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그 여자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10/73)


10화. 그 여자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2022.11.02.



 
한편, 아티아는 만족스런 얼굴로 웃으며 방으로 돌아갔다.

하이데거의 몸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물론 다 보지는 못했다. 옷을 걸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살갗이 노출된 부위는 모조리 눈에 담았다.

하이데거의 몸은 정말 완벽했다.

전체적으로 보지는 못해서 완벽하게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첫날치고는 대단한 수확이었다.

의심 많은 그에게 시작부터 강한 자극을 주면 괜시리 흑마술을 썼다며 의심을 살 수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강한 자극을 주지 않고 맛보기식 기술만 살짝 보여줬다.

대신, 다시는 잊을 수 없게.


‘또 찾아오지 않고는 못 배길걸.’

한 번도 맛보지 않은 자는 있어도, 한 번 맛본 자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전생, 강지하의 손기술이었다.

때문에 센터를 운영할 때 지압 마사지를 받고 싶어서 운동을 등록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빨리 잠들 줄은 몰랐지만…….’

철옹성 같던 그가 지압 마사지 잠깐 받았다고 잠들다니, 많이 피곤했던 걸까.

아티아는 생각보다 빠른 결과에 놀랐다.


‘원래 저런 캐릭터가 아닐 텐데 말이야.’

의심이 많고 결코 남을 신뢰하지 않는 성격.

하이데거와 카수스뿐 아니라 웰링턴가 남자들 모두의 공통점이었다.

어쨌거나 잘된 일이었다.

아티아는 다시 한번 자신의 손기술에 감탄했다.

상급 마수인 켈베로스의 귀 뒤와 등 하부, 엉덩이 밑쪽을 부드럽게 살살 돌려 꼬집듯 만져주니 경계심을 풀었더랬다. 녀석을 단숨에 길들인 것도 모자라, 전장귀라 불리는 하이데거를 곯아떨어지게 했으니.

물론 코를 골진 않았지만.

잠든 하이데거가 숨을 쉴 때마다 솟아오르는 그의 근육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연약하고 뼈대 얇은 아티아의 몸과 바꿔치기하고 싶을 만큼.


“마님! 어디 계셨어요?”

케샤가 방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왼팔로 제 오른팔을 주무르고 있는걸 보니 어제 심하게 운동하긴 했나 보다.


“아, 잠깐 볼일이 좀 있어서.”

“지금 온통 마님 얘기로 난리예요.”

“그래? 넌?”

“…….”

“몸은 좀 괜찮고?”

“네? 아뇨…….”

케샤가 오늘내일하는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죽을 것 같아요, 마님.”

“그치? 특히 여기가 아플 거야.”

아티아가 눈을 곱게 접으며 케샤의 몸 어딘가를 꾸욱 주물러 주었다.


“으아악! 아아악! 마니이이임!”

케샤가 물 밖으로 튀어나와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몸부림을 쳤다. 볼도 벌겋게 상기되었다.


“으……그그그! 그아!”

“몸이 아름다워지는 단계란다.”

아티아는 방으로 들어가 기지개를 쭉 폈다.

하이데거의 단단한 살가죽을 주무르느라 체력 소비가 상당했다.

어찌나 혹독히 단련했는지 오일을 발라도 발라도 돌처럼 딱딱하기만 해서.


‘왜 이러지? 아깐 안 이랬는데…….’

맛보기 손기술이라 별로 힘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피곤해지는 걸 보니 무리한 게 맞는 듯하다. 눈앞이 핑그르르 도는 것을 보면.


“마님, 괜찮으셔요?”

케샤가 절뚝거리며 아티아를 보좌했다.

털썩. 아티아가 머리를 짚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난 혼자 좀 쉬고 싶은데. 너도 좀 쉬어야 하지 않니, 케샤?”

“그래도 될까요?”

쉬라는 말에 케샤의 얼굴이 밝아졌다.


“응. 그래도 오늘 루틴 실천해. 했는지 안 했는지 내일 보기만 해도 다 알아.”

“마님…….”

“계획표대로, 알았지?”

“……네.”

“변기 계속 부술 거면 하지 말고.”

“하, 할 거예요. 할게요, 하고말고요.”

“좋아, 바로 그 자세야.”

“그럼 푹 쉬세요, 마님.”

케샤를 밖으로 내보낸 뒤, 아티아는 풀썩 드러누웠다.

결 좋은 은발이 포근한 침대 위에 스르르 흩어졌다. 창백한 피부가 더욱 하얘 보였다.

그녀는 전생에 흰 피부보다는 건강한 태닝 피부에 가까웠다. 뙤약볕에서 몇 시간씩 훈련해서 살갗이 탄 영향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피부 톤이라면 평생 햇볕 아래에 있어도 타지 않을 것 같았다.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

아직까지 적응되지 않는 몸.

잘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여전히 삐걱거리지만, 어쩌겠나.

적응해야만 하는걸.


“콜록.”

어제오늘 무리해서 그런지 기침까지 나왔다.

한 번 시작된 기침은 멈출 줄 몰랐다.


“콜록! 콜록콜록!”

주변에 보이는 손수건을 하나 집어 입가로 가져다 댔다.

목이 따가웠다. 손수건엔 피가 살짝 묻어 있었다.


‘아, 맞다. 나 시한부였지.’

아티아는 잠시, 자신이 시한부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새삼 깨달았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 사실은 변치 않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방법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아티아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생각했다.

방법을 찾겠다고 남아 있는 시간마저 다 흘러가 버리면 그게 더 문제였다.

애초에 ‘아티아’라는 인물은 막장 스토리에 맛을 더해주는 양념 역할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 서사로 점철된.

작가는 아티아가 불행에 늪에 빠져 허우적대길 원했다.

그래서 왜 죽어야 하는지 원인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이름 모를 병에 걸려 아무도 치료할 수 없었다는 말밖에는.


‘내게 남은 시간을 알차게 쓰려면 쓸데없는 사용하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해.’

그럼에도 아티아는 기대를 놓지 않았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손 놓고 죽음만 기다릴 바에야, 뭐라도 하는 게 나을 터.

가만히 방 안에 처박혀 있는 것보단 몸을 움직여서 기초대사량도 높이고 근력도 키우는 편이 나으리라.

전생에 미처 못다 했던 일도 이번 생엔 죽기 전에 하고, 하이데거에게 비법도 전수받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 생에는 그토록 바라던 몸을 가질 테니까.

레시피를 알아야 뭐라도 요리하지 않겠는가.


‘다시 태어나면 하이데거처럼.’

아티아는 피 묻은 손수건을 구석으로 던졌다.

새하얀 눈이 내리는 창밖을 잠시 바라보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 * *

카수스가 집무실에서 나와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때마침 그의 아버지 하이데거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찾았습니다.”

카수스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는 하이데거에게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하이데거가 없을 때는 아버지라 칭해도, 그의 앞에서 부르는 건 영 어색해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않았기에.

정확히는 그의 어미가 죽었을 때부터.


“어디 계셨습니까.”

“그 아이와 함께 있었다.”

“…….”

“켈베로스를 길들인 비법을 물으니 직접 보여주겠다, 하더군.”

“비법이요?”

“직접 보니 왜 길들여졌는지 알겠더구나.”

하이데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카수스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듯 밝은 표정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 여자를 믿으시면 안 됩니다.”

“흑마술이라도 썼다는 게냐?”

“그럴지도 모르죠.”

“흑마술은 아니었다. 그건,”

하이데거가 아까 일을 회상하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연륜이 묻어 나오는 기술이었어. 오랜 기간 전문적인 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익힐 수 없는 그런 기술 말이다.”

“……네?”

“의술은 아닌 것 같은데 또 의술 같기도 하고. 도대체가 알 수가 없군.”

“고작 스물하나입니다.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나는 그 나이 때 제국을 제패했다. 안 될 것도 없지.”

“…….”

카수스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같이 식사할 테냐.”

“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합니다.”

출정 중, 오랜만에 찾은 공작저였다.

아무리 바빠도 식사는 같이할 줄 알았건만.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아들의 모습에 하이데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 * *

카수스는 그 길로 아티아에게 갔다.

방에서 곤히 자고 있던 아티아는 거칠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 노크 모닝콜 한번 시끄럽네. 한창 잘 자고 있는데 누구람.’

아티아가 부스스한 얼굴로 하품을 하며 문을 열자, 예상치 못한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흑발, 커다란 덩치, 날카로운 눈매,

그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

카수스였다.

아니, 네가 거기서 왜 나와?

원작 소설 어디에도 카수스가 아티아의 방을 찾았다는 내용은 없었다.

그런데 방문 앞에 있다는 건……?


“대체 아버지께 무슨 짓을 한 게냐?”

“네?”

“아버지께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물었다.”

“무슨 짓이라뇨? 좀 알아듣게 설명해주세요, 공작님.”

아티아가 부스스한 은발을 쓸어 넘기며 눈을 깜빡였다.


“아버지와 단둘이 방에 있었다지.”

“네, 그런데요?”

그녀의 뻔뻔한 대답에 카수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 방에서 뭘 했지?”

“뭐 하긴 뭘 해요. 아버님이 궁금해하셨던 걸 풀어드렸죠.”

 

 
아티아의 입에서 나온 ‘아버님’이라는 말이 거슬리는지, 카수스는 연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미간을 찌푸렸다.

남편인 자신에게도 ‘공작님’이라고 부르는 마당에, 얼마나 봤다고 ‘아버님’이라 부르는가.

아티아는 조금 신경질적으로 새까만 흑발을 넘겨대는 카수스의 손길에서 묘하게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당장이라도 품 안에서 칼을 꺼낼 듯한 차가운 인상의 남자였다.


“만에 하나,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너뿐만 아니라 하라드 가문까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게 평소에 효도 좀 하지 그랬어요. 아버님, 온몸이 다 뭉친 상태시던데.”

“뭐?”

카수스는 혼란스러웠다.

이 여자, 대체 뭐라고 말하는 건가?


“아버지 몸에…… 손을 댔느냐.”

“네, 아버님도 원하셨어요.”

“……뭐?”

그걸 또 원했다는 소린 뭐야?


“아버님이 불쌍하지도 않으세요?”

일순, 아티아가 인상을 쓰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들이라고는 둘밖에 없으신데,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오셨는데, 아들놈들은 도대체 무얼 하는지 하나는 아예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다른 하나는.”

카수스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역시, 하라드 가문의 첩자였군. 처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버님께서 켈베로스를 길들인 비법을 궁금해하시길래 제 실력을 보여드린 것뿐입니다, 공작님.”

“난 아버지와 다르다.”

“예, 많이 다르실 테지요.”

“아버지는 몰라도 난 그딴 저열한 현혹에 넘어가지 않아. 무슨 수작질을 부렸는지 모르겠지만, 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거다.”

‘와, 허세 부리는 거 봐. 지 동생이랑 꼭 닮았어!’

아티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의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둘째 레오가 크면 딱 저럴 것 같은데? 몸만 컸지, 둘이 하는 짓도 거의 비슷하잖아?


“공작님은 그 비법, 안 궁금하세요? 궁금하시면 한번 맛보실래요?”

쾅!

카수스는 위협적인 몸짓으로 크게 소리를 내며 방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거, 성질머리 하곤.”

아티아는 다시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어차피 카수스는 필요 없다.

하이데거가 카수스보다 한 수 위였다.

나이 쉰을 먹고도 그렇게 훌륭한 신체를 유지한다는 건 엄청난 노력이 수반되었다는 증거. 거기에 타고난 기질도 무시할 수 없으니.

자고로,

나비는 향기로운 꽃에 끌리는 법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