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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뿔도 없는 무림환생-194화 (194/234)

194화 뜻밖의 손님

흑룡문의 개파식은 즐거웠다.

여기저기서 불러 모은 악공들과 무희들이 분위기를 띄웠고, 온갖 맛있는 음식들과 향긋한 술이 손님들의 혀를 즐겁게 했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요, 용……!”

“한 번만 더 용체 어쩌고 하면 그냥 간다.”

북궁창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천천히 설명했다.

“크흠, 돈은 조금 들었으나 한중 전체에 흑사……. 아니, 흑룡문의 이름을 널리 알렸으니 오히려 이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긴.”

속으로 감탄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인물이다.

무공 강해, 머리 좋아, 카리스마까지 있어.

축구 게임의 굴라트처럼 전형적인 육각형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어서 오시게! 북궁 문주.”

자기가 북궁 문주면서 북궁 문주를 찾으며 일어선 북궁창.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굴러다녀야 할 것만 같은 북궁장환이 헐떡이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크흠, 개파 축하하네. 북궁 문주.”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을 보니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혼란하다. 혼란해.’

앞으로 한중 여기저기서 북궁 문주를 찾는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았다.

“후후훗, 어딜 보시는 거예요? 자, 어서 한잔 받으세요.”

한숨을 내쉬고 있으니 묘향이 내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고마워. 누이.”

“큰 걱정거리도 치웠겠다. 시원하게 마시자고요.”

꿀꺽.

“하아. 좋다.”

하오문 한중 지부와 컨소시엄을 훌륭하게 마무리하여 상단을 인수했던 차라 아주 여유로워 보였다.

할 일을 완벽하게 끝내 놓고 즐기는 커리어 우먼의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소도 여기 와서…….”

우걱우걱.

귀, 아삭. 뚤. 아삭.

식탁 구석에서 닭 다리를 입안으로 쑤셔 넣고 있는 청소소와 비교를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나저나 청아는 뭐 먹는 거지?

“청아? 뭐 먹니?”

아삭. 귀뚤?

“가지구나. 많이 먹어.”

차르르. 차르르.

청아가 기분 좋은지 울음소리를 냈다.

가지가 신선해서 정말 다행이다.

“어머? 저 빼고 마시려고요?”

적화란이 잔을 내밀었다.

“설마요. 후후후.”

묘향이 그런 그녀의 잔에 술을 잔뜩 따랐다. 그것도 표면장력이 일어날 정도로.

“…….”

평소 사이가 좋았음에도 두 사람의 분위기가 오늘따라 날카로웠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라.

이 자리엔 이 시대의 진정한 네고시에이터 진무전이 있으니까.

“자자, 술도 따랐겠다, 다 같이 옛날이야기나 하면서…….”

하지만, 앞에 앉은 두 명은 네고할 생각이 없는지 나를 무시하고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요새 활약상이 두드러지더라?”

“뭘요. 다 ‘우리’ 진 문주님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도움만 받아서 되겠어? 진정한 내조는 남자에게 도움을 줘야지.”

“도움을 받아 일을 성공시켜 문주님께 큰 도움이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진정한 음양합일의 이치가 담긴 게 아닐까요?”

“으, 음양합일?! 너 정말?!”

“그게 뭐라고 이렇게 화를 내실까?”

“이게……!”

막장 드라마 속 재벌 집 막내딸과 능력 출중한 여주인공의 대결을 보는 느낌.

여기까지 보니 알 수 있었다.

‘사회 경험이 이래서 중요한 거지.’

적화란은 묘향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는 걸.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지.’

[소소.]

이제 막 닭 다리를 다 뜯고 날개를 뜯으려던 청소소에게 전음을 보냈다.

번들거리는 기름을 입가에 묻힌 그녀가 ‘왜?’ 하는 눈빛으로 시선을 보냈다.

[여기 와서 분위기 좀 풀어 봐.]

도리도리.

[왜?]

척.

그녀가 자신의 앞에 둔 음식들을 가리켰다.

[내 거 다 줄게.]

끄덕.

자신의 잔을 들고 온 청소소가 묘향과 적화란 사이에 끼어들었다.

“뭐 해요, 다들. 이 좋은 날 마시지 않고.”

그렇게 지옥의 술 배틀이 시작되었다.

* * *

“으음……. 푸우……. 얼큰한 화과 한 그릇만…….”

“으으……. 머리가…….”

“히히히, 제가 이겼네요.”

최후의 승자는 의외로 청소소였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던 그녀가 상당한 수준까지 무공을 익힌 적화란, 굴곡 있는 인생을 살아 잔뼈가 굵은 묘향을 주량으로 압도한 것이다.

심지어 함께 마신 나조차도 어질어질할 정도로 부었는데 말이다.

“원래 이렇게 잘 마셨어?”

“사람은 원래 준비성이 좋아야 하는 법이죠. 히히.”

그녀가 숙취환 한 알을 꺼내 보였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니 입술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먹어요. 강제로 주독 배출하지 마시고요. 간에 안 좋으니까요.”

“고마워.”

숙취환을 씹어먹자 취기가 확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이 레시피를 가지고 현대로 돌아가면 새벽녘 808 아저씨보다 더 부자가 될 것이다.

“그나저나, 이걸 어쩐다.”

청소소가 쓰러진 두 여자를 보고 중얼거렸다.

“어쩌긴 어째. 네가 업고 가야지.”

“……연약한 제가 어떻게 업어요?”

“그럼 누가 업어?”

“문주님이요.”

“누구 혼삿길 막을 일 있어? 업기 싫으면 이상한 소리하지 말고 북궁 문주나 불러와.”

참고로 여기서 혼삿길이 막히는 사람은 나다.

“흑룡문주는 왜요?”

“가마라도 태워야 할 거 아냐?”

“그럼 제 것도요.”

“너는 그냥 걸어가고. 멀쩡한데 뭐 하러 돈 주고 사람을 써?”

“치이. 자꾸 그러면 흰둥이에게 대법 안 해 줄 거예요.”

“서, 설마?!”

“맞아요. 청가장의 비전 절학을 이어받은 본녀가 마침내 회천도인금침대법(廻天道引金針大法)을 말에게도 쓸 수 있게 개조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

회천도인금침대법의 귀뚜라미 버전에 이어 말 버전도 개발에 성공하다니.

가히 천부적인 재능이었다.

“조만간 대법을 시행할 테니 그 전에 준비나 좀 해 주세요.”

“헤헤, 소인이 뭘 준비하면 되겠습니까요?”

“가마요. 다리가 아프면 대법에 악영향을 줄 테니까요.”

“어이쿠, 얼른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 * *

늦은 밤, 세 여자를 가마에 태워 전왕문에 도착하니 전각의 불이 모두 꺼져 있었다.

기다리던 시비들이 술 취한 두 여자를 방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있던 차에 유소평이 다가왔다.

“안 자고 뭐 하냐?”

“손님이 찾아오셔서 말입니다.”

“이 시간에?”

“예.”

“늦었으니까 내일 보자고 전해줘.”

“그게…….”

머뭇거리던 유소평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현양진인이 찾아오셨습니다.”

“뭣?!”

“쉿. 목소리 낮추셔야 합니다. 진인께서 찾아온 걸 아무도 알지 못하도록 입단속을 부탁하셨습니다.”

“그, 그래.”

현양진인이면 무당의 최고 어른으로 나도 아는 사람이다.

정확히는 천하에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무공도 무공일뿐더러, 도력(道力)이 고절하여 살아 있는 신선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민간의 지지를 잔뜩 받는 그는 사자맹에서도 십마련에서도 언터처블로 취급받았다.

어떻게 보면 무당 장문인보다 끗발이 있는 인사였다.

당연히 냉큼 달려갔다.

혹여나 그를 홀대했다는 소문이라도 퍼지기라도 하면 남은 일생 내내 날아오는 돌을 피하며 다녀야 할 수도 있으니까.

드르륵.

온 힘을 다해 달려 손님방의 문을 열었다.

새하얀 백발과 수염을 기른 도사가 꼿꼿한 자세로 앉아 차를 따르고 있었다.

“허허, 이리 급하게 올 필요가 없는 것을……. 차를 따라 놨으니 앉으시지요.”

“…….”

문을 연 순간에 따르기 시작한 차.

과연 이게 우연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건 현양진인의 용건이었지만.

후루륵.

자리에 앉아 차를 들이켜며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찾아온 연유가 궁금하신가 봅니다.”

“아…… 예.”

사실, 어느 정도는 짐작이 된다.

공손적산.

그가 바로 무당의 속가제자였으니까.

“문주를 책망하려고 온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 그렇습니까?”

당황하는 내게 현양진인은 예상을 뛰어넘는 말을 했다.

“그저 유해를 수습하는 걸 도와 달라고 왔소이다.”

“유해라면…….”

“공손적산, 사사로이 제 제자가 되지요.”

“…….”

‘공손적산이 현양진인의 제자였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예상할 수 없었다.

속가제자는 원래 스승이라는 개념이 없고, 단체로 수업을 듣는 커리큘럼을 따르니까.

‘생각해 보면 속가제자치고는 무공이 뛰어나긴 했어.’

그냥 천재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남들이 학교만 다닐 때 일타 강사의 과외까지 받은 셈이니깐 말이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차, 현양진인이 허허로이 웃으며 말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럼 가시지요.”

“네?”

“도와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아침 일찍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꼭 지금이어야 합니다.”

“아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리 내가 무림의 상류층에 올랐더라도 기본 베이스는 한국인.

장유유서라는 기본 도리는 지키면서 사는 건실한 청년이었던 바.

무림의 웃어른 되시는 분 말씀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가, 가시죠, 그럼. 마침 어디에 묻었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그럼 도와줄 사람들을 불러오겠습니다.”

“혼자만 오셔야 합니다.”

“예?”

시체를 가지러 둘만 가자고 우긴 것이다.

“아니, 그럼 시신 수습은…….”

“진 문주께서 해 주셔야죠.”

질끈.

아찔하기 그지없는 대답이었다.

공손적산이 자결한 지 보름.

충분히 살이 썩고 냄새가 올라올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시체를 직접 만져야 한다니.

현대인 경력자로서 비위가 약한 내게는 치명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재빨리 반대 의견을 내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있습니다.”

현양진인은 자애로운 표정과 단호한 태도로 내 의견을 묵살했다.

결국.

“여깁니다.”

나는 횃불을 든 채 그와 함께 공손적산을 묻은 곳으로 향했다.

휘이잉.

원한을 산 가문의 선산이라 그런지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퍽퍽퍽.

내공을 실어 손을 휘두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관이 보였다.

“열어 주시지요.”

“으으.”

도무지 관뚜껑을 열어 썩은 시체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가져가면…….”

“안 됩니다.”

“에라이.”

드르릉.

어쩔 수 없이 최대한 몸을 빼고 뚜껑을 뒤집었다.

그리고.

“헉!”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목격했다.

“머, 멀쩡하다니!”

시체의 상태가 죽은 그날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도 썩은 내가 전혀 올라오지 않았고.

가장 놀라운 건.

“기, 기가!”

시체에서 기가 느껴진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현양진인.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승에 원한이 남아서 그런 것입니다. 아마 곧 있으면 원혼이 되겠지요.”

“워, 원혼이라면?”

“민가에서 말하는 귀신을 뜻합니다.”

“헉!”

세상에나, 귀신이라는 게 진짜 있었다니!

그것도 십중팔구 나를 노릴 게 확실한 귀신이.

부르르르.

전설의 고향 구미호 편을 본 이후 이만한 공포를 느낀 적이 없었다.

현양진인이 공손적산의 시체 앞에 서서 크게 호통쳤다.

“네 이놈! 탐욕에 사로잡혀 자신을 망친 주제에 어찌 이승을 떠나지 않고 있더냐!”

번쩍.

“으억! 시체가 눈을 떴다!”

기절할 뻔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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