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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도 없는 무림환생-189화 (189/234)

189화 종친회(5)

“그러니까, 전왕류의 전승자를 용체라고 한다?”

“정확히는 전왕류를 익힐 수 있는 신체를 용체라고 합니다.”

“……사부는 천금지체라고 하던데?”

“같은 말입니다.”

“용체라면……. 용의 몸이라는 뜻인가?”

황당함을 담아 쳐다보니 북궁창이 작게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혹여 그분께 궁가의 시조에 대해 들은 게 없으신지요.”

“용을 잡아먹었다고 듣긴 했다만…….”

“자세히 들은 건 아니시군요. 하긴 그분 성격에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도 상상이 안 되긴 합니다.”

북궁창이 앞에 놓인 차를 마시며 말을 이었다.

“혹여, 복희씨라고 아십니까?”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알다마다.

중국 문명의 시조라 여겨지는 삼황오제(三皇五帝) 중 한 사람이었으니까.

한국과 비교하자면 단군 할아버지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궁가의 시조께서 잡았다는 용이 바로 그 복희씨입니다. 그 피를 마셔 얻은 특성이 바로 천금이고요.”

“그런 허무맹랑한 신화 말고 사실을 듣고 싶은데……?”

사기꾼을 보듯이 쳐다보니 북궁창이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삼천 년도 더 된 이야기니, 정확하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군.”

“……아무래도 믿기지 않으신가 보군요.”

“아예 궁가의 시조가 치우천왕이라고 하지 그래? 하늘 궁이 천왕의 천자를 뜻하는 거라고.”

북궁창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용체답게 감이 매우 뛰어나십니다.”

“뭐?”

“맞습니다. 궁가의 시조께선 전쟁의 신으로 불리는 치우천왕이십니다. 그렇기에 신공의 이름이 전왕류가 된 겁니다. 전신에게서 이어받은 무공이니까요.”

북궁창이 약간은 신난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사실, 북궁가의 모두가 용체를 경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혹시 전신 치우의 환생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정확하십니다.”

“아니.”

우리가 무슨 마교도 아니고, 환생은 또 뭐냐고.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하지만, 무릇 신앙을 강제할 수는 없는 법.

나는 더 이상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독실한 종교인에게 신은 없다고 해 봤자 반발만 살 테니까.

더군다나 상대가 나를 화신으로 봐 준다면 입 닥치고 있는 게 이득이겠지.

“뭐, 여하튼 그건 됐고. 궁금한 게 있어.”

“예.”

“짭친……. 아니, 종친회는 왜 만든 거야?”

“결속을 위해섭니다.”

“결속이라……. 하긴.”

북궁세가가 망한 지 이백 년.

슬슬 소속감이 떨어질 때가 되긴 했다.

당장 군대만 보더라도 훈련소를 수료할 때는 동기들을 붙잡고 연락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자대 배치를 받게 되면 훈련소 동기 따위는 기억에서 삭제돼 버리니까.

그만큼 시간과 소속감은 반비례하기 마련이다.

“혹시, 강제로 가입시키는 건 아니지?”

“물론 아닙니다. 다만.”

말을 하던 북궁창의 기세가 무거워졌다.

“북궁가의 유산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유산이라면……. 돈?”

“무공과 사람입니다.”

“음.”

확실히 유산이 맞긴 하다.

고수의 몸값은 예로부터 비쌌고, 최상승의 무공 역시 값어치를 매기기 힘드니깐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북궁창이 설명을 이어 나갔다.

“북궁가의 마지막 가주께선 당시 흑룡대주였던 제 고조부에게 훗날을 대비하라 명하셨습니다. 이에 고조부는 흑룡대를 모두 이끌고 하북에 자리 잡았고, 지금에 와선 모두에게 손가락질받는 흑도 문파가 되었습니다.”

“…….”

“단 한 번도 부끄럽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정체를 숨기고 힘을 모으기 위해 흑도로 위장했을 뿐이니까요.”

그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봤다.

“북궁가의 재건을 위해서 말입니다.”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혔다.

대를 이어 명을 수행한다니. 그것도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참아 가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충성심이 아닌가.

“……대단하군. 아니, 고생이 많았겠어. 북궁세가를 대신하여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이자 북궁창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악귀와도 같은 그의 얼굴에 커다란 파동이 일어났다.

“아……닙니다.”

잠시 마음을 추스른 그가 찢어진 목소리로 답을 이어 나갔다.

“저희와 같이 북궁가의 유산을 이어받았음에도 모르는 척하고 있는 이들을 압박하기 위해 종친회를 만들었습니다.”

“……어딘데?”

“반야보(反夜堡)와 해절방(海絶幇)입니다. 각각 흑살대와 흑랑대가 전신이 되는 곳이지요.”

“아니.”

왜 하나같이 흑도들이냐고.

꽤나 유명한 이름이었다.

북쪽 초원의 반야보는 최근 들어 뜨고 있는 살귀들의 집단이었고.

복건성 해절방은 왜구를 전문으로 터는 해적이었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빠르게 자리를 잡고 세를 키우려면 합법보다는 불법이 나은 법이니까.

또 나쁜 소문만 있는 건 아니다.

반야보 같은 경우는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긴 하지만 죽일 놈만 죽인다는 소문이 있고, 해절방은 왜구만 터니 어떻게 보면 의적이나 다름없다.

아마 흑사문 역시 마찬가지일 터다.

“됐어. 유산을 가지고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닌데 놔둬. 정 뭐하면 무공이나 돌려 달라고 해. 우리 애들이나 가르쳐 주게.”

하기 싫은 놈 억지로 데려다 놔 봤자 딴생각을 할 게 뻔하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훨씬 무서운 법이고.

“하오나.”

“괜히 마음 떠난 놈 붙잡아 봤자 역효과만 난다.”

“으음…….”

우려 가득한 북궁창의 시선을 마주했다.

“나는 생사를 함께할 전우가 필요한 거지 낭인이 필요한 게 아니야. 그리고.”

그가 보는 앞에서 손바닥을 위로 뻗었다.

펑.

순간적으로 경력이 폭발하며 작은 아지랑이가 일어났다.

“당신 말대로라면 이게 치우천왕이 가르쳐 준 무공이라면서? 이거만 대성하면 굳이 그놈들이 없어도 북궁세가를 재건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

털썩.

벼락처럼 일어난 북궁창이 부복하며 고개를 숙였다.

“속하가 감히 용체의 뜻을 살피지 못했나이다. 죽여 주시옵소서.”

“제발.”

과잉 충성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 * *

처음 목적대로 나는 종친회의 멤버들을 불러 모아 한중으로 이사 올 사람을 모집했다.

물론, 천하는 넓고 넓은 만큼 이사는 힘들었다.

무인들의 집합체인 문파라고 해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다.

원한을 갚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속 좁은 놈들이 무림인이란 작자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강하다고 피해를 보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자고 입고 먹는 동안 언제 어디에서 하독(下毒)을 할지 모르고, 이동 중에 함정에 빠질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자발적인 참여를 독려했다.

어느 정도 지원은 해 주겠지만, 자신 있는 이들만 한중으로 오라고 강조했는데.

“용체께서 원하신다면 문도들을 모두 이끌고 한중으로 달려가겠나이다!”

“겨우 달려가는 것만으로 되겠소?! 저는 아는 문파들까지 모조리 동원해서 용체의 적을 쓸어 버리겠습니다!”

“저는 아예 전 재산을 써서 강남 아래 모든 살수들을 불러 모아…….”

“당장 이사를 하는 것은 힘드니 낭인 일천을 동원하여…….”

“허어! 그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방법 말고 지금 당장 한중으로 달려가…….”

뭔가 핀트가 크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런 촌극이 이어지자 북궁창이 나섰다.

“그만들 하시오! 용체 앞에서 이 무슨 추태요!”

“…….”

그의 한마디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크흠…… 보기만 좋구먼, 뭘…….”

북궁창이 나서는 게 고까운 모양인지 북궁장환이 입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

‘아무리 봐도 종친회주감이 아니야.’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무공도 인지도도 능력도 떨어지는 건 물론이요, 심지어 방금까지 내가 북궁 사부의 제자라는 걸 의심한 주제에 회주는 무슨.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출마한다는 건지…….’

그냥 돈향루 주방에 처박혀 있으면 딱 맞는 인물이다.

마침 놀부처럼 생겨서 부대지개도 잘 만들 것 같고.

‘이참에 보쌈도?’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차, 좌중을 휘어잡은 북궁창이 다시 한번 의견을 전달했다.

“용체께서는 여러분들이 자발적으로 이주하길 바라시는 거요. 그런 과격한 방법을 원하는 게 아니라.”

괜히 종친회주가 아니었다.

‘존나 카리스마 있군.’

저러니까 멤버들이 뻑 넘어가지.

“하오니 우리 모두 한중으로 이주를 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아니.”

왜 자꾸 극단적으로 몰아가냐고.

잠시 후.

“크흠, 알겠습니다.”

한참을 상의한 끝에 흑사문만 이주하는 걸로 결정 났다.

사실, 어느 정도 내가 바라는 결과였다.

흑도이니만큼, 온갖 더러운 꼴을 많이 봤을 북궁창이다.

거기다 북궁가의 재건을 위해 엄청난 재물을 모으기까지 했다.

그 말인즉슨, 술수는 물론이고 이문에도 밝다는 뜻이고 무공 역시 강하니 한중 무림을 휘어잡기에 딱 맞았다.

또한, 이건 흑사문에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자리 잡은 하북성 천진도 결코 작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한중과는 비교할 수 없는바.

유흥가만 장악해도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무릇 흑도란 떳떳하지 못한 장사를 하는 이들이기에 주기적으로 상납을 하는 경우가 많다.

흑사문처럼 사업을 크게 하면 그 액수 또한 엄청나게 커지고.

하지만, 한중의 최고 권력자인 내가 뒤를 봐준다면?

그야말로 호랑이에 날개를 붙여 주는 꼴.

즉, 윈-윈이 되는 셈이다.

이제 남은 건 하나.

‘다 뒤졌어.’

한중 무림을 거지로 만드는 것뿐이다.

구시렁구시렁.

“……나도……. 할 수 있는데…….”

뭐, 북궁장환이 중얼거리며 불만을 내뱉었지만, 신메뉴 레시피나 좀 쥐여 주면 금세 풀리겠지.

이 정도면 최고의 결과였다.

* * *

종친회가 끝난 뒤, 나는 한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칠로와 팔로, 구로를 흑사문으로 보냈다.

그들의 이사를 돕기 위함이었다.

아무래도 흑도 문파였던 만큼, 은원이 잔뜩 쌓여 있었을 테니까.

그렇게 한 달 하고도 보름.

상인으로 위장한 흑사문의 전원이 한중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음험한 흑도답게 빠른 속도로 상황을 파악한 북궁창이 당장 한중 무림을 쓸어 버리겠다고 날뛰었지만.

“기다려. 완벽한 기회가 올 테니까.”

나는 그를 만류했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효시가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뭐? 그래서?”

“놈들을 제압하는 중에 우리 쪽 무사가 셋이나 다쳤습니다.”

“아니, 왜 다쳐? 놈들 실력이야 뻔한데.”

“그게……. 죽이지 않으려고 손에 사정을 뒀답니다.”

“그럼 놈들은 사정을 두지 않았다는 뜻이네?”

“아무래도 그런 듯합니다.”

“하!”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해가 뜨기 전 시전 근무에 투입되었던 전왕문의 무사 열 명.

평소와 같이 시전을 돌아다니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한중무림의 무인들이 눈을 부라리며 시전의 입구를 막은 것이다.

이에 무사들은 그들을 제압하기 시작했고 큰 싸움으로 번졌다.

“그래서, 붙잡긴 다 붙잡았대?”

“예. 한 놈도 빼놓지 않았답니다.”

“이상하단 말이야……. 갑자기 왜 시비를 건 거지? 그것도 시전거리를 막으면서까지.”

한중 무림과 상계는 혈연과 인맥으로 엮여 있다.

그런데도 장사를 방해한다?

이건 이상해도 너무 이상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자칭 한중 제일의 지략가인 유소평이 명쾌한 해답을 내놨다.

“아무래도 전왕문이 한중 무림을 탄압했다는 명분을 원하는 것 같습니다.”

“……미친놈들.”

외통수를 노리고 저지른 일이다.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처벌을 약하게 하자니 전왕문의 위신이 떨어지고.

그렇다고 강하게 처벌을 하자니 저들에게 명분을 주게 되는 꼴이니까.

“잡혀 온 놈들이 몇 명이라고?”

“서른이 조금 넘습니다.”

“모두 참수해.”

기왕 명분을 줄 거면 두려움도 함께 주는 게 옳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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