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화 니탕개가 발악하다.
많은 수의 야인이 숲을 빠져나갔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야인들이 남아 뒤를 따르려고 했다.
아니, 자리를 지켰다.
함성이 굉음과 비명으로 변하면서 산하가 크게 울고 있었다.
고삐 줄을 잡은 전사들이 인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야기했다.
“앞에서 난리군. 근데 어째서 우릴 앞으로 보내지 않은 거지?”
“그거야, 믿을만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했겠지.”
“우릴 의심한 거니?”
“그게 아니라, 우리보다 자기를 더 믿는다는 이야기다. 빠르게 달려서 조선왕의 목을 베어야 하는데 약한 우리보다 강한 자신과 부하들을 믿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니?”
“하긴.”
“그래서 우릴 뒤로 보내고 앞에서 달린 거다. 만약 우리가 앞에 섰다면 그대로 투항하면 된다. 중앙에서 니탕개 놈과 함께했다면 놈을 죽이고 조선군과 함께 부하 놈들을 죽이면 된다.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가 해를 입게 되는 일은 없었을 거다.”
숲에 몸을 숨긴 채 전장으로 달려가지 않는 전사들이 서로 이야기했다.
그들은 니탕개의 부하였지만 ‘효정’이라는 자를 따르는 자들이었다.
효정과 함께 니탕개에게 머릴 숙였지만, 니탕개를 따르는 척하며 복수를 꿈꿔왔던 자들이었다.
산을 울리는 비명이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있었다.
회령진 방면의 숲 너머에서 말발굽 소리가 일어났다.
“온 거니?”
“그런 거 같다.”
뒤에서 들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바람에 나뭇가지들이 흔들리고 땅에서 일어나는 진동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전사들을 이끄는 효정이 이야기했다.
“양팔에 붉은 끈을 매어라. 조선군과 함께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제 우리가 얻게 된 한을 풀 시간이 왔다.”
“예! 칸!”
칼을 뽑으면서 싸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양팔에 붉은 끈을 매면서 달려오는 조선군이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우레와 천둥이 온 천지를 메우면서 떨게 하고 있었다.
계곡에 몰린 니탕개와 야인들이 십자 포화를 받고 있었다.
“발포하라!”
“계속해서 화살을 쏴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삼면에서 포탄과 화살비가 날아들었다.
화차에서 발사된 신기전들이 불비가 되면서 전사들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신기전을 막기 위해 전사들이 방패를 들었고, 그 위에 박힌 신기전들이 큰 소리를 일으키게 됐다.
펑!
“크아악!”
옆에 있던 전사가 얼굴을 감싸면서 비명을 질렀다.
방패에 박힌 신기전이 폭발을 일으키면서 작은 철편 조각들을 뿌렸다.
그리고 파편을 맞은 전사가 괴로워했으니, 그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혼란에 빠진 전사들의 모습을 보면서 니탕개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눈을 크게 뜨고 사고가 멈춘 듯했다.
그런 니탕개에게 추장인 율보리가 화살을 쳐내면서 크게 소리쳤다.
“니탕개!”
“…….”
“니탕개! 후퇴해야 한다!”
“……?!”
“이대로면 다 죽는다! 조선군의 유인에 우리가 걸렸어! 물러나서 부하들을 지켜야 해!”
율보리의 외침을 듣고 니탕개가 정신을 차렸다.
‘후퇴를 한다고……?’
감히 상상하지 못한 일이자 결과물이었다.
그대로 물러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부하들의 죽음만 남기는 일이었다.
그것과 같은 참담한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자존심과 추장으로서의 권위에 흠결이 가는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하지 못했다.
물러나지 않으면 손에 쥔 권력과 모든 힘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
이를 물며 기수를 뒤쪽으로 돌리려고 했다.
“지금, 바로……!”
그때 함성과 비명이 뒤에서 크게 일어났다.
“쳐라!”
“와아아아!”
“……?!”
숲에서 튀어나온 자들이 전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처 파악하지 못한 매복한 조선군인 줄 알았다.
하지만 행색이 부하들과 비슷했으니, 그들이 조선군이 아닌 후위를 지키는 전사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어…어째서 저놈들이……!”
효정과 그의 무리가 자신의 부하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철 두정갑을 입은 기병들이 숲에서 나와 소리를 일으켰다.
“쓸어내라!”
철 두정갑은 조선군의 상징이었다.
조선 기병들이 숲에서 나타나서 효정의 부하들과 함께 자신의 부하들을 도륙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정신이 나갈 뻔했다.
이번에는 아얀이 니탕개에게 소리치면서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효정임다! 놈이 우릴 배신했슴다! 조선이 우릴 끌어들이려고 기병들을 출전 시켰슴다!”
‘효정이라고……?!’
아얀의 소리침을 듣고 모든 것을 알게 됐다.
“……?!”
어째서 조선군이 미리 기다렸었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자신과 전사들이 공격할 것이라는 것을 누가 알렸는지 알게 됐다.
효정은 자신에게 복종한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부족민을 위해서 머리를 숙인 자였다.
다른 추장들은 자신의 지위를 지키려다가 죽임을 당했기에, 부하들이 실망하면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들을 모아서 세를 불렸었다.
그리고 효정과 그의 부하들을 앞장세워서 다른 부족을 공격하고 피 흘리게 했었다.
마땅히 자신에게 반기를 들 수 있었다.
그가 조선군과 내통하여 자신을 사지로 내몰고 있었다.
퇴로를 막은 조선군은 아무래도 앞서 출전했었던 자들 같았다.
“효정! 이 개 같은 놈! 크아아악!”
고함을 치면서 배신을 한 부하에 대한 분노를 드러냈다.
하지만 노성을 일으킨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조선군의 화살이 날아들고 있었고 포탄이 날아들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찾아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이대로 조선군의 화살을 맞고 죽거나, 사로잡혀서 사지가 뜯기고 목이 베일 것이라는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때문에 부하들을 버려서라도 도망쳐서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혹시라도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멍이 없는지 살피기 시작했다.
칼로 화살을 쳐내면서 주위 사방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고갯길 위를 보았고,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저놈들은……?!’
사람 위에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를 상징하거나 거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은 아니었다.
공격을 알리는 명령기였고, 조선에 귀의했을 때 군에서 배워서 알게 된 것이었다.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깃발이 묘했다.
그리고 눈에 힘을 주면서 고지에 선 사람들을 보았으니, 그중 한 사람은 여느 조선군과 다른 갑옷을 입고 있었다.
철편이 엮인 찰갑은 병졸의 갑옷이었고, 갑옷이 옷 안감에 감춰진 두정갑은 장수들과 군관들의 갑옷이었다.
하지만 고지에 서 있는 자는 경번갑을 입고 있었다.
사슬과 철판으로 엮인 형태로 조선의 옛 왕이 입었었던 갑옷이었다.
그 왕은 조선을 세웠던 창건 군주였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니탕개가 고지에 선 사람을 보면서 어떤 인물인지 짐작했다.
‘설마, 조선왕인가……?!’
생각할 수 있는 인물이 한 사람밖에 없었다.
조선 왕으로 여겨지는 자가 오만한 장소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존재를 확인한 순간, 죽음이라는 절망에서 희망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빛이 나오는 구멍이 매우 좁았지만 반드시 뚫어야 했다.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야 했다.
“조선왕이다!”
“……?!”
“살고 싶으면 온 힘을 다해서 놈들의 포위를 뚫어라! 저 위의 왕을 죽이면 우리가 이긴다!”
고개를 가리키면서 니탕개가 소리쳤다.
어깨에 화살을 맞은 아얀이 고통을 참으면서 소리쳤다.
“여기 있다간 다 죽는다! 죽기 살기로 뚫어라!”
다시 니탕개가 소리쳤다.
“돌격! 앞으로! 살고 싶으면 달려야 한다!”
쓰러지던 전사들이 기수를 맞췄다.
“칸을 따라라!”
“돌격해라!”
“와아아아!”
함성을 일으키면서 고삐 줄을 튕기며 달리기 시작했다.
포위 공격을 당하면서 떨던 율보리와 우을기내도 부하들을 이끌면서 니탕개를 따라갔다.
다시 인마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화살을 맞고 쓰러지는 전사들이 있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달리면서 겨우 되살린 기세를 지키려고 했다.
“쳐라!”
“우와악!”
고함을 지르면서 다시 조선군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살기를 가득 풍기면서 계곡을 진동시켰으니, 사수들과 함께 화살을 쏘아 날리던 신립이 이를 지켜보게 됐다.
달려오는 적을 보다가 왼편을 지키는 이순신을 보게 됐다.
그가 화살을 쏘아 날리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근접할 때까지 최대한 말 위에서 떨어트린다! 화살을 계속 쏴라!”
“야! 나으리!”
명을 내리는 그를 보면서 행영에서 나누었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됐다.
행영에서 이순신이 자세한 계획들을 알려줬었다.
‘좌측이 막히면 적은 더욱 중앙으로 몰릴 것입니다. 때문에 방어선을 3선으로 세우셔야 됩니다. 팽배수와 살수를 1선과 2선에 세우시고, 3선에 사수를 세우셔서 원거리에서 아군을 도울 수 있어야. 뛰어난 군관이 2선에 있어야 하고, 부사 나으리께선 3선에서 군을 지휘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하셔야 적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종 9품 권관이 싸워야 하는 방법을 장담하면서 알려줬었다.
그 말을 듣고 기분이 매우 나빴었다.
하지만 어명이 있었기에 그의 계획대로 군사를 지휘해야 했다.
그저 깊은 우려로 들끓는 속을 드러낼 뿐이었다.
‘3선으로 방어선을 치면 적을 막아낼 수 있다고?’
‘예. 부사 나으리.’
‘1기의 기병은 병졸 10명을 당해낼 수 있다. 길이 좁고 아무리 험해도 작정하고 들이치면 막기가 쉽지 않다. 자네 말대로 적을 포위해서 공격한다면 궁지에 몰린 적이 죽기 살기로 싸울 텐데, 위험한 중앙을 돕지 않고 좌측에서 자리를 지키겠다는 건가?’
‘예. 나으리.’
‘만약 자네 말대로 했다가 중앙이 뚫리게 되면 어찌할 것인가? 3선으로 방어선을 세운다 하더라도…….’
‘2선에서 반드시 막아낼 것입니다.’
‘뭐라고?’
‘방어선이 3선인 이유는 군사들에게 패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지우기 위함입니다. 때문에 방어사 영감께서도 뒤에서 받쳐주시는 것입니다.’
‘…….’
‘적의 돌진력이 2선에서 떨어지면 왕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 나으리께서 왕을 잡으시면, 야인들이 몇만이건 반드시 패하게 됩니다. 적에게 왕은 니탕개입니다.’
자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계책이었다.
자신을 이순신이 믿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최선이었다.
나은 방도를 말할 수 없음에 심기가 몹시 불편했었다.
‘일개 권관이 감히 나에게…….’
이순신의 계획대로 싸워야 했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렇게 해야 했다.
그것이 조선을 위한 것이며 자신의 명예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었다.
조선제일장이라는 큰 명예를 역사에 남기고 싶었다.
역사에 이름을 새겨 영원불멸로 남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진지에서 함성이 크게 울려 퍼졌다.
“창을 세워라! 적이 함부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결코 밀리지 마라!”
이순신과 군관들이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활을 내리면서 칼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후위에 있던 사수들이 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적의 마지막 발악이 펼쳐지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