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회. 치안대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욕망 앞에 정직하다.
특히나 대귀족들은 욕망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건 손에 넣어야 하고, 호기심으로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짓도 서슴없이 한다.
스테프너가 경험한 대귀족들은 그랬다.
그래서 그는 저 젊은 대귀족의 음습한 욕망에 희망을 걸어 보기로 했다.
사실 그것 외에 그가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런데 그게 통했다!
무엇이나 하겠다는 말이 대귀족의 호기심을 자극했던지, 싱크레어 지터를 안고 있던 엘리오 라고아 백작이 관심을 보인 것이다.
“너 같은 범죄자를 어디에 쓴다고?”
도박의 순간 스테프너는 혀끝으로 입술을 핥았다.
이제는 진짜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이다.
그는 자신이 저 대귀족의 숨겨진 욕망의 창구가 되기를 바랐다.
“저는 백작님에게 무엇이든 바칠 수 있습니다. 최고 등급의 마약, 미녀…… 그리고 미식가들 사이에 최고 재료로 알려진 ‘말하는 고기’도…….”
그때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그리고 크나우프 대공가 기사단장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창고 안으로 들어왔다.
스테프너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은밀한 제안을 다른 사람이 알면 안 되기 때문이다.
파비안이 싱크레어 지터를 본 후에 뻣뻣하게 서 있는 스테프너의 앞으로 다가갔다.
“너, 이름이 뭐냐?”
“스, 스테프너입니다.”
“아, 네놈이 납치범의 리더였군. 어이, 너! 무릎 꿇고 있는 놈! 너도 납치범이냐?”
그러자 베리트가 급히 답했다.
“아, 아닙니다! 저는 길드장의 지시를 전달하러 왔습니다.”
파비안이 다시 스테프너에게 고개를 돌렸다.
“다른 두 놈은?”
“저쪽에 있습니다.”
말과 함께 스테프너는 최대한 옆으로 눈알을 굴렸다.
뒤늦게 두 개의 고깃덩어리를 발견한 파비안이 인상을 찌푸렸다.
“에이, 눈 버렸네. 너 이 새끼! 일부러 보게 만든 거지?”
말과 함께 파비안은 스테프너의 정강이를 힘껏 걷어찼다.
순간 ‘악!’ 하는 비명과 함께 스테프너의 정강이 뼈가 부러졌다.
엘리오의 잠력에 잡혀 움직이지 못해 생긴 일이었다.
무릎 아래 부러진 정강이가 직각으로 꺾였지만 스테프너의 몸은 여전히 ―마치 허공에 박제라도 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스테프너의 상태를 알아차린 파비안이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아, 그 새끼! 못 움직인다고 말을 하지. 나만 나쁜 사람으로 만드네.”
파비안이 곁으로 돌아오자 엘리오가 그에게 싱크레어 지터를 넘기며 물었다.
“그런데 ‘말하는 고기’가 뭔지 알아? 저놈이 나에게 ‘말하는 고기’를 바치겠다고 하는데, 뭔지 알아야 대답을 하지.”
“예? 저런 개새끼를 봤나. 그거 사람 고기입니다.”
“사람 고기?”
엘리오가 황당한 얼굴로 눈을 끔뻑였다.
무슨 특이한 야수인 줄 알았는데 사람 고기라니?
울컥한 엘리오가 쏘아보자 스테프너는 황급히 눈을 내리깔았다.
‘아아, 어쩌다 하필 저런 병신 같은 샌님에게 걸려서…….’
아무래도 분위기를 보니 살아나기는 틀린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한 스테프너가 발작적으로 말했다.
“씨벌! 죽이든 살리든 꼴리는 대로 하쇼. 나도 이제 미련 없수다.”
납치범의 말에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라고아 백작 각하! 저런 놈은 곱게 죽이면 안 됩니다.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발 죽여 달라고 빌게 만들겠습니다!”
크나우프 대공가의 기사단에는 고문에 특화된 기사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을 부르면 상대를 애걸복걸하게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말하는 고기’의 실체를 알고 분노한 엘리오가 스테프너의 처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리 없다.
그는 즉시 스테프너 앞으로 뚜벅뚜벅 다가갔다.
“너, 사람 고기 좀 먹어 봤냐?”
“흐흐, 나는 어린애의 보들보들한 고기를 좋아하오. 당신도 한번 맛보면 영원히 그 맛을 잊지 못할 게요.”
“너는 정말 죽어 마땅한 놈이구나.”
“당신이 조금만 늦게 왔어도 내가 그 애를 잡아먹었을 거요. 나를 쳐다보면서 살려 달라고 애원할 때의 얼굴을 당신도 봤어야 하는데……. 씨발.”
“아! 그래서 이 줄에 매달았던 거구나? 정육점 고기처럼.”
“대귀족이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시오?”
“이 새끼, 아주 다 내려놓은 얼굴이네. 하긴 죽음을 각오하면 두려울 게 없지. 안 그래?”
“알면 됐소. 빨리 죽이기나 하쇼. 고문을 하려면 하고. 좆같은 거, 어차피 죽기밖에 더하겠어? 내가 씨발, 손톱 발톱 다 뽑혔던 사람이야. 당신들은 죽어도 모르겠지만, 고통이 극에 이르면 느끼지도 못해.”
“저, 저…….”
“와아! 저 개새끼 진짜 혀를 뽑아 버리고 싶네.”
뒤에서 보던 데이먼 아이작 백작과 파비안이 한마디씩 던졌다.
그들과 달리 엘리오의 얼굴은 편안하기만 했다.
“스테프너라고 했지?”
“왜? 벌써 내 이름을 잊었수? 크큿!”
“내가 진짜 궁금한 게 있었거든. 그게 뭐냐면 ‘힘줄을 나누고 뼈를 어긋나게 하는 수법[分筋錯骨]의 끝은 뭔가?’ 하는 거야.”
“어디서 개가 짖어. 빨리 하고 싶은 대로 하라니까.”
“나랑 내기 하나 하자. 네가 이기면 풀어 줄게.”
살기를 포기하고 죽음만 바라던 스테프너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정말 내가 이기면 풀어 줄 거요?”
“어, 나는 거짓말 안 해.”
“그게 뭐든 하겠소.”
“규칙은 간단해. 네가 10분 안에 ‘제발 죽여 달라’고 애원하지 않으면 이기는 거야. 하지만 ‘살려 달라’거나 ‘죽여 달라’고 애원하면 지는 거지. 무슨 말인지 알겠어?”
너무도 유리한 내기에 스테프너가 눈을 끔벅였다.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죽여 달라고 애원하지 않으면 이긴다고?’
살려 달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죽여 달라고 애원을 한다고?
“씨발, 너무하는군. 고문을 하면서 비명도 내지르지 말라는 거요?”
“비명은 질러도 돼. 살려 달라거나 죽여 달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네가 이기는 거야. 그럼 풀어 줄게.”
“만약 내가 지면 어떻게 되오?”
“그냥 그 상태로 끝까지 가 보는 거야. 사는지 죽는지. 늘 그게 궁금했거든. ‘힘줄을 나누고 뼈를 어긋나게 하는 수법’의 끝이 뭔지.”
“그러니까 10분만 애원하지 않으면 풀어 준다는 거 아뇨? 맞소?”
“어, 맞아.”
“까짓것 해 봅시다. 어차피 그냥 있으면 죽을 몸 도전이라도 해 봐야지.”
“그래, 버텨 봐. 그래 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냐. 안 그래?”
“씨발, 10분을 넘기고도 계속하면 당신은 개자식이오. 아니, 마나를 두고 맹세하시오.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마나 프트라스의 저주를 받겠다고.”
엘리오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스테프너를 보았다.
이렇게 막다른 지경에 몰려서도 빈틈없는 일 처리라니!
정말 머리가 좋은 개새끼다.
“그래, 마나를 두고 맹세할게. 내가 내기의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마나 프트라스의 저주를 받으마. 됐냐?”
“흐흐흐. 좋수다. 해 봅시다! 씨발 것!”
“희망적인 일을 앞두고 욕은 왜 해? 하기 싫은 사람처럼.”
“아, 아닙니다. 제가 전의를 좀 다지기 위해서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십쇼.”
희망이 생긴 스테프너는 말투부터 바꿨다.
내기에서 이긴 뒤를 생각하면 아까처럼 막 나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 전에 몸부터 풀어 줄게. 시원하게 움직이면 고통을 이겨 내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말과 함께 엘리오는 영기를 거둬들였다.
순간 빳빳하게 굳어 있던 스테프너가 ‘악!’ 하는 비명과 함께 풀썩 쓰러졌다.
정강이뼈가 부러져 바로 서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파비안, 데이먼 아이작 백작, 남부 지구 치안대원 크록스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모여들었다.
“시작하겠다. 파비안, 시간을 재라.”
이윽고 엘리오가 몇 차례 손가락을 튕겼다.
스테프너의 몸에서 ‘퍽! 퍽!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빠득! 빠득! 빠드드득―!
뼈 뒤틀어지는 소리와 함께 스테프너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끄아아악―!”
스테프너의 몸이 제멋대로 뭉쳤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큰 고통인지 눈까지 까뒤집혔지만 날카로운 비명은 멎지 않았다.
“아아아악―!”
팔과 다리가 빙글빙글 돌아가고, 등이 엉덩이와 만나 전혀 새로운 모습을 만들기도 했다.
분근착골의 과정에서 부러진 무릎 아래 부분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보고 있던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게 용하다’ 생각할 정도로 극단적인 변화가 쉬지 않고 일어났다.
그러기를 5분쯤 지났을까?
거꾸로 접힌 몸이 압축되어 마침내 공처럼 둥글게 되었을때, 스테프너가 희미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끄으으으…… 죽여…… 줘…… 제발…….”
그러자 엘리오가 무심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가 이겼으니까, 끝까지 가 보자. 우리 모두 원하는 걸 얻게 될 거야.”
떨어져 나간 정강이 부위에서 피가 빠지면서 스테프너의 몸은 점점 더 단단하게 뭉쳤다.
토악질이 나오는 걸 참으며 억지로 버티던 파비안과 크록스가 황급히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자리를 떠났다.
뒤이어 ‘베일럼의 호랑이’라 불리던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데이먼 아이작 백작도 슬그머니 물러났다.
그러나 엘리오의 눈은 한 아름 되게 줄어든 고깃덩어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분근착골은 고깃덩어리가 더 이상 줄어들지 않을 정도로 작아진 뒤에야 멈췄다.
어느새 엘리오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무심한 얼굴로 고깃덩이를 보던 엘리오가 이번에는 베리트를 향해 돌아섰다.
베리트가 덜덜 떨며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살려 주십쇼! 저는 길드장의 말을 전한 것밖에 없습니다.”
“길드장이 싱크레어를 소각하라고 시켰다 들었다.”
“예? 예…….”
“너는 그걸 그대로 전했고, 그래서 스테프너가 내 제자를 먹으려고 했지. 맞나?”
“저, 저는 말단에 불과해서……. 아무런 의견도 낼 수가 없었…….”
엘리오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베리트의 머리가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단숨에 베리트까지 처리한 엘리오가 라르바 오마르 백작과 데이먼 아이작 백작에게 다가갔다.
“치안대에서 이번 사건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요?”
그러자 라르바 오마르 백작이 데이먼 아이작 백작을 보았다.
북부 영주인 그는 파티마 공국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티마 공국 사정에 어두운 건 데이먼 아이작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솔직히 치안대에서 도우널 비건 백작을 어떻게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도우널 비건 백작의 조사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의 이름이 크나우프 대공령까지 알려진 건 아니라서.”
“아…….”
그제야 엘리오는 데이먼 아이작 백작이 자신처럼 외부인임을 깨달았다.
‘어쩐다.’
싱크레어야 크나우프 대공가로 가면 되지만, 이그나스에서 지내야 하는 안드리아 지터가 살짝 신경 쓰였다.
그때 남부 지구 치안대원 크록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우널 비건 백작을 동부 지구 치안대에서 조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도우널 비건 백작이 아텐시오 카티스 공왕 전하의 사돈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