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의대 입학 [1]
갑자기 우악스러운 사람들이 날 붙잡고.
-다리 잘라야겠네! 응? 썩었네?
이렇게 외치는가 싶더니 소독도 마취도 안 한 채 피 묻은 칼을 눈앞으로 들이미는 로버트 리스턴 박사.
원래도 나보다 훨씬 거대한 몸집의 소유자였는데, 오늘은 어쩐지 더더욱 거대해 보였다.
집채만 하다고 해야 하나.
-30초면 끝나.
끝난다니까 어쩐지 생이 끝난다는 말처럼 들렸다.
-자, 그럼. 잘라 보실까.
로버트 리스턴 박사는 거대한 몸집에 어울리는 칼을 들고 나를 향해 내리찍었다.
“사, 살려 줘, 시발!”
비명을 지르며 일어나고 보니 조지프의 얼굴이 보였다.
녀석은 날 아주 한심하다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별 지랄을 다 하네.”
지랄?
지랄이라고 했냐?
내가 꿈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데.
물론 그런 말을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일단 이런 말을 해 봐야 다들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하지 않겠나?
당대 최고의 외과 의사이신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께서 친히 다리를 잘라 준다고 하셨으면 감사히 잘려야지, 어딜 비명을 지른단 말인가.
“이상한 꿈을 꿔서 그래.”
“너 괜찮겠냐? 보기보다 되게 심약하네.”
심약?
인마…….
내가 인마, 의대생일 때부터 타고난 외과 의사라는 평도 들었다고.
해부학 실습 때는 물론이거니와 수술방 들어가서 어시스트 설 때도 긴장은커녕, 실수 한 번 없이 제대로 해서 말이야.
“너 그날 이후로 꿈을 자주 꾸는 거 같은데?”
인정은 한다.
그런 내게도 그날 수술은 정말 충격이었다는 걸.
‘난 네가 진짜 신기하다…….’
아무리 의학에 대한 개념이 없다곤 해도, 그냥 그 장면만으로도 끔찍하지 않았나?
그걸 보고도 술도 없이 잠을 잘 자다니.
정말이지…….
‘어쩌면 너도 타고난 의사일는지도 모르지.’
이 시기의 의사가 정말 병 고치는 사람이 맞는지, 사람 살리는 사람이 맞는지는 의문이지만.
하여간 대담하기는 했다.
“그래도 잘 자.”
“그래, 잘 잔다니 다행인데. 나 때문에 무리하는 거면 그러지 않아도 돼. 어차피 외과 의사라는 게 돈 잘 버는 직업도 아니잖아?”
“아, 음. 나도 그렇게 듣기는 했어.”
나는 뭔가에 씐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외과에 매달렸다.
대한민국에서도 외과는 앞길이 그리 밝은 과목은 아니었지 않나.
다른 과 의사들이 벤츠나 BMW 몰 때 외과 의사는 소나타 몰 각오 정도는 있어야 들어오게 해 준다고 했던 과장님 말이 생각났다.
그럼에도, 외과 의사도 의사는 의사라서 최저 수준이라는 게 있었다.
헌데 이 시기의 외과 의사는 그런 것도 없었다.
오히려 병원에서 제일 월급이 낮을 지경이었다.
다른 의사들과 비교한 게 아니라, 그냥 병원에서 제일 낮았다.
“돈 생각하면 우리 아빠 밑에서 일하는 게 훨씬 낫긴 할걸.”
조지프의 말이 맞기는 했다.
돈 생각하면 그냥 가서 와인 나르는 게 훨씬 나았다.
나도 그 때문에 고민을 한창 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내과 의사를 해?’
내과.
이쪽에 대한 인식은 훨씬 나았다.
하지만 알아보니까, 아직 플레밍 박사(페니실린을 발견한 의사)가 누군지도 모르더라고?
그 말은 항생제가 없다는 건데, 그것도 없이 대체 무슨 병을 고친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 역시 내과에 대한 지식은 일천하기 그지없었다.
외과 교수 되느라 학생 때 배운 건 다 까먹었거든.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지, 암.’
게다가 나중에 듣고 보니,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급이 되면 돈을 꽤 번다고 했다.
병원에서 받는 월급은 얼마 안 돼도, 환자에게 따로 받는 게 좀 있다는 얘기였다.
‘내가 설마하니…… 여기서 최고가 못 되겠냐.’
자격증만 있으면 된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난 외과 의사가 될 거야.”
“그래, 고마워. 같이 그럼 한번 해 보자.”
“그래. 갈까?”
“응, 가자.”
발 빠른 아저씨는 업턴에 도착하자마자 입학 원서를 냈다.
그리고 후원금이 급했던 건지 뭐가 급했던 건지는 몰라도 하여간에 서둘러 준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 덕분에, 우리는 바로 의과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기숙사는 어떻게 구했냐고?
한번 가 보긴 했는데, 이름은 기숙사인데 안은 지옥인 것 같아서 바로 돌아 나왔다.
물론 런던 하숙집이 어떤지 알고 봤다면 그냥 들어갔을 터였다.
우리는 지옥 밑의 지옥에 있었다.
“조심해.”
“응. 얼굴 보이냐?”
“안 보여. 근데 여름 되면 어떻게 다니려고 그래?”
“그땐 그때의 내가 걱정하겠지.”
다행히 빈민가는 아니었다.
솔직히 아직 어리고, 돈 버는 것도 없는 학생들이다 보니 빈민가에서 다니는 것도 괜찮지 않나 싶었는데.
각 의과 대학으로 ‘납품’되는 해부 실습용 시신의 90% 이상이 병원이 아닌 빈민가에서 나온단 말에 그 생각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아니, 던져 버렸다.
철퍼덕!
물론 일반인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서 쾌적한 것은 아니었다.
“아…….”
“똥 밟았네.”
“걷다 보면 떨어져.”
“시벌…….”
거리에 널린 똥 무더기는 뭐 일상이었다.
처음엔 왜 이렇게 남의 집 앞에서 똥을 싸나 싶었다.
나는 동양인이고 조지프는 퀘이커 교도다 보니 타겟이 됐나 걱정도 됐고.
그런데 알고 보니, 아무 데서나 싸는 게 일상이어서 우연히 집 앞에도 싸는 것뿐이었다.
위안은 되지 않았다.
시발놈들.
“눈 마주치지 말고.”
“어, 빨리 걷자.”
물론 대놓고 시발놈이라고 할 수 있냐?
이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한국 욕을 몰라도 상관없었다.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는 노동자들과는 눈을 오래 마주치면 안 되었다.
왜?
뒈지니까.
“아…… 다 왔네. 등교할 때마다 이렇게 마음을 졸여야 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학교는 가까웠다.
대문을 볼 때마다 안도감을 느껴야 한다니.
잠시나마 찾아왔던 안도감은 이내 절망이 되었다.
“아…… 여기다.”
그런 나와는 달리, 조지프는 얼굴이 밝았다.
머릿속에 꽃만 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따지고 보면 환경이 더 열악해진 건 저놈인데.
어찌 이 상황에서 웃을 수 있을까.
일단 똥 냄새 난다고 너.
아까 똥 밟았다고.
그것도 개똥도 아니고 사람 똥!
끼이익-
그렇게 어기적어기적 걷다 보니 어느새 강의실이었다.
문을 열어 보니 안에 딱 봐도 어리바리한 애들이 여럿 있었다.
물론 입학 제도라는 게 아직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시기다 보니 늙수그레한 사람도 있었다.
거의 뭐, 나이가 한 서른은 넘어 보였다.
하여간 이들은 의과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시범 수업을 통해 안면을 튼 사람들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조지프 리스터라고 합니다. 업턴 출신입니다.”
해서 우리는 자기소개를 해야만 했다.
나부터 하면 반응이 이상할 게 분명하기에 늘 조지프가 먼저 나섰다.
그래 봐야 시선은 온통 내게 쏠려 있긴 했다만.
하여간, 조지프는 그렇게 말을 마친 후 내 소개도 알아서 해 줬다.
“여기 이 친구 이름은 태평, 간단하게 평이라고 부르면 되고……. 부모님께서 에이단 터너 신부님이랑 같이 마카오로 가다가 런던으로 오시게 됐고, 여기서 살게 된 조선 사람이에요. 외모는 다르지만 여기서 나고 자란 영국 사람입니다.”
일말의 히스토리가 필요해서 그렇기도 했다.
어찌 되었든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부님의 도움으로 여기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하면, 여전히 이상하게는 볼지언정 적대적으로 보지는 않게 되거든.
게다가 이놈들은 의사를 꿈꾸는 놈들이니 좀 낫지 않을까, 싶은 것도 사실이었다.
사람 살리려고 온 사람들이잖아?
“동양 놈이 무슨 영국 사람이야? 말이 되나?”
아, 그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웬 어린 새끼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래, 지금의 나랑 동갑 정도 될까?
“어디 원숭이 같은 놈이…….”
나는 대꾸하는 대신 외형 스캔에 들어갔다.
옷? 고급품이다.
아무리 산업혁명이 벌어지면서 공산품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곤 하지만, 고급품은 대체가 불가능하지 않던가.
특히 대영제국의 힘을 이용해 세계 각지에서 들여와야 하는 소재는 더욱 그랬다.
‘머리도 그렇고, 새끼…… 부잣집 놈인가?’
이렇게 되면 좀 곤란했다.
이 시기의 부자는 마음만 먹으면 물리적인 힘도 행사할 수 있었으니까.
업턴에서야 조지프가 방패가 되어 줄 수 있었지만 여기선…….
벌커덕!
어쩌나 하고 있는데, 문이 부서질 것 같은 기세로 열렸다.
뒤를 돌아보니 몸집이 거대한 사람 하나가 성큼성큼 들어서고 있었다.
로버트 리스턴 박사였다.
“뭐야. 소개해 주려고 했더니 둘이 서 있네.”
그는 어느 틈엔가 우리 둘 사이에 서더니, 솥뚜껑만 한 손으로 어깨를 꽝 두드렸다.
“이쪽은 조지프. 이쪽은 피영. 둘 다 여러분과 같이 공부할 친구들이니까 환영해.”
그러곤 명령을 내렸다.
환영하라고.
“네. 환영한다, 친구들!”
그랬더니 박수와 갈채가 쏟아졌다.
놀랍게도 제일 앞장선 놈은 아까 나한테 원숭이라고 했던 그 부잣집 놈이었다.
“그래, 그렇게 해라.”
“네!”
눈은 웃는데 몸은 떨고 있었다.
‘아…… 박사님 맛을 봤구나.’
하긴, 눈앞에서 사람 써는 인간이 명령을 내리는데 무섭지 않으면 그게 사람인가.
나처럼 전생에 한 서른몇 년쯤 굴러먹다 온 십 대도 아닐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들어가.”
“아, 네.”
아니, 그런 나도 무서웠다.
저 사람은…….
칼을 들기 전부터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 자체가 존나 무서워.
“자, 오늘부터 정규 수업 시작이다. 이 중에서 얼마나 졸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열심히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도록 해라.”
유급 제도를 말하는 것 같았다.
유급을 많이 하다 보면 잘리기도 하겠지?
‘근데 꼭 무슨…… 죽어서 졸업 못 할 것처럼 말하네…….’
말하는 인간만 그런 게 아니라 듣는 이들도 그러했다.
어딘지 모르게 엄숙하고도 비장한 게, 마치 전장을 앞에 둔 사람 같달까?
하여간 나는 첫 수업이니만큼 집중했다.
일단 미니 칠판부터 꺼냈다.
솔직히 내가 모르는 지식을 알려 주려나 싶긴 했지만.
나도 학생이 끝난 지가 오래돼서 혹 까먹은 게 있을 수도 있단 생각 때문이었다.
“외과 의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해부다. 물론 수술할 때 이러한 것을 고려하긴 어렵지.”
하지만 강의는 첫마디부터 이상했다.
‘해부를 고려하지 않은 수술이라……?’
일반인이 생각해도 이상한 얘기 아닙니까?
이러니까 인마.
하고 막 욕을 하려는 찰나, 합당한 이유가 튀어나왔다.
“마취 때문이다. 술을 마시게 하든 뒤통수를 후려치든 칼을 대면 깬다.”
아.
하긴 지금 이 시대에는 마취가 없지.
다시 말하면, 환자의 살을 생으로 째야 한다는 뜻이었다.
얼마나 아플까?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난 한 번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었으니.
“천천히 생각하면서 수술하다 보면 환자가 죽어. 반드시 죽는다. 그래서 일단 외과 의사는 칼을 잡으면,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게 좋아. 그러면서도 해부학적인 고려를 해야 한다. 자세히는 하지 못해도, 해야 해. 그 때문에 해부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찰나의 순간에도 해부를 떠올리려면, 해부를 머릿속에 때려 박아야 해!”
리스턴 박사님은 말을 하다 말고 칠판을 꽝 때렸다.
아까는 없었던 자국이 생겼다.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부서졌으니까.
‘집중 안 하면 죽겠구나.’
배울 것이 없더라도 졸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