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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바바리안으로 살아남기-532화 (532/549)

532화 이스케이프 플랜 (5)

우리 탐사대 전원이 집결하는 것에 긴 시간은 필요치 않았다.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진작에 모두 불러 모아 둔 덕분이었다.

뭐, 그렇다고 마음의 준비가 된 건 아니겠지만.

“연장이라면… 무기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설마… 그들과 싸우려는 것…….”

“왜 탐험가가 마물을 때려잡겠다는데, 문제라도 있나?”

나는 준비가 덜 된 이들에게 되물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닙니다.”

“뭣들 하시오? 남작님의 명을 따르지 않고!”

무모하다.

아직 제대로 확인된 것도 없으며, 더 기다리면 무사히 돌아올지도 모르지 않나.

그러니까 좀 더 기다려 보자.

다들 속으로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지언정, 어느 누구도 소리 내어 말하진 않았다.

단지, 자기들끼리 뭐라 속삭이며 무기를 챙길 뿐.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아니면 어쩔 건가. 자네가 싫다고 말해 보든가.”

“……그럴 일 없네.”

“지금 그런 말을 했다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암, 차라리 괴물 놈들이랑 싸우는 게 낫지.”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말대꾸하는 놈들이 없더라니.

“비요른… 흥분을 가라앉혀라. 다들 무서워하지 않냐….”

어느새 옆에 다가온 미샤의 말을 듣고서야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깨달았다.

“……!”

주변을 쓱 둘러보던 중 아우옌이 나와 눈이 마주치고서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아이나르도 비슷했다.

“뭔가 잘못 안 거 아니냐…? 그 녀석들… 말은 안 통해도 차, 착한 녀석들인…… 아, 아무 말도 안 했다! 아무것도 안 걸고 맹세한다!”

뭐라 중얼거리다가도 내가 쳐다보자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변명을 해 댄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가 앞에 섰다.

“아이나르.”

“어! 마, 말해라!”

“괴물 놈들이랑 친구로 지내더니 그새 정이라도 쌓인 건가?”

“그, 그렇지 않다! 이건 머리에 생긴 문제다! 그, 그 정수! 그 정수 때문—!”

평소와 달리 차분하게 끝까지 들어 줄 수 없었다.

아이나르의 말을 끊으며 딱 잘라 말했다.

사실 투쟁심 때문이란 게 아예 납득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동료가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신 차려라. 너한테 실망하기 전에.”

“……알았다.”

오케이, 그럼 얘도 정신 개조는 끝났고.

다른 탐험가들도 준비가 다 마무리된 듯 보인다.

따라서 긴말은 필요 없었다.

“가자.”

먼저 거리로 나가자 수십 명의 탐험가들이 일제히 그 뒤를 따른다.

나는 거의 뛰듯이 걸어 나갔다.

그때 내 둔한 감각으로도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저씨.”

“그놈이냐? 매일 멀리서 우리 집을 관찰하던.”

“네. 잡아 올까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답했다.

“아니, 내버려 둬라. 알아서 안내를 해 줄 테니까. 지금부터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

“속도를 올린다!”

이후 에르웬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는 어디론가 향하는 감시역을 추격했다.

[탐험가… 탐험가들이다!]

[아퀴티티…! 드, 들어가렴! 집으로 어서!]

마을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던 괴물들은 무장한 채 집단으로 이동 중인 우리를 발견하고서 화들짝 놀라며 모습을 숨겼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일단 촌장의 집이 있는 방향은 아닌데….’

과연 이놈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 의문은 곧 해소될 수 있었다.

[오늘 특이한 장소를 발견했다. 촌장의 집에서 약 15분 거리에 위치한 곳인데,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이는 건물이었다. 근데 곳곳에 경비가 있더군.]

일전에 아멜리아가 말했던 바로 그 수상한 가정집.

“정지.”

목적지에 도착한 나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

[…탐험가! 무기를 내려라!]

거,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모인 건지.

바퀴벌레처럼 바글바글하게 모인 괴물들을 보며 나는 짧게 읊조렸다.

[싫은데.]

지금 나는 대화를 하러 온 게 아니다.

***

사람을 찾고 있다.

감추는 게 없다면 비켜라.

그러한 말은 필요 없었다.

괜히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아멜리아에게 무슨 일이 생길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비켜라. 막는다면 죽이겠다.]

이 말이 현재 내가 던질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다만 마루피치치의 부친이자 촌장의 오른팔인 마을 전사 뉘아치치는 내 최종 권고를 무시했다.

[누구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촌장의 명이 있었다. 물러나라.]

딱히 애석하지는 않았다.

또한, 같은 말을 한 번 더 반복하며 설득하는 일도 없었다. 나는 경고를 했고, 저놈은 그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오, 그러냐?]

[그렇다. 그러니 일단 진정하고—.]

[그럼 죽어라.]

앞서 경고한 대로, 살의를 담아 망치를 휘두르는 것뿐.

「캐릭터가 [거대화]를 시전했습니다.」

몸이 부풀어오르며 샘솟는 활력.

이를 모두 담아 전력으로 망치를 내려찍는다.

「캐릭터가 [휘두르기]를 시전했습니다.」

궁수 클래스인 뉘아치치가 다급하게 뒤로 물러나며 활시위를 당겼다.

누가 활잽이 아니랄까 봐.

발만 빨라 가지고.

「캐릭터가 [초월]을 시전했습니다.」

「캐릭터가 [폭풍의 눈]을 시전했습니다.」

이내 망치를 휘두름과 동시에 그랩기를 시전하자 돌풍이 불어오며 멀어지던 뉘아치치의 몸이 잡아당겨졌다.

그리고…….

콰직-!

정확한 타이밍에 망치가 정수리에 내리꽂힌다.

우연이거나, 운이 좋아서 벌어진 일은 아니었다.

매일같이 싸워 대면 이 정도 타이밍을 맞추는 건 딱히 어렵지도 않거든.

전투 센스가 탁월한 전사의 육신이라면 더욱더.

[……?]

순식간에 찌그러진 깡통처럼 변한 윗머리통.

뉘아치치가 꿈을 꾸는 듯한 멍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마에서는 피가 줄줄 새어 나와 흘러내렸다.

하지만 촌장의 신임을 받는 오른팔답게 한 방에 즉사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한 번 더.’

망치를 회수해서 높이 들어 올린 다음.

후우우우웅-!

다시금 있는 힘껏 망치를 내리친다.

뭐, 이 일격으로 마루피치치는 고아로 자라게 되겠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이제는 새로울 것도 없다.

자식이라면 한스 A도 갖고 있었을뿐더러…….

‘그 해맑은 녀석이라면 잘 살아가겠지.’

아니면, 곧 아빠랑 같은 곳에 가게 되거나—.

‘…응?’

마루피치치의 편모 가정까지, 정말 몇 센티만을 남겨 두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망치의 궤적에 무언가 방해물이 껴들었다.

‘검.’

내 민첩 수치로 볼 수 있던 것은 무기의 종류.

그리고 그 무기가 새하얗게 빛났다는 것 정도.

콰아아아앙-!

이내 새하얀 검과 맞닿은 찰나에 세찬 반동이 망치의 끝을 타고 손까지 전해진다.

번뜩.

터져 나온 섬광에 눈이 부셨지만 억지로 눈을 떠 전방을 주시했다.

그리고 차갑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바빠서 못 만난다고 할 땐 언제고.’

부하가 뒈질 거 같으니 바로 튀어나오는구나.

***

“…….”

“…….”

잠시간 이어진 대치 상황.

[…….]

얼마 전까지 우기를 함께 넘었던 괴물 전사들이 제각기 무기를 들고서 우리를 바라본다.

사실 우리라고해서 다른 건 아니었다.

“…….”

마법, 신성 주문, 이능 등.

나를 따라온 탐험가들 역시 언제라도 싸울 수 있게 준비를 해 둔 채 상황을 주시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촌장.”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인내심이 바닥날 거 같았거든.

“내 동료를 내놔라.”

앞뒤를 다 잘라 놓고서 뱉은 요구.

하나 촌장은 이 요구를 받고 무슨 소리냐며 되묻지 않았다. 오해가 있는 거 같다며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도 않았다.

정말 의외이긴 했지만.

“역시 그녀 때문에 온 것이었군.”

촌장은 너무나도 순순히 인정의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것에.

꽈악.

뜨겁게 달아오르던 머리가 식으며 안 그래도 긴장한 근육에 힘이 더 들어간다.

그야 저 반응엔 해석의 여지가 있으니까.

우리가 이렇게 무력행사를 해도 가뿐하게 막아 낼 준비가 끝났다는.

아, 그렇다고 뒤로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죽었나?”

잠시간 눈싸움을 하듯 노려보다가 겨우 내뱉은 질문.

촌장이 검지와 중지를 동시에 두 번 까딱였다.

스스로를 인간이라 칭하는 이 괴물 부족에서만 통하는 제스처.

그리고 분명 저 제스처의 뜻이…….

“걱정 말게. 그녀는 살아 있으니.”

그래, 부정의 의미였지.

숨 막힐 것 같던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고, 안도감이 피어났다. 물론 촌장이 나를 농락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저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졌다.

“내놔라.”

이내 나는 한 번 더 강한 어조로 말했고, 촌장은 나를 쓱 보더니 이렇게 답했다.

“그럴 수 없다면, 그때는 어떡할 건가?”

“내가 직접 찾으러 가겠지. 막는 것들을 전부 때려 부수며.”

“놀랍게도… 진심인 거 같군.”

그야 동료의 목숨을 걸고서 블러핑을 하는 건 내 신조에 어긋나니까.

“나는 자네보다 강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

“두렵지 않나?”

글쎄.

“두렵다고 해야 할 일을 안 해 본 적은 없어서.”

“흐음, 그렇군. 실로 호전적이야. 연인인가?”

“…….”

괜한 말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면, 동료를 무척이나 아끼는가 보군.”

촌장은 알기 어려운 뉘앙스로 중얼거리더니, 이내 부하들에게 말했다.

[뉘아치치…. 아,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겠군. 누구든 좋으니 안에 있는 탐험가 여성을 데려와라.]

진짜… 살아 있는 건가?

“잠시 기다리게. 이에 관한 이야기는 그다음에 하도록 하지.”

이후 불안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리고 있자니, 괴물 전사들이 아멜리아를 데리고 나타났다.

아멜리아는 의식을 잃은 상태로 들것에 눕혀진 상태였는데…….

“어떻게 된 거지?”

“잠시 기절을 시켰을 뿐, 해가 될 다른 짓은 무엇도 하지 않았네.”

일단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법.

“우선 데려가게나. 지금 자네 상태를 보건대, 이대로는 아무런 대화도 할 수 없을 듯하니.”

아멜리아를 인도받은 뒤, 신관과 마법사들에게 상세를 확인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촌장의 말대로… 정말 기절만 한 거 같아요.”

적이 아닌 아군의 확답에 참아 왔던 숨을 토해 냈다.

“후…….”

아멜리아가 무사하다.

그것만으로도 큰 고비를 넘은 듯했으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었다.

문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으니까.

“자, 그럼 이제 얘기를 할 준비는 됐나?”

“왜 에밀리를 납치한 거지?”

“납치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일세. 아니, 오히려 따지려면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이네. 이곳에 몰래 침입한 것은 바로 그 여자였으니까.”

그래, 역시 일이 그런 식으로 흘렀던 거구나.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바로 나를 부르는 게 정상적인 대처일 테지.”

“옳은 말이네. 하나 그 전에 미리 확인해 보고 싶었네. 이 여자가 이곳에 침입한 게 개인적인 호기심인지…….”

이내 촌장이 나를 보았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생선 눈깔로.

“아니면 자네의 지시였는지 말이야.”

뭐라 답하기도 전에 촌장은 말을 이었다.

“아, 이 여자는 자기 혼자 저지른 일이라더군. 그 외에는 아무리 물어도 답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게. 조금 겁을 줬을 뿐, 실제로 고통을 가하거나 한 것은 아니니까.”

“그 부분은 감사하게 생각—.”

“다만 자네는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네.”

“……?”

“리더란 그런 자리이니까. 자네의 지시든 아니든 관계없네. 자네의 동료는 우리의 배려를 무시하고 마을의 규칙을 어겼지. 또한, 그것도 모자라 일의 경황도 확인하려 들지 않고 무작정 쳐들어와 마을의 전사를 죽이려 들었네.”

이 부분은 할 말이 없었다.

아멜리아의 생존.

그리고 너무나도 온전한 방식으로 신병을 인도해 준 것까지.

이로써 내 행동이 과했음은 증명됐다.

“자, 이걸 어떻게 책임질 건가?”

이내 촌장이 최후 통첩을 날리듯 물었다.

평소처럼 어떠한 감정도 묻어나지 않는 말투였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압박감이 굉장했다.

그도 그럴 게, 도무지 속내를 모르겠거든.

‘지금 필요한 건… 사과가 아니겠지.’

최대한 신속하게 판단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일단 리더로서 책임을 회피할 생각은 없으니 이것부터.

“에밀리 레인즈가 그곳에 들어간 건 내 지시가 맞다.”

“호오, 그랬나?”

“하지만 거기엔 이유가 있다.”

“궁금하군.”

이내 나는 입을 열었다.

원래 이렇게 오픈할 생각이 없던 패지만, 때로는 정면 돌파가 답인 경우도 있으니까.

“얼마 전에 ‘우연히’ 은사자 클랜의 문양이 박힌 단검을 발견했다.”

“그런데?”

“조금 의문이 들더군. 마을을 떠났다는 그들의 무기가 왜 이 마을 안에 있는 건지. 그래서 뒤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과연, 일이 그렇게 된 거였군….”

“이왕 일이 이렇게 됐으니 말해 줘라. 그 단검은 어떻게 된 거고, 너희가 감추던 저 집 안에는 대체 뭐가 있는 거지?”

내 질문에 촌장은 잠시 생각하듯 말을 아꼈다.

그리고 얼마나 흘렀을까.

“우선 그 단검에 대해서부터 말해 주겠네. 직접 본 게 아니라 뭐라 확신할 순 없네만… 전에 그들이 떠나기 전에 주민들과 물물교환을 한 적이 있네. 아마 그때 섞여 들어간 것일 가능성이 높네.”

그래, 그런 답변이 돌아올 줄 알았지.

어차피 나로서는 진위를 구분할 수 없으니.

아무런 말도 안 하고 빤히 바라보고 있자 촌장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방금 자네가 말한 이 집은……. 고민이 좀 되네마는… 직접 보는 편이 좋겠군.”

“좋다. 보여 줘라.”

이내 촌장이 뭐라 손짓하자 담장 주변을 막고 있던 전사들이 싹 물러나며 길을 터 주었고, 나는 촌장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 아래일세.”

평범한 가정집으로 위장된 건물 안에는 지하로 이어진 계단이 존재했고, 그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간 나는 비로소 이 괴물 놈들이 숨기고 있던 것을 두 눈으로 목도할 수 있었다.

“……니미럴.”

계단 위에서부터 썩은 내가 풀풀 풍기기에 혹시나 싶었건만.

“자, 이게 바로 자네가 궁금해했던—.”

지하에는 썩어 문드러진 시체가 가득했다.

“우리 마을의 비밀이라네.”

시체들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참혹한 상태였지만, 원형을 알아보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자네도 알아 버렸군?”

…인간의 시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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