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천구검-909화 (909/1,339)

909회. 호위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중양절의 무림대회가 끝났지만 세상은 잠잠했다.

유명교와 대적하겠다고 사람들을 끌어모은 호천맹과 남맹이 움직이지 않아서다.

사람들은 모르고 있지만 호천맹과 남맹은 유명교에서 이미 손을 뗀 상태였다.

스스로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문제는 유명교를 빌미로 끌어모은 수백 명의 고수들이다.

애초에 호천맹과 남맹은 유명교주와 천외이선이 사라지면 나머지 잔당들을 척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적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 그들의 계획은 연기되고 말았다.

답답할 만도 한데 호천맹과 남맹은 석경장에 사자를 보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호천맹은 무림대회의 사건 이후 그의 눈치만 봤고, 남맹의 상황도 비슷했다.

그러다 보니 예기치 않은 일들이 일어났다.

무림대회를 통해 끌어모은 고수의 숫자는 호천맹이 삼백, 남맹이 이백이다.

호천맹과 남맹의 총단에서는 하는 일도 없이 각각 삼백 명과 이백 명을 먹여 살려야 했다.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고정적으로 지불하는 월봉(月#)이 문제였다.

그동안 맹에서는 무인별로 은자 닷냥에서 열 냥까지를 차등해서 지급했다.

그건 호천맹과 남맹으로 이어졌다.

월봉으로 호천맹은 매월 이천 냥, 남맹은 천팔백 냥의 은자가 나갔다.

그건-아직 이권(利權)을 따내지 못한-호천맹과 남맹의 총사부에게 큰 부담이었다.

결국 호천맹과 남맹의 총사부는 대륙의 십대상방에 손을 벌렸다.

정식으로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각 총사부의 그런 결정이 지금까지 수면 아래에 있던 호천맹과 남맹의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리게 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

***

하남성.

낙양.

고도(古都) 낙양은 인구가 많고 상업이 발달한 만큼 상방 간의 경쟁도 치열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상방은 두 개다.

대륙의 십대상방에 이름을 올린 금와상방과 상조상방이 그것이다.

두 개의 상방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행보를 보였다.

예컨대 금와상방이 호천맹으로 인맥을 넓혀 나갔다면, 상조상방은 남맹과 가까웠다.

사실 금와상방이 호천맹을 선택한 것은 상조상방이 남맹과 밀착한 탓이다.

상조상방의 손월 방주는 한때 남궁세가의 생존자들을 식객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남궁세가와 친하게 지냈다.

그가 남궁세가의 경천대를 호위로 고용한 일은 지금도 설화인(说话人, 전문 이야기꾼)들의 입에 오르내리곤 한다.

재건에 성공한 남궁세가는 상조상방의 도움을 잊지 않았고, 그들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그런 상조상방과 경쟁해야 하는 금와상방이 호천맹으로 기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금와상방.

방주의 집무실에 세 사람이 마주 앉았다.

방주인 구본웅과 곽양인 대행수, 그리고 방주의 장남인 구자서 행수다.

곽양인이 운을 뗐다.

“호천맹에서 정식으로 후원을 요청하였습니다.”

“얼마나?”

구본웅의 질문에 곽양인이 답했다.

“금액은 상방의 재량에 맡긴다고 하였습니다.”

“재량에 맡긴다라……. 실로 무서운 말이로군.”

구본웅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차라리 얼마를 내라고 하지 ‘알아서 바치라’는 식이면 정말 골치가 아프다.

“그렇습니다. 하남성에 있는 다른 십대상방의 후원금과 차이가 나면……. 돈을 주고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겁니다.”

“호천맹에서 무림대회로 뽑은 인원이 삼백 명이라고 했나?”

“예, 현재 그들에게 지급하는 월봉만 이천 냥이 넘습니다.”

“추가 수입원이 없는 호천맹에서 손을 벌릴 만한 금액이로군. 남맹은?”

“이백 명을 뽑았고, 월봉으로 일천팔백 냥 정도가 지급되고 있다 들었습니다.”

“남맹도 새로 돈이 들어올 구멍은 없지 않나?”

“그들도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은 십대상방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제외됐겠고?”

“우리 금와상방은 지난해부터 확실하게 호천맹에 후원을 해 오고 있으니까요.”

구본웅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남성에는 십대상방이 세 개가 있다.

낙양의 금와상방과 상조상방, 그리고 정주의 중원상방이다.

그중에 금와상방이 호천맹 쪽, 상조상방이 남맹, 마지막으로 중원상방은 입장이 불분명했다.

문득 구본웅이 물었다.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인수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나?”

얼마 전까지 마교는 하남성 일대를 돌아다니며 상단을 약탈해 갔다.

그 여파로 휘청거리는 상방이 여럿 생겼는데 진평상방과 일심상방도 그런 곳이었다.

금와상방도 피해를 입었지만, 구본웅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흔들리는 상방들을 인수하려 했다.

“은자 십만 냥에 잠정 합의를 보았습니다만……. 갑자기 상조상방이 끼어들면서 거래가 멈춘 상태입니다.”

“놈들이 부르는 금액은?”

“십오만 냥입니다.”

“개 같은 놈들.”

오만 냥의 차이는 크다.

자신이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방주래도 흔들릴 금액이었다.

“상조상방에 진짜 인수 의사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인가?”

“상조상방 역시 크게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장 그들에게 삼십만 냥이라는 여유 자금이 있겠습니까? 인수의사가 있어서라기보다……. 방해하려는 수작 같기도 합니다.”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금액만 잔뜩 올려놓고 빠질 수도 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고민하던 구본웅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진평상방과 일심상방의 방주에게 전하게. 시월 말일에 상월정(霜月停)에서 인수 문제를 매듭짓자고. 상조상방이 더 관여하기 전에 담판을 지어야겠어.”

“그들이 상조상방에도 정보를 흘릴 겁니다.”

그러자 구본웅이 차갑게 말했다.

“호천맹에 후원금과 함께 지원을 요청하게. 금와상방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 줘야겠네.”

“알겠습니다.”

곽양인의 눈에 결기가 어렸다.

그도 ‘상조상방이 덤벼들 엄두도 내지 못하게 밟아야 할 때가 되었다’는 데 동의했다.

그때 구자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방주님, 상조상방은 남맹의 자금줄인데 괜찮겠습니까?”

“여기는 합비가 아니라 낙양이다. 호천맹이 자기들 안방에서 남맹이 설치게 둘 것 같으냐?”

곽양인도 한마디 했다.

“남맹이 끼어들면 호천맹도 수수방관하지 않을 걸세. 그랬다가는 호천맹이 와해되고 말 테니까.”

“아…….”

구자서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확실히 지금은 상조상방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상월정에 피바람이 예고되었다.

***

맹진현.

고성촌.

연가무관 별채.

이른 아침.

와룡검객 연무백이 의아한 얼굴로 금와상방의 곽양인 대행수와 노규 행수를 보았다.

오래전 어머니(백미주)가 수결한 차용증을 돌려받은 뒤로 금와상방과의 거래를 끝냈는데, 무슨 일로 또 찾아왔는지 모르겠다.

곽양인이 먼저 운을 뗐다.

“노 행수를 통해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 상방의 일을 돕다가 받으신 고초를 생각하면 진즉에 찾아뵀어야 하는데……. 늦었습니다.”

“별말씀을요. 상단이 큰 피해를 입었는데 차용증을 돌려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거 혈제의 공격으로 방주의 아들인 금린대주와 대원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 그 일로 연무백은 금와상방에 빚을 진 심정으로 지냈다.

“저희 금와상방에서 최근 새로 고용한 무사들은 거의 대부분 칠파일문의 속가제자들입니다. 자존심이 아주 강한 사람들이지요.”

“그렇습니까.”

연무백은 적당히 맞춰 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왜 자신에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연 관주님의 능력을 높이 삽니다. 연 관주님을 정식으로 초빙하고 싶지만, 무관을 운영해야 하시니 그건 어렵겠지요? 그래서 말씀인데, 곧 있을 중요한 모임의 호위 책임자가 필요합니다. 그날 우리가 새로 고용한 무사들을 지휘해 주십시오. 보수는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칠파일문 속가제자들의 지휘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존심이 강해서 우리의 지시에 잘 따르지 않습니다. 솔직히 무력으로 그들을 제압할 만한 고수도 없고요. 그래서 연 관주님께 찾아온 것입니다. 연 관주님이라면 믿을 수도 있거니와, 우리 상방과 함께 일해 본 경험도 있어서 말입니다.”

“흐음…….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당장 뭐라고 말씀드리기가…….”

연무백은 살짝 뜸을 들였다.

보수가 얼마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덥썩 돕겠다고 나서기가 뭐해서다.

“시월 말일에 중요한 모임이 잡혀 있습니다. 그날 새로 고용한 무사들을 지휘해 주시면 은자 오백 냥을 사례비로 드리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시간을 끌 것도 없었다.

단 하루 일하면 은자 오백 냥을 준다는데 마다할 바보가 있을까?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곽양인은 준비한 계약서를 탁자 위에 펼쳤다.

***

시월 말.

금와상방.

이른 아침.

금와상방을 찾아간 연무백은 곽양인 대행수와 함께 상방의 뒤뜰로 향했다.

“그런데, 연 관주는 칠파일문의 속가제자들과 함께 일해 본 경험이 있소?”

계약 관계라 그런지 존대를 하던 대행수의 말투는 하오체로 바뀌어 있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워낙 뻣뻣한 사람들이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게요.”

“알겠습니다.”

연무백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와룡장의 무공은 칠파일문에 뒤지지 않는다.

연적하에게 비전의 심결을 배운 뒤로 그런 생각은 더 굳어졌다.

오래도록 함께 일할 사이도 아니고 자신의 지휘에 따르지 않으면 굴복시키면 그만이다.

뒤뜰에 접어들자 오십여 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일반 무인과 달리 안광이 형형한 게 과연 칠파일문의 속가제자들다웠다.

잠시 후 곽양인이 무인들에게 연무백을 소개했다.

“이분은 와룡검객 연무백 대협이시오. 연 대협이 오늘 경호의 총책임자외다. 이제부터 연 대협의 지휘에 잘 따라 주시기 바라오.”

말을 마친 곽양인의 손짓에 연무백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연무백입니다. 비록 하루 동안의 인연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

무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얼굴도 아니었다.

연무백은 내심 안도했다.

칠파일문 속가제자들이라 조금 뻗댈 줄 알았는데 눈빛들이 좋았다.

간단한 상견례가 끝나자 곽양인이 말했다.

“회합은 정오에 시작되오. 상월정을 오늘 하루 빌렸으니, 지금부터 외부인이 드나들지 못하게 해 주시오.”

당장 상월정으로 가서 입구를 틀어막으라는 소리였다.

“알겠습니다.”

연무백은 즉시 오십여 명의 호위들과 함께 상월정으로 이동했다.

한 식경(약 30분) 후, 상월정에 도착한 연무백은 고개를 갸웃했다.

상월정에는 이미 금와상방의 무사들이 깔려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솔직히 저 정도만 해도 괜찮겠다 싶은 숫자였다.

‘아무리 상조상방 때문이라고 해도 좀 과한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연가무관의 제자인 송중문이 달려와 넙죽 인사를 했다.

“사부님. 오셨습니까!”

“금린대도 왔느냐?”

연무백이 주위를 가볍게 둘러보았다.

혈제의 손에서 살아남은 금린대를 새로 정비했다더니 이곳에 투입한 것일까?

“예, 사부님이 총책임자라는 소식을 듣고 오시기만 기다렸습니다. 휴우! 사부님을 뵈니 이제야 좀 마음이 놓입니다.”

“쯧! 칼 밥을 먹겠다는 사람이 그렇게 소심해서야. 회합장의 호위가 무어 그리 위험하다고.”

그러자 송중문이 당황스러운 얼굴로 되물었다.

“상월정에서 큰 싸움이 일어날 때를 대비해서 사부님을 초빙했다고 하던데, 모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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