름은 맥구리다.”
그렇게 첫 발견된 마물의 이름이 정해졌다.
맥구리.
갈매기 같은 날개에 개구리를 닮은 걸 보고 대충 지은 이름이었지만, 큰 상관은 없을 것이다.
맥구리도 씨팔콘 뭐시기보단 이걸 좋아할 테니.
***
“그럼 다들 각자 위치로 가서 일해라!”
이내 해산 명령을 내리자 에르웬은 다시 전망대 위로, 아우옌과 아멜리아는 키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베르실은 다시 낚시를 하며 표본 채취.
“아이나르, 너는 놀지 말고 갑판 청소나 해라.”
“……여기 미샤, 얘도 놀고 있지 않냐!”
“미샤는… 다른 할 일이 있다…….”
“…으응?”
“미샤… 넌 여기 갑판에 서서 마물이 나타나면 상대하는 역할이다.”
“우우! 그런 건 나도 할 수 있다. 날 시켜라!!”
“쓰읍!”
아무튼, 그렇게 다시금 모두가 제자리에서 각자 할 일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한량처럼 돌아다니며 배에 문제는 없는지 관리했다.
그러고 있자니, 베르실에게서 호출이 왔다.
“얀델 씨, 잠시 와보실래요?”
“뭔가 발견이라도 한 건가?”
얼른 가보니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부유물들에 둘러싸인 베르실이 물건 하나를 건넸다.
“방금 건져 올린 그림인데, 어때요? 도시로 돌아가면 제법 비싸게 팔릴 거 같지 않아요?”
“…그림?”
“네. 바다처럼 보이기는 해도, 종이는 멀쩡해요. 전혀 젖지가 않더라고요.”
확실히… 미궁에서 건져낸 예술품이라면 높은 가치가 붙을 거 같긴 한데…….
“한번 봐보지.”
일단 베르실에게 그림을 건네받아서 확인했다.
그리고 돌처럼 굳고 말았다.
“…….”
사내와, 아내로 보이는 여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여자아이가 해맑게 웃고 있는 투박한 스케치의 초상화.
“저… 왜 그러세요?”
“…….”
“혹시… 아는 사람이에요?”
아는 사람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고.
이게 왜 여기서 발견되는 건지도 알 수 없지만.
“일단은.”
때는 지금으로부터 수 년도 전.
첫 탐사에서 내가 미궁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렸던, 한스A의 가족 초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