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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도 없는 무림환생-132화 (132/234)

132화 무림에서 비정규직을 외치다

스윽 스윽.

뒷짐을 지고 절도있게 서 있는 금자환을 바라봤다.

‘난 놈은 난 놈이야.’

비정규직.

IMF 이후 현대 한국 사회를 정글로 만들어 버린 그 저주스러운 개념을 중세 중국인이 떠올릴 줄이야.

덜덜덜.

전생에서 쥐꼬리만 한 연봉을 받으며 계약직으로 일할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절로 몸이 떨려 왔다.

‘그땐 나도 순진했었지…….’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회로를 불태우며 몸을 던져 일했던 기억.

당시 나를 속였던 김 부장을 만난다면 친히 지옥으로 보내 줄 용의도 있다.

‘어쩌면 비정규직이란 개념이 이번에 탄생할 수도 있겠군.’

물론, 중세 중국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비정규직이 넘쳐난다.

가장 흔하게 보이는 이들이 객잔의 점소이다.

주인이 나가라면 언제든지 나가야 하며 장사가 안된다고 급여를 덜 줘도 감히 따지지 못한다.

그 이외에도 기루의 기생이며 상방의 점원, 표국의 쟁자수 등 어마어마하게 많은 직군이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기에 다들 하오문이란 단체에 속하여 고용 안정을 보장받고 부수입을 얻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비정규직 중에서도 아르바이트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메가코프 구룡성이 기간제로 무사를 뽑는다면 그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비정규직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조심스러웠다.

[비정규직의 창시자, 진무전은 어떻게 세계의 노동시장을 망쳤는가?] 같은 말이 역사서에 적혀 천년만년 역적 취급을 받을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

나야 한세상 살다 간다지만, 나로 인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내 후손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더군다나 삼처사첩을 얻어 후손도 많이 볼 예정인데.

“으음, 안 될 말이지…….”

“예?”

“아니다. 잠깐 생각 좀 정리하고 있었어.”

“결론을 내리셨습니까?”

“그래.”

결국, 결론은 하나다.

‘비정규직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수밖에.’

다음 날.

분타원들은 한중 곳곳에 내가 쓴 모집 공고를 붙였고 한중상련의 상인들은 다른 도시에 퍼뜨릴 방문을 한 움큼씩 집어 갔다.

내용은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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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성 한중 분타, 임시 무사 모집 공고.

업무 내용.

一, 성문의 문지기.

二, 순찰.

三, 창고 경비.

지원 자격.

一, 튼튼한 신체

우대 사항.

一, 뛰어난 무공 실력.

二, 한중과 그 근방 출신.

三, 천자문 이상의 학력.

근무 조건.

一, 일 년 단위의 계약에 의한 근무.

二, 은 세 냥의 월봉을 지급.

三, 두 개 조로 나뉘어 여섯 시진씩 근무.

四, 숙식 제공.

주의사항.

一, 모든 지원자는 자신의 출생지와 이름, 가족 관계, 사승 관계를 적은 신상 명세를 오 일 내에 제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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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것 없는 공고.

하지만, 나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숙식 제공과 은 세 냥의 월봉이라는 조건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랬다.

한중 분타에서 도입하는 비정규직 무사의 고용 조건은 정규직 무사와 동일했다.

이 세계의 숙식 비용이 결코 저렴하지 않다는 걸 비춰 봤을 때 어쩌면 더 나은 조건이기도 했다.

즉, 비정규직을 뽑으려면 정규직보다 비싸게 뽑아야 한다는 개념을 정착시키려는 거다.

그래야 역사서에 악명을 남기지 않을 테니까.

“으음……. 분타의 예산이 빠듯한 지금, 너무 무리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역시나, 금룡당 출신답게 계산이 빠른 금자환이 제대로 된 지적을 해 왔다.

“이 형님이 다 생각이 있단다.”

나는 업무 내용 삼 번을 가리켰다.

“한중상련의 창고를 지켜주는 조건으로 얼마간 지원을 받기로 했거든. 아마, 새로 뽑은 인원에게 은 한 냥씩은 돌아갈 거야.”

“아!”

“어때, 이 정도면 괜찮겠지?”

“괜찮다마다요! 이 금모, 총관님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럼 가서 면접 준비나 하자고. 명색이 구룡성의 일원이 될 자들인데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 할 거 아냐?”

뭐, 기간제라고는 해도 구룡성 소속인 건 맞는 말이니까.

* * *

모집 공고에 대한 반응은 내 생각보다 뜨거웠다.

이 세계의 형편없는 노동권에 대비되는 파격적인 대우가 많은 무사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특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날품을 팔던 낭인들이 지원한 건 나도 의외였다.

무림에서 낭인이란 대부분 일류의 경지에 이른 무인들로 생각보다 고급 인력이었다.

어쭙잖은 무공만 믿고 돌아다니다가는 도적들의 함정과 합공에 당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허다하니까.

그렇게 천하를 주유하다 나이가 들고 명성이 쌓이면 어디 식객으로 들어가거나 고향으로 돌아가서 작은 무관을 여는 게 낭인 테크트리의 종착지였다.

그들이 버는 돈에 비해 분타 무사들의 월봉은 훨씬 적었다.

그런데도 지원자가 몰리는 걸 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정착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일 년이든 이 년이든 어딘가에 잠깐이라도 발붙이고 산다면 언젠가 그대로 눌러앉을 기회가 올 테니깐 말이다.

즉.

‘좋은데?’

뜻밖의 이득이었다.

물론, 기본적인 사상 검증은 해야 하는 법.

나는 지원자들의 신상 명세가 적힌 서류들을 적룡당 한중 사무소에 가져다줬다.

사실 하오문에 맡기려 했지만, 한중 분타 역시 구룡성의 하위기관이니 같은 구룡성의 식구인 적룡당에 맡기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약간의 할인도 기대할 수 있고.

아! 금자 다섯 냥의 미수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니다.

절대로.

“이틀에서 사흘 정도 걸릴 겁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야 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죠. 시간이 더 걸려도 괜찮으니 편하게 봐 주십시오. 그나저나 비용 말입니다만……. 아시다시피 저희가 남도 아니고…….”

“하하, 화란 공녀님의 부군 되실 분께 돈을 받을 수야 있겠습니까? 그냥 저희 이름만 기억해 주십시오.”

“…….”

솔직히 좀 찝찝하긴 했지만, 덕분에 의뢰비 전액을 아낄 수 있었으니 그걸로 됐다.

* * *

오 일 뒤.

웅성웅성.

분타 앞은 면접을 보러 온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이! 여기 줄 서 있는 거 안 보여?”

“그럼 똑바로 서 있어야지. 쯧쯧, 꼬락서니를 보니 어디 길바닥에서 무공이나 훔쳐 익힌 듯한데 자리 양보하고 집에나 가지 그러나?”

“뭐라? 네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역시나 못 배운 무림 놈들답게 여기저기서 시비가 붙기 시작했다.

금자환이 못마땅해하는 내 속내를 눈치챘는지 모두의 앞에 서서 외쳤다.

“지금부터 소란을 피우는 자는 곧장 탈락시킬 터이니 모두 얌전히 차례를 기다리시오!”

금세 좌중을 압도하여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금자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요 며칠 완장을 채워 줬더니 금자환의 통솔력이 많이 는 것 같다.

만족스러운 광경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소란을 정리한 금자환이 다가왔다.

“들어가시죠. 총관님.”

“엣헴, 그럴까?”

그렇게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중 분타의 비정규직 면접이 시작되었다.

무림에서의 입사 시험답게 시험은 총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맨손으로 통나무 쪼개기.

내공을 운용할 줄 아는 이류 이상의 무인은 누구나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었다.

“검객이 어찌 맨손으로 나무를 쪼갠단 말이오?! 검으로 하게 해 주시오!”

물론, 어디서 비싼 검을 빌려와 사기를 치려는 놈들도 있었지만.

“검이 없으면 동네 파락호만도 못한 무인은 필요 없소!”

그런 놈들은 이어지는 금자환의 외침에 한마디도 못 하고 침몰했다.

‘으음……. 나쁘지 않은데?’

뭐, 그런 이들을 제외하곤 쉽게 통과하고 있는 걸 보니 한중 무림의 수준도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심사 과정을 감상하던 중.

“응?”

낯이 익은 이들이 주먹을 내리쳐 통나무를 산산조각 내는 모습이 보였다.

투쾅! 투쾅!

그것도 너무나도 쉽게 말이다.

“자환아. 저기 쟤네 지원서 좀 줘봐.”

“누구 말씀이십니까?”

“저기 가운데 있는 두 명.”

“30, 31번 말씀이시군요.”

금자환이 건넨 지원서를 확인해 보니 이들의 얼굴이 눈에 익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박룡문 출신이네?”

“저도 확인하고 의아했었습니다.”

“박룡문이면 한중 무림에서 나름 명문 취급을 받지 않아?”

사실, 지방 중소 문파의 수익 활동이란 건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보표나 표물 운송 같은 일은 표국이, 무공을 가르치는 일은 무관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수익 모델은 돈 많은 사람들의 뒤를 봐주며 기부를 받는 것뿐인데.

박룡문 정도 되는 문파의 경우는 이 기부금이 꽤나 괜찮다.

문주는 절정고수에 문도 대부분은 일류나 되기 때문에 이름을 빌리려는 이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룡문은 중소 문파가 아닌 강소 문파라고 칭하는 게 옳다.

하지만, 이어지는 금자환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얼마 전 북궁 문주가 사기를 당해 문도들이 여기저기에서 돈을 벌고 있다는 소문이…….”

“아…….”

그렇구나.

박룡문주쯤 되는 절정고수도 사기를 당하다니.

역시 무림 세계는 흉악하기 짝이 없다.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듣고 무거워진 마음으로 일 차 시험을 지켜보고 나니 곧 두 번째 시험인 비무가 시작되었다.

내공을 쓸 수 있다 해도 막상 위급 상황이 벌어지면 검 한번 휘두르지 못하는 무인을 걸러 내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분타에서 필요한 사람은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는 신입 사원급이 아니라, 즉시 전력감이 되는 경력직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비무 상대는 흑산호들에게 부탁했는데.

‘안 그래도 몸이 뻐근했는데 비무라……. 손맛을 볼 수 있겠군!’

‘아니, 손맛을 보라는 게 아니라…….’

핀트가 어긋난 탓에 살짝 불안한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시험이 이어질수록 나는 흑산호들에게 맡기길 잘했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온갖 진상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아직이오! 아직 끝나지 않았단 말이오!”

무기도 제대로 못 휘두르면서 아직무새로 변신하여 부르짖는 놈과.

“내상을 치유하지 못하여 제대로 된 실력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있지도 않은 내상을 핑계로 재시험을 요구하는 놈.

“검이 사라지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술! 사술이다!”

밑도 끝도 없이 사술을 부르짖는 사술무새까지.

‘진상이 그렇게 많을 줄이야.’

나는 비무 시험에서 벌어졌던 난장판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넘쳐나는 진상들 때문에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결국, 시험의 방식까지 바꿨다.

그냥 한 대 세게 때리되 그 공격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과격한 방법으로 말이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내 부탁에 흑산호들이 입가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목검을 들었다.

덕분에 머리에 붕대를 싸매는 지원자들이 속출했지만, 소득은 있었다.

‘7번, 99번.’

싹수 좋은 지원자를 두 명이나 발견한 것이다.

심지어, 99번은 자신을 공격하는 흑산호에게 반격하기까지 했다.

백전노장인 흑산호가 승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놀랄 만큼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시험까지 마치고 나니 어느덧 해가 뉘엿거리며 지기 시작했다.

본래 이 정도로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으나 온갖 진상들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된 탓이었다.

분타의 경비조장이자 내 개인 비서, 부패 척결팀장, 이번 시험의 감독관 역할까지 맡은 금자환이 다가와 말했다.

“총관님, 시간이 늦었으니 삼차 시험은 내일 보심이 어떨까요?”

“응? 그걸 나한테 왜 물어? 감독관인 네가 알아서 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마무리하고 퇴근해 보겠습니다.”

“그려 그려, 수고했다.”

툭.

나는 금자환에게 한중상련이 지원해 준 전낭을 던지며 말했다.

“다들 고생했는데 흑산호 형님들과 탁주라도 한 사발 해라.”

“……피곤한데 말입니다.”

금자환이 입꼬리를 늘어트리며 중얼거렸다.

잊고 있었다. 이놈이 무림 세계의 MZ세대였다는 걸.

왠지 어깨가 축 처진 듯 보이는 금자환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에잉…… 라떼는 그렇지 않았는데 말이야…….’

어째 가면 갈수록 요즘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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