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뽕조선-53화 (53/196)

053화 이순신이 이순신을 배우다.

변경을 지키면서 아버지에게 수없이 서신을 보냈었다.

그러다가 아비로부터 답서를 받았으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서신을 펼쳐서 내용을 읽어 내렸었다.

꼭 아비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서 무관이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비에게 기쁨을 안겨다 주고 싶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 아비로부터 칭찬을 듣고 싶었다.

그런 바람을 가지면서 서신을 펼쳤다가 모든 감정들을 쏟게 됐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기에 더욱 소중했던 아버지가 숨을 거뒀었다.

조정에 사직상소를 올리고 상감의 윤허를 받는 즉시 모든 직책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산으로 향했으니, 아버지의 장례식을 뒤늦게 치르면서 시묘살이를 하게 됐다.

형인 이희신이 아산에 아버지를 모셨다.

아버지가 묻힌 묘 옆에 움막을 짓고서 함께 지켰다.

그리고 시묘살이를 하고 나서야 겨우 부인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아침에 부인이 음식을 싸서 묘 앞에 이르렀다.

“나으리.”

“부인. 참으로 고생하시었소.”

“아닙니다. 제가 어찌 나으리만큼 힘듦이 있겠습니까. 변경에서 고생하시고 이렇게 오셔서 아버님을 모시는데, 저는 그저 집을 지킬 뿐입니다. 부디 이 음식으로 강건함을 지켜주세요. 나으리.”

“고맙소.”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나으리.”

‘방’씨 성에 ‘수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부인이었다.

부인이 보에 싼 음식들을 가지고 왔으니 이를 받은 이순신이 부인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산 아래로 내려가서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움막으로 들어가서 작은 상 위에 음식을 놓기 시작했다.

움막 구석진 자리에서 얇은 이불을 덮고 웅크려 자던 형이 깨어나서 이순신에게 물었다.

“혹시 제수께서 오셨느냐?”

“예. 형님.”

“아산에 아버지를 모셔서 제수께서 고생하는구나. 미안하다.”

“아닙니다. 오히려 아산으로 아버지를 모셔준 덕분에 제가 부인을 이렇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십시오.”

“그래.”

“수저를 드십시오. 먼저 맛을 보십시오. 형님.”

먼 아산까지 와서 시묘살이를 하는 형에게 먼저 음식을 주었다.

형인 이희신이 수저를 마저 들었다.

그리고 상 위에 놓여 있던 밥을 떠먹고 찬 그릇에 담긴 봄나물을 집어서 먹게 됐다.

입을 오물거리면서 맛을 보고 감탄했다.

“제수 실력이 보통 넘는구나.”

형의 칭찬에 이순신이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자신도 수저를 들면서 놓인 그릇에 옮겼던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다.

나무 그릇에 담긴 밥을 거의 비웠을 때였다.

식사를 거의 마쳤을 때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일어났다.

인기척을 듣고 이희신이 이순신에게 말했다.

“누가 온 듯하다.”

“제가 나가보겠습니다.”

상을 치우는 것을 잠시 미뤄야 했다.

상복의 옷매무새를 살핀 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인기척을 낸 사람을 보았으니, 그는 이순신이 몇 달 전에 보았었던 이였다.

“병판 대감.”

이이를 알아보고 이순신이 허릴 굽히면서 인사했다.

그를 본 이이가 옅게 미소를 지었으니, 움막 안에서 나오는 이순신의 형을 보게 됐다.

이희신이 나와서 이이를 보고 허리를 굽혔다.

그러자 이이도 몸을 기울이면서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함께 허리를 편 후에 이희신이 이순신에게 물었다.

“누구신지 알아?”

형의 물음을 듣고 이순신이 대답했다.

“병조판서 대감이십니다.”

“뭐?”

“변경에서 전하와 함께 뵈었습니다. 그땐 이조판서였습니다.”

“……!”

대답을 듣고 이희신이 매우 놀랐다.

그런 이희신의 반응을 보고 이이가 담담한 모습을 보였다.

차분한 말로 그에게 위로를 전했다.

“부친의 부고를 전해 들었소. 어명을 받들어 병조에서 조문을 보냈었는데, 상주를 직접 뵙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소. 부친을 잃은 상주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오.”

“감사합니다. 대감…….”

“이곳에 온 것은 조문을 위한 것도 있지만, 전하의 어명이 있으셨소. 권관과 독대하려는데 괜찮겠소?”

“괜찮습니다.”

“그러면 잠시 자리를 내어주시구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내어드리겠습니다. 대감.”

위로를 전하고 이순신과의 독대를 부탁했다.

이이의 청을 받은 희신이 이순신을 힐끔 보았으니, 잠시 자리를 비울 테니 병조판서와 이야기를 나누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희신이 묘 주위에서 자리를 비우자, 이이가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이순신에게 말했다.

“오랜만일세.”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감.”

“부친의 부고를 듣고서 슬펐을 텐데, 자네에게도 위로의 말을 전하네. 그리고 이것은 전하의 명이 아니네.”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은데 앉아서 나눌 수 있겠나? 움막 안에 자리가 없으면 밖에서라도…….”

“안에 자리가 있습니다.”

“그러한가?”

“소장의 부인이 음식을 주어서 막 식사를 마친 참이었습니다. 상을 치울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움막으로 이순신이 들어가서 상을 정리했다.

음식이 비워진 그릇들을 정리했고, 나중에 부인이 왔을 때 잘 가져갈 수 있도록 보를 쌌다.

그 모습을 이이가 밖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정리된 후에 이순신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했으니, 이이가 수행 관리로부터 보자기를 받고 안으로 들어가서 멍석 위에 앉게 됐다.

이순신이 옷을 꺼내 이이가 깔고 앉을 수 있게 하려 했지만 이이가 손을 들면서 말렸다.

“됐네.”

“하오나.”

“전장에서 자네는 이 바닥보다 더한 곳에서 앉았을 텐데, 나 정도면 호사가 아니겠나. 그러니 이렇게 앉아 이야기하겠네. 그리고 먼저 이것을 받도록 하게.”

작은 책상 위에 이이가 보자기를 올렸다.

그리고 풀었으니, 그 안에 다섯 권에 달하는 책이 있음을 이순신이 보게 됐다.

책을 보면서 이순신이 이이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여쭘을 받고 이이가 대답했다.

“펼쳐서 읽어보게. 나도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까 말야. 자네를 위해서 전하께서 쓰신 것으로 아네.”

답변을 듣고 이순신이 가장 위에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펼쳐서 읽었으니 두 번째 장에 이르렀을 때 그의 눈이 커지게 됐다.

책 안에 수군의 주력 전선이 비교적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또한 전선의 특성들이 쓰여 있었고, 승선하는 군사들의 수와 병종, 지휘관의 수가 함께 쓰여 있었다.

다시 한 장을 넘기자 주요 전법이 쓰여 있었고, 탑재되어 있는 화포를 통해 적 함대와 적선을 상대하는 것이 주된 전술이었다.

상황에 따라 백병전으로 적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가급적 피해야 된다고 쓰여 있었다.

또 한 장을 넘기자 조선 남쪽 바다의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왜적이 침략해 온 것을 가정하여 전투 상황들이 쓰여 있었다.

탄약을 확보하는 일과 군량을 확보하는 일, 수로를 막아 적의 해상 보급 계획을 막는 전략도 함께 쓰여 있었다.

또한 전황이 급박할 때 어떻게 해야 군의 사기를 지켜낼 수 있는지도 쓰여 있었다.

바다를 지켜야 조선을 지킬 수 있었다.

그 깨달음을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이순신이 책을 내려놓으면서 이이에게 물었다.

“혹시, 전하께서 소장을 수군장에 임명하시려 하십니까?”

이이가 대답했다.

“가능하다면 말일세. 가능하다면, 자네에게 당장 수군을 맡기시려는 것이 전하의 어심일세. 하지만 자네를 위해서 3년을 기다리시기로 했네. 삼년상을 잘 치러야, 자네에게도 후회가 없지 않겠나.”

“…….”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잘 보내드리고 다시 관직에 복귀하게. 그러면 전하께서 자네를 수군 장수로 임명하실 것이네. 그전까지 이 책으로 공부토록 하게.”

숨을 돌린 후에 이이가 다시 말했다.

“왜국의 통일이 눈앞에 있네. 도요토미 히데요시라는 자가 왜국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는데, 만약 그자의 욕심이 끝이 없다면 전례 없는 대군을 동원해서 이 나라를 공격할 수도 있네.”

“…….”

“당연히 수군을 앞세울 것이고 말일세. 놈이 조선을 침략한다면 자네가 반드시 막아줘야 하네. 전하께선 자네를 믿고 계시네.”

상감의 신뢰를 이이가 알려줬다.

그 말을 듣고 이순신이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책상 위의 책들을 내려 볼 뿐이었다.

할 말을 모두 전한 이이가 이순신을 가만히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십니까?”

따라 이순신이 일어나면서 이이에게 물었고 대답을 들었다.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잔뜩 있네. 전하께서 명하신 일들이 있으니까 말일세. 그러니 자네도 최선을 다하게.”

“예. 대감.”

“이만 가보겠네.”

옷을 고쳐 입으면서 움막에서 나왔다.

따라 이순신이 나와서 이이를 향해 허리를 굽혔으니, 그를 한 번 쳐다본 후에 돌아서서 이이가 걸음을 옮겼다.

조선 최고의 장수가 될 자를 보고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부디, 건강하게!’

작은 바람을 남겨두고서 산을 내려갔다.

그리고 이이가 사라지고 나서야, 자리를 비웠던 희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희신이 순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대감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느냐?”

이순신이 대답했다.

“전하께서 절 믿으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송한데, 홀로 제가 묘를 지켜도 되겠습니까?”

“네가 말이더냐?”

“대감께서 주신 책이 있습니다. 그것을 제가 홀로 익혀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아버지의 곁을 지키겠습니다.”

“…….”

이순신의 이야기를 듣고 희신이 움막 안을 보았다.

율곡 선생이 놓고 간 책들이 보였고, 동생인 순신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 주어진 것을 깨닫게 됐다.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이순신에게 말했다.

“네가 내려가라.”

“형님?”

“나는 장자이기에 아버지 곁을 지켜야 한다. 너에겐 전하와 이 나라를 위해야 되는 사명이 있으니까, 이곳이 아니라 집에서 익히거라. 그것이 나와 아버지를 위한 일이다.”

희신의 이야기를 듣고 이순신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향한 형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의 소중한 마음을 깨닫고 형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형님. 형님께서 고생하시는 것을 절대로 헛되이 만들지 않겠습니다.”

“그래.”

“종종 올라와서 형님과 아버지를 뵙겠습니다.”

“그래, 그래. 조심히 내려가거라.”

“예. 형님.”

허리를 굽히면서 고마운 뜻을 전했다.

동생의 감사와 인사에 그의 어깨를 희신이 두드려주었다.

그리고 웃는 얼굴로 산 아래로 동생을 내려보냈다.

집으로 돌아온 이순신이 머무는 형수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형수를 비롯한 집안 식구들이 희신의 결정에 동의했다.

그리고 집안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이순신이 상감이 쓴 책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상중이었기에 상복을 벗지 않고 별채에서 공부했다.

별채에 앉아 병조판서가 전달해주었던 책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으니, 첫 권을 다시 세세히 읽으면서 감탄하게 됐다.

‘전하께서 이런 세심한 부분까지 보실 줄이야!’

놀라움이 쏟아졌다.

그리고 각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방법들을 익히기 시작했다.

해전의 기록들을 한 글자도 빠트리지 않고 이순신이 기억했다.

“옥포. 사천. 당항포. 한산도. 학익진…….”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응용한 가상의 전투도 만들어 봤다.

그렇게 이순신이 상중에 수군 지휘법을 터득해 갔다.

이순신이 이이로부터 책을 받았을 때, 이연의 눈앞에서 후원 창이 떠올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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