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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도 없는 무림환생-45화 (45/234)

045화 수련

#045화 수련

남천궁.

남만 무림의 총본산이자 구룡성의 5분의 1에 달하는 전력을 자랑하는 이 시대의 중견 기업이다.

여타 세력과 다른 점이라면 이들은 옛날, 남만을 호령했던 왕국인 남오국의 후원으로 창립된 국영 기업이었다는 거다.

아마, 무공을 좋아했고 스스로가 고수였던 역대 남오국 왕들의 취미 생활이었지 싶다.

처음에는 외세의 침략을 앞장서서 막아 냈고 마두가 나타나면 그 누구보다 먼저 나서서 척살하는 등 좋은 일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확히는 남오국이 제국과의 전쟁에서 패해 수도가 포위되던 날.

남천궁의 태도가 돌변했다.

조국을 배신하고 제국에 빌붙은 것이다.

덕분에 안에서부터 붕괴한 남오국은 저항도 해 보지 못하고 개같이 멸망해 버렸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오국을 정벌한 제국 역시 망조가 들어 남만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당시 황제는 구룡성주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남천궁주에게 직위를 하사하고 운남성 남쪽 지역의 행정권을 맡겨 버렸다.

즉, 남만 전체가 남천궁의 세상이 된 것이다.

이에 남천궁은 남만의 패자로 군림하며 부족민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성장했다.

일전, 점창대전에서 일만에 달하는 남만 부족들이 끌려 나온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 남만 부족들은 구룡성이 남천궁을 정벌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런데 그런 남만 부족들이 남천궁에 반기를 들었다면.

구룡성이 남천궁을 정벌할 다시 없을 기회라는 뜻이고.

십 할의 확률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튀어야 하나?’

잠시 고민해 봤지만,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재취업은 망테크다.’

여태 모은 돈으로는 남은 일생을 편히 보낼 수 없다.

결국, 어딘가에 다시 소속되어야 하는데 이는 좋은 선택이 아니다.

연봉을 맞춰 이직하려면 검 덕후들의 집단, 무황성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결국 남은 답은 하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준비뿐이다.

* * *

“흐음······.”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이템 정리.

나는 침상 위에 걸터앉아 물건들을 점검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용린갑이었다.

처음 받았을 때는 전혀 쓸데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했고.

레어 템임을 확인했을 때는 비싸게 팔아먹을 생각에 신이 났지만.

전쟁이 터진다면 말이 달라진다.

팔아먹기는커녕 종일 입고 있어도 모자라다.

‘이건 여벌의 목숨이나 다름없어.’

두 번째로 살핀 건 흑련권갑.

“많이 상했군.”

그동안의 격전으로 인해 여기저기 찢어지고 금이 가 있었다.

아마, 이대로 조금만 더 지난다면 얼마 쓰지도 못하고 찢어질 게 분명했다.

‘수리를 해야겠군.’

아무래도 성 내 대장간에 한 번 가지고 가 봐야지 싶다.

마지막으로 검은색 장포.

일전, 천룡회에서 갑작스럽게 비무를 열어 나를 망신 주려 한 백무하가 내걸었던 보의였다.

혹여나 그 재수 없는 얼굴을 마주칠까 봐 그간 받으러 가지 않았으나, 전쟁이 터진다는데 가릴 게 뭐가 있겠는가.

하나라도 더 챙겨서 살아남을 궁리를 해야지.

그렇게 받아 온 장포에 대한 감상은.

‘나쁘지 않아.’

무슨 가죽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를 싣지 않은 검 정도는 충분히 막아 낼 정도로 방호력이 강하고 꽤 가벼워서 입고 다니기에도 좋았다.

장포라서 방호 부위가 넓은 것도 장점이었고.

‘이게 삼급이라니. 이급하고 일급은 얼마나 좋다는 거야?’

역시 잘 버는 애들은 이유가 있나 보다.

부유한 백룡당을 생각하니 자연스레, 점점 개방되고 있는 묵룡당이 떠올랐다.

‘그나저나 묵룡무관은 괜찮나 모르겠네.’

걔들이 잘돼야 배당금이 떨어질 텐데······.

‘아무래도 주주 총회를 신청해야겠군.’

긴급 경영 점검 차원에서 말이다.

* * *

거금을 지출해 흑련권갑의 수리를 맡긴 후, 쓰린 속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

‘크흑! 수리비가 너무 비싸.’

이래서 언제 삼처사첩의 꿈을 이룬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에 어디 가서 술이나 한잔할까 하다 마음을 접었다.

전쟁이 임박한 지금, 무공을 점검해야 했기 때문이다.

거의 2년 만의 수련.

하기 싫은 마음이 울컥 솟아올랐다.

‘아니야. 한 끗 차이로 뒤지는 수가 있다.’

삶에 대한 의지가 나를 연무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시작된 수련.

퉁.

진각을 밟으며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손을 내뻗고 다리를 접는 동작 하나하나에 내공이 깃들며 파공음을 터뜨렸다.

파앙. 파앙.

연무장에 널려 있던 모래들이 몸 주위를 감싸며 하늘로 솟구쳤다.

퍼엉. 쓰아아아.

다시금 주먹을 내뻗자 전방에 있던 나무가 오래된 잎을 떨치며 흔들렸다.

그렇게 수련하기를 일 각여.

“후우.”

동작을 멈추며 숨을 골랐다.

여기까지가 좌공에서 말하는 일주천.

단 한 번의 행공이었음에도 몸에 활력이 넘쳐흘렀다.

동시에, 내공이 약간 증진된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허억! ······하니까 힘들어······ 죽겠네.”

불평을 내뱉으며 자리에 주저앉으려던 찰나.

화르륵.

바로 옆에서 불같은 살기가 느껴졌고.

파드득.

고개를 돌리자마자,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손을 목도했다.

“흡!”

재빨리 삼양수를 펼치며 손을 쳐 냈다.

텅텅텅.

몇 번의 부딪침 끝에 간신히 손의 방향을 틀 수 있었다.

쑤엉!

귀 옆으로 지나간 손에서 소름 끼치는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맞기라도 했다간 머리가 통째로 터져 버렸을 만한 위력.

이런 고강한 무공을 지닌 이는 외당에 단 한 명뿐이다.

“······당주님?”

“조금 늘었군.”

“오랜만에 본 부하를 죽이시려는 겁니까?”

“오랜만에 본 부하의 무공을 확인한 것뿐이지.”

“그래서 어땠습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공이 더 깊어졌군. 움직임도 빨라졌고.”

북궁백의 말에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그랬다.

이 인간은 내게 이적하의 호위 명령을 내리고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서면으로 그동안 있었던 일을 보고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군요.”

차오르는 화를 겨우 가라앉히고 대답했다.

“무언가 불만이 있나 보군.”

“아닙니다. 속하가 어찌 하늘 같으신 당주님에게 불만을 품겠습니까? 그저 시키는 대로 따르다 뒤져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아주 자알 알고 있는데요.”

“······어째 말에 가시가 있는 것 같은데?”

“아닙니다. 무공 수련을 해야 하니 자리 좀 비켜 주시겠습니까?”

“다 같이 쓰는 연무장인 걸로 알고 있다만······.”

“그럼 제가 다른 곳으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북궁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경지에서 홀로 수련해 봤자 얻는 것은 없을 거다.”

“아까 못 보셨습니까? 제가 휘익! 하고 움직이니까 천지가 개벽했는데요?”

“······천지개벽은 모르겠고 모래가 조금 움직이는 거 같더군.”

“대충 보셔서 그렇습니다. 막 바람이 불면서 나무가 부러졌습니다.”

“바람은 그냥 분 게 아닌가? 나무는 멀쩡하고.”

“허어, 사천성에서 손꼽히는 십수천패 북궁 당주님께서 이리 견식이 짧으시다니. 제 무공이 무엇입니까? 성주께서 창안하시고 하사하신 신공절학이란 말입니다. 당연히 범인의 눈으로 알아볼 수가 없지요.”

“죽고 싶나?”

“······아뇨.”

북궁백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도와주지.”

“수련을 말입니까?”

“그래. 혼자 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나?”

당연한 말이다.

천하가 아무리 넓다 한들 인간의 한계라는 절정에 이른 자는 천이 되지 않고.

초인이라 불리는 초절정의 경지를 밟은 자는 백이 되지 않으며.

일신의 무력이 하늘에 이르렀다는 화경에 이른 이는 열이 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초절정 고수에게 지도를 받는다는 건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UFC 랭킹 7위 정도 되는 선수에게 MMA 강습을 받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무료로!

생각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당주님의 은혜,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당연히 배워야지.

“아까와는 태도가 다른 거 같은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속하! 단 한시도 당주님에 대한 존경심을 한순간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알았다. 그럼 수련을 시작하지.”

북궁백이라는 일타 강사의 무공학개론을 듣기 위해 그의 앞에 가서 섰다.

그리고.

파드드득.

검은색 기류에 휩싸인 그의 손이 나를 덮쳐 왔다.

“······!”

아까와는 다른 느낌의 일격.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아니, 진득한 살기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쿵.

본능적으로 내리찍은 전각의 반탄력으로 전왕보를 시전하여 그의 공격권에서 간신히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아직 안 끝났다.”

그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펑!

81mm 박격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각법이 날아온 것이다.

재빨리 몸을 굴려 각법의 경로에서 빠져나갔다.

모양이 좀 빠지면 어떤가.

머리가 날아갈 판인데.

간신히 피해 낸 후 고개를 들자 북궁백이 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것이 보였다.

“미쳤습니까?”

“실전만이 고수를 만드는 법이지.”

“그런 개 같은 이론은 누가 주장한답니까?”

첨단 무림 시대에 진입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정신론이라니.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바보 같은 작자가 틀림없다.

“내 아버지다.”

아이고 탈룰라야.

“제가 말한 개는 멍멍개가 아니라 전설상에 나오는 해태로서······. 어매 시불!”

파드득.

다시 날아오는 북궁백의 손에 곧장 전왕보를 펼쳐 자리를 벗어났다.

쿵.

그 역시 진각을 밟으며 나를 따라잡았다.

“헉!”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데는 그 어떤 보법보다 빠른 전왕보가 따라잡히다니.

놀라운 보신경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피떡이 될 게 확실한 상황.

나는 북궁백을 떨치기 위해 폭사경의 LITE 버전을 허공에 때려 넣었다.

꾸릉, 쾅!

전방 수류탄을 외쳐야 할 것 같은 폭발음과 함께 경력이 터져 나갔다.

잠시간의 시간을 벌어 다시 한번 전왕보를 펼치려 했지만.

파지직.

북궁백이 손을 젓자 폭발하던 경력이 일순간에 정리돼 버렸다.

그리고.

척.

그의 손이 내 가슴께에 닿았다.

“······!”

콰앙!

호신기를 펼침과 동시에 일어난 폭발에 내 몸이 ICBM에 빙의하여 날아갔다.

쿠웅. 우르르.

그대로 담벼락을 뚫고 지나가 세 바퀴를 구르고는 간신히 멈췄다.

“쿨럭.”

간신히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일조각이었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일조의 조원들이 서둘러 달려 나왔다.

“조, 조장님!”

“갑자기 이게 무슨!”

“다들 무기 챙겨!”

“습격이다!”

망신도 이런 개망신이 따로 없었다.

“어떤 놈입니까? 제가 아주 작살을 내겠습니다.”

그동안 나를 대신해 일조를 훌륭하게 운영한 우제준이 직도를 빼 들고 내 옆에 섰다.

“······저기 저놈.”

저벅. 저벅.

손가락을 들어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북궁백을 가리키니 그가 슬그머니 몸을 뺐다.

“크흠, 대련 중이셨군요. 소인은 업무가 밀려 있어서 이만.”

밀려오는 배신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배신자를 징계하는 건 나중에 해도 될 일.

일단 걸어오는 북궁백에게 한 방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그래도 운영비가 모자라는데 벽까지 부수다니 가립 부당주가 아주 좋아하겠군요.”

“내가 부순 게 아니다."

"...?"

"네가 등으로 부순 거지.”

역시, 이 사람도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쿵.

진각을 밟아 그의 앞으로 파고들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북궁백의 손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쳐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막는 순간 날아갈 게 뻔했으니까.

“흡!”

순간적인 가속.

타점을 놓치게 해 그가 공격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피잉!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나는 북궁백의 손을 지나쳤고.

“죽어! 이 시불롬아!”

있는 힘껏 폭사경을 내질렀다.

일전, 막주광을 상대할 때보다 더욱 강한 내공을 실은 주먹이 그의 복부에 박힐 줄 알았는데······.

척.

너무나도 허무하게 잡혀 버렸다.

“기를 있는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경력을 만들고 폭발시켜 위력을 얻는다······. 대단하군.”

그리고는 팔을 들고 손을 휘저었다.

꽈릉.

그의 손안에 갇혀 있던 경력이 허공에 퍼져 나가며 폭발음을 냈다.

뭐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비현실적인 장면에 눈을 비비고 있자 북궁백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발전의 여지가 있군. 당분간 내가 네 수련을 돕도록 하지.”

“아니, 괜찮은데요.”

“사양할 필요 없다. 네가 강해지는 건 외당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좋은 일이니까.”

“안 그래도 바쁘신데······.”

“마침 할 일도 없는데 잘됐군.”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이 생겼다고 말하는 듯한 북궁백의 표정을 보며 생각했다.

이거 잘못 걸린 거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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