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화 원주민 (2)
어느 세상이든 전설 같은 이야기는 있다.
라프도니아 또한 마찬가지다.
미궁을 탐험하던 어느 누군가가 미궁 속에서 대화가 통하는 미지의 존재에게 도움을 받아서 목숨을 구한다든가.
그도 아니면 잡아먹히기 전에 도망친다든가.
그런 형태의 이야기는 아주 오랜 시절부터 탐험가들 사이에서 설화처럼 존재했다.
물론 단 한 번도 사실로 판명난 적은 없지만.
“탐험가면 언젠가 한 번은 해봤을 상상이네요.”
에르웬의 냉소적인 말처럼, 탐험가들은 대부분 한 번은 생각해본다.
이 온갖 비밀로 가득찬 미궁 속에 대화가 통하는 이성적인 존재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재미있군… 아주 흥미로워…….”
에르웬과 달리 아멜리아는 ‘원주민’에 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을 빛냈다.
“입구에 있던 시체들은 어떻게 된 거지? 그것도 그 ‘괴물’들이 한 짓인가?”
아멜리아의 질문을 받은 여자 탐험가가 고개를 갸웃했다.
“입구에 있던 시체… 라니요?”
“모르는 건가? 세 명이었는데.”
이내 아멜리아가 생김새를 말해주자, 여자 탐험가가 몸을 움찔했다.
“맥홀딘, 프린턴, 릭……. 첫 습격에서 납치됐던 세 명이에요……. 붙잡혀간 마을에서 보이지 않던데, 설마 그리 되었을 줄이야…….”
“첫 습격이라……. 처음부터 말해봐라. 세세하게 말해도 좋으니 단 하나도 빠짐없이. 헥츠 클랜과 나누어진 그다음부터.”
“예……? 여러분이 그 일은 어떻게…….”
“이 섬에 대해 알려준 게 그들이었다.”
“…그렇군요.”
그때 그들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여자 탐험가는 작은 목소리로 그리 읊조리고서 말을 이었다.
“헥츠 클랜과 나뉜 이후로 저희들은 섬 안쪽을 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최초로 발견된 지역.
그리고 그 지역에서 출현하는 신종 마물.
정보가 없던 만큼 전투는 까다롭고, 위험한 상황도 여럿 있었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이들은 의욕이 가득한 상태였다.
“텐타쿨란, 디아몬트, 굴다람쥐, 파파고나스. 바일론타… 마주친 신종 마물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있자면 마치 역사 속에서나 나오는 대모험을 하는 것만 같았죠.”
파파고나스, 바일론타.
아직 우리들은 발견하지 못했던 마물이다.
다만, 이 녀석들에 대한 정보는 이따가 묻는 거로 하고…….
“섬의 중앙을 목표로 나아가던 때, 이질적인 흔적을 발견했어요.”
중심부 쪽으로 이어진 발자국이었다.
족적은 사람의 것보다 두 배는 컸으며 여럿이 움직인 듯 숫자도 많았다.
하지만…….
“형태는 제각각 달랐죠. 그리고 평평했어요. 마치 신발이라도 신은 것처럼…….”
흔적을 발견한 그들은 신종 마물이 분명하다며 신이 나서 흔적을 따라갔다.
안 그래도 무성하던 숲은 울창해졌다.
그리고 가끔씩 보이던 마물이 아예 싹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갔을까.
“그때 첫 습격이 있었어요.”
매복해 있던 괴물들이 사방에서 덮쳐왔고, 필사적으로 응전했으나 셋이 납치당했다.
그중에는 클랜장의 연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연히 은사자 클랜은 눈이 돌아가서 놈들을 추격했고, 그렇게 더 안으로 발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어요. 두 번째, 세 번째 전투가 이어지며 많은 이가 죽었죠.”
가장 큰 문제는 그런 희생을 감수하고서도 괴물을 단 한 마리도 잡아내지 못했단 것이다.
“왜 그걸 뒤늦게 깨달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똑똑했어요.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을 했고, 전략적으로 움직였죠.”
이를 깨달은 은사자 클랜은 뒤돌아 도망쳤다.
연인이 납치당한 단장이야 노발대발 난리를 쳤으나, 돌아가 얀델 남작을 찾아 도움을 구하자는 설득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었다.
“돌아가는 길에 함정이 설치되어 있더라고요. 분명 우리는 왔던 길로 되돌아 간 건데. 올 때는 그런 게 없었는데…….”
함정에 빠진 그들은 전원이 사로잡혔고, 눈이 가려진 채로 그들의 마을로 붙잡혀갔다.
“근데 너희는 어떻게 빠져나왔지?”
“그게… 괴물 중 하나가 몰래 찾아와 저희를 풀어줬습니다…….”
“풀어줬다고……?”
자세한 얘기를 들어보니, 다른 괴물에 비하면 굉장히 작은 녀석이었다고 한다.
이들 말로는 아이인 거 같다고 하는데…….
“친했나?”
“아뇨. 말도 안 통하는데 그럴 리가요.”
“그런데 왜 풀어줬지?”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괴물이 저희가 갇힌 감옥에 와서 하루 종일 쳐다보고 뭐라 말도 걸고 하긴 했는데, 그게 전부예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고개를 주억이고 있자니, 아멜리아가 필터를 거치지 않고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동정심인가 보군.”
그 말에 에르웬도 옳다구니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제 동생도 그랬죠. 한창 축제 준비 중이던 시기였는데, 신기하다며 매일 축사에 들르더니 전날에 모두 풀어줘버렸어요.”
두 사람의 말에 탐험가들의 표정이 굳었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
본인들도 내심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들이 철창 속 동물 취급을 받았기에, 어린아이의 동정심으로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단 걸.
“하하… 아이들이 다 그렇지요…….”
아무튼, 여기까지가 그들의 이야기.
그다음에는 그 ‘괴물’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생김새는 어떤지, 어느 정도나 강한지.
마을에는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 등등.
사전에 알아낼 수 있을 정보를 최대한 얻어냈고, 어느 정도 판단을 끝마쳤다.
“이 정도면 탐사를 더 이어나가도 되겠군.”
마을의 규모를 생각하면 일곱으로 턱도 없지만, 이들이 말한 괴물은 개체별로 편차가 컸다.
마치 사람으로 이뤄진 사회처럼.
구성원 전원이 전사는 아닌 것이다.
문제는 놈들이 이곳 지리에 익숙한 만큼 지리적 이점이 놈들에게 있다는 건데…….
뭐, 불리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튀면 그만이지.
“자, 안내해라. 마을이 있는 곳으로.”
“……저, 정말 가시려는 겁니까?”
“탐험을 하러 왔으니, 탐험을 해야지.”
“…….”
그리 말하며 어깨를 툭툭 치자 탐험가들이 똥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저… 위치를 알려드릴 테니, 남작님께서 직접 가시는 건…….”
“예! 저희들이 있어봤자 방해만 될 겁니다!”
그들의 열렬한 반응을 보니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묻어났다.
하지만…….
“배는 있나?”
“예! 여기 뮤르톤이 배의 소환 각인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알았다. 이제 가라.”
“……예?”
“뭐가 문제냐? 해안가까지 살아서 도착하고, 배를 타고 그 바위섬까지 돌아갈 자신이 있다면, 가는 게 옳지.”
참고로 여기까지 오며 만난 몬스터들의 평균 등급은 3에서 4.
다행히 서로 탐험가인 만큼 말이 잘 통했다.
“……마을이 있던 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잘 됐군.”
왠지 인연이 길어질 듯했기에 통성명도 했다.
마리나, 첸, 크리안, 데니스.
창잡이 데니스는 중소 팀의 일원이었고, 나머지 셋은 은사자 클랜의 멤버였다.
뭐, 사실상 클랜은 이미 해체된 듯하지만.
“얀델, 지금부터는 내가 앞장을 서겠다.”
어쩌다 보니 이동 진형도 조금 손을 대게 됐다.
“에밀리, 네가?”
“숲에 함정이 있다고 했지 않나.”
“하지만 오히려 그러니까 내가 앞장을 서야—.”
“얀델, 너는 우리들의 리더다. 만약 네가 다치거나 잡혀가면 누가 우리를 이끌 수 있지?”
아멜리아는 그런 논리를 대며 선두에 나섰다.
자신이라면 함정을 더 잘 발견할 테니 너무 걱정말라던가? 실제로 아멜리아는 선두에서 함정을 미리미리 발견하며 팀을 이끌었다.
탱커로서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었다.
‘보호받는 기분도… 나쁘지 않을지도…….’
아무튼, 그렇게 약 2시간쯤을 이동한 끝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여기… 여기입니다. 분명 여기 나무 아래에… 응?”
그들이 기어서 올라 나왔다는 나무뿌리 아래엔 지하로 이어진 길목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모, 모르겠습니다.”
“잘못 찾아온 건가?”
“아뇨! 그럴 리 없습니다. 아까 남작님도 보시지 않았습니까! 이 근처에서 제가 흘린 신발을 찾았던 것!”
확실히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 듯한데…….
혹여 다른 나무를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기에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전부 다 확인했지만, 입구는 여전히 찾을 수 없었다.
‘입구가 열렸다 닫혔다 하는 식인가?’
자세한 원리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일단 이 아래에 마을이 숨겨져 있다는 건 분명했다.
스으윽.
이렇게 돌아다니는 아이가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제가 왼쪽을 맡을게요.”
“그럼 내가 오른쪽을 맡지.”
발견 즉시 에르웬과 아멜리아가 도주로를 차단하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목표물을 제압했다.
파란 피부와 커다란 눈깔.
높이 솟은 송곳니와 외계인처럼 삐죽하게 뒤로 튀어나온 정수리.
[키야아아아악-!]
제압당한 괴물은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며 짐승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물론 그 시간은 극히 짧았다.
“조용히.”
소란을 우려한 아멜리아가 목에 단검을 들이민 순간.
괴물이 반항을 끝내고 천천히 나를 올려다봤다.
[사, 살려주세요…….]
고대어였다.
***
고대어를 자유롭게 읽고 쓸 수 있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말을 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조금은 어눌한 느낌이긴 하지만.
[너인가? 여기 네 명을 풀어줬다는 꼬마가.]
고대어로 말을 걸자, 제압당한 괴물이 놀란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거, 살려달라고 말할 때는 언제고.
[대답, 하지 않을 건가?]
[마, 맞아요… 내가 풀어줬어요. 저들 네 명.]
[이유는?]
[불쌍… 하니까…….]
그 말을 듣자 뭔가 흔한 클리셰가 떠올랐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마음씨 착한 아이가 실수로 호의를 베풀었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거.
“얀델, 이놈이 뭐라고 하는 거지?”
“저들 네 명을 풀어준 게 자기고, 이유는 불쌍해서였다고 하는군.”
아멜리아에게 한 말이었으나, 옆에서 내 말을 들은 사인방은 이번에도 표정이 안 좋아졌다.
“저주받은 마물 따위가 감히…….”
“남작님… 전해주시겠어요? 그래봐야 하나도 고맙지 않다고. 우리 동료들을 그렇게 잔인하게 죽여놓고 고마워할 줄 알았냐고.”
물론 통역은 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미궁에서 최초로 발견된, 대화가 통하는 개체 아닌가.
최대한 부드럽게 대해서 정보를 빨아내야지.
[저들이… 뭐라고 하는 거죠?]
[도와줘서 고맙다고 하는군.]
[그런… 가요…….]
의외로 괴물 꼬마는 내 말에 쉽게 수긍했다.
아무래도 생김새와 언어가 다르다 보니,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감정을 읽어내는 건 어려운 모양.
한데 어딜 가도 애들은 다 똑같은 건지, 꼬마 괴물은 이 상황에서도 호기심을 내비쳤다.
[당신은 어떻게 우리의 말을 할 수 있죠? 마물인 주제에?]
[마물……?]
당돌한 모습은 보기 좋았지만, 인류로서 가만히 듣고 넘어가기 어려운 말이었다.
[왜 우리가 마물이지?]
[그야… 우리와 생김새가 다르니까요. 무, 물론 말이 통하기는 하지만…….]
이게 그건가?
소인국의 나라에 가면 평범한 사람도 거인이 된다는.
[좋아, 그럼 우리가 마물이라고 치면 너희는 뭐지?]
내가 피식 웃으며 묻자, 꼬마 괴물은 당연한 상식을 말하는 것처럼 고민없이 답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왠지 모르게 굉장히 철학적인 대화가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