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7화 박대길과 홍주한이 탈곡기를 판매하다.
듣고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이게 뭔 일이고?! 납품 입찰을 신청받는다고?!”
“예! 단주님!”
“세상에! 탈곡기를……?!”
“우리 상단을 포함해서 탈곡기를 만들 수 있는 상단은 전부 참여하라고 하십니더! 관아에서 탈곡기를 대량 구입해서 백성들에게 대여해 준답니더! 그러면 백성들은……!”
“지주에게 지분을 떼고 남는 소출에서 백분의 일! 그러면 소작농들이 탈곡기를 빌려 쓸 수가 있다!”
“조선에 널린 것이 소작농입니더! 당연히 소작농들에게 탈곡기를 빌려주려면 억수로 많이 필요합니더! 관아에서 대량으로 구입할 낍니더!”
행수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종이를 뒤로 던지면서 박대길이 기뻐했다.
“봐라! 내가 뭐라카드노?! 일단 믿고 함 해보는 거라니까!”
“예! 단주님!”
“상감마마께서 계획이 있으셨다! 이제부터 많이 만들수록 이문도 커지니까! 장인들에게 계속 탈곡기를 만들라고 말해라!”
“예!”
“나는 관아에 좀 다녀올게!”
“알겠습니더!”
“와 씨, 이게 무슨 일이야! 상감마마! 상감마마! 크하하하!”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문턱을 넘으면서 관아로 향하게 됐다.
상감을 믿었던 자신의 판단이 옳았다.
그러한 믿음은 곧 자신의 능력이었고 행수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다시 조선이라는 나라를 고객으로 삼으려고 했다.
함께 백성을 위하고자 했으니, 박대길 외에 또 한 명의 상인이 탈곡기로 상단의 이문을 취하려고 했다.
어린 홍주한이 한성부 관아에서 나왔다.
“후우…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명을 받들면서 장인들을 고용했고, 백성들을 위해 최대한 많이 탈곡기를 만들었었다.
하지만 팔릴 만한 곳이 없어서 큰 손해를 볼 뻔했었다.
이틀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있을 때, 인기척이 나면서 어깨 위로 손이 올랐다.
“홍 단주.”
“박 단주님……?”
“님은 뭐요? 어차피 같은 단주끼리인데. 그리고 이번에 홍 단주와 함께 탈곡기를 납품할 수 있게 되어서 참으로 기쁘오.”
“예.”
“근데 다른 단주들은 다 어디로 갔는교? 분명히 입찰 신청을 하라고 이야기를 들었을 낀데.”
박대길이 홍주한에게 물었고, 홍주한이 주위를 돌아보다가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다른 일을 준비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함께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군. 어찌 되었건 이제 열심히 탈곡기를 만들어야 할 것 같소.”
“예. 박 단주.”
“다음에 보오.”
“예.”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스무살 넘게 차이 났다.
함께 상감을 따라서 무산과 육진에 가며 먹고 자기를 같이 했으니, 박대길은 홍주한을 아들처럼 여겼고, 홍주한은 박대길을 큰아버지처럼 여겼다.
대길은 주한에게 하대할 수 있었지만,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고 같은 단주로서 대해줬다.
두 사람이 함께 입찰 신청을 하면서 납품 허가도 함께 받았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탈곡기를 빠르게 관아에 들일 수 없었다.
그리고 두 상단이 열심히 만들어도 탈곡기가 필요한 백성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어린 홍주한이 박대길에게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다.
박대길도 홍주한에게 목례를 한 뒤 돌아섰으니, 그 두 사람을 다른 상단의 단주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이문희와 그와 함께 하는 단주들이 한성부 관아 앞에서 헤어지는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 상인들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제일로 멍청한 놈들이 탈곡기를 팔게 되다니……!”
“우릴 물 먹이려고 짠, 계략이 아님까?”
“그럴 일은…….”
“아니, 이런 식으로 탈곡기가 팔릴 줄 누가 알았겠슴까? 본디 조정에선 우리에게 지시만 하고 빼앗아 가는 게 당연했던 건데, 상단의 물건을 제값 치르고 사들이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
“누군가 저 두 놈에게 입찰이 있을 거라고 미리 알렸을 검다!”
그 말에 이문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거 없는 이야기는 함부로 말하는 게 아니오.”
“하지만……!”
“조정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데 거기에 상감마마께서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오. 잘못하면 군왕을 모욕한 죄로 우리 목이 날아갈 수 있으니까.”
“……!”
“이번 일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오. 그래야 우리 상단들이 몰락하지 않을 것이오.”
상인들의 입을 조심하게 하면서 이문희가 몹시 경계했다.
그 말에 다른 상인들이 어리둥절해하면서 물었다.
“이 일이 몰락할 만큼의 일입니까?”
다시 이문희가 말했다.
“앞으로 조정에서 일이 있으면 저 두 상단이 맡을 가능성이 매우 높소. 부전 상단은 이전에도 그래왔었고 말이오. 우리가 여태 다뤄왔던 사치품인 비단이나 인삼도 저 상단들이 맡을 수 있소. 그러니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니……!”
이문희가 눈에 불을 켜면서 이를 갈아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미 물이 엎질러진 상황이었다.
다만 촌놈이라 여겼던 자와 어린 자라 여기던 생각을 거두게 됐다.
진정한 적수로 여기면서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상단을 지켜야 했다.
* * *
홍주한의 상단이 탈곡기 입찰에 성공하면서 일이 매우 바빠졌다.
“빨리 만들어야 돼! 하지만 정확히 만들어! 조정에 납품하는데 불량품이 있어서는 안 되니까!”
“예! 행수님!”
“그래도 조정에서 우리가 예상했던 값보다 더욱 잘 쳐줘서 사겠다고 했으니까, 이문이 남으면 자네들에게도 돌아갈 것이네! 그러니까 열심히 하게!”
“알겠습니다!”
장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행수의 말에 대답했다.
그들의 대답을 들으면서 행수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조카뻘이 되는 홍주한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선대 단주님의 유훈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예. 대행수.”
“말씀을 놓으십시오. 제가 아무리 선대 단주님과 함께 해왔지만, 단주님은 단주님이십니다. 절 하대하시면서 부리셔야 됩니다.”
행수의 이름은 ‘홍일택’이었다.
그는 홍주한의 아버지인 홍유하가 도와줬었던 빈민이었다.
홍유하가 베풀었던 양식만을 먹고 살면서 근근이 살았었고, 어머니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홍유하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었었다.
그때 홍유하가 의원에게 어머니를 데려가게 하고 진료비를 주었었다.
또한, 약재를 구해다가 주었었으니, 비록 어머니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었지만 홍유하를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했었다.
그의 단원이 되어 열심히 일했었고 성을 받아 대행수가 되었다.
그리고 은인이 죽은 후에 자식인 홍주한을 위하고자 했다.
홍일택이 자신을 하대하라고 말하자 홍주한이 미소를 보이면서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행수에게 부끄럽지 않은 상인이 되겠습니다. 아버지처럼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상단의 이문도 함께 취할 수 있는 길을 걷겠습니다.”
“…….”
“그리고 이번 일은 상감마마의 은혜입니다. 상감마마의 은혜 덕분에 탈곡기를 팔 수 있었습니다. 천행이 필요하니, 부디 곁에서 도와주십시오.”
“예. 단주님.”
“저 혼자 상단을 이끌 수도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할 수도 없습니다.”
상단의 이름을 되새기면서 주한이 말했다.
비록 상인이지만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일을 벌이려고 했다.
때론 손해를 볼 수 있지만 대의를 믿으면서 나아가기로 했다.
함께하는 자들이 있었고, 때문에 외롭지가 않았다.
홍익 상단에서 제작된 탈곡기가 한성부 관아로 납품되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탈곡기가 전해졌으니, 소작농들을 모아놓고 관리가 시범을 보이게 됐다.
돌아가는 탈곡기를 보면서 백성들이 감탄하게 됐다.
“오오! 정말로 잘 털리는데?!”
“이럴 수가……!”
“세상에……!”
떨어져 나가는 볍씨를 보면서 탄성을 일으키게 됐다.
그리고 시범을 보여준 관리가 탈곡기에서 손과 발을 떼면서 이야기했다.
“보면 알겠지만 이걸 통해서 쌀알을 털어낼 수 있소! 지주에게 소출의 지분을 낸 후에, 100분의 1을 관아에 내면 탈곡기를 빌려다 쓸 수 있소!”
“…….”
“물론 선지불이 아니라, 털어낸 쌀알로 조세를 내도 되오! 전하께서 백성을 아끼셔서 상인들과 함께 만드셨으니, 탈곡기를 쓸 때는 반드시 기억해야 될 것이오!”
탈곡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백성들이 놀라워했다.
“또 전하께서…….”
“우릴 위해 탈곡기를 만드시다니, 세상에……!”
탄성을 일으키는 백성들을 보면서 관리가 미소 지었다.
상감의 선정에 자신이 숟가락 하나 정도는 얹는 영예를 얻게 되었고, 마치 상감의 시선으로 백성을 바라보듯이 흐뭇한 표정을 짓게 됐다.
그리고 관아 문 앞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대여 신청을 받고 있으니, 속히 신청하시오! 신청한 순서대로 탈곡기를 빌려서 쓸 수 있을 것이오! 전하께서 허락해주신 편리함을 누리시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백성들이 움직였다.
“줄을 서시오!”
탈곡기 대여를 위해서 소작농들이 몰려들었고, 그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관리들이 소리치면서 줄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대여를 신청하게 된 백성이 탈곡기를 받았다.
수레 또한 관아에서 빌려주면서 집에 가지고 와서 쌀알을 털기 시작했다.
집 마당에 두고 추수한 양식들을 털기 시작했다.
“와! 이렇게 편리할 수가 있다니!”
“전하께선 이런 걸 어떻게 생각하실 수가 있을까요?”
“그러게 말이오. 부인.”
“생각하신 것도 대단하시지만 저희를 생각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한 것 같아요. 이번에 풍년이라서 양곡을 어떻게 털어내야 할지 고민이 많았었는데, 전하께서 빌려주신 탈곡기 때문에 일찍 끝낼 것 같아요.”
“이건 한 사람이 해도 할 수 있을 것 같소. 내가 쌀을 털고 있을 테니 부인은 어서 아이들을 보시오. 부엌일도 보면서 말이오. 전하 덕분에 우리에게 여유가 생겼소.”
“네.”
한 소작농의 집안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작년에 쌀을 털어내던 속도에 비해 거의 몇 배나 빠르게 쌀을 털어내고 있었다.
또한, 여러 사람이 붙어서 일을 치르는 것이 아닌, 한 사람으로라도 충분한 일이었다.
탈곡기를 사용하는 온 백성이 감탄했고, 상감의 지혜와 그의 깊은 생각에 또 한 번 찬양하게 됐다.
그리고 탈곡기를 만들어낸 상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동래에 부전 상단에서 만들었다니까!”
“한양의 홍익 상단에서도 탈곡기를 만들었다고 들었어!”
“두 상단이 전하와 함께 우릴 위한 기물을 만든 거야!”
박대길과 홍주한에 대한 찬사도 함께 이뤄졌다.
온 백성이 상감과 두 단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탈곡기에 대한 소문이 풍문보다 빠르게 퍼져 나가면서, 그다지 관심에 두지 않을 사람도 탈곡기에 대해서 문의하기 시작했다.
동래부 부전 상단의 본점이었다.
한양에 머물던 박대길이 막 동래 본점에 도착했을 때였다.
본점에서 그를 기다리는 몇 명의 사람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하나같이 고급진 비단옷들을 입고 있었다.
박대길을 만나 억센 억양으로 말하고 있었다.
“아니 단주가 오기를 며칠이나 기다렸었는데 대체 어딜 갔었던 거요?”
“한양에서 볼 일이 있어 다녀왔습니더. 그런데 댁은 뉘시기에 저희 상단에…….”
“저기 서쪽에 가면 낙동강 주변에서 농사짓는 지주요. 이름은 김우녕이고 여서 탈곡기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 와 봤소. 탈곡기를 사서 써보려고 하는데 혹시 되겠는교?”
말투는 거칠었지만 뜯어놓고 보면 공손한 이야기였다.
화난 것 같지만 절대로 화나지 않은 말투였다.
따지는 것 같은 한 지주의 물음에 박대길이 다른 상인들의 분위기를 살피다가 반문하게 됐다.
“관아에 납품하는 것도 있어서 시간이 좀 걸립니더.”
“괜찮소.”
“탈곡기를 만들어서 드릴 때는 겨울이 되어야 가능할 텐데…….”
“아, 어차피 일단 사두면 계속 쓸 수 있지 않겠는교? 그래서 이번 기회에 살 테니까, 여랑, 여, 여, 지주들까지 세 대씩 만들어 주이소. 내년에도 대풍년이 들면 쌀알 털다가 시간 다 보내겠소. 밥맛도 막 추수한 햅쌀이 최곤데…….”
“…….”
“되겠는교?”
“아, 됩니더. 시간만 있다면야 뭐…….”
“오래 쓸거니께 제대로 잘 만들어 주이소. 여기 선불이오.”
“고맙습니더. 신경 써서 만들겠습니더. 완성이 되면 하루 전에 알려드리겠습니더.”
탈곡기에 관심을 보인 지주들이 부전 상단을 직접 찾아왔다.
그리고 선불을 주면서 값을 치렀으니, 올해는 아니더라도 내년부터 탈곡기를 쓰려고 했다.
생각하지 못한 고객들의 방문에 박대길의 얼굴이 해처럼 변하게 됐다.
“봤제? 이제 지주들도 오는기라! 열심히 만들어야 한다!”
“예! 단주님!”
부전 상단뿐만이 아니라 홍익 상단으로도 지주들이 찾아와서 탈곡기 제작을 주문했다.
그리고 뒤늦게 다른 상단들이 탈곡기를 만들려 했지만, 이미 손재주 좋은 장인들을 두 상단에서 데려다가 쓰고 있었다.
또한, 만드는 양도 많아져서 값이 가장 쌀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른 상단들은 탈곡기 제작을 아예 포기하게 됐다.
추수가 이뤄지던 가을의 막바지였다.
나라에서 이뤄지는 모든 소식들이 상감인 이연에게로 전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백성들의 찬양으로 기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