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어딘가 이상한 공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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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어딘가 이상한 공작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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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화. 어딘가 이상한 공작부인
2023.04.22.
‘마력정수’란 말에 아티아의 눈빛이 침잠했다.
손톱만 한 용량으로도 거대한 파괴력을 낸다는 흑마술의 도구.
누구도 황실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마력정수였다.
‘치사하게 템빨이라니……. 일대일 뜨면 아마 카수스가 이길 텐데.’
아티아는 초조하게 입술을 짓씹었다가 그만두길 반복했다.
‘아씨……. 작가가 마력정수 떡밥 안 풀어서 그쪽은 잘 모르는데. 섣불리 덤볐다가 위험한 거 아니야?’
하지만 그래도 아티아는 멸치 몸으로 100년을 사느니, 멋짐이 폭발하는 근육 빵빵한 몸으로 반년을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이런 몸은 솔직히 거울조차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마력정수가 뭔지, 작가가 간간이 언급했던 내용으로 유추할 수밖에.
‘그래, 짧고 굵게. 수도에서 혹시나 계획을 실패한다 하더라도. 못 먹어도 고다.’
“이대로 손 놓고 있을 순 없어. 아무것도 안하고 당신을 잃는 것보단 나아.”
“네, 같이 가요. 수도. 저도 빨리 가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리네요.”
아티아가 흥분감에 이불을 덮은 그대로 도르륵 침대 위를 한 바퀴 굴렀다.
카수스가 침대 아래로 떨어질 뻔한 그녀를 빠르게 붙잡았다.
“진정해.”
“저도 진정하고 싶지만 진정이 안 되는 걸요.”
애벌레처럼 이불을 돌돌 만 아티아가 중얼거렸다.
“저의 마음은 이미 수도에 가 있습니다.”
카수스는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아티아에게 말했다.
“우선 최대한 빨리 준비하도록 하지.”
* * *
공작부인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었다.
제국의 내로라하는 의원들 수십이 들러붙어도 파헤치지 못한 터.
광장에 모인 공작령 백성들이 그녀의 몸 상태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로 주장이 다르다 보니 다툼으로 번지는 경우마저 발생했다.
“공작부인께서 각혈을 하셨다는데. 그런데 또 멀쩡해 보였대. 이상하지 않아?”
“신의 벌을 받으신 게야!”
“말도 안 돼. 천사 같은 공작부인께서 무슨 죄를 지었다고. 다들 봤잖아?”
“인간은 본래 겉과 속이 다른 법이지.”
“닥쳐. 한 번만 더 그딴 소리 지껄이면 가만 안 둬!”
“제국 최고의 의원들이 모였는데 왜 못 알아냈을까?”
“신의 저주라니까?”
“신의 저주는 무슨. 너희들 전부 내 주먹 맛 보고 싶지 않으면 헛소리 집어치워.”
공작부인을 보지 않았더라면 백성들의 의견은 모두 부정적인 쪽으로 기울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티아가 12축제를 워낙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백성들의 니즈를 완벽하게 충족했기에 여론은 점차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었다.
“그 재밌는 축제도 공작부인께서 생각해내신 거라며?”
“맞아, 그러고 보니…… 어디서 벌을 받을 분이 아니신 것 같아.”
“괜한 뜬소문 아닐까?”
“나한테는 눈앞에서 웃어주시던데. 어찌나 온화하신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다니까?”
“허허, 우리도 참 괜한 걸 가지고 싸웠네.”
광장에선 큰웃음 소리가 연이어 터졌다.
* * *
카수스는 곧 수도로 떠날 것이었다.
‘뭐야? 갑자기 수도에 간다고?’
이 사실을 들은 레오가 훈련장에 있다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헥, 헥…….”
어찌나 급히 달려왔던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침 아티아가 보였다.
아티아는 정원에서 흑구와 놀아주고 난 뒤 마차 근처로 가던 참이었다.
레오는 그녀에게로 빠르게 달려갔다.
“후우…….”
레오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이제는 아티아와 키 차이가 제법 났다.
레오는 어느새 자신보다 작아진 아티아를 내려다보았다.
“진짜 수도에 가?”
레오가 자신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아티아에게 물었다.
“많이 자라셨네요, 우리 도련님.”
아티아는 씩씩대고 있는 레오를 향해 옅게 웃었다.
주홍빛의 노을이 대지를 감싸고 있었다.
노을빛에 반사된 은발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그녀의 옆에는 못 보던 사용인 한 명이 더 늘어나 있었다.
원래 있던 노란 단발머리 여자가 아닌, 귀여운 외모에 자신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여자가.
하지만 레오는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니, 진짜 수도에 가냐고.”
레오는 빨리 아티아의 입에서 ‘아니’라는 대답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아티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레오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응. 그렇게 됐다.”
레오의 눈썹이 눈에 띄게 짓이겨졌다.
“왜? 거길 왜 가는데?”
“음……?”
아티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따지듯 묻는 레오는 화가 나 보였다.
그것도 아주 많이.
자신을 수도에 데려가지 않아 그런 것이리라.
“같이 가고 싶어?”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레오는 말을 잇지 못하고 씩씩댔다.
“몸도 안 좋은데 왜 거길 가냐고!”
아티아는 눈을 깜빡이며 레오에게 차분히 설명했다.
“몸이 안 좋으니까 가는 거야. 빨리 나으려면 거길 가야 해.”
“무슨 헛소리야. 수도에 볼 거 없어. 재미도 없으니 가지 마. 거긴 엄청 위험하다고!”
레오가 길길이 날뛰었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몸으로 대신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음…….”
아티아의 눈에는 수도에 자신도 데려가지 않아서 화가 단단히 난 어린 레오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다가와 아티아에게 말했다.
“내일이면 마차가 출발할 거야.”
카수스였다.
언제나 레오에게 어려웠던 형, 카수스.
레오는 입술을 짓씹으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심했다는 듯 카수스에게 말했다.
“나도 갈래.”
“뭐?”
“아무래도 수도는 위험하니까.”
카수스와 아티아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레오는 눈알을 도르륵 굴렸다.
아직은 마주하기 어려운 형이었지만, 그래도 할 말은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나도…… 같이 가는 게 좋겠는데.”
레오가 형인 카수스의 눈치를 보며 침을 꼴깍였다.
제발 허락이 떨어지길 바라는 눈으로.
“너도 가겠다고?”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카수스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간절한 고양이처럼 저를 올려다보고 있는 눈망울은 누가 봐도 절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수도까지 레오를 데려가는 건 무리였다.
“넌 그냥 공작저에 있는 게 좋을 것 같군.”
카수스가 레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레오는 이미 거절을 예상한 듯 준비했던 멘트를 날렸다.
“그…… 있잖아. 머릿수가 많으면 아무도 우릴 못 건드릴 거야.”
레오가 비장한 표정으로 카수스와 아티아를 번갈아 쳐다봤다.
마치 저들만 아는 비밀작전을 짜듯이.
레오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수도에 가본 적이 없었다.
레오가 생각하는 수도의 이미지는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수도에는 황실이 있었고, 귀족들이 많았다.
공작가와 이들 사이가 나쁘다는 건 레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북부와 달리 기후도 따뜻하지만 온갖 위험 요소가 도사리는 위험한 곳이라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함께 힘을 보탠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레오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낸 건 아티아의 한마디였다.
“수도에 기사가 얼마나 많은데. 사람 한 명 더 간다고 안 바뀌어.”
“뭐어?”
“우리 꼬마 도련님의 간절한 마음은 알겠지만, 안전하게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티아가 곱게 눈을 접으며 아직 어린 레오를 타일렀다.
레오는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하는 아티아를 보자 마음속 한구석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
하지만 더는 뭐라 답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뭐라고 주장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걸 알았기에.
레오는 입술을 깨물더니 땅을 보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서 터덜터덜 집 잃은 사람처럼 어딘가로 사라졌다.
“에고, 수도에 너무 가고 싶어 했는데 마음이 아프네…….”
레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아티아는 안쓰러운 듯 중얼거렸다.
“수도에는 볼거리가 많아서 가고 싶었던 거겠지.”
카수스는 미간을 좁히며 내일 출발할 마차를 살폈다.
짐을 많이 실어야 하니 마차도 그만큼 컸다.
하리와 케샤, 그리고 다른 사용인들은 발 빠르게 짐을 옮겼다.
얼마나 머물지 모르기에 많은 짐이 필요했다.
곁에서 짐을 나르는 케샤의 팔을 빤히 보던 아티아가 눈을 크게 떴다.
“와, 케샤. 몰랐는데 전완근 굿.”
아티아가 엄지를 척 올렸다.
“역시 케샤야. 운동 안 쉬고 꾸준히 하고 있네. 칭찬해 마땅하다.”
“헤헤. 감사합니다. 마님 덕분에 새로운 몸으로 거듭난걸요.”
“케샤 빨래터는 아직 영업 중인가?”
“네?”
케샤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아.”
아티아가 하는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는 듯 케샤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 배를 강하게 두드렸다.
“보시다시피. 상시 영업 중입니다!”
팡!
케샤의 복부에서 찰진 소리가 울렸다.
제대로 단련된 배에서만 나오는 소리였다.
복부로 빨래가 가능할 만큼 탄탄했다.
“좋다, 아주 훌륭해.”
아티아는 마찰음으로 운동을 얼마나 했는지 정확히 구별할 수 있었다.
그녀의 칭찬에 케샤가 머쓱해진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하리는 기겁하며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공작부인과 함께 있으면 있을수록 자신이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말벗으로 지내기만 하면 된다면서?
하리는 공작부인이 조근조근한 말투로 어제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면, 편하게 곁에 앉아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차를 따르고 예쁘게 치장을 하고 소소한 대화를 하는 그런 그림을 상상했는데.
개뿔.
“하리.”
“……!”
“하리?”
하리는 공작부인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바짝 긴장해버렸다.
얼마 전 아티아에게 도수치료 공격을 받은 뒤로 줄곧 몸을 사리고 있었다.
「자아! 네 몸을 예뻐해줄 시간이야!」
아티아의 검은 인영과 함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통증. 그리고 시원함이 한 번에 밀려왔지만.
그래도 하리는 그때 그 고통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티아는 짐을 든 하리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그거 든 김에 스쿼트 함 가자.”
“……네?”
“어우, 어우. 느껴진다, 느껴져. 골다공증의 기운이.”
“골다……공증?”
무슨 뜻인지 몰라 하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손으로 무거운 짐을 든 케샤는 하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씩 웃었다.
그 표정을 본 하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지, 방금? 나 여기서 일하겠다고 한 거, 실수였나?
하리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눈앞에서 모국 제르네스왕국이 불타 멸망했고, 자신은 성력을 잃었다.
전쟁포로로 끌려가 고생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웬만한 일로는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게 되었으나, 지금은 왠지 등줄기가 서늘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