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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도 없는 무림환생-26화 (26/234)

026화 점창대전(4)

#026화 점창대전(4)

우리는 각자 최대한 많은 양의 식량을 가지고 분타 아래, 절벽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이라도 헛디디면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한 이동이기에 한 걸음 한걸음에 신중을 담아냈다.

또한, 보안을 위해 새벽녘을 틈타 움직였다.

적들이 알아차리게 되면 대참사가 일어날 테니까.

덕분에 거북이같이 느린 속도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남아있는 수비대 전원이 일류이상의 고수들이라는 거다.

만약, 어쭙잖은 이들이었다면 몇 명은 줄 없는 번지점프 체험을 하게 됐을 테니 말이다.

두 시진이나 지났을까?

털썩.

‘후우···. 뒤질 뻔했네.’

땅을 밟자마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이다.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는지 다들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었다.

한 식경쯤 지나서 마지막으로 위지풍이 내려왔다.

그는 최후에 최후까지 적들의 동태를 살피다 내려왔는데.

소싯적 수련의 일환으로 이 절벽을 하루에 두 번씩이나 왕복하여 가장 빠르게 도망칠 수 있다고 하며 자원했다.

최신 무림의 첨단 수련 방식을 내버려 두고 아직도 저런 구석기시대의 수련 방식을 고집하다니.

‘역시, 묵룡당에 입적하지 않길 잘했어.’

실로 고개가 저어지는 일이었다.

여하튼, 위지풍의 합류로 우리는 점창파의 숨겨진 비동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본래라면, 외부인에게 공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 죽게 생긴 판에 그런 것을 따져 뭐하겠는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전부 사용해서 살아남는 게 우선이지.

한참을 걷다가 뒤를 살펴보니 분타에서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아마, 수비대가 없어진 걸 확인한 남천궁에서 불태운 것이리라.

“크윽.”

“흐흑.”

그 모습을 목격한 묵룡당의 무사들이 침음성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구룡성의 분타였지만, 과거엔 점창파의 본산이었기 때문.

모르긴 몰라도 사문이 불타오르는 심정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위지풍 역시 분함을 참지 못하고 핏발 선 눈을 하고 있었다.

“어서 갑시다. 가서 제대로 갚아줍시다.”

“...그러자꾸나.”

산길을 한참이나 걸어 우리는 커다란 동굴을 맞이했다.

구룡성으로 합류 전 점창의 조사들의 위패를 모셔놨던 조사동이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으나 관리는 계속되었는지 깔끔하게 관리되어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간부들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집중되었다.

불타오른 분타를 목격한 그들의 눈에 투지가 가득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말했다.

“적들에게 구룡성의 무서움을 보여줄 차례입니다.”

레지스탕스의 시작이었다.

***

남천궁의 칠장로 육지검귀(六指劍鬼)진막호.

남만무림에서 이름난 절정고수인 그는 남천궁의 고수들과 부족민들을 이끌고 점창산을 뒤졌다.

사라진 구룡성의 무인들은 찾기 위함이었다.

“여기엔 없는 것 같습니다.”

“제대로 찾아본 것이 맞느냐?!”

“예, 부족민들을 동원하여 몇 번이나 찾아봤으나 흔적을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숲속에서 참새 새끼조차 찾아내는 것이 남만 부족들이다.

그런 그들도 못 찾았다면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좀 더 안쪽으로 이동한다.”

“예!”

비살대주가 대원들을 이끌고 산 안쪽으로 이동을 지시했다.

그러자 삼 백의 비살대와 칠 백의 부족민들이 한꺼번에 이동을 시작했다.

“잡히면 찢어 죽이리라.”

그가 복수심에 불타 으르렁거렸다.

얼마 전, 전투 중에 사망한 비살일조의 조장 진우량이 그의 장조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나절쯤 이동했을까?

추격대의 체력을 고려한 비살대의 대주가 그에게 다가왔다.

“이곳에서 잠시 쉬다 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휴식따위를 취할 시간은 없다.”

“하오나, 강행군으로 체력이 떨어지게 된다면 비살대는 몰라도 부족민들은 따라오기 힘들 것입니다.”

“내 말에 토를 달다니. 죽고싶은 게로구나.”

“아닙니다. 추격을 재개하겠습니다.”

결국, 진막호의 고집을 이기지 못한 비살대주가 다시금 이동을 명령했다.

부족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으나 비살대의 시퍼런 기세에 곧 잠재워졌다.

그렇게 다시 이동을 시작하려던 찰나.

퍼어엉.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으아악!”

“커헉···.”

“우웩!”

부족민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진막호를 비롯한 비살대의 전부가 재빨리 진원지로 향했다.

“이, 이게 대체···?”

처참한 광경.

폭발음의 진원지 근처에 있던 부족민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다.

심상치않음을 진막호가 외쳤다.

“독이다! 모두 숨을 참아라!”

독탄.

천하제일 독가로 불리는 녹룡당의 물건이 틀림없었다.

그 말인즉슨.

추적의 대상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뜻.

진막호가 검을 빼 들며 전투 준비를 명했다.

“모두 무기를 들어 주위를 경계하라!”

한편, 멀찍이서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이가 있었으니.

‘걸렸구나.’

바로 무전이었다.

***

그 뒤로부터는 모든 게 생각대로였다.

일정한 간격으로 흔적을 남겨두어 발견한 적들을 유인.

놈들이 지나갈 만한 곳에 녹룡당의 독을 활용하여 함정을 설치한 것이다.

마실 물, 누울 자리,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하도록 말이다.

덕분에 극도로 예민해진 적들은 더욱 삼엄한 경계를 펼치며 진군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며칠간 철저하게 놈들을 괴롭혔는데.

“이 정도면 됐다. 모두 철수해!”

암살에 일가견이 있는 적룡당의 무인들이 야밤을 틈타 기습하여 놈들의 보초를 제거한다거나.

“떨어뜨려!”

쾅!

괴력을 자랑하는 회룡당의 무인들이 절벽 위에서 바위를 떨어뜨렸고.

“지금이다! 모두 진을 펼쳐라!”

백룡당의 무사들은 진법을 깔아두어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런 노력이 통했는지 적들은 서서히 분열되기 시작했다.

두려워하는 부족민들과 그들을 어떻게든 끌고가려는 남천궁 무인들의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심지어 어제는 우두머리로 보이는 노인이 부족민들을 학살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이제 숙성될 만큼 되었다.

더 숙성시키면 완벽히 쉬어버려 먹지도 못할 터.

“가즈아!”

우리는 무기를 치켜들고 놈들에게 돌진했다.

선두는 묵룡당.

본산이었던 점창분타가 불타오르는 장면을 목격해서인지 그들은 선두를 자원했다.

망설임 없는 분광십팔검이 적들을 갈라갔다.

서걱! 서걱!

묵룡당이 뚫어놓은 길 뒤로 회룡당의 무인들이 태도(太刀)를 들고 진입했다.

패천대력도(覇天大力刀), 이름 그대로 괴력의 중도(重刀)가 적들을 통째로 분쇄하며 길을 넓혀냈다.

그 뒤로 쏟아지는 파상공세.

그렇게 살기 어린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점창산 자락을 가득 메웠다.

지키고 서 있는 일 천과 돌진하는 삼 백의 싸움.

얼핏 보면 자청하여 호구(虎口)로 들어가는 모양새지만, 사정은 전혀 달랐다.

맛탱이가 갈 데까지 간 적들이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쓰러져간 것이다.

게다가, 남천궁의 무인들을 보조해야할 남만 부족민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지속적으로 떨어진 사기가 싸울의지를 꺽어놓은 것이리라.

결국,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건 남천궁의 무인 삼백 명과 수비대 삼 백.

충분히 할만한 싸움이었다.

물론, 방심할 수 없다.

무릇, 무림세력끼리의 전투란 고수 하나로 인해 전황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기 때문.

바로 지금처럼.

“다 죽여버리겠다!”

사자후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적진에게서 흉흉한 기세의 무인 둘이 날아왔다.

한 명은 노인이고 다른 한 명은 살벌하게 생긴 중년인이었다.

무림 세계에서의 노인은 십중팔구 고수거나 흑막.

가만히 두기엔 아군의 피해가 염려되었다.

그렇다고 홀로 맞설 수는 없었다.

“위지 형!”

남들 살리자고 내가 죽는 거만큼 허무 한 일이 또 어딨을까.

“그래!”

나는 내 마음속의 도우미, 위지풍을 불러냈다.

마주 오는 우리를 발견한 노인이 일갈했다.

“이노옴!”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로 검을 찔러대는 게 역시나 사파의 무리구나 싶었다.

샤아악.

노인의 검이 뱀의 머리처럼 움직였다.

‘환검(幻劍)!’

계속 보면 나도 모르게 눈에 사시가 올 것 같은 움직임.

또한, 그 뒤에 있던 남천궁의 무인도 같은 무공을 익혔는지 괴랄한 검초를 내뿜었다.

하지만.

“흥!”

사특한 사파적인 무공은 정석적인 정파적인 무공을 이길 수 없다는 게 중론 중의 중론.

위지풍의 분광십팔검이 노인의 검을 쳐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도 다른 놈에게 돌진했다.

일부러 덜 쎄보이는 놈을 상대하는건 아니다.

그저 우연일 뿐이다. 진짜로.

파팟.

전왕보를 시전, 놈의 전방에서 측면으로 이동했다.

“다 보인다!”

그러자 놈이 귀신처럼 검을 휘둘렀다.

샤샥. 스윽.

소름 끼치는 검로가 내 가슴을 갈라왔다.

가까스로 피했으나 옷섶과 함께 작은 생채기가 생겨났다.

‘와우.’

다시 보니 뭔 정파적인 무공이냐 싶다.

그냥 쎈 놈이 이기는 것을.

“운이 좋구나!”

“어딜 봐서 이게 운이냐! 실력이지.”

다시 한번 펼쳐지는 검초.

이번에는 희뿌연 검기까지 씌워져 있는 게 스치기만 해도 어디 한군데 잘려나갈 기세였다.

‘미치겠네.’

일전 싸웠던 탈혼살부보다 약했으나, 훨씬 까다로웠다.

상성 상 문제다.

살부놈은 힘을 선택한 대신 속도와 변화를 포기하여 근접전을 펼치기 쉬웠던 반면.

스거억!

“오매!”

힘을 포기한 대신 속도와 변화가 뛰어난 놈의 검을 뚫기가 영 까다로왔다.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구나!”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놈의 기세가 변했다.

방금까진 공수가 적절히 조화된 검초를 펼쳤으나 지금은 공격 일변도의 검초가 터져 나왔다.

아마, 부하들과 빨리 합류하고 싶었던 모양.

그리고 그런 그의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푸욱!

“큭.”

기기묘묘한 환검이 열심히 피해 다니던 내 어깨를 꿰뚫은 것이다.

“죽어라!”

검기에 씌인 검에 맞아본 결과, 나는 혹자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졌다.

혹시라도 트럭에 치여 이세카이에가게 되면 소드마스터랑 싸우지 말라고.

‘존나 아프다.’

그렇다고 그냥 당해줄 수는 없는 노릇.

벼락같이 우수를 뻗어 놈의 팔목을 붙들어 매었다.

금나수법 삼양수였다.

“흥!”

이런 일을 많이 당해봤는지 놈이 좌수를 뻗어왔다.

단검까지 쥔 채로.

하지만. 근접전이야말로 내 전문이 아니겠는가.

퍼퍼퍼퍽.

단검이 닿기 전 좌수를 쏘아내어 놈의 상체에 박룡십삽투의 다섯 수를 박아넣었다.

“끄헉!”

놈이 비명을 지르더니 반탄력을 이용.

곧장 뒤로 물러났다.

거리를 벌리기 위함으로 보였다.

‘여기서 거리를 주면 망하지.’

곧장 전왕보를 활용하여 더욱 가깝게 따라붙었다.

다시 한번 펼쳐지는 근접전.

놈이 검파와 팔꿈치, 무릎 등으로 나를 떼어내려 했다.

“이익!”

치명적인 공격을 제외하고 모두 몸으로 받았다.

골통이 울리고 끔찍한 격통이 느껴졌으나 이런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왜냐면.

쿠릉.

단 한 번만 공격을 성공시키면 충분히 놈을 잡아낼 수 있으니까.

우드드득! 퍼어엉!

가까스로 터진 폭사경이 놈의 명치에 박혔다.

주먹에 뭉친 경력이 놈의 몸을 뚫고 들어가 몸 안에서 폭발했다.

후드득.

피에 절은 육편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단 일격.

설음수액을 섭취하여 얻은 60년 내공의 위력이었다.

스걱. 푹.

잠시 숨을 고르던 그때, 뒤쪽에서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다.

“으헉···.”

노인의 검이 위지풍을 걸레짝을 만들어 놓고 있던 것이다.

푸드드득.

위지풍이 적절한 때마다 분광착영을 전개하여 가까스로 몸을 빼내었지만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 상황.

곧장 전왕보를 전개하여 노인의 후방으로 근접했다.

“이노옴!”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노인이 몸을 회전하여 검을 휘둘러왔다.

“!!!”

스거억!

땅이 깊게 파이며 아름드리나무가 사선으로 쪼개졌다.

검강의 전 단계인 검사였다.

“...저기, 영감님? 문명인답게 말로 하면 어떨까 하는데요?”

“미친 소리 말아라!”

노인의 검이 다시금 움직였다.

현란한 검초에서 뻗어 나오는 검기가 주변을 어지럽혔다.

속도 또한 미친 듯이 빨라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덕분에 몸 곳곳에 상처가 생겨났다.

“모가지나 길게 빼거라!”

“영감님은 지치지도 않습니까? 그만 쉬시고 손주들 재롱이나 보는 게···. 워매!”

다시 휘몰아치는 검초.

‘거리가 안 잡혀.’

일 권이라도 먹이려면 근접전을 펼쳐야 하는데 도무지 거리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숨을 고른 위지풍이 전음을 보내왔다.

[자리에서 십 초만 버텨!]

‘아놔···.’

열 번의 칼질을 버티라는 건지 말 그대로 십 초를 버티라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둘 다 쉬운 요구는 아니다.

“흐읍!”

파직. 파직.

권기를 두른 권갑으로 노인의 검을 막아냈다.

겨우 두 어번의 칼질에 흑련권갑에 금이 간 것이 느껴졌다.

문제는, 다음을 버틸 방법이 없다는 것.

결국, 나는 최후의 최후까지 아낀 필살기를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협상합시다!”

바로 이빨이었다.

“...뭐라?”

“영감님하고 부하들 다 풀어줄 테니까 그만 싸우자고!”

“진심이더냐?!”

“내가 한 입으로···.”

그렇게 한참 이빨을 놀리던 그때, 위지풍의 전신에서 만만치 않을 기세가 피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두 말하는 그런 놈이지.”

곧장 자리에서 뜨자 위지풍이 검을 뻗어냈다.

그리고.

우우웅!

웅장한 공명음과 함께 그의 검에서 한 줄기 빛살이 벼락같이 쏘아졌다.

노인이 대경하며 검을 휘둘러 막았으나.

퍼엉!

위력에 밀려 그만 오른팔이 날아갔다.

천신의 아들 후예가 해를 쏘아 떨어뜨렸다는 전설에서 전해지는 비기.

사일검(射日劍) 후예사일.

점창의 신공절학이자 천하에서 손꼽히는 검초가 위지풍의 손에서 터져 나온 것이다.

“허억! 허억!”

지쳤는지 위지풍이 털썩 주저앉았다.

“큭···.”

그런 모습을 보던 노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더니 곧장 한 쪽으로 쏘아져 나갔다.

서서 죽기보다 도망쳐서 살기를 택한 거다.

물론, 그대로 두고 볼 내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투웅!

재빨리 튀어올라 노인의 뒤를 잡았다.

“!!!”

노인이 대경하며 뒤를 돌아봤지만.

콰왕!

폭사경을 시전, 노인의 몸을 사분오열 터뜨렸다.

가진 바 무공과 명성에 비해 너무나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죽겠다.”

연이은 격전과 무리해서 펼친 폭사경 때문에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으나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아있었다.

나는 노인의 목을 주워 올리며 외쳤다.

“적장, 물리쳤다!”

한번 해보고 싶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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