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뿔도 없는 무림환생-6화 (6/234)

006화 홍화루

#006화 홍화루

“묘향, 기억하시죠?”

“잊을 리가 있나. 등천각 첫날부터 나를 챙겨주던 시비였는데.”

등천각 시절, 나를 친동생처럼 돌봐주던 이였다.

졸업 후, 본성에 들어갈일이 없어 만나지는 못했지만, 나는 항상 그녀를 누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작년부터 금화루의 예기로 일하고 있어요.”

“뭐?!”

처음 듣는 이야기.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쨍그랑.

쥐고 있던 술잔이 깨져나가자 적화란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흥분을 가라앉혀야 계속 말씀드리죠.”

“...그러지. 그러니 묘향이 그곳에 있는 이유부터 말해봐.”

“고리대 때문이에요.”

“고리대? 적룡당과 관련이 있나?”

적룡당의 전신은 하오문의 한 갈레인 적왕문이다.

정사지간의 성향을 지닌 문파로 구룡성 내에서 유일하게 사채업을 운영하고 있다.

“아뇨. 저희와는 관련 없어요. 이건 제가 몇 번이나 확인한 사실이니 믿으셔도 좋아요.”

“그럼?”

“금룡당이예요.”

“만금전장은 개인에게 돈을 안 빌려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러니까 당한 거죠.”

적화란의 설명은 이랬다.

내가 등천각을 졸업한 뒤, 부모 없이 남동생과 둘만 사는 묘향은 큰 결심을 했다.

동생을 남경에 보내 과거를 준비시키기로 말이다.

하지만, 일개 시비에 불과한 묘향에게 그런 거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 여기저기 돈을 융통할 곳을 알아보게 되었는데 그때 금룡당주의 둘째 아들이자 나와는 등천각 동기인 금종대가 접근했다.

돈을 빌려줄 테니 천천히 갚으라고 말이다.

그 뒤는 뻔했다.

순진한 묘향은 금종대의 배경을 믿고 사기 서류에 수결을 했고.

빚 독촉에 시달리다 금화루의 예기가 되기로 했다는 것.

문제는.

“그렇게 당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거다.

물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상하군. 금종대가 뭐가 아쉬워서?”

“직접 본적은 없지만, 금화루주가 절세의 미인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여자에 빠져서 이런 일을 저질렀다?”

“아마도요.”

금룡당주 둘째아들을 범죄에 끌어들이다니.

돈독이 오를대로 올라 목숨아까운줄 모르는 여자이거나.

“어디서 사주를 받고 작업을 치고 있는거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무언가 노림수가 있어 일을 저지른거다.

“어디쪽일까?”

“아마도 금종대의 형, 금필대가 사주한거 같아요.”

“경쟁자를 미리 제거하겠다?”

“아마 이번일이 알려지면 금종대는 후계자 자리예서 쫒겨날거예요. 대 금룡당의 직계가 양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니 말이예요. 그것도 반쯤은 인신매매나 다름없는.”

“너는 그 틈을 노리는거고?”

내 말에 적화란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맞아요. 처음에는 상관하지 않으려 했어요. 묘향은... 개인적으로 구하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제가 기루를 차려버렸지 뭐예요? 이왕 차렸으니 구룡성 최고를 노려봐야겠죠?”

“......”

“어때요? 같이 하실 건가요? 보수는 섭섭지 않게 챙겨드릴게요.”

“그 전에 하나만 묻자.”

“얼마든지요.”

“적룡당에 인재가 없는 것도 아닐 텐데···. 왜 하필 나지?”

적화란이 입가를 비틀며 대답했다.

“이런 일에 적룡당의 사람을 쓰기엔 부담스러워서요. 걸리기라도 하면 곧바로 전쟁이니까요.”

“그런 차에 마침 내가 눈에 띄었다?”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아시다시피 무공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고수는 많지 않잖아요? 그리고 묘향과의 인연도 있고요. 그런 차에 선배가 홍화루를 방문해서 이때다 싶었던 거죠.”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이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조건이 있다.”

“말씀하세요.”

“당분간 내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간에 본성의 높으신분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줘. 적룡당의 힘이라면 이정도는 할 수 있겠지?”

“그거야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럼 같이하도록 하지.”

그러자 적화란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세한 건 착수금과 함께 육 총관을 통해 전달 드릴게요.”

“그래.”

대답을 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흥이 깨져 더는 술을 마시기 싫었던 탓이다.

그렇게 몸을 돌리려던 찰나, 뒤에서 적화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술병은 놓고 가시죠? 한 병이면 몰라도 세 병씩이나 가져가시면 어떻해요?”

***

진무전과 십칠조원들이 떠난 직후, 육진화는 곧장 적화란의 방으로 향했다.

“공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묘한 분위기의 적화란.

평소, 냉철하기 그지없던 적화란과는 다른 분위기였다.

“무슨 일이야?”

“정말 괜찮을까 싶어서 여쭙고자 왔습니다.”

“선배?”

육진화는 이 호칭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등천각의 선배지만, 적화란의 신분은 적룡당의 직계다.

감히 근본도 없는 놈이 공녀에게 공대를 받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일개 외당 조장일 뿐입니다.”

“대신, 등천각을 졸업했지. 수석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그 나이 때 무인은 하루가 멀다 하고 괄목상대(刮目相對)하는 법. 지금쯤이면 공녀님의 상대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육 총관은 무공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가 강한 이를 본 적이 있어?”

“예?”

적화란이 동문서답에 어리둥절한 육진화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일초반식의 무공도 익히지 않은 채로 등천각에 입각했어. 그리고 수석으로 졸업했지. 심지어 경쟁자 중 하나는 청룡검이었는데도.”

“...?!”

“선배는 그런 사람이야. 어떠한 역경과 시련이 닥쳐도 기어코 이겨내고 마는. 그리고 그 역경을 이겨내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그런 사람 말이야. 그런데 과연 그런 사람이 졸업 후에도 무공을 놓았을까?”

적화란이 손가락으로 육진화의 검을 가리켰다.

“확인해봐.”

육진화가 자신의 검을 꺼내어 자세히 살폈다.

그리고 곧 놀람을 금치 못했다.

“...이게 무슨?”

아까 진무전이 손가락을 튕긴 부분을 중심으로 검 전체에 금이 가 있었기 때문이다.

묵철로 만든 고경도의 검이었음에도 말이다.

“이제 믿겠어? 그는 언젠가 하늘 높이 날아오를 잠룡이라는걸.”

“공녀의 뜻을 몰라뵈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육진화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사죄를 했다.

적화란이 이해한다는 어투로 그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괜찮아. 나도 처음 봤을 때는 몰라봤는걸? 그나저나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선배가···. 그래서···. 멋있어서···. 나도 모르게···. 오늘 봤는데···. 역시나···.”

홍화루의 밤이 깊어갔다.

***

“으허! 죽겠다.”

오랜만에 술을 달렸더니 늦잠을 자버렸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떠 있어 오전 단련시간에 늦은 상황.

‘그냥 째자.’

나는 쿨하게 오늘 수련을 건너뛰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등천각을 졸업하고 무공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고3 시절 최후의 힘까지 짜내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수학능력이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나저나 뭘로 해장을 하지?”

밥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서려던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외당 생활 2년 차, 이제 내 명성이 외성 곳곳을 쩌렁쩌렁 울리는바, 어느 정도 깔끔하게 다녀야 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얼굴만 씻고 가자.”

그렇게 세안을 하던 중,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제 봤던 홍화루의 총관, 육진화가 연상의 농익은 미모를 뽐내며 서 있었다.

그녀의 커다란 볼륨감이 더욱 심금을 울렸다.

“응? 저녁에나 올지 알았더니. 이리 일찍 오셨구려.”

“마침 근처를 지날 일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시간은 괜찮으신지요.”

“마침, 피땀 어린 ‘수련’을 마치고 요기를 하려던 참이오. 조금만 더 감을 잡으면 신검합일(身劍合一)에 이를 것 같은데···. 하루하루가 너무도 짧구려.”

술 처먹고 늦잠 잤다고는 할 수 없었기에 불가피한 구라를 쳤다.

먹혀들었는지 육진화가 혼잣말로 ‘과연’이라고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전생에서의 내 어릴 적 별명은 입벌구였다.

“시간 괜찮으시면 식사나 같이하시겠소? 내 아주 괜찮은 국수가게를 알고 있소이다.”

“잠깐 짬을 내서 온지라 힘들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누님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인가보다.

아니면, 한 번 더 들이대 달라고 하는 건가?

“공녀의 서찰과 착수금입니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일은 틀림없이 잘될 거라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알았소. 그럼 차는 어떻소? 저기 황가다루라는 곳에 괜찮은 차가 있소.”

“다음 기회에 하시지요.”

“허허, 그럼 그렇게 합시다.”

‘차 약속을 했다는 건 90% 이상 넘어왔다는 뜻.’

나는 조만간 애인이 될 그녀를 배웅한 뒤 적화란이 보낸 것들을 살폈다.

“어디 보자···.”

당연히 처음은 착수금.

척 보기에도 전낭에 상서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게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헉! 그, 금!”

전낭안에는 금자가 다섯 개나 들어있었다.

금자 다섯이면 은자로 오십 냥. 사인 가족 한 달 생활비가 평균 은 두 냥임을 고려했을 때 이건 헬조선의 돈으로 오천만 원이 넘는 돈이었다.

더욱이 이건 착수금일 뿐, 일이 잘 해결되면 이만한 돈을 또 받을 수 있었다.

“흐흐흐, 주지육림이 머지않았도다.”

그렇게 든든한 마음으로 서찰의 내용을 확인한 나는.

“이런 썅!”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

생각해보니 이곳은 무림 세계다.

다시말해 이곳이 중세시대의 중국이란 뜻이다.

즉, 다양한 매체와 경로로 많은 간접경험을 하는 현대인에 비해 이곳 사람들의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해도 적화란의 작전은 너무나도 얕았으며 좁았다.

[오늘 밤 금화루주를 납치해올 것.]

밑도 끝도 없이 금화루에 들어가 루주를 납치해오라니 이건 해도 너무하지 않은가!

또한, 적룡당이 어떤 곳인가?

구룡성 정보각에 가장 많은 인원을 보내는 당으로써 구룡성의 CPU와 같은 곳이 아니던가.

그런 곳의 직계가 이걸 작전이라고 짜다니 구룡성의 앞날이 참으로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빌어먹을 년.’

하지만, 인제 와서 작전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

그녀가 그린 전체적인 그림이 틀어질 수도 있고.

‘한시라도 빨리 묘향 누이를 구출해야 한다.’

결국, 나는 그날 자정이 지난 시각 암행복을 챙겨입고 금화루의 담장을 넘었다.

찌릉 찌릉.

풀벌레 소리가 울릴 때마다 한 걸음씩 내딛기를 반 시진.

“루주님, 마지막 손님이 이제 막 가셨습니다.”

“수고했다.”

금화루의 중심부에 잠입할 수 있었다.

‘아이고 허리야.’

비록 일개 기루라 하나 금룡당이 지분을 가진 사업체니만큼, 금룡당 소속 무사들의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게다가.

‘무공을 익힌 기녀들은 또 뭐야?’

전부는 아니지만, 기녀 중 상당수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

그렇기에 한참을 돌고 돌아 여기까지 도착했다.

당장 루주에게 접근하기는 불가능한 상황.

나는 잠시 대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반 시진 쯤 지났을까?

불빛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금화루 전체가 어둠 속에 잠긴걸 확인하고 곧장 금화루의 벽을 타고 올랐다.

‘걸리면 X 된다.’

사실, 무인들의 수준을 보아 탈출은 어렵지 않다.

문제는, 내가 몸조심해야 할 시기라는 거다.

그렇기에 성문에서 받는 뇌물도 끊었는데 야밤에 여인을 납치한다? 그것도 금화루주라는 유력자를?

걸리면 사지근맥과 단전까지 터져 남은 인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거북이처럼 전각을 기어오른 지 한 식경.

어느새 전각의 가장 위층에 도달했다.

‘여기 있겠지? 아니, 제발 여기 있어라.’

가장 윗대가리는 항시 높은 곳을 지향하는 법.

나는 곧바로 종이창을 찔러 안쪽을 확인했고.

‘헉!’

생각지도 않은 장면을 목격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