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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도 없는 무림환생-59화 (59/234)

059화 구룡쟁패(4)

#059화 구룡쟁패(4)

“한잔하겠나?”

“아, 옙!”

적룡검 적일의 권유에 나는 재빨리 고개를 처박고 잔을 머리 위로 들었다.

왜 이렇게 저자세냐고?

그야 이놈들한테 잘못 보이면 복면 쓴 밤손님들이 하루가 멀다고 찾아올 테니까.

그래도 이런 저자세로 하소연한 덕분에 적화란에 대한 오해는 금방 풀 수 있었으니 만족한다.

“그나저나 진화의 어디가 그리 좋았어?”

적이가 반쯤 미친놈처럼 물어 왔고 나머지 두 형제도 흥미로워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거야 당연히 마음이지요.”

단호한 대답.

당연했다. 처음부터 내 눈에 들어온 건 그녀의 대해와도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순정파로군.”

“크크크.”

“흠.”

세 사람이 차례로 반응했고 적이가 다시 한번 속을 긁는 말을 해 왔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진화는 집안의 주선으로 만난 남자와 혼인을 약속했는데.”

“알고 있습니다.”

“쟁취하는 방법이 있는데 알려 줄까?”

“······뭡니까?”

“가서 죽여.”

“네?”

“약혼자를 죽이면 진화는 네 차지가 될 거 아니냐? 한번 약혼한 여자를 누가 데려가진 않을 테니. 크크크.”

아니, 정파 맞냐고······.

모르긴 몰라도 이놈이 지옥에 가면 사탄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적이 형님은 너무 극단적입니다.”

이 세 명 중 그나마 정상인처럼 보이는 적삼이 나지막이 타일렀다.

“뭐 하러 죽이기까지 합니까? 가운데 물건만 잘라 내면 알아서 파혼이 될 텐데······.”

아니었다. 이놈도 미친놈이 확실했다.

쾅!

“네놈들은 정말 발전이라는 게 없구나. 명색이 적룡당의 직계라는 놈들이 그래서야 되겠느냐?!”

적일이 술상을 소리 나게 내리치며 말했다.

“약혼자를 처리한다 해도 집안끼리의 약속이니만큼 동생이나 친척이 나설 수도 있다. 그러니 그쪽 일가족 모두를 처리해야 할 것이 아니겠냐?”

“이런, 내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군. 크큭.”

“소제, 형님의 혜안에 다시 한번 감복했습니다.”

틀림없다. 이놈이 바로 사탄의 재림이었다.

나는 속으로 십자를 그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이제 괜찮습니다. 그냥 제가 포기하면 됩니다.”

말을 하다 보니 답답한 마음이 어느 정도 풀어졌다.

“남자답지 못하군.”

“재미없군.”

“별로네.”

뭐, 이 미친놈들의 반응은 예상했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가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적일이 내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마음을 확실히 접었나?”

“임자 있는 여자를 좋아해 봤자 뭐 합니까?”

현대였다면 한 번 더 찍어 볼 테지만, 이곳은 중세 중원.

임자 있는 여자를 찍었다간 파렴치한으로 몰리는 곳이다.

가슴이 시리지만, 포기하고 넘어가는 게 현명하다.

그러자 적일이 생각지도 않은 제안을 해 왔다.

“그럼 우리 화란이는 어떤가?”

“아니, 형님 미쳤수? 우리 화란이가 어떤 아이인데 이런 듣지도 보지도 못한 놈에게 붙이슈?”

“적이 형의 말이 맞습니다. 진 조장의 무공이 범상치 않다고 하나 우리 화란이의 상대로는 턱도 없습니다.”

생각도 안 해 봤는데요?

그리고 화란이 걔는 마음이 너무 작아 내 스타일도 아니고······.

······라는 말이 목젖까지 차올랐으나 세 사람이 내뿜는 살벌한 기세에 눌려 감히 말하지 못했다.

꿀꺽.

적일이 입에 술을 털어 넣으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은 오늘 있었던 비무를 보지 않았구나.”

“실전과 동떨어진 비무 따위가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맞소. 그리고 형님이 나갔다면 다른 당의 애송이들을 전부 쓸어 버렸을 거요.”

적룡당은 구룡쟁패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들의 무공은 원류가 살수 무공인 탓에 비무에 적합하지 않았던 탓이다.

그 대신 구룡쟁패의 운영을 맡아 큰 이익을 거둘 수 있었으니 적룡당으로서도 남는 장사였다.

“회룡도가 여기 있는 진 조장에게 패배했다. 그것도 정면 대결에서.”

“······!”

“······!”

적일의 말에 두 사람이 눈을 부릅떴다.

“전묵의 도를 깨뜨렸을 때는 통쾌하기까지 하더군.”

“······지금 보니 대단한 무인이구려.”

“고수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나?”

방금까지 개뿔도 없는 놈이라며 나를 타박하던 두 사람의 태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저러는 걸 보면 역시 무림인의 가치는 무공에 있긴 한가 보다.

물론, 전묵은 그럴 만한 상대였다.

만약 북궁백과의 수련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비무대라는 좁은 지형에서 내 장기인 전왕보를 통한 유격전을 펼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까.

잠시 전묵과의 비무를 떠올리고 있을 때, 적일이 재차 물어 왔다.

“다시 묻지. 우리 화란이는 어떤가?”

“······제가 부족하여.”

“자네가 부족한 건 당연하고. 그저 생각을 묻는 거네.”

꼭 그렇게 부족하지만은 않은데······.

“여인으로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등천각 시절 그녀가 친근한 태도로 내게 다가왔을 때, ‘얘가 나를 좋아하나?’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신분을 알고 나선 그런 생각은 곧장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재벌 집 금지옥엽이 개뿔도 없는 나를 좋아할 리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잘돼도 문제가 아닌가.

이 미친 살귀들을 형님으로 모셔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이런 연유로 단호하게 말하자 적일이 기세를 내뿜었다.

샤아아.

“그럼 우리 화란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인가?”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나도 이쁘고 그래서 언감생심이었다 그 말입니다.”

큰일이 날까 싶어 얼른 변명하니.

“그동안 우리 화란이를 노리고 있었다니 죽고 싶은 건가??”

“크크크, 오랜만에 내 적혈검이 피 맛을 보겠군.”

나머지 두 놈이 살기를 드리웠다.

아니, 나보고 어쩌라고······.

* * *

어찌어찌 잘 넘겨 술 몇 잔을 더 마시고서야 내일 비무를 핑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슨 쌍팔년도 회식도 아니고.’

못 가게 붙잡는 통에 진땀을 뺐다. 다시 생각해도 끔찍한 기분에 진저리치며 홍화루의 문을 나서니.

“끝났어요?”

문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적화란이 말을 걸어 왔다.

아까의 화려한 복색은 어디 가고 평범한 옷을 입은 채였다.

그녀의 왕방울만 한 눈과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곧장 사과를 건넸다.

“큼큼, 아까는 내가 미안하다. 흥분해서 그만······.”

위에 적일이삼 형제가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진짜 아니다.

“괜찮아요. 선배 얘기 들어 보니까 나도 잘못했는데요.”

“그래도 갑자기 울어서 놀랐다.”

“미안해요.”

“아니야. 나도 뭐 잘한 거 없지. 네 말마따나 전쟁 끝나고 바로 왔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렇죠. 아마?”

“어라? 또 왜 울먹여? 야야. 내가 진짜 미안하다니까?”

나는 서둘러 사 층을 바라봤다. 혹시나 적일이삼 형제들이 튀어나올까 두려웠던 탓이다.

“앞으로 자주 오시면 용서해 드릴게요.”

“······너네 너무 비싸잖냐. 외당 조장의 월봉으론 힘들어요.”

“칫.”

적화란이 토라진 표정을 짓더니 다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대신 여인을 소개해 줄게요.”

“이쁘냐?”

“······그······럼요! 엄청 이뻐요. 선배가 연모‘했던’ 육 총관의 동생인걸요?!”

“우오오!”

그럼 자주 와야지.

내가 환호성을 지르자 적화란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팡.

그녀가 내 등을 세게 치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일 비무도 있을 텐데 어서 들어가 봐요. 괜히 오라버니들 때문에 시간만 늦어졌네요.”

“알았다. 그럼 다음에 보자.”

* * *

잠시 후.

곧장 적룡당으로 달려가 육진화를 찾은 적화란은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

“내 언니가 되어 줄래?”

* * *

묵직.

오늘 걸 돈을 등에 멘 나는 무게를 확인하고 크게 감탄했다.

1650냥.

현대로 치면 십오억 원이 넘는 액수.

이대로만 간다면 내 꿈인 만 냥까지 도달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그런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묘향이 활짝 웃으며 우리 집 정문을 활짝 열었다.

“가시죠.”

그렇게 힘찬 발걸음으로 구룡쟁패가 열리는 곳으로 향했는데.

“1.1배라고?”

배당이 형편없었다.

“예, 그리고 200냥밖에 걸지 못한대요.”

“아니, 왜?”

“아무래도 저번 경기에서 조장님이 회룡도를 일방적으로 이긴 게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조장님 쪽으로 대부분이 돈이 몰렸다네요.”

이런! 힘 조절을 해야 했는데.

애인과 함께 온 육진화의 모습에 그만 이성을 잃었었다.

비통한 소식을 듣던 청소소가 좋은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렇게 배당이 형편없다면, 다른 경기에 거는 건 어떨까요?”

모르긴 몰라도 청가장주가 이 모습을 봤다면 단번에 청소소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고 갔을 거다.

세상 어느 부모도 도박 중독에 걸린 딸을 용납할 리는 없을 테니까.

“안 됩니다.”

“왜요?”

“불확실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성실하게 돈을 불리는 게 목적이지 도박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고수의 눈으로 보면 대충 누가 이길지 보이지 않나요?”

청소소의 주장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무림에 절대라는 건 없습니다. 무엇보다 배당이 큰 경기는 참가자들의 수준이 크게 차이 나지 않아 누가 이길지 맞히기가 어렵습니다.”

청소소의 말대로 무공의 경지는 대충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약간의 경지 차이가 승부를 판가름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날의 컨디션을 살피는 게 훨씬 도움이 될 만하다.

“힝, 아까운데······.”

“어쩔 수 없습니다. 200냥이라도 걸어야지요.”

묘향에게 돈을 건네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접수대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던 청소소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럼 내 돈이라도 주세요. 저만이라도 따로 걸게요.”

“······잃으면 어쩌려고요.”

“흥! 저 청소소예요. 청가장의 금지옥엽. 그깟 푼돈을 잃는다고 신경이나 쓸 거 같나요?”

푼돈이라니. 얼마 전까지 수수료 1할 때문에 나랑 싸웠으면서.

“시간 없어요. 어서 주세요.”

“저는 분명히 말렸습니다.”

나는 포대 자루를 열어 청소소의 몫을 정산해 줬다.

“여기 168냥입니다. 세어 보십시오.”

“왜 그거밖에 안 돼요?”

“정 의심스러우시면 직접 계산해보시든가요.”

청소소가 나뭇가지 하나를 들고 와 바닥에 이리저리 적더니 돈을 가져갔다.

그래 놓고 대뜸 따지기 시작했다.

“수수료가 너무 비싼 거 아녜요?”

“진즉 협의해 놓고선 인제 와서 딴소립니까?”

“그래도 조금 깎아 줘요!”

아니, 방금은 청가장의 금지옥엽이라면서······.

나는 청소소에게 12냥을 더 던져 180냥을 맞춰 줬다.

아까웠지만, 그간 치료비를 내지 않았던 터라 이번 기회에 정산하기로 했다.

“대신, 여태까지 치료받은 거 전부 퉁치는 겁니다. 나중에 치료비 가지고 딴소리하시면 안 됩니다.”

“헤헤, 고마워요.”

돈을 받아 든 청소소가 바보처럼 웃더니 접수대로 뛰어갔다.

절레절레.

저런 전문직 커리어 우먼도 도박에 빠져들다니. 주부 도박단이 괜히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시작된 경기.

빠앙! 파직.

경기는 허무하게 끝났다.

내 상대였던 은룡당의 호중진은 대진운이 좋아 16강에 오른 거지 본신의 무공이 고강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그도 이런 점을 인지하고 있었는지 몇 번의 공방 끝에 방패가 부서지자마자 패배를 인정했다.

“졌습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그렇게 비무대를 내려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와아아!

금룡검 금필대와 백룡검 백무하가 비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의 함성 안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꺄아아악! 금룡검, 이겨라!

아무래도 청소소가 이상한 선택을 했나 보다 싶었는데.

꺄아악! 백룡검 멋있다!

묘향 역시 익룡 울음소리를 내며 백무하를 응원하는 것이 아니던가.

“······.”

도박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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