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천구검-756화 (756/1,339)

756회. 마왕은 죽겠죠?

경험은 자신감을 준다.

순수하게 무력만 놓고 보면 반신(半神)인 연적하는 진신(眞神)인 마왕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삼천의 신’들을 꺾은 연적하는 마왕의 앞에서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운종술로 날아가던 연적하는 마왕 천자마가 보이자 천둔검을 소환해 던졌다.

“고마운데, 그만 죽자!”

쉬이익-!

천둔검이 마왕의 가슴을 향해 사선으로 길게 떨어져 내렸다.

마왕 천자마는 호시탐탐 마신의 자리를 노리던 존재다.

그 말은 이미 무위가 ‘삼천의 신’ 반열에 올랐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족들은 권력을 단지 모략으로만 쟁취하지는 않는다.

천둔검은 마신에 필적할 만큼 무위가 뛰어난 마왕에게 큰 위험이 되지 못했다.

“흥!”

마왕이 냉소를 치며 그의 애병(愛兵)인 신기(神器) 바드카니발라(학살자)로 검을 후려쳤다.

콰앙-!

일검에 천둔검이 튕겨져 나갔다.

“웬 놈이냐!”

마왕의 호통에 연적하가 그의 앞으로 떨어져 내리며 답했다.

“구주 종문의 대종사다.”

“백리하에서 마신을 죽였다는 게 네놈이냐?”

마왕이 기이한 눈으로 청년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대종사의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다.

조금 전 그의 검에 실린 힘이 자신의 예상보다 약했기 때문이다.

키가 일 장(약 3미터)이 넘는 그의 눈에 대종사는 너무 하찮아 보였다.

“그래. 누군지 알고 나니 겁이 나? 또 부하들을 미끼로 달아나고 싶어?”

“흐흐흣! 겁이라. 마신이 너 같은 인간에게 죽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군. 오로보스!”

“예!”

마족 오로보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자칭 구주 종문의 대종사라는 놈이 보이느냐?”

“예! 보입니다!”

“딱 너희 수준에 맞는 놈이다. 마족들과 함께 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여라!”

“명대로 하겠습니다!”

오로보스가 주변에 있던 마족들에게 눈짓을 보내자 마족들이 천천히 움직였다.

고위 마족인 오로보스 역시 보는 눈이 있다.

그는 대종사가 반신에 불과하며, 그래서 마왕이 마족들에게 그를 죽이라 명했음을 알았다.

‘만에 하나 마족들이 대종사의 상대가 되지 못하면 마왕께서 나서 주시겠지.’

최악의 경우 그럴 거라는 거다.

이 자리에 있는 오십여 명의 마족이면 반신이 아니라 진신도 죽일 수 있었다.

“마왕님의 말씀을 들었느냐! 대종사를 죽여라!”

오로보스의 명에 마족들이 일제히 연적하를 향해 몸을 날렸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걸 보면 마족들 역시 대종사를 만만한 상대로 여기는 것 같았다.

사실 외형으로만 보면 마족들 앞의 대종사는 당랑거철(螳郞拒散)이나 다름없었다.

싸움이 벌어지자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는 천족들에게 ‘퇴로를 차단하라!’고 명했다.

천족들은 마족과 마귀가 달아날 길을 원천 봉쇄할 뿐 싸움에 끼어들지 않았다.

괜히 마족과 뒤섞여 있다가 천산검영의 검공이나 검령의 공격에 휘말릴까 싶어서다.

마왕은 괜히 마왕이 아니다.

그는 천족들이 대종사를 지원하지 않고 포위망을 촘촘히 하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대종사가 절대 불리한 상황인데 돕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대종사에게 숨겨진 한 수가 있다는 소리다.

소문의 검령이 정말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판세를 뒤집을 정도로 대단할까?

마왕은 종문의 검령을 떠올려 보았다.

그의 기억 속에 있는 검령은 제법 쓸 만하지만 한계가 분명했다.

천족과 마족이 종문의 검령 쟁탈전에 끼어들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바로 그때, 하늘이 무너질 듯 어마어마한 암경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렸던 마왕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스스스스-.

밤하늘이 낯익은 검영(劍影)으로 가득했다.

‘헛! 저건?’

문득 그는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소요종의 검공을 떠올렸다.

‘검의 화신(化身)’이라던가.

그런데 ‘검의 화신’을 저렇게까지 많이 뽑아내다니?

저건 아무리 봐도 반신의 능력이 아니었다.

이윽고 ‘검의 화신’이 일제히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콰콰콰쾅-!

가공할 검력에 놀란 마족들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튀어 달아났다.

‘검의 화신’은 진검강으로 만든 ‘검영’보다 윗길이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마족들이 일방적으로 몰리자 마왕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처음의 계획대로 달아나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검공 그 자체는 두렵지 않았지만 대종사의 저력이 부담스러웠다.

‘검의 화신’을 저렇게 뽑아낼 수 있는 대종사의 능력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랄까?

마왕은 즉시 황망한 얼굴로 서 있는 이백여 명의 마귀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천족을 죽여라!”

마왕의 손가락이 우측의 천족을 가리켰다.

그러자 마귀들은 생각할 것도 없이 우르르 우측으로 몰려갔다. 본래 천족은 마귀들의 원수인지라 몸이 먼저 움직인 것이다.

이백여 명의 마귀와 천족 간에 난전이 벌어졌다.

천족의 시선이 마귀들에게 쏠려 있을 때, 마침내 마왕도 움직였다.

그는 마족이나 마귀 들과 달리 북쪽으로 날아갔다.

그가 바드카니발라를 휘두르자 북쪽을 막고 있던 천족 다섯의 가슴이 길게 갈라졌다.

“악!”

“으윽!”

근처의 천족들이 서둘러 지원에 나섰지만 마왕은 파죽지세로 밀고 나갔다.

그의 바드카니발라 앞에 천족의 병장기가 수수깡처럼 부러지거나 잘렸다.

마왕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십여 명의 천족을 베어 버리고 북쪽 숲으로 사라졌다.

뒤늦게 북부군 총사령관과 지휘관들이 마왕의 뒤를 따라붙었다.

마왕이 혼자 달아나자 마족들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지금까지 마왕이 전장에서 휘하의 마족을 버리고 달아난 예가 없어서다.

우왕좌왕하는 마족들 머리 위로 계속해서 ‘검의 화신’이 떨어져 내렸다.

‘검의 화신’은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얼마 뒤 마기가 고갈된 마족들이 하나 둘 ‘검의 화신’에 맞아 꼬꾸라졌다.

절반에 가까운 마족들이 쓰러지자 연적하는 주변을 살폈다.

전장은 확실히 천족의 지배하에 있었다.

천족에게 자신의 도움이 필요 없겠다고 생각한 그는 북쪽으로 날아갔다.

화르르륵-!

섬뜩한 소리가 들려오자 마왕은 돌아서며 신경질적으로 바드카니발라를 휘둘렀다.

푸시시시-.

날아오던 불덩어리가 소멸했다.

멀리서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아쉽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마왕의 검이 아카굴라(불덩어리)의 주법을 저렇게 간단히 파훼할 줄이야!

마왕이 북부군 사령관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벌레만도 못한 놈!”

본래 북부군 사령관은 마왕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건 천족과 마족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마왕은 안중에도 없는 천족들이 자신을 물고 늘어지자 부글부글 끓었다.

쳐 죽이고 가자니 대종사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고, 그냥 가자니 날파리처럼 달라붙는다.

‘천족들을 뒤에 달고 갈 수는 없다.’

저들을 꼬리처럼 달고 가느니 조금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정리하는 게 낫다.

뜻을 정한 마왕은 천족군 지휘관들에게 달려갔다.

십여 장(약 30미터)의 거리를 단숨에 좁힌 그가 바드카니발라를 휘둘렀다.

슈아아악-.

바드카니발라에서 일어난 가공할 마기가 천족 지휘관들을 덮쳤다.

하지만 천족군 지휘관들은 쉽게 당하지 않았다.

검공에 자신이 있는 천족은 검을 뽑아 들었고, 주법이 뛰어난 자는 주법을 펼쳤다.

진검강과 주법으로 만들어진 불과 바람과 벼락이 마기를 때렸다.

꽈르릉! 꽈광-!

어둠 속에서 형형색색의 불꽃이 튀었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그 불꽃 하나하나에는 파괴적인 힘이 실려 있다.

진검강과 각종 주법의 폭발에 주변의 나무가 수수깡처럼 부러졌다.

“크윽!”

폭발의 순간 ‘오브리나의 막(膜)’으로 천족 지휘관들을 보호했던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엉겁결에 ‘오브리나의 막’을 펼쳐 피해를 줄였지만 폭발의 여파는 고스란히 그의 몫이었다.

“호오! 제법이구나. 이것도 막을 수 있겠느냐?”

마왕이 놀리듯 말하며 바드카니발라를 연거푸 휘둘렀다.

슈아아악- 슈악-.

두 개의 마기가 줄지어 천족 지휘관들에게 밀려갔다.

깜짝 놀란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는 본능적으로 오브리나의 주법을 외웠다.

“오브라나 데 레오람(궁극의 방어)! 쿨럭!”

기침과 함께 파르스름한 빛깔의 막이 한차례 요동치더니 스르륵 사라졌다.

내상을 생각하지 못하고 펼친 주법이 도리어 그에게 화가 되었다.

주법이 깨지자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는 다급하게 검을 들어 가슴 앞에 세웠다.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뒤늦게 레오람의 한 단계 아래인 ‘히즈만타 오브라나(절대의 방어)’의 주법을 펼쳤다.

우웅-.

‘오브라나의 띠’가 미처 다 생성되기도 전에 마기가 들이닥쳤다.

콰아아-.

오브라나의 띠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바드카니발라가 일으킨 마기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슈아아악-.

마기가 천족 지휘관들을 덮치기 직전 뒤쪽에서 광풍이 몰아쳐 왔다.

구천구검 삼 식 풍천소축(風天小畜)의 검풍이었다.

노도처럼 밀려오던 마기가 풍천소축의 바람에 주춤주춤 뒤로 밀려났다.

바드카니발라의 마기가 뒤로 밀리자 마왕은 즉시 검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대종사가 도착하기 전에 다시 북쪽 숲으로 줄행랑을 쳤다.

마왕이 사라지자 천족 지휘관들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천족 지휘관들의 머리 위로 하얀 구름 한 뭉치가 빠르게 지나갔다.

운종술로 날아가는 연적하였다.

그걸 본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진신의 권능 앞에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대종사가 조금만 늦었어도 천족 지휘관들은 마기에 온몸이 난자당했을 게다.

마왕의 마기에 죽으면 부정하다 하여 천계로 돌려보내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객지에서 개죽음을 당하는 셈이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북쪽 숲을 보던 퀴리아노스 참모장이 중얼거렸다.

“마왕은 죽겠죠?”

“그러겠지.”

잠시 후 북부군 사령관 프리타 우베르토는 천족 지휘관들과 함께 왔던 길을 돌아갔다.

콰드드드득-!

마왕은 뒤쪽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에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헉!”

거대한 붉은 검이 숲을 반듯하게 밀며 일직선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 저건 대체…….”

그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모습에 놀라 멈칫했다.

빽빽한 숲에 숨어서 북쪽으로 달아나고 있는데 저런 식의 대응이라니!

이거야말로 벼룩 하나 잡겠다고 초가집을 태우는 격이었다.

한순간 붉은 검의 크기가 더 커졌다.

그만큼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뜻이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마왕이 속도를 더 끌어 올리려고 하는 순간이다.

쾅! 쾅! 쾅!

번개처럼 마왕의 좌우편과 뒤쪽에 거대한 검이 내리꽂혔다.

눈 깜짝할 순간 검벽에 둘러 싸이게 된 마왕의 입이 쩍 벌어졌다.

자신이 아는 한 이 세계에 이런 검은 없었다.

아니, 이건 검이 아니다.

이렇게 큰 검을 어느 누가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거검 바드카니발라마저도 저 검 앞에서는 이쑤시개에 불과했다.

“허억!”

마왕의 눈이 부릅떠졌다.

숲을 밀며 전진해 오던 검이 어느덧 코앞까지 와 있었다.

이대로라면 좌우편과 뒤편이 검벽에 막힌 상태에서 절단당하고 말 게다.

위기를 느낀 마왕은 바드카니발라로 좌측의 검벽을 힘껏 내리찍었다.

콰앙-.

손목이 부러질 듯 아프게 쳤건만 검신은 멀쩡했다.

콰앙! 콰앙! 쾅!

어지간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법도 한데 당황한 마왕은 검신만 찍어 댔다.

콰앙! 콰직-!

계속된 충격을 견디다 못한 신기 바드카니발라가 뚝 부러져 나갔다.

“어?”

황망한 얼굴로 부러져 나간 바드카니발라를 보는 마왕을 붉은 검이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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