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뿔도 없는 무림환생-163화 (163/234)

163화 용위동(龍胃洞)(4)

용위동.

중범죄를 저지른 무림인들을 가둬놓는 지하 뇌옥이다.

워낙 살벌한 인물들만 모아 놓다 보니 과거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치열한 싸움은 이제는 벌어지지 않는다.

각자의 파벌이 구역을 나눠 차지한 뒤로는 나름 평화롭게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파벌에 속하지 않은 이들 역시 남을 건들지 않고 홀로 살아갈 뿐이었고.

그러나, 최근 용위동은 갑자기 나타난 한 인물로 인해 들썩이기 시작했다.

미친놈.

죄수들이 그를 부르는 은어였다.

그가 처음 나타난 건 사흘 전. 처음에는 용위동의 공동 구역들을 살피고 다녔을 뿐,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가 주목을 받게 된 건 이틀 전, 각 파벌의 구역을 침범하고 다니면서부터였다.

용위동에서 금기시되는 행동을 몰래도 아니고 대놓고 해 대니 시선을 안 끌려야 안 끌 수가 없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죄수들의 개인 방까지 쳐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죄수들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모욕적인 말을 하며 반항하는 죄수들을 반병신으로 만들어 버리기까지 했다.

그러자 조용히 지내던 용위동의 죄수들은 크게 분노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에야 뇌옥에 갇힌 일개 죄수 신세지만, 갇히기 전엔 다들 한가락씩 하던 인물들이었으니까.

심지어, 마신을 모시는 사당까지 부서진 십마련 파벌에선 직접 실력 행사에 나섰다.

세외 이민족 출신인 무탄이 손을 쓰기로 한 것이다.

타고난 용력을 바탕으로 부족에서 내려온다는 외문 기공까지 익힌 그는, 십마련 파벌에선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였다.

당연하게도 용위동의 죄수들은 무탄의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그만큼 그가 보여 줬던 힘은 대단했으니까.

하지만, 싸움의 결과는 모두의 예상 밖이었다.

십 초식 만에 무탄의 양 무릎과 어깨가 박살 나 버린 것이다.

말이 십 초식이지 과장을 좀 보태면 눈 깜빡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편, 무탄이 박살 나는 광경을 본 남천궁 파벌의 대장인 잔풍은 온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미친놈의 정체를 알게 된 탓이었다.

투룡 진무전.

남천궁을 멸문시킨 불구대천의 원수 북궁백의 오른팔.

잔풍은 이를 악물었다.

으득.

억울하게 고혼이 된 궁주님의 원수를 갚을 기회였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는 부하를 불렀다.

“십마련과 흑도에 가서 내가 보잔다고 알려라.”

“예.”

그렇게 남천궁의 사자가 협상을 제안했다.

* * *

협상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서로서로 믿지 못한 탓에 모일 장소를 고르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공동 구역인 공터로 하자니 십마련의 영역과 가까웠고 연못 옆으로 하자니 흑도와 가까웠다.

결국 협상을 제안한 남천궁에서 양보를 하여, 협상 장소는 십마련과 흑도 구역의 중간인 용위동의 입구로 정해졌다.

다음 날, 용위동을 이끄는 세 개 파벌의 대장이 모였다.

“다들 건강하군. 당신들이 빨리 뒤져야 용위동이 살 만해질 텐데 말이야. 크흐흐.”

배중리의 이죽거림에도 십마련의 등사격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남천궁 파벌을 이끄는 잔풍이 분위기를 전환했다.

“할 말만 빨리하고 가는 게 어떻소? 계속 얼굴을 마주해 봤자 싸움만 날 거 같은데.”

“그……리하마.”

“알았수.”

잔풍이 오늘 모임을 제안한 이유에 관해 설명했다.

“아시다시피, 이렇게 모이자고 한 이유는 최근에 나타난 미친놈 때문이오.”

등사격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든든한 부하였던 무탄이 하루아침에 앉은뱅이가 됐던 탓이다.

잔풍은 그런 등사격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로 물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죽……여야지.”

“놔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데? 괜히 잠자는 호랑이의 코털을 뽑을 필요가 있나 싶은데?”

등사격과 배중리가 다른 의견을 내놨다.

그러자 두 사람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머……저리…… 같은…… 놈. 그깟…… 한 놈이…… 두려워서…….”

“영감은 정말 놈이 혼자라고 생각해?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하고 살지? 맨날 그놈의 마신만 찾지 말고.”

배중리의 도발에 등사격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손을 곧추세우는 게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 보였다.

협상을 최대한 빨리 진행하고 싶었던 잔풍이 서둘러 둘 사이를 막으며 말했다.

“내가 주도한 협상이오. 당신이 이 자리에서 배중리를 공격한다면 우리 남천궁은 흑도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소.”

“…….”

분위기가 가라앉자 잔풍이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놈이 혼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무엇이오?”

“얼마 전, 부하 셋이 신입 한 명을 습격한 적이 있었다. 모두 반병신이 되었지.”

“그런데?”

“놈이 암영동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더군. 그 정도 실력이면 십중팔구 암영동 소속이 됐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

“으음…….”

잔풍이 침음성을 내뱉었다.

진무전이 항상 홀로 다녀서 파벌에 속했는지는 몰랐다.

그가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진무전이 혼자라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겠지만, 그가 암영동의 일원이라면 말이 달라진다.

비록 열 명도 안 되지만 암영동의 죄수들은 하나하나가 각 파벌의 간부급이었으니까.

이른바 일당 십의 용사들이었다.

또한, 지형도 문제다.

암영동을 공격하려 해도 좁은 입구 때문에 머릿수가 의미 없었다.

차례차례 들어가 봤자 시체만 쌓일 뿐이다.

그렇기에 세 파벌이 여태 암영동이란 가시를 뽑아 버리지 못한 것이기도 했고.

‘이걸 어쩐다…….’

잔풍이 침음성을 속으로 삼키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우리는 놈을 죽이려 하오.”

잔풍은 결단을 내렸다.

암영동의 다른 이들처럼 투룡 역시 그곳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복수를 할 기회가 영영 사라진다.

차라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지금 치는 게 여러모로 옳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우리만 손해를 볼 수는 없소. 각자 인원을 차출하여 놈을 칩시다.”

배중리가 이죽거리며 제안을 거절했다.

“내가 왜? 나는 이대로도 상관없어. 맞은 부하 놈이 병신이 됐지 내가 병신이 된 건 아니잖아?”

하지만 등사격의 생각은 달랐다.

“마신님……의 사당을 부……순 죄는 죽어……서도 씻을 수 없……다.”

배중리는 속으로 두 사람을 비웃었다.

두 세력이 이긴다면 골칫덩이가 치워져서 좋고, 패배한다면 그거대로 좋았다.

두 세력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용위동은 자신의 손에 들어올 테니까.

하지만, 잔풍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참여하지 않는다면 흑도부터 치는 것이 어떻소?”

“좋……은 생각.”

간단한 말 한마디로 등사격을 설득한 것이다.

“무슨 개소리야?”

덕분에 시종일관 여유를 부렸던 배중리가 벌떡 일어났다.

머릿수가 장점인 흑도는 개개인의 무력만 따지면 다른 파벌에 비해 꿀리는 편이다.

만약 두 세력이 힘을 합치면 흑도보다 머릿수가 많아질 터, 절대 감당할 수 없다.

“끄응.”

잔풍이 배중리를 보며 대놓고 비웃었다.

“어쩌시겠소?”

결국.

“알았다. 우리도 힘을 보태지.”

배중리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미꾸라지를 어떻게 잡을지 작전을 세워 봅시다.”

* * *

“와…….”

진짜 안 나오네?

수색을 벌인지 오 일. 그동안 잠도 자지 않고 수색을 했으니 백 시간은 넘게 움직였다.

그동안 내가 얻은 거라곤 악명뿐.

“히익! 비, 비켜 드릴 테니 제발 살려만 주십쇼.”

“…….”

이제는 죄수들이 나를 지옥의 디아블로를 보듯이 대했다.

알고 보면 티리엘 같은 남잔데 말이다.

사실, 악명 같은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말 문제는 뒤져도, 뒤져도 신공절학은커녕 삼재검법도 안 나온다는 거지.

‘무협지에서는 어디 굴러떨어지면 기연을 팍팍 얻던데…….’

해골 앞에서 절하면 영약이 나오고.

‘어휴.’

같은 무림 세계관인데 어찌 다르단 말인가.

“허어!”

쿵! 콰직.

답답한 마음에 문을 걷어차자 사람 머리통만 한 구멍이 생겼다.

“헉!”

방 주인이 기겁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찌할 도리는 없던바.

“미안. 형이 지금 마음이 안 좋아서 실수했다. 이해하지?”

선빵 사과를 먹였다.

백무하에게 배운 스킬인데, 나름 괜찮은 처세술인 것 같아 종종 쓰고 있다.

“예, 예. 이해합니다. 이해하고 말고요.”

“사생활이 좀 노출되긴 하겠지만, 대신 환기가 잘될 테니 건강에도 좋을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이놈, 대화를 나눠 보니까 죄수라고 보기엔 영 비실거렸다.

다른 놈들과 다르게 인상이 험악하지도 않았고.

“너는 무슨 죄명으로 들어왔냐? 성실해 보이는데…… 무슨 누명이라도 뒤집어쓴 거야?”

외당 조장으로서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고 평가받는 나다.

만약 누명을 써서 들어온 거라면 다시 조사시킬 생각…….

“그, 그게……. 평소 흠모하던 여인에 대한 욕구를 참지 못하여 납치를…….”

“에라이 새끼야.”

빠악. 후두둑. 털썩.

누명은 개뿔. 범죄자에게는 인권이 없다는 신념만 더욱 굳어졌다.

어설픈 교화는 오히려 대참사를 불러올 수도 있다.

현대였다면 모르겠지만, 무림인이 날뛰면 일반 백성들에게는 천재지변이나 다름없으니까.

기절한 놈을 걷어차고 방으로 들어가 수색을 시작했다.

잠시 후.

“에이씨, 여기도 없네. 그나저나.”

또 꽝이 나온 걸 한탄하며 문을 막 나서던 차.

“너희는 뭐냐?”

눈앞에 수십의 인파가 집결해 있는 걸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거한이 조소를 띠며 말했다.

“누구긴 누구야.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 줄 영웅들이시지.”

“이거 뇌옥 관리가 너무 개판인데?”

놈이 대답 대신 손에 쥔 무기를 들어 올렸다.

대충 봐도 무게가 오십 근은 되어 보이는 석봉이었다.

구석기 시대의 무기처럼 울퉁불퉁한 모양새가, 한방에 머리를 터뜨리기 좋아 보였다.

‘흐음, 내가 딱히 잘못한 건 없는데……? 신고식 같은 건가?’

왜 이 지랄인지는 모른다.

다만, 이렇게 나온다는 건 싸우자는 뜻일 터.

몸속에 퍼뜨려 놨던 전왕기를 가늠해 봤다.

폭사경을 한 번 터뜨릴 정도의 양이 느껴졌다.

사흘의 축기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하지만.

전왕류는 싸우면서 축기가 가능한바, 충분히 해볼 만했다.

콰직!

“꼬르륵.”

마음을 먹자마자 삼양수를 펼쳐 가장 앞에 선 놈의 울대를 끊었다.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주위 놈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러라고 죽인 거다.

다수와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기세거든.

곧장 각법을 펼쳐 옆에 있던 놈의 고간을 올려 찼다.

뻐억!

“끄아악!”

눈을 까뒤집으며 쓰러지는 놈을 뒤로하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뭣들 하나? 죽여!”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공격을 지시하는 외침이 들렸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몽둥이가 날아왔다.

퍽퍽.

전부 피할 도리가 없어 몇 대는 맞아 주며 앞에 놈들을 후려쳤다.

그야말로 개싸움이었다.

심지어, 무인이란 자각이 사라졌는지 내 팔다리를 깨무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공간을 만들어 내는 데는 성공했다.

휙. 부웅!

“헉!”

빠악!

덕분에 주먹에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한 방에 한 놈.

오늘의 콘셉트다.

“죽엇!”

부웅!

떨어지는 몽둥이를 피해 냄과 동시에 놈의 턱을 올려 쳤다.

턱뼈가 작살나는 소리와 함께 입안 속 이빨이 뻥튀기처럼 튀어나왔다.

“켁!”

뒤쪽으로 각법을 펼쳐 다가오는 놈의 명치를 후려쳤다.

“후우.”

그렇게 열 명이나 처치했을까?

전왕기가 차오르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조금만 더…….’

이대로라면 서른 명쯤 해치웠을 때 폭사경을 두어 번 때려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결판은 난 것이나 다름없다.

지레 겁먹어서 감히 덤벼들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싸움이란 게 항상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덥썩!

명치를 얻어맞은 놈이 발목을 잡아 왔다.

“이런 시불롬이!”

콰직!

“끄아악!”

재빨리 놈의 손을 밟아 부쉈으나 그 틈을 타 날아오는 몽둥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후려쳐!”

퍽퍽퍽퍽!

마치, 조폭 영화에서나 보던 몽둥이찜질이 연출되었다.

용린갑이 있으면야 전혀 타격이 없겠지만, 현재는 문상에게 맡겨 둔 상태.

어쩔 수 없이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큭.”

전왕류 덕분인지, 아니면 북궁백이 말한 대로 내가 정말 특이체질인 건지는 몰라도 견딜 수는 있었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이것도 계속되면 위험할 게 분명하다.

심지어 몇몇 타격은 가랑비가 아니라 장대비였다.

‘젠장.’

그렇게 여태껏 모았던 전왕기를 끌어올리려던 찰나.

“감히, 누구를 건드리는 거냐?!”

“크흐흐, 오래간만에 재미있겠네.”

“흥!”

“나무아미타불.”

“총주 형님! 괜찮으십니까?”

암영동의 다섯 죄수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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