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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517화 (517/549)

517화 원주민 (5)

미궁의 어둠에 가려졌기에, 얼마나 위에서 떨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9등급, 8등급, 7등급…….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지던 하위 몬스터들은 바닥에 부딪친 순간 즉사하며 빛이 되어 사라진다.

너무도 기괴한 장면이었다.

콰직- 콰직. 쿠웅-!

분명 피가 튀고, 살점이 튀며 사방에선 짐승들의 고통 어린 비명이 가득할진대.

솨아아아아아-!

이렇게까지 환한 빛을 내가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었던가?

“얀델! 정신 차려라!”

일순간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기도 잠시, 나는 신속하게 주변을 살폈다.

쿠웅-!

현재 우리는 나무 그늘 아래에 모여 베르실이 몇 시간에 걸쳐 준비한 결계 너머에 들어와 있었다.

다만, 안전하단 느낌은 전혀 없었다.

콰직-!

마물이 결계 위로 대가리를 처박을 때마다 크게 흔들리며 반투명한 장막 위로 핏물이 흘러내린다.

또한…….

6등급, 5등급…….

저등급 몬스터와 다르게, 슬슬 괴물이라 불러도 무방한 그것들은 몸이 반쯤 작살난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서 움직인다.

물론 이 경우에는 개체마다 크게 차이가 났다.

등급이 같아도 몸집이 가볍거나, 튼튼하거나, 재생력이 좋거나 하는 등의 특성에 따라 어떤 놈은 반송장이 되었고, 어떤 놈은 멀쩡히 움직였다.

바로 이렇게.

[크와아아아아아아아-!!]

누가 몬스터 아니랄까봐, 이 상황에서도 결계 너머의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달려드는 마물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어… 비요른? 신종 마물인가? 저것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몬스터들이 섞여 있다.

하나 신종 마물… 이라고 확신하긴 어렵다.

그야 하나의 개체라고 하기엔 하나하나의 개성이 너무 특출났으니까.

“섬에 가득하던 그 이상한 시체들의 정체가… 아무래도 저것들이었던 거 같네요.”

베르실의 추측은 나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도 그럴 게, 과할 정도로 자신의 개성을 가진 개체들은 전부 죽은 다음에도 시체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남았거든.

문제는 살아남은 놈이 있다는 건데…….

“어… 다, 다가온다……!”

몸집이 무려 10m가 넘어서 어깨 위로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끔찍한 형체의 무언가가 우리 쪽으로 몸을 튼다.

“저게…….”

“뭐죠……?”

긴 대화는 없었으나 모두의 생각이 일치했다.

쿠웅— 쿠웅— 쿠웅—

종말의 시대에서나 등장할 것만 같은 무언가.

꼬마 괴물 마루피치치도 내 팔에 매달려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이, 이제 그만 보고 마을로 내려가요! 더 있으면 더 강한 마물들이 나타난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사실 내 눈치를 보느라 말만 안 했지, 다른 동료들도 이 녀석과 비슷한 심정인 거 같았다.

그야 얼마 전부터 4등급 몬스터도 간간히 보이기 시작한 데다가…….

쿠웅-!

저 멀리서 꼬라만 보던 거인 새끼가 움직이기 시작했거든.

싸워보진 않았지만, 딱 봐도 알 수 있었다.

저게 오면 베르실의 결계로는 버티지 못하리란걸.

“…이만 마을로 내려간다.”

쏟아지는 비 구경은 이쯤 하면 됐다.

***

나무 아래에 있던 커다란 틈새로 들어가자 주변이 확 넓어지며 마침내 마을의 모습이 시야에 한가득 들어왔다.

나를 포함해 뒤따라 들어온 모두가 말을 잃었다.

“오아아…….”

푹신할 정도로 수분을 머금은 잔디.

태양빛처럼 자연스레 내리쬐는 새하얀 조명.

문명의 존재가 여실히 느껴지는 석조 건물…….

“이게… 마물들의 마을……?”

“우, 우리 성지도 이 정도는 된다!”

아이나르가 돌연 그런 말을 꺼냈지만, 글쎄… 이 정도면 우리 성지보다 나은 거 같다. 한창 개발 중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99%가 움막 생활 중이니.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마루피치치에게 들어서 일반적인 지하 도시와는 다르단 걸 알았지만. 이런 광경을 예상하지는 못했기에 충격이 꽤 컸다.

이상한 나라에 간 엘리스라도 된 거 같달까?

“왔군.”

우리가 올 걸 예상이라도 한 듯 입구 앞에 친절히 마중을 나와있는 촌장.

“이제 좀 믿겠나?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을.”

여전히 남일처럼 말하는 저 말투는 좀 열받지만,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는.”

이 녀석이 우리를 구했다.

물론 마루피치치를 통해서 ‘우기’에 대한 정보를 얻어냈을 가능성도 있지만…….

‘애초에 ‘우기’가 계층 전체에 발생하는지, 그냥 이 섬에서만 생기는 이벤트인지도 모르고 말이지.’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정말 생명의 은인이라는 말도 틀리지 않다. 이 마을에 들어오지 못했다면 우린 지금쯤 생사의 고비를 넘고 있었을 테니.

“그럼 이야기는 안으로 들어가서 나누지. 우리 마을도 소개를 해주겠네.”

이후 촌장이 먼저 마을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고, 우리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애초에 여기까지 와서 빼는 것도 웃긴 일이니까.

“설마… 마물의 소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날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걱정 마라! 뭔 일이 생기면 내가 다 지켜줄 테니! 그때 보니 그렇게 강한 것 같지도 않더군!”

“프넬린 씨! 목소리 좀 낮춰요! 다 들리잖아요. 다른 마물들은 몰라도, 저 사람은 우리 말을 다 이해한다고요……!”

“하핫! 촌장은 고대의 영웅 중 하나 아니냐! 상관없을 거다!”

“하, 하지만 그래도…….”

베르실이 말꼬리를 흐리며 눈치를 봤지만, 촌장은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마을로 향했다.

이 거리에서 못 들은 건 아닐 테고.

그냥 이런 건 전혀 관심이 없는 듯했다.

“…에르웬, 그렇게 딱 붙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걸요. 그땐 제가 지켜야죠.”

“……마음대로 해라.”

에르웬은 여전히 경계태세를 취한 채 내 옆에 붙었고, 아멜리아는 우리보다 마을 자체에 더욱 큰 관심을 보였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잔 마인드인가도 싶었지만, 내 착각이었다.

“확실히 인간들의 도시와는 다른 점이 많군.”

“어떤 부분이?”

“말 걸지 마라. 길을 외우느라 집중 중이니.”

“…길을 외운다고?”

“도주를 해야 할 때 지리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 만약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내 뒤에 딱 붙어서 따라와라.”

어……. 즐기는 게 아니었구나.

동료들의 반응을 살피는 건 이만하고서, 나도 내 할 일에 집중했다. 일부러 그러는 건진 모르겠지만, 저 아저씨는 나하고만 얘기를 하거든.

“저곳은 대장간이네. 내가 잘 모르던 분야라 야금술을 지금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데까지 꽤 많은 고생을 했지.”

“대단하군. 근데 광물은 어디서 얻나?”

“바다에서 흘러들어온 것들을 녹이거나, 우기가 끝나면 섬을 한 바퀴 돌면서 자원을 수급하네. 우기 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건 마물만이 아니니까.”

그래? 이건 몰랐던 사실인데.”

“아마 아까는 못 봤을 걸세. 사흘은 되어야 그런 것들이 쏟아지니까.”

“그렇군.”

나는 이후로도 촌장의 마을 설명을 듣고, 때론 질문을 하면서 정보를 획득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샌가 목적지였다.

“내 집일세.”

“넓긴 하지만… 생각보다 소박하군?”

“이곳에서 부와 영광을 쌓아서 어디에 쓰겠나.”

툭툭 던지는 말에서 촌장이 어떤 캐릭터인지가 점점 잡힌다.

어느 면에서는 이백호와 비슷했다.

모든 감정이 마모된 듯 나긋한 말투를 쓰고는 있지만, 이곳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그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거 같은 독기가 이면에서 느껴진달까.

“…붙잡혀 온 탐험가들은 어디 있지? 아직도 감옥에 갇혀 있나?”

“그럴 리가. 들어오게. 모두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실제로 촌장의 집 안에 들어서자 마을로 납치된 은사자 클랜의 탐험가들 일곱 명과 재회할 수 있었다.

많이 죽었다더니, 정말 많이 죽었구나.

“…야, 얀델 남작님!”

못 본 사이에 많이도 야윈 은사자 클랜의 단장.

단장은 애틋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도, 옆에 있던 단원들을 보자 얼른 달려가 재회의 시간을 가졌다.

“마리나……! 감히 우리를 두고 도망치다니!”

“아니, 저는 그런 게 아니라…….”

“첸! 너도 마찬가지다! 설마 여기에 있는 네 형도 버릴 줄이야! 네가 사람 새끼냐?”

“저, 저는 도망친 게 아니라, 구조를 청하러 간 겁니다!”

“크리안! 배은망덩한 놈! 거둬준 은혜도 모르고오……!”

“…….”

단장 녀석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보고 있으면 제법 재미있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시간을 잡아먹으려는 거야?’

내가 나서서 정리를 하려는 차, 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만하지.”

“아, 예… 이런, 실례했습니다. 브륀그리드 님.”

촌장의 한 마디에 신입사원처럼 몸에 각을 세우는 단장.

한데 귀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님이라니?”

“어… 남작님께서는 듣지 못했습니까? 여기 계신 이분은 대현자의 동료 중 하나인 용기사—.”

“그만. 설명 안 해도 된다. 나도 알고 있으니.”

“그, 그렇습니까?”

“내가 궁금한 건 다른 부분이다. 네… 부하들이 죽었는데도 꽤나 쾌활해 보여서.”

나답지 않게 돌려 말했지만, 해석하자면 네 부하들을 다 죽인 괴물들의 수장인데 왜 그런 태도냐는 뜻.

다행히 단장놈도 인간이라 잘 알아들었다.

“브륀그리드 님의 사정을 이미 전해 들은 데다가. 그건… 사고였으니까요. 오히려 브륀그리드 님께서 저희를 구해줬다고 보는 편이 옳습니다. 심지어 브륀그리드 님께선 제 부하들을 죽인 괴물들에게 징계까지 내렸습니다.”

징계라…….

웃기지도 않네.

동료가 죽었는데 그런 거로 헤실헤실 웃으며 넘어갈 수 있다는 부분이 특히나 더.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겠지.’

웃음 뒤에 칼을 품었든, 진짜 모자란 놈이든 중요치 않다.

나는 내 사람들만 챙기면 되니까.

“해후가 끝났으면, 이제 얘기해도 되겠나?”

그런 의미에서 단장에 대해서는 관심을 끄고 촌장을 응시했다. 이렇게 전부 다 불러 모은 걸 보면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 텐데…….

‘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

모두가 침묵한 채 지켜보고 있자 촌장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들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네.”

“……부탁?”

“미리 말하지만 강압적인 부탁은 결코 아니네. 아니, 오히려 서로에게 도움이 될 아주 합리적인 부탁일 거라 자신하네.”

그거야 들어봐야 하는 거고.

“말해라.”

“자네들이 이곳을 탐험하는 것에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자네들 역시 탐험하며 알아낸 것을 모두 내게 말해줬으면 하네.”

촌장 이름을 달고 저리 말하니, 진짜 퀘스트라도 받는 기분이었다.

***

탐사 성과의 공유.

촌장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이면 납득할 만한 요구다.

그래, 그게 사실이라면 말이다.

“왜 직접 탐험하지 않고 우리에게 부탁을 하는 거지?”

“그건—.”

“아, 이 섬의 나무가 물 위에 뜨지 않아서라는 말은 하지 마라. 아까 네가 네 입으로 말했지 않나? 하늘이든 바다에서든 자원이 막 흘러 들어온다고.”

실제로 나는 이곳에서 항해하며 옷장, 책상 같은 나무 부유물들을 수없이 보았다.

하면, 이에 대한 촌장의 답변은 어떨까.

“말하는 것보단 보는 게 빠르겠군. 혹시 오면서 습득한 나무가 있다면 줘보게. 무엇이든 좋으니.”

촌장은 평소처럼 나긋하게 말했고, 이에 나도 얼른 베르실에게 말해 부유물들을 꺼내게 했다.

그리고…….

스윽.

촌장이 나무로 된 옷장에 손을 댄 순간.

부스스스-

옷장이 순식간에 생기를 잃더니 가루로 화해 흩날렸다.

“지금, 뭘 한 거지?”

“아무것도. 그저 손을 댔을 뿐이네.”

“그런데 왜 옷장이…….”

“이 몸뚱이의 체화 이능일세. 나무로 된 모든 것이 손에 닿으면 이렇게 변하지. 두꺼운 장갑을 껴도 결국엔 시간이 지나면 바스러지고 마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러고 보면……. 여기까지 오는데 나무로 된 게 있었던가?’

……없었다.

건물도 전부 돌이었다.

활잡이들도 모두 뿔과 힘줄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

음식을 먹지 않으니 불도 필요가 없을 테고.

바닥에 깔린 잔디는 나무 판정이 아닌 건가?

‘대장간에서도 전부 다 스킬 같은 걸 써서 불을 쏘아대고 있었지……. 장작을 쓰는 게 아니라.’

그나마 마을과 이어진 입구가 나무 뿌리 사이에 자리했단 것 정도가 유일한 연관점인데…….

“혹시나 해서 말하네만. 땅에 뿌리를 내린, 살아있는 나무는 제외라네.”

아, 진짜 구라를 치는지 분간이 안 되네.

그래서 그냥 일단 이것부터 물었다.

“그럼 그때는 왜 그걸 말하지 않았지?”

“낯선 이에게 혹여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정보를 말해주는 건 미련한 짓이지. 심지어 자네가 우리의 적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지 않나.”

“어…….”

음, 그건 확실히 그렇지.

“납득했다.”

“의외로 이런 쪽에선 납득이 빠르군?”

“탐험가니까.”

그 말에 촌장도 납득한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도 탐험가였지.”

탐험가는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지 않는다.

***

일단 결과부터 말하자면, 촌장이 준 퀘스트는 전원이 승낙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도 그럴 게,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지원을 해준다는데 무조건 받고 봐야지.’

상황이 수틀리면 그냥 퀘스트 포기 버튼을 누르고 튀면 그만이다.

튈 수 없는 상황이면 그냥 약속을 지키면 되고.

‘어차피 일주일 뒤까지는 좋든 싫든 이 마을에 있어야 하기도 하고 말이지.’

촌장의 말에 따르면 ‘우기’는 정확히 7일 동안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촌장은 아예 그 기간 동안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비어있는 집들을 내주고, 자유롭게 마을을 돌아다닐 권한도 줬는데…….

“후우…….”

지금 내가 혼자 있는 것도 그래서였다.

아멜리아와 베르실. 이렇게 둘을 주축으로 해서 전반적인 마을 조사를 시작했거든.

아, 참고로 나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고대어, 라프도니아어, 한국어, 영어. 무려 네 가지 언어를 구사하는 고급 인력에게는 그에 맞는 임무가 있으니까.

스륵.

바로 책을 읽는 것이다.

‘오랜만에 읽으려니까 빡세네…….’

촌장 녀석은 내가 시시콜콜 묻는 게 귀찮았는지 아예 자기 서재를 내줬다. 아, 물론 서재에 있는 모든 책의 저자는 모두 촌장이었다.

책을 집필하는 게 유일한 취미라던가?

나무를 못 쓴단 말이 사실인지, 책도 전부 다 몬스터 가죽을 엮어서 만든 것이었는데…….

퍼억—

집중하자, 집중.

조금 강하게 뺨을 치며 정신을 일깨운 나는, 돌로 된 책상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읽고 있던 가죽 책을 다시금 읽어내렸다.

[마물 총해록]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와도 인연이 깊은 시리즈와 비슷한 제목을 가진 책.

촌장이 극히 조심해서 다룰 것을 당부한 책인 만큼 내용이 아주 알찼다.

이 정도면 공략집이 따로 없달까?

촌장은 이 섬에서 깨어난 후로 마주한 마물들과 직접 싸우고 관찰하며 알아낸 모든 것을 이 책에 적어 넣었다.

뭐, 얼마 전에 방문한 도서관의 책들만큼의 퀄리티와 정확도는 아닐 테지만.

‘여기엔 거기서 못 본 몬스터들도 있으니까.’

지금 하품으로 흘리는 눈물이 미래의 피라고 생각하며 암기를 반복한다.

몸이 피곤해서 잠이 찾아올 뿐.

내용이 워낙 흥미로웠기에 책을 읽는 것 자체는 재미가 있었—.

“어?”

얘는 걔인데?

우기가 시작됐을 때 만났던, 바로 그 10m가 넘던 거인.

“이름이… 히프라마전트?”

쯧쯧, 네이밍 센스도 참.

고대어로 들으면 그럴듯한데, 해석을 하면 그냥 거대 거인이란 뜻인데…….

[우기가 끝난 뒤, 마석을 수거하던 순찰조가 해안가에서 처음으로 발견했다. 순찰조에 속해있던 정예 전사 서른 명 중 절반이 사망. 추정 등급은 2.]

2등급이라…….

떡대를 보고 대충 느끼긴 했는데, 보통 놈이 아니었구나.

‘부딪치기 전에 마을로 내려오길 잘했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남은 글들을 마저 읽던 때였다.

“……어어?”

나는 책을 쥔 그대로 굳었다.

[생환한 정예 전사의 증언에 따르면, 전투가 시작된 즉시 한 번 더 몸집이 커졌다고 한다. 기본 체격과 커진 체격의 격차로 보아…….]

[히프라마전트가 지닌 이능은 오크히어로의 [거대화]로 추정된다.]

……새 목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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