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방어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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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방어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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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방어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2023.03.18.
“으잉? 저게 뭐지?”
공작령 백성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넝쿨? 꽃……마차?”
갖가지 꽃넝쿨로 장식된 아름다운 마차가 입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양옆도 위도 뒷면도 화려한 장식들로 꾸며놓은 탓에 내부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앞쪽만 트여 있었다.
마차를 모는 말 또한 위엄 있는 기사단 갑옷을 두르고 있었다.
정원을 그대로 옮겨 심은 듯한 마차는 축제와 잘 어울리는 외관이었다.
가판대에 있는 축제 용품들을 몸에 두른 여인들이 설레는 얼굴로 눈을 깜빡였다.
“너 못 들었어? 공작님께서 특별히 마차를 타고 순례를 하신단 거.”
“어머, 너무 예쁘다!”
“진짜 동화책에 나오는 마차 같아.”
잘 닦인 길을 따라 마차가 움직였다.
본래라면 걸어 다닐 계획이었으나, 아티아의 의견에 따라 마차 이동으로 변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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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수스는 전쟁에 나설 때마다 늘 승리를 거머쥐고 돌아왔다.
그러다 보니 웰링턴 공작가가 백성들에게 명망 높은 것은 너무 당연했다.
하이데거에 이어 카수스까지 제국의 영웅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오웬 황태자는 원작에서 오직 단 한 사람, 카수스만을 노렸다.
오웬은 축제날을 기회로 카수스의 몸을 망가뜨릴 계획을 세웠다.
수하에게 명령해 독화살을 날렸고, 결국 그것은 카수스의 죽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를 잘 아는 아티아는 넝쿨로 덮인 마차를 타자 제안했고, 지금 이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오웬 황태자와 황실의 목적은 웰링턴 공작령의 모든 백성들이 공작에게 등을 돌리는 것.
그러므로 굳이 백성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래라면 이즈음, 카수스는 바렐 지역을 구매하는 바람에 아주 많은 재산을 잃는다.
비슷한 시기에, 하이데거가 전쟁터에 나가 사망한다.
12축제는 부부 동반이 필수였지만, 아티아는 공작부인임에도 존재감 없이 방에 박혀 쓸쓸히 침실에서 죽어가고 있었겠지.
그리고 홀로 순례를 하던 카수스는 결국 독화살을 맞고, 축제는 완전히 엉망이 된다.
공작령 백성들의 민심을 밑바닥으로 보내버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파멸의 흐름.
이것이 원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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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성공시킨 12축제인데.
이를 망치게 내버려 둘 순 없다.
“공작님, 풀 냄새 참 좋죠?”
마차 안에서 아티아가 뺨에 닿는 꽃넝쿨을 살짝 밀어내며 말했다.
이쯤 되면 화살이 벌떼처럼 날아온다 하더라도, 넝쿨이 방패 역할을 해서 맞추지 못할 것이다.
“움직이는 정원이라.”
‘움직이는 정원’은 아티아가 임의로 지은 작전명이었다.
카수스가 중얼거리며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 다 가려버리면, 순례의 의미가 없지 않나? 공작가의 축복을 바란 사람들이 실망할 텐데.”
“그것도 제게 다 생각이 있죠. 걱정 말아요.”
평소에 공작이 백성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기에 이런 일은 익숙지 않았다.
호위가 주변에 깔려 있고, 본인의 실력 또한 믿어 의심치 않는 카수스였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대비한다는 건 자존심 상했으나.
아티아가 하도 난리를 치는 바람에 그녀의 말을 따르는 게 좋겠단 판단을 내렸다.
왠지 아내에게 챙김 받는 기분도 들었고.
“요란하게도 꾸몄군.”
카수스가 턱을 쓸어내리며 마차 내부에 침투한 꽃넝쿨을 바라봤다.
아티아는 눈가를 휘며 웃었다. 속으로는 심호흡을 했지만.
숨 쉴 때마다 풀 내음이 물씬 났다.
카수스 입에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는 말이 안 나와서 다행이었다.
‘……아니, 그래도 향냄새보단 풀 냄새가 더 낫잖아. 안 그래?’
독화살을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아무리 카수스라지만, 머리 위에도 눈이 달린 게 아니면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원작 속 카수스에게 큰 위험이 닥치는 이유는 그가 방심했기 때문이니까.
그러다가 독화살을 팔뚝에 맞았던가.
‘어후, 아픈 걸 떠나서 독화살 맞으면 근손실이 얼마야.’
아티아가 괜시리 멀쩡한 카수스의 팔뚝을 바라보며 눈매를 좁혔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사람들의 환호와 섞여 희미하게 울렸다.
넝쿨 중간중간 어여삐 핀 꽃이 함께 얽혀 있었는데, 카수스의 미모에 묻혀 꽃이 보이지도 않았다.
카수스의 머리에 붙은 꽃잎을 보곤, 아티아가 그의 머리로 손을 뻗었다.
마차 내부가 넝쿨 때문에 좁아져서 지나치게 가까웠다.
“읏…….”
카수스가 마른침을 삼키며 아티아를 쳐다봤다.
꽃잎이 머리에 내려앉은 카수스가 말없이 쳐다보자, 아티아의 눈에는 가장 먼저 그의 붉은 입술이 들어왔다.
“아…….”
어색함을 참지 못한 아티아가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하하……. 누가 꽃인지 모르겠네요.”
괜히 가벼운 농담을 던지면서.
아티아는 카수스의 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어내 만지작거렸다.
그의 붉은 입술을 닮은 연분홍색 꽃잎은 무척 부드러웠다.
그의 달콤했던 입술처럼.
아티아는 그와 나눴던 키스가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낯이 달아올랐다.
시선을 돌린 채 꽃잎을 만지작대고 있는 아티아를 향해 카수스가 몸을 틀었다.
“그럼 내가.”
“…….”
“이렇게 가까이 가도 모르겠군?”
옆으로 나란히 앉아 있던 터라 안 그래도 가까웠는데.
카수스가 아티아 쪽으로 몸을 더욱 기울였다.
“밖에서 여긴 잘 보이지도 않을 테고.”
“예에? 정면에선 보일 텐데…….”
정면은 최소한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두었다.
의미심장한 말을 하는 카수스를 향해 아티아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자 카수스가 사방에 둘러싸인 넝쿨을 끌어당겨 정면의 시야를 차단했다.
마차 안에 얼핏 보이던 공작 부부가 넝쿨에 가려 완전히 사라지자, 백성들은 아쉬워하는 사람들과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아, 안 보인다, 안 보여!”
“아니, 갑자기 왜 가리는 거야?”
“바보야! 모르겠어? 부부잖아, 부부……. 어머, 로맨틱해라!”
백성들은 마차 안을 완전히 가린 공작 부부를 두고 로맨틱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달리는 꽃마차 안에서 카수스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속삭였다.
“이러면 안 보일걸?”
“헛…….”
“방어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그 목소리가 너무 감미로워 아티아는 괜시리 귓바퀴만 매만졌다.
카수스는 눈가를 살짝 휘며 그 손을 붙잡았다.
“어때? 이제 그대가 바라는 대로 된 것 같은데.”
아티아는 굳은 얼굴로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니, 잠깐만. 이러면 내가 처음부터 이 분위기를 설계한 것 같잖아. 공격에 대비하자는 건 순 핑계고…….’
밖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함성.
시야가 살짝 가려진 아름다운 꽃넝쿨 마차.
정말이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모를 것 같았다.
아티아는 마치 변태쇼 기획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 공작님은! 화살이 두렵지도 않으세요?”
아티아가 갑자기 버럭 소리 지르며 넝쿨을 헤집었다.
파스스스.
그 바람에 잎사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티아는 머리에 잎사귀를 꽂은 채, 카수스가 가려놨던 정면의 넝쿨들도 다시 원상 복구시켰다.
“답답하게 정면 시야를 차단하면 어째요.”
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도 모르고.
카수스는 그녀의 머리에 붙은 잎사귀를 떼어주려 손을 뻗었으나, 아티아가 몸을 뒤로 쑥 뺐다.
“어어? 축제에 집중해요, 집중.”
아티아가 눈을 크게 부릅뜨며 말했다.
당근을 안 줘서 화난 토끼 같은 모습에 카수스의 입가가 씰룩거렸다.
아티아는 여전히 몸을 뒤로 뺀 채 정면을 보며 제 머리에 붙은 잎사귀를 털어냈다.
“마을을 돌면서 백성들에게 한마디씩 해주는 게 본래의 순례였지만, 이렇게 마차 타고 한 바퀴 돌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해요.”
아티아는 자신이 시꺼먼 의도가 있어서 이런 기획을 한 게 아니라고 강조하듯 힘주어 말했다.
“공작 부부 내외가 지나가면 행운과 번영이 깃든다는 소문이 이미 쫙 퍼진 것 같고요. 제가 바람잡이 좀 썼죠.”
마차 정면으로 주변을 살펴보니 백성들의 반응은 실로 뜨거웠다.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마차가 지나가기만 해도 신기하다는 듯 탄성이 튀어나왔으니까.
아티아는 망원경을 꺼내 주변 반응을 한번 살피고, 바깥의 지형지물을 자세히 관찰했다.
‘좋아, 이 각도라면 위에서 뭐가 날아와도 안 맞을 거야.’
날아온다 하더라도, 넝쿨에 감겨버릴 테지.
위에서 안이 보이는 각도까지 계산해놨다, 이 말씀이야.
‘한국에 거북선이 있다면, 우리에겐 꽃넝쿨마차가 있다.’
아티아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망원경을 내렸다.
이렇게 한 바퀴 쭉 돌면 12축제는 성황리에 마무리될 것이었다.
아티아는 축제를 빨리 마무리 짓고 운동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공작님, 저희 축제 때문에 운동 며칠 못했는데, 다시 시작하면 거칠게 가죠.”
카수스와 함께 운동하는 시간은 언제나 하드모드였으나, 아티아는 좀 더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거칠게? 감당할 순 있고?”
카수스가 눈썹을 까딱였다.
그의 도발적인 눈빛에 아티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니, 네, 당연하죠. 제가 못 할 거 같아요?”
한창 몸 단련에 재미가 붙은 시기에 멈춰서 그런지, 아티아는 몸이 더욱 달아올랐다.
카수스도 훈련장 대신 아티아와 실내에서 훈련하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다.
달리는 마차 안에서 아티아와 카수스는 몸 단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번에 보니까 주먹을 꽤 쓰던데. 그건 누가 알려줬지?”
“헤헤, 제가 왕년에 한주먹 했다, 아닙니까. 그렇게 잘 쓰던가요?”
“빠르긴 하더군. 내 눈에 다 보여서 문제였지.”
“아니, 뭐라고요? 다시 해보실래요?”
“다시?”
“네, 제가 그땐 확실히 컨디션이 별로라 그랬고요…….”
운동 얘기가 나오자 아티아와 카수스의 대화는 멈출 줄 몰랐다.
“공작님 반응속도 하나는 제가 인정할게요. 근데 하체 강화에도 계속 신경 쓰셔야 하는 거 알죠?”
“내 하체는 튼튼하다.”
“아뇨, 제 생각에는…….”
그때였다.
마차 앞을 누군가 가로막은 것은.
히이힝!
마차가 급정지하는 바람에 카수스와 아티아의 몸이 앞으로 쏠렸다.
아티아가 앞으로 고꾸라져 넝쿨에 얼굴을 박기 직전에 카수스가 재빨리 팔을 뻗어 그녀의 충돌을 막았다.
“……저언하아!”
마차를 가로막은 이의 절규하는 소리가 바깥에서 울렸다.
“저언하아!”
마차를 가로막은 이는 노인이었다.
그 노인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웰링턴 공작을 애타게 불렀다.
멈춰 선 마부에게 카수스가 짙은 눈썹을 짓이기며 물었다.
“거기 무슨 일이냐.”
“웬 노인이 길을 막고 비켜주지 않습니다. 끌어낼까요?”
마차를 호위하던 기사가 카수스에게 보고했다.
노인의 절규는 계속됐다.
“저언하아! 부디 할 말이 있으니 이 불쌍한 노인네를 내치지 말아주시옵소서……!”
아티아는 고개를 비틀어 바깥을 슬쩍 내다보았다.
높은 지붕이 많아 위치가 좋지 않았다.
‘제길, 기분이 영 찝찝한 게……. 함정 같은데.’
카수스는 품에서 검은 장갑을 꺼내 끼고, 바깥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공작님.”
아티아가 그의 팔을 붙잡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함정 같아요. 근처에 지붕이 많아 위험해요.”
“저자도 내 백성이니 무슨 사정인지는 들어봐야 하지 않겠나.”
“공작님…….”
연약해 보이는 아티아의 팔은 보기보다 힘이 강했다.
카수스는 제 팔에 닿은 새하얀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 마라. 곧 돌아올 테니.”
카수스가 넝쿨을 헤집고 마차에서 내려 근처에 있던 기사에게 명령했다.
“공작부인이 마차 밖으로 절대 나오지 못하게 해라.”
“네! 알겠습니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한 방지였다.
아티아는 초조하게 입술을 까득였다.
‘아니, 나가지 말라니까! 이순신도 거북선 밖으로 안 나갔는데! 제 발로 나가면 어쩌자는 거야.’
카수스가 마차 밖으로 나왔다.
머리가 새하얗게 샌 노인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들었다.
그 옆에는 기사들이 그를 끌고 가기위해 대기해 있었다.
카수스는 멈추라는 뜻으로 손을 올렸다.
“대체 무슨 일이냐.”
“저언하아……. 제 얘기를 좀 들어주십시오…….”
노인은 몹시 불쌍한 얼굴로 하소연했다.
근처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났다.
공작령 백성들이 보고 있었다.
“전하, 제 딸아이를 좀 살려주십시오…….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딸아이?”
카수스가 눈매를 좁히며 그를 훑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노인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맨발로 뛰쳐나와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거짓을 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 실성한 사람처럼 감히 공작 앞에 나타나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으니까.
카수스는 알 수 있었다.
정말 절박한 사람의 눈빛이라는 걸.
“놈들이…… 제 딸을 납치해갔습니다.”
“그놈들이 누구지?”
공작의 말에 노인이 말을 잇지 못하고 머리를 벌벌 떨었다.
‘수상하다.’
동시에 예상치 못한 공격에 대비하자던 아티아의 말이 떠올랐다.
머리 위, 옆, 뒤를 넝쿨 마차로 막았던 사실도.
카수스는 재빨리 시선을 돌려 주변의 지붕 위를 쳐다봤다.
동시에 언뜻 발견한 지붕 위의 인영.
카수스는 지붕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사들에게 외쳤다.
“당장 전열을 갖추라!”
온몸에 갑옷을 두른 기사들이 카수스를 빼곡하게 에워쌌다.
그와 동시에.
피잉!
햇빛에 반사된 무언가가 매서운 기세로 날아들었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화살들은 넝쿨에 박히고, 곧 기사들의 주변으로도 날아들었다.
“습격이다!”
“전하를 보호하라!”
스르릉!
공작가의 호위대가 칼을 빼들고 화살이 날아온 위쪽을 살폈다.
티잉!
파악!
하지만 화살에 대비한 무거운 갑옷을 뚫지는 못했다.
땅에 박힌 화살,
마차에 박힌 화살,
갑옷에 박혔다가 튕긴 화살,
비처럼 쏟아진 수많은 화살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다행히 예상처럼 백성을 향해 쏜 화살은 없었다.
투구를 쓴 기사들은 카수스에게 날아드는 화살을 검으로 받아쳤다.
“놈들을 잡아!”
젠이 추격대를 보내며 말했다.
마침내 화살비가 멎었다.
“이건…….”
카수스가 눈썹을 짓이기며 바닥에 꽂힌 화살을 뽑아냈다.
‘독화살이로군.’
뚜두둑.
카수스는 화살촉을 훑더니 힘을 주어 두 동강 내버렸다.
아티아의 조언대로 만반의 준비를 해둬 천만다행이었다.
‘어떤 간이 부은 놈이 이따위 장난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