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쇼미더무공(2)
무공을 수련하다 보면 문득 ‘진정한 강함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집채만 한 바위를 일격에 부술 수 있는 지금도 말이다.
아, 그렇다고 마음의 강함이 진정한 강함이라는, 태권도 정신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다.
이른바 효율의 문제였다.
묵룡당이나 소림사에선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무공이란 기본적으로 남을 해치기 위한 공부.
칼끝으로 푹! 하고 찔러도 충분히 죽일 수 있는 걸 과연 강기까지 빵빵 터뜨려야 하느냐는 의문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적룡당의 무공이 효율의 최고봉을 달리지 않을까 싶다.
그 인간들은 은밀하고 빠르게 검을 찔러 상대가 대비하기 전에 죽여 댔으니까.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우공백은 내게 또 다른 효율을 보여 줬다.
뻥! 콰직.
“쿨럭!”
무공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거라는 걸 말이다.
왼쪽이라고 생각하고 막으면 오른쪽으로 들어왔고, 아래라고 생각하고 피하면 위를 노려왔다.
‘와…….’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괜히 칠패 중 최강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쑤아앙!
“제법이구나!”
두 자는 될 법한 몽둥이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
쿵.
전왕보를 찍어 자리를 벗어남과 동시에.
빠악!
허벅지에 몽둥이가 틀어박혔다.
“끄응.”
깊진 않았지만, 기분이 나빠지는 타격이었다.
전면을 살피니 우공백이 양손에 몽둥이를 쥔 채로 조소를 짓고 있었다.
그동안 많은 싸움을 해 왔으나 저런 인물은 처음이었다.
오성이 뛰어나 무공을 잘 이해한다. 근골이 훌륭해 수련의 효율이 뛰어나다. 감각이 예민하여 내공을 잘 받아들인다.
강호에 알려진 천재들의 조건이었지만, 저 사람은 달랐다.
‘다른 의미로 천재다.’
전투의 천재.
그것도 본능에서 기인한 방식이 아닌, 이성에서 기인한 방식이었다.
퍽퍽. 빠악!
“후우.”
날아오는 공격을 간신히 막아 내며 생각했다.
‘시간을 끌면 진다.’
쌓여 가는 타격이 심상치 않았다.
하나하나는 자잘했지만, 몇 대 얻어맞고 나니 내상의 기미까지 보였다.
하지만, 승산은 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이 아니기에 우공백은 나무로 만들어진 무기를 사용했던바.
이는 곧 적수공권이 주 무기인 내게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이었으니까.
“흡!”
이제는 비천풍과 하나가 된 전왕보를 펼쳤다.
파고드는 속도에 놀랐는지 우공백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지금!’
벼락같이 뻗은 전왕십삼투.
파앙!
하나이되 열세 번인 타격이 그의 전신에…….
퍽! 퍽퍽퍽.
타격을 입히긴 개뿔이.
순식간에 날아오는 몽둥이에 연속으로 두들겨 맞았다.
“시불!”
물론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쿠아아앙!
재빨리 폭사경을 터뜨려 그를 멀리 떨어뜨렸다.
우공백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
“밀리기 시작하는군.”
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전왕문과 태모산성의 대립을 뜻하는 거다.
‘밀릴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전황이 빠르게 뒤집히고 있었다.
기마를 이용한 돌파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대문파의 저력이란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흡!”
스거어억!
최대한 빨리 깃발을 부숴서 승리를 따내는 수밖에.
파지직. 파직.
극사경을 날려 보내자마자 전왕기를 끌어올렸다.
어차피 저 정도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었으니까.
심즉기(心卽氣)의 묘용이 담긴 전왕기가 온몸에 퍼져 나감과 동시에.
쿠웅.
전왕보를 뻗었다.
“죽엇!”
이제 막 극사경을 막아 낸 우공백의 측면으로 돌진하자 몽둥이가 진로를 막아섰다.
‘예상했다. 이 아저씨야.’
전왕십삼투.
암영동에서 얻은 일련의 깨달음으로 인해 한 타 한 타가 폭사경급으로 상승한 연속기를 펼쳤다.
쾅쾅쾅쾅!
맞으면서 때린다.
이게 내 작전이다.
한 살이라도 젊은 내가 피통은 더 클 테니깐 말이다.
그리고.
“큭.”
“컥!”
콰직. 펑.
경력을 견디지 못한 그의 무기가 터져 버렸다.
“뒤져!”
콰아아앙!
곧장 펼친 폭사경이 수류탄급의 위력을 보이며 주변을 터뜨리더니 인력이 발생하며 그의 발을 묶었다.
전력을 다할 때 나타나는 현상.
“크헙.”
우공백의 입에서 답답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상대는 철산서패.
뻐엉! 쿵.
용이 때리는 듯한 강맹한 장법이 내 몸통을 후려쳤다.
“우웩!”
주르륵.
삼 장이나 날아간 끝에 겨우 멈춰 섰다.
속에서 치솟는 피를 울컥 토했다.
트럭에 받히는 듯한 위력이었다.
심지어 호신강기인 전룡기보다 빠르게 몸에 꽂혔으니 그 속도 역시 엄청났다.
만약 용린갑이 없었다면 갈비뼈가 모조리 으스러졌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신공절학이라는 뜻이다.
그 순간, 방금까지 우공백이 펼쳤던 봉법이 떠올랐다.
빈틈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최상승의 봉법. 거기다 천하에 둘도 없는 강맹한 장법.
하나면 모를까 둘을 동시에 가졌다면 딱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개방?”
지금은 망해 없어진 전설의 거지 집단 말이다.
샤아아.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살기가 몰려왔다.
‘비밀이었나 보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뱉은 말을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는데.
콰르르.
천지가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샛노란 수강에 휩싸인 장법이 날아왔다.
“쯧!”
방금의 일격으로 용린갑의 존재를 파악했을 터.
몸통이 아닌 다른 곳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머리에 맞으면 죽고 팔이나 다리에 맞으면 불구가 될 게 분명했다.
“끄읍!”
이제는 비천풍과 하나가 된 전왕보를 펼쳤다.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
파앗.
이형환위였다.
그렇게 자리를 피하고 0.1초도 되지 않은 찰나.
퍼어어엉!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지형이 크게 파였다.
결과만 놓고 보면 방금 펼친 폭사경을 압도하는 위력.
문제는, 저 장법이 십팔단 콤보로 이루어졌다는 거다. 항룡십팔장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 게 아니었다.
“젠장!”
콰르르.
이제 막 이형환위를 펼쳐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는 막아 내는 수밖에 없다.
콰아아앙!
전력을 다한 폭사경이 항룡십팔장과 부딪쳤다.
경력과 기의 폭풍이 우공백과 내 주위를 둘러쌌다.
쿠아아아.
전룡기가 튀어나와 주변의 기를 먹어 치우며 몸을 불렸다.
“하압!”
그리고 이어진 세 번째 타격.
퍼어엉! 쿠아아아!
전룡기가 항룡십팔장의 수강을 먹어 치우는 데 성공했다.
‘두 번 이상은 못 막아.’
아무리 전룡기가 대단한 무공이라도, 한계는 있는 법.
타격을 더 받으면 무용지물이 될 게 분명했다.
‘연환경?’
이 순간을 타개할 방법이 떠올랐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백은문과 해남검파가 남아 있는 지금, 전력을 다한다면 앞으로가 힘들어진다.
그리고.
‘쓴다 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물론, 포기할 수는 없는바.
어떻게든 반전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뒤져!”
빛과도 같은 속도로 극사경을 쏘아 냄과 동시에.
파앗.
이형환위로 자리를 옮겼다.
“이노옴!”
극사경을 부숴 낸 우공백이 귀신처럼 따라붙었다.
“이익!”
쑤엉!
어디선가 기다란 목창이 날아왔다.
나를 주시하고 있던 육학이 던진 것이었다.
“흥.”
콰직.
그가 간단히 손을 휘저어 목창을 부숴 버리던 찰나.
우웅…… 쓩!
그의 왼쪽 눈을 향해 전주시를 쏘아 냈다.
한순간의 틈을 노린 기습.
우공백이 고개를 흔들어 전주시를 피해 냈다.
그리고.
뻐어엉!
내 명치에 항룡십팔장이 틀어박혔다.
우지직.
용린갑에서 찌그러지는 소리가 났다.
수십 미터를 날아간 끝에 겨우 멈춰 섰다.
“흐으…….”
간신히 고개를 들어 전면을 살피니 고목처럼 마른 우공백이 보였다.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어디서 이런 괴력이 솟아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쿨럭.”
“포기하지 그러나.”
그가 피를 토하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포기는 아저씨가 해야 할 것 같은데?”
“……!”
우공백이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전주시에 찢어진 깃발을 발견한 그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러게, 관리를 잘했어야지.
* * *
타닥. 타닥.
모닥불이 따뜻한 기운을 사방으로 내뿜었다.
꼬르륵.
반면, 뱃속에는 차가운 기운만이 맴돌았고.
준비해 둔 식량이 없는 탓에 전왕문의 모든 이가 주린 배를 붙잡고 잠을 청했다.
그나마 개울을 발견해서 목이라도 축인 게 다행일 정도였다.
아마, 우리의 문상께서는 극한 환경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도 보려는 모양이다.
모두가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가 가장 유리하다.
최악의 경우, 말이라도 몇 마리 잡아먹으면…….
‘아니야. 그 전에 끝내야 한다.’
저게 한 마리에 얼마짜린데 잡아먹을쏘냐.
무엇보다.
말이 너무 귀여웠다.
“…….”
“…….”
모닥불 너머로 나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는 흰둥이(갈색의 말이지만, 콧잔등에 흰털이 있어 흰둥이라 이름 지었다.)를 보니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우쭈쭈.”
푸륵. 푸륵.
영리하기는 또 얼마나 영리한지, 내가 뭔가 말할 때마다 푸륵거리며 대답까지 해 준다.
아무래도 청소소에게 부탁하여 회천도인금침대법(廻天道引金針大法)을 받게 해야겠다.
일개 곤충이던 청아도 영물로 바꿔 준 대법이니 똑똑한 흰둥이에게는 더욱 효과가 좋을 것이다.
‘귀뚜라미보다야 말이 백배 낫지. 암, 그렇고말고.’
혹시 아는가.
대법을 받은 흰둥이가 페가수스로 탈바꿈할지.
그렇게 흰둥이를 바라보며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던 찰나.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는가?”
“그냥…… 오늘 싸움을 복기하고 있었습니다.”
“허허허, 과연 투왕의 제자답군. 제 스승을 닮아 이리도 무공광이라니. 제자 복이 있어.”
“……뭐, 그렇긴 하죠. 사실 그 성질을 받아 줄 만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저니까 받아 주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턱도 없었을 겁니다.”
“…….”
“그나저나 집엔 언제 가시렵니까?”
우공백이 너스레를 떨며 답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누가 이기는지는 보고 갈 예정이네.”
“…….”
경연에서 탈락한 태모산성은 떠났지만, 성주인 우공백은 이곳에 남았다.
덕분에 나만 귀찮게 됐지.
어찌 됐든 무림의 대선배였으니깐 말이다.
‘귀찮은데…….’
전생에서부터 나는 어른을 상대하는 게 어색했다.
사실, MZ세대는 대부분 그럴 것이다.
괜히 예의 없어 보일까 봐 신경 써야 하고 또…….
척.
“방금 잡아 온 토끼일세. 사냥감이 많이 없더군.”
“아이고! 어르신, 뭘 이렇게까지…… 이리 주십시오. 제가 손질하겠습니다!”
“나도 산에서 살아 이 정도쯤은 충분히…….”
“강호의 도리라는 것이 있는데 어찌 그러겠습니까. 이리 주시고 편히 쉬십시오. 금방 구워 올리겠습니다요.”
오랜만에 만난 참어른의 모습에 절로 감동이 몰려왔다.
슥삭슥삭.
그렇게 부푼 마음을 안고 토끼를 손질하고 있던 차에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밀이네.”
“아휴, 그럼요. 다들 쫄쫄 굶고 있는데 우리만 먹은 걸 어떻게 알리겠습니까. 저 진무전, 그 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 개방의 무공 말이네.”
“아…….”
하긴, 무공의 연원은 최대한 밝히지 않는 게 좋으니까.
“네, 뭐. 그러죠.”
“신경도 안 썼나 보군.”
“남의 일이니까요.”
“맞는 말이군. 지나친 호기심은 죽음을 부르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런데 혹시 술은 없습니까? 이거, 고기만 먹으려니까 영 심심하네요.”
“기본적으로 긴장감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군.”
바닥에 굴러다니던 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모닥불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긴장 많이 합니다. 지금도 하고 있고요.”
“나 때문에?”
“아뇨. 이미 저희가 이겼는데 뭐 하러 긴장합니까?”
“……그럼, 뭐 때문인가?”
“탈락할까 봐 긴장하고 있습니다. 선배님은 모르시겠지만, 엄청난 돈을 써서 준비했거든요.”
“……그런 것치곤 아무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은 것 같군.”
“이제 곧 알게 되실 겁니다.”
타닥타닥.
모닥불에 올려놓은 토끼를 뒤집었다.
“저희가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