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저거 누가 기획한 거야?
(46/73)
46화. 저거 누가 기획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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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저거 누가 기획한 거야?
2023.03.08.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여자라고 절대 봐주지 않아.」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네요. 안 봐준다는 거.」
‘강해지고 싶다’는 아티아의 말에 카 수스가 책임지기로 했던 그날 이후.
카수스는 아티아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또한 공복 운동이 가장 좋다는 그녀의 말에 카수스의 하루는 아티아와 함께 시작됐다.
집무실에 들어가기 전, 아티아와의 운동이 필수 일과가 된 것이다.
“한 개만 더…… 으…… 한 개……만…… 더!”
포기할 법도 한데 아티아는 계속해서 제 한계를 뛰어넘으려 했다.
훈련장을 방불케 하는 열기.
땀범벅이 되고 거친 숨소리가 난무하는 현장.
그 바람에 문밖을 지나는 사용인들에게 온갖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머!”
“세상에나…….”
“저게 무슨 소리래.”
사용인들은 복도를 일부러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걸으며 운동 방 안에서 나는 소리를 조심스레 귀담아들었다.
“허으……야!”
웰링턴 공작의 거친 숨소리와 함께 공작부인의 비명 소리 비슷한 게 들려왔다.
“허야아……! 맛있다아! 맛있다아!”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로 눈짓을 주고받던 사용인들은 웃음을 참으며 조용조용 지나갔다.
카수스는 잘 따라와 주는 아티아가 너무나도 대견했다.
보통 기사들도 힘들어서 나가떨어지는 것들을 아티아는 죽기 살기로 버텼다.
마치 등 뒤에 칼을 들고 누가 쫓아오는 것처럼.
매트에 선 아티아는 주문 제작한 바벨을 등 뒤에 걸치고 심호흡을 했다.
“더요.”
“응?”
“하나 더 올려요.”
“여기서?”
“네, 그래야 더 맛있거든요.”
아티아는 힘들수록 ‘맛있다’라는 표현을 썼다.
엄청난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카수스는 저런 독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아티아와 아침 운동을 함께하는 이 시간이 하루 중에서 가장 즐겁게 느껴지는 카수스였다.
집무실에서 업무를 볼 때도, 지금쯤 그녀가 뭘 하고 있을지 생각했다.
사각.
사각사각.
카수스는 자신도 모르게 종이에 바벨을 든 아티아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처음엔 씩씩하게 운동하는 쾌활한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녀가 조용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더 낯설게 느껴지는 카수스였다.
* * *
아티아는 하루도 빠짐없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어째, 좀 근육이 붙은 것 같기도 하고.”
플라시보 효과일까?
카수스랑 운동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근육이 무럭무럭 자라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짜식, 좀 하는데?’
카수스와 한 운동은 꽤 강도 높은 훈련이긴 했다.
피로감이 몰려와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지어 쓰러질 뻔한 적도 있었지만.
‘확실한 건, 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확실히 케샤와 둘이 운동할 때보다 체력이 늘었다.
반드시 이 마의 구간을 돌파해 예전의 강지하와 같은 몸을 되찾으리라.
“아자! 아자!”
아티아는 거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힘차게 외쳤다.
* * *
내일이면 12축제가 시작이다.
아티아는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노을을 바라보며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흑구야, 잘 지냈어?”
아티아는 철창 안에서 치즈를 갉아 먹고 있는 흑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왈!”
흑구가 아티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치즈를 내려놓고 대답했다.
그새 흑구의 덩치가 더 자라 있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중형견만 했는데, 어느새 사자처럼 커져버렸다.
잘 자란 흑구를 보니 아티아는 감회가 새로웠다.
“먹어,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린 세모난 대형 치즈를 꼭 물고 뜯어 먹는 녀석의 모습이 귀여웠다.
“치즈 좋아하는구나, 너.”
“왈!”
“이왕이면 닭가슴살도 먹어봐. 단백질 쉐이크도 좋고.”
“왈! 왈!”
흑구가 프로펠러 돌아가듯 꼬리를 흔들었다.
지능이 매우 높은 흑구는 아무래도 공작령 식구가 되기로 결심한 듯했다.
처음에는 다들 흑구를 두려워하며 아무도 그 근처에서 얼씬하지도 않았다.
며칠이 지나고 흑구가 별다른 사고를 치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켈베로스는 본디 흉폭한 마수니까.
그러나 어딜 가나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
게다가 자주 보면 정이 든다던가.
때때로 공작부인과 허물없이 잘 지내는 흑구의 모습이 목격되면서, 몇몇 사용인들의 마음이 서서히 움직였다.
특히 공작저 정원사는 어릴 때부터 동물 사랑으로 유명했다.
하여 흑구에게 가장 먼저 마음을 연 사람이기도 했다.
손을 가져가도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걸 보고 용기를 내어 쓰다듬어 봤는데, 흑구의 털이 예상외로 매우 보드라웠다.
그때부터 정원사는 흑구에게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원 일과 함께 흑구를 돌보는 일도 해보고 싶다며 자원했다.
그날 이후 정원사는 흑구와 같이 가까운 곳을 산책하거나, 맛있는 간식을 주거나, 때로는 놀아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원사뿐 아니라 다른 사용인들 몇 명도 이미 흑구의 귀여움에 속절없이 빠져든 상태였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용인들은 아직도 흑구를 두려워하며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만.
모처럼 흑구에게 놀러 온 아티아가 주변에서 장난감과 간식의 흔적을 발견했다.
“우리 흑구, 스타 됐구나, 야?”
아티아는 철창 안으로 들어가 흑구의 상태를 점검했다.
아주 관리가 잘돼 있었다.
그때 정원사를 포함해 녀석을 아끼는 사용인들이 다가왔다.
“어이쿠, 공작부인을 뵙습니다.”
“공작부인을 뵙습니다.”
사용인들은 흑구를 매우 귀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아티아가 솜털처럼 보드라운 흑구의 털을 쓰다듬으며 그들을 올려다봤다.
“털 관리를 무척 잘해주셨군요.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흑구가 기분 좋다는 듯 갸르릉 소리를 내며 두 눈을 감았다.
그러자 주변에 서 있던 사용인들이 온몸을 배배 꼬며 탄성을 내뱉었다.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와! 귀여워라.”
“얘가 너무 순해요. 그래서인지 손도 덜 가고……. 손 많이 가도 되는데.”
“말도 잘 듣는다니까요.”
“우리 흑구는 정말 아기 같아요.”
사용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흑구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흑구는 사용인들의 직업 만족도 100퍼센트 충족시키는 매력적인 반려동물로 자라났다.
“오, 우리 흑구 마케팅에 소질 있어. 언제 이렇게 인기 많아졌대?”
아티아가 입꼬리를 씩 들어 올리며, 어느새 인싸가 되버린 흑구의 턱 밑을 간질였다.
이어서 녀석의 두피와 턱을 가볍게 마사지해줬더니, 흑구가 다시 한번 갸르릉 갸르릉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렸다.
“좀 있으면 축제 하는데 너도 참여할래?”
“왈! 왈!”
마치 알아듣기라도 하듯, 흑구가 뱅글뱅글 돌았다.
그 모습에 철창 밖에 있던 사용인들은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단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아티아가 사용인들을 향해 말했다.
“곧 시작될 12축제를 위해 흑구 옷 좀 제작해줘요.”
“흑구 옷이요?”
“네, 치수를 재서 축제 때 입히려고요.”
“어머, 흑구에게 옷이라니. 너무 귀엽겠어요! 어떤 색상으로 만들까요?”
“그건 조금 이따 다시 상의해보죠.”
“네!”
어째, 사용인들이 더 신난 느낌이었다.
* * *
“흑구야, 널 위해 준비했어.”
상급 마수 켈베로스인 흑구를 위한 귀여운 옷이 완성됐다.
빨강과 흰색이 돋보여 마치 산타클로스 같은 복장이었다.
“나랑 견플 룩이야.”
아티아는 이번 12축제를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고 나름 단단히 준비를 마쳤다.
지난 12년, 공작령 백성들의 기다림의 무게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기 위해.
하여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내 옷은 축제날 보여줄게.”
“왈!”
흑구가 눈을 반짝이며 또다시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녀석이 돌 때마다 사방에서 흙먼지가 일었다.
“콜록! 야 너무 신난 거 아니냐!”
아티아가 흙먼지에 기침을 하며 말했다.
* * *
드디어 공작령에서 12년에 한 번 열린다는 12축제의 날이 왔다.
그래서일까.
아침 공기부터 다르게 느껴지는 건.
“으아, 드디어 오늘이네.”
아티아가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기지개를 켰다.
드르륵.
창문을 활짝 열자, 맑은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왔다.
새벽부터 12축제를 준비한 사용인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밤을 새운 사용인도 있었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운동회 날 아침이 꼭 이런 느낌이었지.’
전생의 강지하에겐 체육대회나 운동회가 1년 중 가장 기다리던 날이었다.
그 두근거리는 설렘을 여기서도 느낄 수 있다니.
아티아는 제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
.
.
사실 공작저에서 기획했던 오리지널 12축제 기획안을 보고 아티아는 이마를 짚었다.
애당초 공작저에서 기획한 축제 기획안은 이러했다.
제1. 축사
제2. 길밟기
제3. 축제
제4. 순례
축제는 일주일에 걸쳐 진행된다.
제1. 축사는 당대의 웰링턴 공작이 공작령 백성들 앞에 서서 앞으로 공작령의 발전을 위해 축하 인사를 하며 축제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제2. 길밟기는 웰링턴 공작이 꽃길을(진짜 생화를 뿌려놓은 길을!) 걸으며 백성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의식이었고.
제3. 축제는 웰링턴 공작저의 재화와 많은 음식으로 공작령 백성들을 배부르게 대접하는 자리였다.
제4. 마지막 순서인 순례는 웰링턴 공작이 공작령 곳곳을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만나서 눈으로 보고 살피고 인사와 조언을 건네는 시간이었다.
아니, 그래도 12년만의 축제인데 너무 지루한 거 아닌가?
12년이 아니라 1년에 한 번씩 열리는 운동회에도 두근거리는 이벤트가 얼마나 많은데.
여긴 무려 12년인데?
‘아니야! 이런 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아니야. 기획한 사람 누구냐?’
12년의 기대치를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 같은 걸로 끝낼 수는 없을 노릇이었다.
그래서 바로 며칠 전.
아티아는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메모하여 카수스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카수스는 아티아에게 받은 기획안을 들여다보았다.
전례가 없는…… 대단한 기획안이었다.
“이걸…… 실행하자고?”
카수스의 말에 아티아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하, 다른 의견도 들어봐야 할 것 같군.”
카수스는 아티아가 작성한 유례없는 기획안을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아티아의 기획안을 본 젠과 기사들은 놀라워했다. 특히 하이데거가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카수스는 아티아의 축제 기획안을 통과시켰다.
.
.
.
“아아, 준비하고 나가볼까나.”
아티아가 창밖을 내다보니, 밖은 이미 분주히 움직이는 사용인들로 붐비고 있었다.
* * *
오전 8시.
축사를 위해 광장에 도착한 카수스는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놀랐다.
아직 축사 시간인 오전 9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와아아-.”
“와아아아!”
카수스의 등장에 백성들은 환호했다.
젊고 유능하며 잘생긴 공작.
12년 전의 축제 때는 축사를 생략했다고, 그래서 웰링턴 공작과 백성의 첫 만남부터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오늘, 젊은 공작의 등장이 더욱 환호받은 것이었다.
“후아, 이렇게 열기가 대단할 줄은.”
젠이 중얼거렸다.
짙은 눈썹에 윤기 나는 흑발을 지닌 미남자의 미친 미모에 백성들은 홀린 듯 입을 벌렸다.
“저 사람이 공작님이셔?”
“저분이시라고?”
“히엑! 완전 잘생겼잖아!”
“미친!”
입틀막은 기본.
카수스를 처음 본 백성들의 반응은 거의 엇비슷했다.
마침내 오전 9시가 되었다.
카수스가 높은 단상으로 올라가 축사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다들 요기를 채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준비했소.”
광장엔 100명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 케이크가 수도 없이 준비되어 있었다.
케이크 위에는 각종 데커레이션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가운데에 레터링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레터링 문구가 어딘지 좀 이상했다.
[백성들은 좋겠다. 공작님이 초절정 꽃미남이라서 ^_^]
[오다 주웠다. 많이 먹어라!]
[어서 와, 이런 축제는 또 처음이지?]
[♥그대의 앞날 부디 꽃길 돈길만 펼쳐지길♥]
사람들은 처음에는 저게 뭐지? 하며 당황하다가도 곧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너무 예쁘다!”
“꺄악!”
“진짜 축제 같아!”
케이크와 디저트를 본 백성들은 기쁨의 비명을 질렀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거리의 예술가들이 빠르게 손을 놀리며 케이크와 백성들의 반응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공작저 사용인들도 생경한 레터링 문구를 멍하니 입 벌리고 쳐다봤다.
“저 문구, 누가 넣은 거야?”
“고, 공작부인께서 저렇게 넣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