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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도 없는 무림환생-156화 (156/234)

156화 황주상단(2)

“진 씨! 거기 가만히 있지만 말고 이것 좀 거들어!”

“아, 예!”

“이거 끝나면 저기 수레에 있는 짐을 내리고 담벼락 따라 자란 잡초도 뽑게.”

“예.”

“잡초 뽑고 나서 시전거리 가서 쌀 두 섬만 가져오게나. 황주상단에서 시켰다고 하면 알아들을걸세.”

“알겠습니다요.”

“쌀 가져오고 나서는 항아리에 물 채워 놓는 것도 잊지 말게.”

“……예.”

“남는 시간에 틈틈이 장작도 패 놓고.”

아니, 무슨 노예냐고.

속에서 짜증이 울컥 치솟았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냈다.

“헤헤, 알겠습니다요.”

지금 나는 투룡 진무전이 아니라 황주상단에 날품팔이로 들어온 진무무였으니까.

“오늘 하는 거 봐서 다음에도 불러 줄 테니까 열심히 하라고.”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헤헤헤.”

‘이번 일만 끝나면 이 새끼 탈탈 털어서 뇌옥에 처넣는다.’

외당의 조장으로서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은 지켜야 하는 대상이었지만, 이 새끼만은 예외였다.

주인보다 마름이 무섭다고, 겨우 하인 관리를 맡은 하급 집사 주제에 무슨 장군이나 된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가.

“멍하니 있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이라고!”

으득.

나는 이를 악물고 놈을 바라봤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증거를 찾을 때까지는 황주상단에 붙어 있어야 할 처지인데.

“예! 예! 갑니다요!”

대답과 동시에 수레를 향해 달려갔다.

근육을 가리기 위해 입은 헐렁한 옷이 걸리적거렸고 하오문에서 빌려 온 인피면구가 답답했지만, 그럼에도 내 속도는 주변 하인보다 훨씬 빨랐다.

“이리 주십시오. 제가 옮기겠습니다요. 헤헤.”

“이 친구, 힘이 아주 장사구먼?”

“인재다! 인재가 들어왔어!”

덕분에 함께 일을 하는 하인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수레의 짐을 옮기고 잡초를 뽑으며 항아리에 물을 채워 놓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다.

“중반(中飯)일세. 이거 드시게나.”

“아, 예 감사합니다.”

그늘에 자리 잡고 쉬고 있던 내게 늙은 하인이 다가와 나뭇잎에 찐 만두 세 개를 건넸다.

본래 날품팔이들에게는 중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을 열심히 해서 챙겨 준 모양이다.

그 증거로 나를 제외한 다른 날품팔이들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그늘 밑에서 쉬고 있었다.

그래 봤자, 소가 쥐똥만큼 들어간 밀가루투성이의 만두였지만 말이다.

우걱우걱.

그래도 시장이 반찬이라고 꽤나 먹을 만했다.

뭐랄까. 묵룡당에서 지내던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그리운 맛이랄까?

“어지간히 배고팠나 보구먼. 여기 물도 있으니 함께 들게나.”

“몸을 움직였더니 조금……. 감사합니다.”

“그럴 법도 하지. 한때 노절이라 불렸던 내 젊은 날을 보는 듯했으니 말이야. 아, 노절이라는 말은 노동계의 절정고수라는 뜻일세.”

“…….”

쓸데없는 말을 지껄인 늙은 하인이 짐짓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자네 혹시 황주상단에 들어올 생각 있나? 생각이 있다면 내 십칠총관께 말씀을 드려 보겠네.”

“십칠총관님이시라면……?”

“이곳 상단의 하인들을 관리하는 분이시지. 아침에 만나 보지 않았나?”

“아.”

오전에 나를 노예처럼 부려 먹어 척살 대상에 오른 놈이었다.

“그런데 십칠총관이라면…… 혹시, 십육총관도 있는 겁니까?”

“그럼, 대총관님부터 십칠총관님까지 총 열여덟 분의 총관님이 계시다네.”

뭔 놈의 총관이 하인만큼 있냐.

“어쩌겠나?”

늙은 하인의 물음에 나는 최대한 불쌍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그래 주시면 평생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가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 있게 답했다.

“나만 믿게나.”

진무전 인생에 첫 하인 생활의 시작이었다.

* * *

오 일.

내가 이곳 황주상단의 하인 노릇을 하며 보낸 기간이었다.

그동안 나는 궂은일도 가리지 않고 몸을 날려 일했다.

당연했다. 그래야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닐 수 있고 의심을 받지 않을 테니까.

물론.

“으으……. 화장실 청소라니…….”

쉽지만은 않았다.

여하튼,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나는 황주상단에 완벽하게 녹아들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문제를 발견했다.

‘하인들끼리도 급을 나누는 더러운 세상.’

아직 들어온 지 며칠 되지 않았던 탓에 내원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저기 물어보니 삼 년이 되기 전까지는 외원 일을 하는 게 관례라나 뭐라나.

그렇다고 경력이 쌓이길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

나는 밤마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강행 돌파가 가능한 지점을 찾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은신술 수업 때 열심히 들을걸.’

그랬다면 몰래 잠입하여 수색을 벌였을 텐데.

사실, 이곳이 일반적인 상단이라면 상관없었다.

그냥 빠르게 움직이기만 해도 절대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황주상단은 구룡성 삼대 상단 중 하나. 경비 무사의 숫자가 수십에 이르렀고 그중 두 명은 절정의 고수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나라도 마구잡이로 들어갔다간 대번에 들통날 것이다.

그러면 증거를 찾기는 요원해질 테고.

‘그 양반도 그래, 아니 명색이 후견인이라면 때려서라도 공부하라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과거의 나를 채찍질해 주지 않은 멸절진인을 떠올렸다.

정말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렇게 투덜거리며 주변을 탐색한 지 한 시진.

“거기 누구냐?”

‘빌어먹을.’

경비를 서던 무사에게 걸리고 말았다.

자칫하면 의심받을 수 있는 상황.

나는 재빨리 양손을 올리고 달빛 아래 몸을 보였다.

다행히 얼굴을 아는 이였다.

“응? 너는 충각방의 하인이 아니더냐? 이 밤중에 어인 일로 돌아다니는 거냐?”

“저녁 먹은 것이 얹혀 잠시 산책이나 좀 할까 하여…….”

“그러면 아예 밖으로 나가지 그러냐? 괜히 돌아다니다가 치도곤을 당할 수도 있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나는 곧장 몸을 돌려 숙소로 돌아갔다.

드르렁. 쿨.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코골이를 듣고 있자니 안 그래도 복잡한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아씨, 빨리 끝내고 나가야 하는데.’

하인 진무무의 삶은 너무나도 괴로웠다.

고기 한 점 안 올라가는 식사와 턱도 없이 적은 일당, 더럽기 짝이 없는 숙소.

‘일 층 밑에 지하가 있다더니.’

여기에 비하면 묵룡당에서 겪었던 배고픈 삶은 천국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일을 끝내고 싶었던 나는 지금까지 모은 정보들을 정리……하기는 개뿔.

일만 더럽게 많이 하고, 별로 알아낸 것도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딱 하나.

‘내원 중간에 있는 전각, 거기가 의심된단 말이지.’

의심되는 장소만을 찾아낼 수 있었다.

평소라면 절차고 뭐고 다 때려 부수고 들어갔을 테지만, 일이 커지면 군사부와 백룡당에 소식이 들어갈 게 분명한바.

쥐도 새도 모르게 증거를 찾아야 했기에 나는 최후의 방법을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오문에 연락을 해야겠군.’

바로, 외부의 조력을 요청하는 거다.

* * *

칠 일차.

계속되는 노동과 열악한 환경, 천대받는 대우를 겨우 참으며 하인 일을 지속했다.

사실, 인피면구도 썼겠다, 가끔은 성질이 뻗쳐 다 때려 부수고 튀고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여태 버틴 게 아까워서라도 참는다.’

온갖 수모를 받으며 버틴 지난 시간이 아까워서 최대한 참아 냈다.

“어이! 진 씨! 이리 좀 와 봐!”

“예? 무슨 일이십니까요?”

“내가 어제 분명 나무를 패라고 하지 않았나?”

“예? 그런 말씀은 안 하셨는뎁쇼?”

“무슨 까마귀 고기라도 삶아 먹은 건가? 젊은 사람이 왜 이리 깜빡깜빡해?”

“아니, 진짜…….”

“이 사람 이거 안되겠구먼! 잘리고 싶은 게야?! 아예 매타작을 해서 길바닥에 던져 줄까? 엉?”

울컥.

뭐, 가끔 위기가 있었지만 말이다.

“아, 아닙니다. 소인이 잘못 알아들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사람이 말이야……. 쯧. 이번만큼은 넘어갈 테니 저기 쌓인 것들 오늘 안에 끝내 놔.”

한참이나 열을 내던 십칠총관이 산처럼 쌓인 장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양이 얼마나 많은지 아름드리나무 서너 그루는 모아 온 것 같았다.

“……저 혼자 말입니까요?”

“그럼, 내가 하리? 여기서 자네 말고 누가 더 있나? 오호라, 또 농땡이를 부릴 생각이로구나. 안 되겠다. 내가 따라가서 일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해야겠다.”

으득.

부당한 명령에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이 새끼 진짜 죽인다.’

뇌옥은 무슨, 일이 끝나자마자 그냥 쳐 죽일 거다.

진무전 스페셜 로우 킥으로 양 무릎 관절을 빠개고 전룡십삼투로 온몸의 뼈를 가루로 만들어 줄 것이다.

‘관자놀이에 폭사경을 터뜨려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어야겠군.’

하지만, 이런 내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절되었다.

“문주님의 명을 받고 왔습니다. 하오문의 칠타석이라고 합니다.”

“…….”

나를 감시한다며 따라온 그가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밝혔기 때문이다.

“아니.”

같은 편끼리 너무한 거 아니냐고.

분명 인피면구 빌릴 때 황주상단으로 간다고 알려주기까지 했는데.

곧장 따지고 들려던 찰나, 그가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붙였다.

“자칫하면 만사가 헛일이 됩니다. 어서 장작을 패십시오.”

“아니…….”

“어서요.”

“에이씨.”

쿵. 쩌억.

그의 말대로 도끼질을 하고 있자 그의 설명이 들려왔다.

“그동안의 무례는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지.”

“대답은 하지 말고 듣기만 하십시오. 혹여 우리 대화를 누가 듣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요.”

“전음으로…….”

“죄송합니다. 내공이 일천하여 전음을 쓸 줄 모릅니다.”

어이가 하늘 높이 승천했지만, 아쉬운 쪽은 나였기에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듣기로는 내원 중앙에 있는 전각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던데 맞습니까?”

끄덕.

“경비가 삼엄한 곳인 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끄덕.

잠시 생각한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상단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 틈에 잠입하실 수는 있겠습니까?”

끄덕.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다만, 저는 이번 일로 다시는 황주상단에 있을 수 없게 됩니다.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죠. 이 점 유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말을 마친 그가 몸을 돌리려는 게 보였고 나는 재빨리 그를 불렀다.

“총관 나리!”

“……무슨 일인가?”

“이번에는 살려 드릴 테니 꼭 보중하십시오. 두 번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시고요.”

“…….”

군자는 용서를 아끼지 않는 법이었으니까.

* * *

그날 밤.

해가 지고 보름달이 하늘 높이 떠올랐을 때.

상단주와 그 가족들이 머무는 전각에 커다란 불이 났다.

불이야-!

칠타석이 말한 혼란이 분명했다.

문제는.

화르륵. 펑!

무슨 수를 썼는지 상단 전체를 태워 버릴 정도로 불길이 매우 거셌다는 것이다.

“불을 꺼라!”

“외당에 불이 났다는 사실을 알려!”

하인이고 호위 무사고 상단의 모두가 불을 끄러 내원으로 들어간 건 당연했다.

담벼락 밑에 숨어 그런 광경을 보고 있으니.

“뭐…….”

검은 복면을 쓴 놈들이 우르르 담을 넘어오는 게 눈에 띄었다.

그중 눈이 마주친 이가 나를 보며 손짓을 했다.

“쉿.”

칠타석이었다.

“어서 가시죠.”

“……아니, 뭐 하는 거야?”

“할 일이 남아 있어서 말입니다.”

그가 눈짓하니 함께 온 이들이 황주상단의 창고 문을 부수고 도둑질을 시작했다.

퇴직금이 없는 세상이니 한 몫 챙기려고 하는 모양.

“…….”

혼란만 일으키라고 했지 언제 도둑질까지 하라고 했나.

그것도 치안을 담당하는 외당 간부인 내 앞에서.

절레절레.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으며 비천풍을 펼쳤다.

전각 위로 올라가자 백여 명이 넘는 이들이 쉴새 없이 움직이며 건물 여기저기에 물을 뿌리는 게 보였다.

‘정신이 없구만.’

툭. 툭.

덕분에 스무 발자국쯤 움직이는 동안 들키지 않고 목표했던 전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콰직.

나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고는 지붕을 부수고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뭐야? 왜 아무것도 없어?’

내 예상과는 달리 내부가 텅 비어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러면 완전 꽝이었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던 중 어디선가 커다란 외침이 들려왔다.

“이곳이 불에 타지 않도록 지키라는 상단주님의 명이 있었다!”

“예!”

내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하는 외침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실시간으로 상단의 재산이 불타는 지금, 귀한 인력을 이곳으로 보낼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럼 답은 하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뜻이군.’

아마 숨겨진 공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기감을 넓게 펼쳐보니 발밑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사람?’

수십 명에 이르는 사람의 기척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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