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화 부상
#041화 부상
이적하를 비롯하여 나와 단운은 형천 분타로 들어갔다.
막주광과 싸우면서 얻은 부상이 생각보다 심했기 때문이다.
오곡산은 곧장 근방 백 리 내에서 이름난 의원들을 모조리 불러 모았다.
단운이나 이적하의 신분을 생각했을 때 당연한 조치였다.
문제는.
“소생도 처음 보는 독인지라 따로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일단 치료해 볼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보겠으나······.”
“일단 기력을 회복하는 탕약을 만드는 게······.”
“허어! 지금 환자의 기력을 보충해서 뭐 어쩌자는 것이오? 송장 치를 일 있소?!”
“아니! 이 사람이?!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거요?”
죄다 믿음이 안 간다는 것이었다.
애초에, 현대 문명의 의학을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중세 중의학자의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청소소 정도는 되면 모를까.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만히 있으면 죽을 거 같은데 그런 치료라도 받아야지.
그렇게 일주일 동안 치료를 받았음에도, 무리한 진기 운용으로 인해 혈도 곳곳에 난 커다란 기스는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부러진 갈비뼈는 아예 손도 못 대고 있었으며.
몸에 침투한 독기만을 간신히 약화했을 뿐이다.
‘이러다가 진짜 죽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을 하며 침상 위에서 힘겨운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는데.
덜컹.
청소소와 묘향이 문을 열고 나타나는 게 아니겠는가.
그것도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어? 여길 어떻게······?”
힘겹게 고개를 들어 그녀들을 살펴보니.
“으아아앙!”
묘향이 유전 터지듯이 눈물을 터뜨리며 대성통곡을 했고.
“······어디 상처 좀 봐요.”
눈시울을 붉힌 청소소가 의료 도구들을 들고 다가왔다.
* * *
열흘 후, 묘향과 청소소의 극진한 간호 덕에 겨우 살아날 수 있었다.
특히 어제부터는 컨디션이 많이 좋아져 간단한 활동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의원 셋이 달라붙어 해결하지 못한 몸 상태를 일주일 만에 회복시키다니.
‘이래서 청가장, 청가장 하는 거구나.’
나중에 어디 아픈 데 있으면 참지 말고 청소소에게 바로 보여 줘야지.
“아 따가워!”
“가만히 좀 있어요. 자꾸 움직이시니까 상처가 벌어지잖아요.”
“아픈데 어떡합니까아.”
“무인이 이런 것도 못 참아요? 아니, 애초에 절정 고수는 맞기는 해요? 무슨 고수가 맨날 맞고 다녀.”
“원래 고수들끼리의 싸움은 치열한 법입니다.”
“어머, 나 청가장주 막내딸이에요. 고수 한두 번 봤겠어요?”
“어허! 남자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알 것이지······. 악!”
붕대를 마저 감은 청소소가 손을 털며 일어났다.
“당분간 숨 쉬는 것도 조심하셔야 해요. 뛰는 것도 당연히 안 되고요.”
“그 정도야 상식이 아니겠습니까.”
“당연하긴 한데······.”
청소소가 창문 밖 어딘가를 바라봤다.
시선을 따라가 보니 낯빛이 새파랗다 못해 희멀건 단운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죽다 살아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저 지랄을 떨고 있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저럴까 봐 걱정이라는 거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멀쩡했을 때도 수련을 멀리했습니다.”
“······.”
“아니 뭐, 그냥 그렇다고요.”
한심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는 청소소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까진 어떻게 오신 겁니까? 제가 다쳤는지는 어떻게 알고요.”
아무리 사천성이 구룡성의 영역이라도 사방 천지에 널리고 널린 게 도적 떼와 사파 잡놈들이다.
그런 곳을 여자 둘이서 횡단하는 건 돛단배를 타고 소말리아 앞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다.
“용 무사님이 이선방의 문도들을 호위로 붙여 주셨어요. 진 조장님이 다친 것도 말씀해 주셨고요.”
설명을 마친 청소소에게 약간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나저나 의원 문을 닫다니 참으로 손해가 막심하군요.”
계약상 청소소의 손해는 곧 나의 손해기도 하니까.
“천릿길을 마음 졸이며 달려온 사람에게 할 말이 그거밖에 없어요?”
“······고맙습니다.”
“엎드려 절받기네요.”
“그래도 살아서 보니까 정말 좋습니다.”
“······정말요?”
“아 네, 죽는 것보다야 훨씬 나으니까요.”
“······그렇군요.”
잠시 적막이 이어지고 묘향이 탕약을 들고 들어왔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 누이.”
묘향이 방긋 웃으며 끓여 온 탕약을 건넸다.
“뭘요. 어서 드세요.”
탕약을 받자 청소소의 설명이 들려왔다.
“설삼으로 만든 탕약이에요. 내상을 치유하는 건 물론이고 조금이나마 내공 증진 효과도 있을 거예요.”
“뭣?!”
아무리 내가 약재에 무지해도 설삼이 뭔지는 안다.
비록, 영약급은 아니어도 보통 사람이 먹으면 십 년은 무병장수할 수 있는 약재로서 현대로 치면 웬만한 수입 중고차보다 비싼 값을 자랑했다.
“이 귀한 걸 어디서?”
“마침 근방에 설삼이 나왔다길래 사 왔어요.”
“돈이 어디서 나서?”
내 질문에 청소소가 재밌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묘향 언니 돈 많아요. 아마 저보다 훨씬 많을걸요?”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아무리 청소소가 잘 챙겨 준다 해도 월에 다섯 냥이다. 일한 지 몇 개월이나 됐다고 거금을 모았단 말인가.
심지어 생활비까지 전부 부담하면서.
내가 의문 섞인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슬쩍 눈을 피하며 말했다.
“다음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일단 몸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니 탕약부터 드세요.”
냄새가 강하게 풍겨 왔다.
돈 냄새가.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본인이 말해 주지 않는다면 알아낼 방법은 없다.
돌아가는 대로 파 보는 수밖에.
각오를 다지며 탕약을 들이켰다.
“크, 좋다. 속에서 화끈하게 올라오는데?”
역시 비싼 게 좋긴 좋아. 먹자마자 효과가 올라오는 걸 보면.
“후후, 힘들게 구한 보람이 있네요.”
“정말 고마워, 누이.”
“뭘요. 진 조장님이 제게 해 준 걸 생각하면 십 분지 일도 안되는데요.”
“아니, 내가 뭘 해 줬다고. 항상 도움만 받고 있지.”
구박도 같이 받고 있긴 하지만.
“아녜요.”
묘향이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 조장님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열흘을 달려왔어요.”
뭐지? 또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는 건가?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올라왔지만, 이런 내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는 내내 안 좋은 생각만 했어요. 만약 진 조장님이 잘못되면 어떡할까.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면서요.”
“아니 뭐 그렇게까지······.”
묘향이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괜찮아져서 다행이에요. 정말요.”
“······누이.”
유전 터지듯 넘쳐흐르는 눈물을 보니 가슴이 찡하고 울려왔다.
누가 감히 그녀를 암호랑이라고 매도했나. 이리도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씨 따뜻한 누이인 것을.
훌쩍. 크응.
청소소 역시 눈을 붉히며 빠져나오려는 콧물을 유턴시키기 바빴다.
마치, 신파극 같은 광경이 방 안에서 펼쳐졌다.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 따뜻한 감정이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이것이······또 하나의 가족?’
덜컹.
“저기······. 탕약을 잘못 가져가신 것 같아 가져왔습니다.”
분타의 시비가 설삼을 달인 탕약을 가져오기 전까지 말이다.
* * *
다시 일주일이 지났다.
묘향과 청소소는 너무 자리를 오래 비웠다며 구룡성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진짜 괜찮겠어?”
“그럼요. 용 무사님이 호위를 워낙 든든하게 붙여 주셔서요.”
“흑도 놈들이 거기서 거기지 뭐.”
“그래도 그 숫자가 백 명이나 된다면 말이 달라지죠.”
“뭐?!”
진짜 미친놈인가?
어안이 벙벙해 눈을 크게 뜬 내게 청소소가 약재 꾸러미를 건넸다.
“잊지 말고 달여 드세요. 혹여 어디다 팔아먹지 마시고요.”
“청 소저······.”
아플 때 잘해 줘서 그런가?
그녀가 백의의 천사처럼 보였다.
내가 감격해서 그녀를 바라보자 청소소가 심지 굳은 눈빛을 내비치며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 정산 비율 말인데요. 이번에 출장도 왔으니까 4할에서 조금 낮춰 주시면······.”
“그만, 제 감동을 망치지 마십시오.”
“아니, 그게 아니라······.”
“어허! 이미 끝난 얘기를 가지고 왜 자꾸 물고 늘어지십니까? 거머리십니까?”
“아니! 이 아저씨가!”
그렇게 평화로운 이별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왔다.
침상에 누우려 하니 쿡쿡 쑤시는 격통이 느껴졌다.
“크으······. 언제 붙냐 이거.”
청소소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열흘은 더 있어야 붙는다고 하던데.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그래도 내장이 안 터진 게 어디냐. 그랬다면 지금쯤 어디 지옥에서 재판 받고 있을 텐데.’
어쩔 수 없었다.
그저 마음 편히 회복을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게 침상에 누워 눈을 감으려던 그때, 밖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을 열어 살펴보니 단운과 그의 담당의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계속 수련을 강행하시니 상처가 덧나지 않습니까. 제발 한 달, 아니 보름만이라도 누워 계십시오. 제가 책임지고 완치시켜 드리겠습니다.”
“이 정도의 부상은 수련을 통하여 극복할 수 있소.”
저런 미친 소리를 하며 하루가 멀다 하고 검을 휘둘러 대니 몸이 나을 리가 없지.
덕분에 의원은 미치려고 하고.
최근 보름 동안 단운의 담당 의원은 그를 감시하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분타에 찾아왔다.
이 시대에 출장은 쉬운 일이 아니다.
쓸데없이 넓은 세계관 때문에 바로 옆 마을이라도 최소 두어 시간은 걸어야 겨우 도착할 정도로 거리가 있었으니까.
덕분에 만보계도 없이 하루 이십만 보를 걷게 된 의원은 하루가 다르게 피골이 상접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운을 응원했다.
‘그래, 잘하고 있어.’
저놈이 골병이 들어 삼 년만 빌빌댔으면 좋겠기에 말이다.
그러면 나더러 싸우자고도 하지 않을 텐데.
그리고 이런 고집을 부리는 건 단운뿐만이 아니었다.
“아이고! 공자님, 그러다 진짜 큰일 나십니다.”
무황성에서 파견 나온 의원 역시 검을 들고나온 이적하를 바라보며 파리해진 얼굴로 우는 소리를 냈다.
“내 몸은 내가 더 잘 아니 걱정하지 마라.”
심지어 이놈은 깨어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눈을 뜨자마자 수련을 한다고 나오다니.
‘잘하는 짓이다.’
실로 고개가 저어지는 모습이었다.
“잠이나 자자.”
어차피, 말린다고 들을 놈들도 아닐 터.
나는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다.
역시 일 안 하고 누워 자는 게 최고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예?! 누가 찾아왔다고요?”
오곡산 분타주가 온갖 호들갑을 떨며 내 방으로 찾아왔다.
“무, 무황성의 대공자가 왔다니까!”
무황성의 대공자가 누구던가.
천무지체를 타고났다며 태어날 때부터 동북부에 그 명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기재가 아니던가.
게다가, 나이 서른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라 다음 대 무황성주 자리가 예약된 사람이기도 했고.
“그런 사람이 여기까지 왜 왔답니까?”
“그거야······!”
오곡산이 답답한 얼굴로 가슴을 팡팡 치며 대답을 하려던 찰나.
“동생의 은인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
휘이잉.
늦가을 산에서 불어오는 삭풍과 함께 숨 막히는 기도를 내뿜는 남자가 들어왔다.
쿵.
과연 무황성의 대공자답게 날카롭고 깊은 기도.
두꺼비 상의 얼굴은 누가 봐도 이적하와 형제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저기······. 추워서 그러는데 문 좀 닫아 주시면 안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