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나 신문에 나왔다 [1]
‘아…… 뒈지겠다…….’
로버트 리스턴…….
덩치만 큰 줄 알았는데 술도 잘 마시는 사람이었다.
몰랐는데 조지프도 그랬다.
앨프리드?
선배는 솔직히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콜린 그놈이 술 마시다가 갑자기 이 뽑았던 자리에서 피가 나는 바람에 자리를 파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은인인가?’
그 새끼 아니었으면 진짜 뒈질 뻔했다.
뭔 시벌 술을 그렇게 먹냐고.
바이킹도 아니고.
아니, 바이킹 맞나…….
하여간 진짜 내 앞에서 신사의 나라 영국 운운하는 놈 있으면 죽는다.
“우웁.”
“야, 너 죽겠어.”
물론 그 전에 진짜 내가 죽겠다.
와…….
아니, 아침인데 토가 나와.
“으으…… 물. 물 좀.”
“해장술이라도 좀 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 와중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선배는 해장술을 운운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긴 했다.
술에 또 취하면 숙취로 인한 두통을 잊을 수 있거든.
물론 알코올 의존증으로 가는 지름길인 동시에 의존증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의사가 이렇게 당당히 할 얘기는 아니란 얘기.
“어제 그 술집이라도 가? 개털을 해야 할 거 같은데.”
“뭔…… 뭔 소리예요.”
그러다 얘기가 좀 이상한 데로 새기 시작했다.
술 얘기 하는 중에 개털이 왜 나와.
눈치를 보아하니 조지프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비록 술 파는 퀘이커 교도, 그러니까 나일론 신자이긴 해도 이렇게 두주불사가 되도록 마시는 법은 없다 보니 해장이라는 걸 해 본 적도, 하는 걸 본 적도 없어서 그랬다.
“개털도 모르나?”
“개도 알고 털도 아는데…… 뭔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네.”
“개에 물려 아플 때 자신을 문 개의 털을 뽑아서 덧대면 상처가 낫는 거 몰라?”
“뭔 미친…….”
“하여간, 자기가 마신 술집에서 술 먹으면 머리 아픈 게 낫는다더라고. 나도 그러던데?”
“그…… 끅.”
와.
한 가지 배웠다.
개털이니 나발이니 하는 개소리를 통해서는 아니고, 술 먹고 나서 누가 빡치는 소리를 하면 머리가 더 아파진다는 것이었다.
“아…… 나 못 가겠는데…….”
아까도 못 갈 정도로 아팠는데, 지금은 더 아팠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졌다.
솔직히 가 봐야 배우는 것도 없는데 뭐하러 간단 말인가.
뭐 이런 생각이 샘솟았는데, 조지프도 앨프리드도 날 뜨악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이야.”
“너 진짜 용기가 대단하구나.”
이 새끼들이 이상한 짓 하는 거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니, 이제 와서 또 놀라는 것도 이상한 일일 테지만…… 이런 반응은 또 처음이었다.
“왜?”
해서 물었더니, 둘은 서로를 마주 바라보곤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 기억이 안 나는구나?”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그럴 수가 없지.”
“무슨…… 뭐가?”
“너 오늘 리스턴 박사님하고 해부하기로 했잖아. 그거 빠지면…… 너 뒈질걸?”
“어. 너 형형 하면서 오늘 꼭 뵙겠다고 그랬어. 넉살 되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정신이 없는 거였구나.”
“아…… 내가…… 내가 그런 약속을 했구나.”
왜 했을까.
오늘은 좀 쉬겠다고 할걸.
아, 오늘은 진짜 머리가 너무 아픈데!
탈수도 진행 중인 거 같은데!
다그닥.
물론 이런 건 이제 와서 다 의미 없는 바람일 뿐이었다.
진짜로 뒤지게 생겼는데, 단순히 죽을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 빠질 수는 없지 않겠나.
해서 마차에 탔다.
숙취가 심할 때 차에 타 본 사람은 알 텐데,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아.”
비명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진짜 절로 흘러나왔다.
“다 왔습니다. 아유, 노블 킴. 거의 죽어 가는데……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의사가 되는 겁니까?”
도착해서 내 얼굴을 본 마부 아저씨가 걱정스럽단 얼굴로 어깨를 두드렸다.
고맙긴 한데 골이 흔들려서 그런가 토하고 싶어졌다.
“웩.”
“아.”
아니, 토했다.
“죄송…… 죄송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신발에 묻은 건데요, 뭐.”
그리고 이미 신발에 내 전에도 꽤 많은 사람이 흔적을 남겼었다는 것을 확인하자 또 토하고 싶어졌다.
하여간 이놈의 19세기의 위생 관념은 아니, 대도시 런던의 위생 관념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어, 저기.”
고개를 최대한 고정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 있었다.
평소와는 달리 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는데, 아무리 봐도 기자 같았다.
19세기에 기자라니?
나도 처음에 보고는 좀 어이가 없었는데, 하여간 런던이 뭔가 빠르긴 했다.
문자 그대로 더럽게 빠른 게 문제긴 하지만…….
“박사님. 어제 정말 그 마취가 성공한 겁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알겠소. 성공했다니까.”
“그게…… 그 우리가 파티에 쓰던 웃음 가스를 쓴 거라고요?”
“그렇소. 다들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 않았소? 웃음 가스 파티에 가면 감각이 모호해진다는 경험은 다들 해 봤을 거요. 그걸 마취제로 쓸 생각을 하지 못했을 뿐이지. 아, 옳지. 마침 저기 오는구만.”
박사님은 날 확인하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저 친구가 닥터 피영이오. 이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지. 아주 전도가 유망한 젊은이라오.”
“오.”
그러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안 그래도 노란 얼굴이라 특이하다 싶었을 텐데 박사님이 이런 말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습니까?”
“어디서 왔습니까?”
“의사는 맞습니까?”
“영국 사람 맞습니까?”
머리 아파 뒤지겠는 내 입장에서는 별로 환영하고픈 일이 아니었다.
허나 언론의 무서움을, 21세기에서 진짜 신명 나게 보아온 나로서는 이들의 질문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내 편이 되면 대박…… 근데 그럴 리는 없지.’
언론을 쥐고 흔든다는 발상을 하는 사람은 어김없이 말로가 별로였더랬다.
언론인들이란 대개 반골이거든.
지금이라고 해서 다를까?
눈만 봐도 이 새끼들 딱히 좋은 사람일 거 같지 않았다.
즉 내 목표는 적을 만들지 않는 데 있었다.
그 대상엔 우리 형, 그러니까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도 있었다.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의 가르침 덕입니다. 특히 교수님이 데려가 주신 파티에서 있었던 일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어떤 일이죠?”
“제가 가스를 삼키고 어디에 부딪쳤는데 아프지가 않더군요. 아파야 할 텐데…… 그랬습니다.”
“허어. 거기서 이런 힌트를 얻었다고요?”
콜린은 없었다.
그래서 나름 기여를 했던 몸인 콜린 이야기는 쏙 뺐다.
“조선에서 왔습니다.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있는 나라죠.”
“동쪽? 인도 근처인가요?”
“아, 아뇨. 청보다 더 동쪽에 있습니다.”
“아…… 극동에서 왔군요.”
“그…… 네.”
극동이라니.
새끼들.
니들이 세상의 중심이냐?
뭐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타협을 잘하는 편이고 또 겁도 많은 편이라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의사는 아닙니다만……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의 지도 아래 열심히 배우고 있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아아, 잠시.”
또 답을 이어 나가고 있으려니 로버트 리스턴이 끼어들었다.
사실 나도 아차 싶었다.
하이에나 같은 표정이 된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거든.
하지만 놈들이 하이에나라면 로버트 리스턴은 사자였다.
그는 우선 제일 앞장서서 ‘아하?’ 했던 놈의 만년필을 꾹 쥐었다.
뚝.
그러자 부러졌다.
진짜 무슨 만화처럼 부러졌다.
“어……?”
“이거 실례. 실수입니다.”
실수일 리가 없지만, 사자가 실수라는데 실수이지 않겠나.
눈치 빠른 녀석들은 ‘의사는 아니다’라고 적었던 문장을 슥슥 지웠다.
만년필이 그거 한두 푼 하는 것도 아닐 텐데, 부러지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나.
로버트 리스턴은 그렇게 좌중을 압도한 채 말을 이었다.
“곧 될 겁니다. 자격은 충분해요.”
“아니…… 저희가 알기로 테이피영? 이 사람은 여기 들어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던데요?”
좀 떨어져 있던 놈이 이렇게 물었다.
로버트는 주먹을 쥐었다가 풀었다.
아마 과학자답게 물리로 해결하려고 했을 터였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놈들은 죄다 문과지 않나.
생각을 고쳐먹는 게 좋았다.
괜히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이놈들이 돌아가서 왈랑왈랑 떠들기 시작하면,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은 몰라도 나는 광장에 매달릴 수도 있었다.
“오래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별개지. 나만 봐도 그렇지 않소? 경력 있는 외과 의사 중에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소?”
“음. 그건…… 하지만 박사님은 런던 최고의 천재이지 않습니까? 비교 대상이…….”
“피영은 나와 견줄 만한 사람이오. 정 못 믿겠으면…….”
같은 생각을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로버트는 차분히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그렇게 오랫동안 인내심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평소에 참은 적이 없어서 그럴 터였다.
“저기서 한번 보시게.”
“저기……?”
해서 로버트는 해부 실습실을 가리켰다.
딱 봐도 일반인은 오금이 저릴 만한 포스를 내뿜고 있는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어둑한 복도 끝 굳게 닫힌 문.
옆에 놓인 천 마스크와 면 조각들.
바닥에 뚝뚝 떨어져 있는 핏자국.
의과 대학이 아니라 어디 딴 데 있으면 지옥 입구라거나 던전 입구라 해도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광경이었다.
-여기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릴지어다.
벌써 몇 번 왔다 갔다 해 본 나조차도 입구를 볼 때마다 지옥이 떠오르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저기로 오라고요?”
“그래.”
“뭐…… 뭘 하시려고.”
“해부하는 거 보라고.”
“아.”
기자들도 아마 죽음을 떠올렸을 게 뻔했다.
하지만 로버트는 위압적인 외양과는 달리 의사긴 했다.
그것도 꽤 명의.
사람 살리는 데 진심이지 않던가.
그는 어이없어하며 입구로 향했다.
끼이익.
그러곤 문을 열었다.
“우웁.”
용기를 내 그의 뒤를 따랐던 기자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아직 해부 실습실의 위용은 영접하지도 못했지만, 냄새만으로 이미 모두를 두려움에 떨기에 충분했다.
그에 반해 나는 의외로 괜찮았다.
‘점막이 부어서 그런가? 아니면 아직도 취해서 그런가…… 냄새는 모르겠네?’
여러 가지 이유가 떠올랐는데, 하여간 솜 하나로 틀어막으니 버틸 만했다.
문제가 있다면 틀어막을 때 살짝 손이 떨렸다는 점인데 이 또한 괜찮았다.
장갑이 하도 두껍다 보니 그거 끼면 떠는 줄도 모를 거라 그랬다.
“이걸로 할까.”
그 사이 로버트 박사님은 시신 한 구 앞에 앉았다.
내가 건드렸던 시신인데, 당연하게도 시일이 좀 지나 부패가 진행되어 있었다.
꺼림칙했지만 나 또한 기자들에게 뭔가 어필해야 하는 입장이라 아무렇지 않은 척 앉았다.
“그럴까요?”
“그래. 다들 와서 보게.”
“아니, 저희는.”
“딱히 그럴 필요는…….”
“와서 봐.”
“어…… 네.”
“그리고 기사를 내. 얼마나 잘하는지 보고 기사를 내라고. 시비 털 생각 하기 전에.”