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국뽕조선-121화 (121/196)

121화 율곡을 통해서 용기를 얻다.

이연이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용상에서 일어난 이연의 외침에 화기애애 웃던 신하들의 소리가 단번에 지워졌다.

정적이 정전 안에 돌았고, 신하들에게 외쳤던 이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왜구가 오지 않게 될 거라고?! 무슨 한심한 소리들을 하고 있어?! 내가 여태 뭣 때문에 이 나라를 강한 나라로 만들려는데?!’

얼어붙은 신하들의 얼굴을 이연이 살폈다.

박순과 노수신, 류전의 얼굴이 보였고, 이산해와 류성룡, 정인홍이 보였다.

또한 정철과 이항복, 이덕형이 보였고, 이제신과 함께 서 있던 이이가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상선이 놀라서 목소리를 떨었다.

“저… 전하…….”

이연이 그의 소리를 듣고서 정신을 차렸다.

다시 정전을 돌아보다가 자리 위에 앉았다.

크게 숨을 쉬면서 치솟던 감정을 가라앉힌 뒤, 호흡을 진정시키면서 다시 이야기했다.

“잘 들어. 지금 도요토미 히데요시, 아니 풍신수길 밑에서 싸운 놈들 제대로 포상을 받은 녀석은 그렇게 많지가 않아. 그리고 왜의 영주가 자신에게 보상할 때는 땅으로 준다.”

“…….”

“그러나 그 땅이 없을 땐 어떤 식으로든지 땅을 만들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놈들의 칼이 주군인 풍신수길에게 향할 테니까. 그러니까 경들이 놈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음성을 차분히 하면서 신하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음성 안에 온갖 감정들이 들어가 있었으니, 그 감정은 분노와 두려움이었다.

낮은 음성으로 말하는 상감의 물음에 류전이 침을 한 번 삼키면서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뢰옵기 망극하오나, 조선을 공격해서 조선 땅을 영주들에게…….”

“그렇지.”

“하오나, 풍신수길도 생각할 수 있사옵니다.”

“뭘?”

“소신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이옵니다. 또한 군사들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울 것이온데, 이 나라를 쉽게 취할 것이라고 여길지는…….”

전임 병조판서로서의 이야기였다.

상감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 류전이 말하자, 이연이 황윤길에게 물었다.

“풍신수길에 속한 영주들의 군사를 모으면 얼마야?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

“예. 전하.”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못해도 30만 명 이상일 거다.”

“예……?!”

“뭐 그리 놀라? 조선보다 왜가 땅도 크고 호구 수도 훨씬 많은데?”

“…….”

“그런 병력이 왜도와 조총으로 무장하고 100년 동안 싸워왔는데, 지금 당장 싸우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과인이 볼 땐 절대로 아니야.”

신하들이 모르는 일본의 현실을 알려줬다.

그 말에 신하들이 술렁이면서 상감이 말한 바를 이해하게 됐다.

그럼에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오나, 전하…….”

“나와서 말해.”

“예.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소신도 전하께서 말씀하신 바를 깊이 깨우쳤사옵니다. 분명히 왜와 풍신수길의 사정이 그러하다면 조선을 공격하는 것으로써 그자의 곤란함을 해결할 수도 있사옵니다. 하오나 먼저 처리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사옵니다.”

“어떤 문제를 말야?”

“풍신수길은 이제 겨우 왜를 통일했사옵니다. 때문에 나라 안에서나 밖에서나 정리해야 될 것들이 많사옵니다.”

“…….”

“오랫동안 전란을 겪었기에 망가진 농토부터 복구해야 되오며, 민심부터 달래야 되옵니다. 무엇보다 풍신수길에게 굴복한 영주들 중에서 진심으로 충성을 바치는 영주들은 적을 것이옵니다.”

“…….”

“조선을 침공했다가 그들이 반란을 일으키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사옵니다. 풍신수길도 그 점을 분명히 생각할 것이옵니다.”

그 말을 듣고 이연이 눈을 감아버렸다.

“후우…….”

심호흡을 하면서 심기를 진정시켰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많은 말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렇겠지! 근데 놈이 또라이 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처자식들까지 죽는데 말야! 놈은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다니까?!’

상식적인 논리로는 통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역사 속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았었고, 이순신에게 파격적인 승진이 이뤄지게 하면서 전라좌수사에 임명했었다.

후에 그를 믿지 못하는 참사를 자초하기도 했지만, 나름 도요토미가 조선을 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가 일본을 안정시키기도 전에 전면전을 걸어 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조선 전토가 전화에 휩싸이고, 도요토미는 토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다.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신하들이 알 리 만무했다.

이항복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류성룡도 마찬가지겠지…….’

7년 전쟁이 끝난 후에 ‘징비록’을 썼던 류성룡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명이야 따르겠지만,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떠들어 봐야 공허한 외침이 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상황에 처해지기 전까지는 어느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신하들에게 하는 모든 설명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리고 이항복에게 말했다.

“공조참의의 말이 맞아.”

“…….”

“공조참의의 말을 들으니, 풍신수길이 이 나라를 쉬이 공격하지 못할 것 같아. 하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을 수 있으니까, 왜의 사정을 면밀히 파악해야 돼.”

“예. 전하.”

“조례를 마치겠다.”

“…….”

이연이 끝내 신하들의 세운 뜻을 존중해줬다.

그리고 조례를 마쳤으니, 용상에서 일어난 이연이 다소 무겁게 정전 바닥으로 내려오면서 천천히 걷게 됐다.

대신과 중신들이 머릴 숙이면서 인사를 올렸고, 그 사이로 이연이 지나가면서 정전의 문턱을 넘어섰다.

상감이 나가자 따라 신하들이 나오면서 이야기를 했다.

“뭔가, 억지로 받아주신 것 같으시지 않소?”

“전하께서 말이오?”

“퇴전하시는 모습이 매우 불편해 보이시던데. 대사헌이 볼 때는 아니었소?”

정철과 윤두수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신하들도 두 사람과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으니, 먼저 정전에서 나온 이이가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상감이 지나간 편전으로 향하는 길을 보게 됐다.

정전 뒤로 향하는 길을 보다가 병조참판인 김명원에게 말했다.

“먼저 가 있게.”

“용무가 있으십니까?”

“잠시 전하를 뵙고 병조로 가겠네. 어제 논의했던 대로 일들을 처리하고 있도록 하게.”

“예. 대감.”

발걸음을 옮기면서 편전인 사정전으로 향했다.

병조가 아닌 편전으로 향하는 이이에게 신하들의 시선이 잠시 따라갔다.

그리고 이이가 편전에 도착하자 상감이 상석에 앉은 모습이 문 너머로 보이게 됐다.

김우선이 문 앞에 서 있는 이이를 보고 상감에게 알렸다.

“전하. 병조판서 대감께서 오셨습니다.”

“그래? 들라고 전해.”

“예. 전하.”

명을 받은 상선이 이이에게 와서 입전해도 된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이이가 신을 벗으면서 편전으로 들어왔다.

상감에게 인사를 한 후 이야기를 들었다.

“조례가 끝났는데 병조에 가야 하지 않아?”

이연이 다소 퉁명스런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상감의 이야기를 들은 이이가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

“조금 늦게 갈 생각이옵니다.”

“이유는?”

“전하께 소신의 생각을 말씀드리기 위해서이옵니다. 소신은 공조참의의 생각과 달리 풍신수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믿사옵니다.”

이이의 이야기를 듣고 이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렇지? 병판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이이가 다시 대답했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전하를 믿사옵니다.”

“뭔 말이야?”

“소신의 지혜가 전하께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옵니다. 하오나 전하께선 언제나, 소신이나 신료들이 가진 모든 식견을 뛰어넘으신 지혜를 보여주셨사옵니다. 때문에 이번에도 전하의 판단이 옳으실 것이옵니다. 그럼에도 전하께서 보시는 세상을 소신과 신하들이 볼 수 없사옵니다.”

“…….”

“소신들은 어리석기에 오직 보고 들은 것으로만 판단하옵니다.”

이이의 차분한 이야기를 듣고 이연 또한 호흡을 고르면서 차분해졌다.

그리고 물었다.

“그러면 과인이 의견을 더하지 않았을 때, 병판의 판단은 어떻게 되는 거야?”

이이가 대답했다.

“계속 왜의 첩보를 모을 것이옵니다.”

“왜의 첩보를 모은다고?”

“풍신수길이 조선을 노린다면 분명히 그것과 관련된 첩보들을 구하게 될 것이옵니다. 하지만 안정을 택한다면 당연히 안정과 관련된 첩보를 구하게 될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때 판단할 것이옵니다. 하지만 소신의 생각이나 의견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사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이라면, 어떤 것을 말야?”

“전하의 정책이옵니다.”

“과인의 정책……?”

“백성을 위하시며 전례 없는 강병을 이루시기 때문이옵니다.”

“…….”

“이순신과 권율 같은 인재를 찾으셨고, 전한길과 이장손, 나대용 같은 인재를 찾으셨사옵니다. 그리고 이항복과 이덕형이라는 젊은 인재를 중용하시고, 제철소와 비료 제조소를 지으셨사옵니다.”

“…….”

“소총을 비롯한 신무기들을 개발하시면서, 전례 없는 국방력 강화가 이뤄지고 있사옵니다. 만약에 풍신수길이 조선을 노린다면 재미없을 것이옵니다.”

담담하게 말하지만 힘이 실려 있었다.

이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연의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하긴. 내가 여태 해왔던 것들이 있는데, 그때하고는 또 다르겠지! 도요토미의 시간은 8년이 앞당겨졌지만, 조선은 무려 수백 년의 시간이 앞당겨졌어! 나로 인해서 말야! 예상과 달라졌다고 해서 내가 바꿔야 할 것은 없어!’

한순간에 찾아들었던 급박함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됐다.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서 밤잠을 설쳤었고, 최선을 다해서 조선의 미래를 구하려고 했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초전에 쓸려나가는 것만큼은 확실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미리 공격해오는 것만 파악할 수 있으면 한 곳에 몰아다가 궤멸시킬 수도 있었다.

용기를 얻게 되면서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이이에게 물었고 그의 확인을 구하게 됐다.

“지금 해 오신 것처럼 하시면 될 것 같사옵니다. 그리고 왜의 첩보를 취하시다가 풍신수길이 조선을 노릴 때 응징하시옵소서. 전하께서는 결코 방심하시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상감에 대한 믿음을 이이가 드러냈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이이를 믿고 있었다.

자신감을 가지면서 역사상 최악의 군주로 기억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최고의 군주로 명예를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진한 미소를 띠면서 이이에게 말했다.

“병판.”

“예. 전하.”

“이 순간에 과인에게 있어줘서 고마워. 병판이 없었다면 오늘 과인이 심하게 흔들렸을 거야. 병판에게 과인이 든든함을 느껴.”

고마운 마음을 이이에게 전했다.

그 말을 듣고 이이의 차분함이 흐트러졌다.

“전하…….”

전적으로 자신을 믿어주는 상감이었다.

그 사실이 그토록 큰 은혜였다.

군주의 신뢰를 얻는 신하만큼 복 받은 신하가 달리 없었다.

가슴에 감동이 밀려들었고 그 마음을 상감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때, 편전 문 앞에서 목소리가 일어났다.

“전하.”

“……?”

“화학청장이 입궐하여 전하께 알현을 청하고 있사옵니다.”

상감과 함께 편전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문 앞에 화학청장이 있었고 이이가 그를 보면서 기이하게 생각했다.

‘화학청장이 어째서…….’

“헉… 헉…….”

뛰어왔는지 거칠게 숨 쉬고 있었다.

그런 화학청장을 보는 이연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미간을 좁히면서 문 앞에 서 있는 상선에게 목소리를 높이게 됐다.

“무슨 일이지? 일단, 들어오라고 해.”

“예. 전하.”

김우선이 명을 받고 이장손에게 말했다.

“안으로 드시게.”

“예. 영감…….”

윤허를 받고 이장손이 신을 벗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허리를 굽히면서 인사했으니, 그에게 이연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한양에는 무슨 일이지? 그것도 과인의 궁궐에 말야. 화학청장이라면 지금 개성에 있어야 할 텐데, 혹시 긴밀히 전할 보고가 있어서 직접 과인에게 온 건가? 무슨 일이야? 대체?”

혹시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장손에게 물었다.

그리고 굳은 표정을 짓던 이장손이 눈치를 보며 주위를 살폈으니, 이연이 그의 의사를 깨닫고 김우선에게 명을 내렸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편전 주위로 사람이 오는 것을 막아.”

“예. 전하.”

명을 받들면서 내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상감에게 충성하는 내관들이 편전의 문들을 닫고 밖에서 기다리게 됐다.

오직 상선만이 안에서 문 앞을 지켰다.

은밀히 말할 수 있게 되자 다시 이연이 물었다.

“뭔 일인데?”

하문을 듣고 에 이장손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화약 생산이, 중단되었사옵니다…….”

“뭐? 화약 생산이, 중단되었다고?”

“예. 전하…….”

“어… 어째서……?”

귀가 의심될 지경이었다.

들었던 대답이 믿어지지 않았고 어째서 화약 생산이 중단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불길한 기분이 순식간에 일어나면서 그 이유가 조선과 자신에게 좋은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장손의 얼굴이 몹시 굳어 있었다.

그리고 대답을 듣게 됐다.

“명나라에서 유황 수출을 끊었사옵니다…! 명나라에서 유황을 들일 수 없기에 화약 생산도 중단되었사옵니다……!”

“…….”

“명나라 황제가 명을 내렸다는 이야기가 있사옵니다! 전하……!”

“……?!”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역사가 바뀌면서 미래 또한 바뀌었으니, 더 이상 어떠한 내일이 펼쳐지게 될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

1각 후에 일어나는 일도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준비해오던 것들이 다시 흔들리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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